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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후렴

조회 수 115 추천 수 0 2019.11.12 12:50:34
저자 : 김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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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후렴

 

김겨리



 

수면에 비친 구름의 목덜미에 물결 자국이 흥건하다

수심이 깊을수록 푸른 것은

물의 심성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굽이친다는 말은 단층의 은유인 물결이 생긴다는 뜻

물결이 이는 것은 수심이 떨리기 때문이다

소금쟁이가 거저 물 위에 떠 있는 것 같지만

가라앉지 않으려 그들이 얼마나 숨을 참고 견디는지

그때 물의 괄약근은 또 얼마나 정교한 탄력을 유지해야 하는지

물결을 움켜쥔 소금쟁이의 발이 물빛인 것을 보면 안다

자신의 원형을 버려 가며 기꺼이 구겨짐을 견디는 것이

물의 굴절만은 아니겠지만

물에 결이 있는 것은 생의 굴곡에 대한 물의 습작

퇴고에 퇴고를 거쳐도 늘 물의 초고에 머문다

구름 소인이 찍힌 물결은 수심이 첨삭한 추신이다

수압으로 봉인된 수심을 풀면

익사체의 목록은 가라앉고 소문만 물결체로 뜨겠지만

온새미로 인양된 수심의 궤적은 늘 젖어 있어서

물결체를 읽으려고 바람이 온갖 자세로 수면을 들여다본다

잠자리가 꽁지로 수면을 두드릴 때 잠깐씩 열리는 물의 문

잠자리는 물의 경첩,

물을 속독하듯 물수제비가 저수지를 건너간다

 

 

 시집『나무가 무게를 버릴 때』2019. 시산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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