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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박남희

 


                    시적 시․공간의 절대성과 상대성

                                                                            - 박남희

 

 


   우리가 사는 지구라는 별의 시간과 공간은 상대적 개념으로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로 상정하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과거나 미래는 현재가 있기에 가능하다. 공간 역시 하늘과 땅, 육지와 바다, 안과 밖, 여기와 저기 등으로 구별되는 순간 그것은 상대적인 것이 된다. 우리가 세계를 상대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주변과의 비교를 통해서 세계를 뚜렷이 인식하고 싶어하는 인간 욕망의 결과물이다. 미남과 미녀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듯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각자가 다르다. 이러한 다름이 세계를 조화롭게 해주고 다양성이 존재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우리가 시를 쓸 때는 상대적인 세계도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는 세계로 변모한다. 그것은 우리가 인식하는 현실세계와 시적인 세계가 같지 않다는데서 연유한다. 시인이 체험과 상상력을 결합해서 창조하는 세계는 엄밀히 말하면 허구적 세계이다. 허구적 세계에는 현실적 차원의 시공간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 속의 공간이 현실공간과 다른 것도 이와 비슷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시를 읽을 때 시적 공간을 현실 공간과 비슷하게 인식하게 되는 것은 시를 읽는 독자가 시적 공간을 현실 공간처럼 상대적인 개념으로 인식하려 하기 때문이다. 즉 한편의 시 속에 존재하는 시․공간은 그 시만이 가지고 있는 절대성이 있지만, 독자는 그것을 현실의 시․공간에 전경화해서 바라봄으로써 현실성을 획득한다. 우리가 허구적인 시 속에서 진정성을 발견하는 것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시적 시․공간의 절대성과 상대성을 따질 때, 인간이 신을 바라보는 관점을 차용하면 보다 쉽게 이해된다. 우리가 신을 이야기 할 때 신은 인간 위에 존재하는 초월자로 인식하면서도 동시에 인간과 소통하는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이것은 인간이 신을 바라볼 때 절대성과 상대성을 모두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전적인 유신론에서는 신과 세상은 분리되어 있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신은 절대적이며 세상은 상대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만유재신론에서는 신은 절대적이며 상대적이고, 현실적이며 잠재적인 것으로 여긴다. 이런 관점을 차용하면 시적 공간은 절대성이 존재하지만 그것은 현실공간의 변용이라는 점에서 상대성이 공존한다. 이것은 신학의 만유재신론과 흡사한 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말을 하고 싶었다

부드러운 것들이 딱딱해지기 전에

결코 하지 않으려던 그 말을 하고 싶었다

색이 바래기 전에

망설임 끝에 말을 하려고 보니 손이 쭈글쭈글해져 있었다

입을 열었더니 얼굴이 부수어졌다

 

망설이는 동안 백 년이 지나가 버렸다

안간힘이 시간을 헤아리지 못하게 했다

입안엔 어느새 옥이 물려져 있었다

5천만 년 전의 박쥐 화석처럼

공허하고 아름다웠지만 살아있지 않았다

 

백 년 후에는 너무 끔찍한 말이 되었다

바오밥나무처럼 주목처럼 은행처럼

시간을 살아내는 말이 있다는 가설도

문자를 이겨내는 말이 있다는 전설도

갸륵하고 향기로웠지만 그 색이 참담하였다

그 뜻이 공허하였다

 

말을 하고 싶었던 자는 누구일까

태어나지 않은 말들은 모두 어디에 웅크리고 있을까

젖지 않고 썩지 않는 그 말들의 세계는

수수만년 어떤 영토를 확장하고 있을까

 

     ―조용미,「태어나지 않은 말들의 세계」,(『문학 • 선』봄호).

 

   세상에 썩지 않고 영원한 것이 있을까 하는 물음은 인간이 이 땅을 살아가면서 종종 생각해보는 명제이다. 아무리 오래 사는 식물이나 동물도 결국에는 썩어져서 흙이 되는 것이 삶의 이치라면, 아마도 이 땅에 영원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조용미 시인은 ‘젖지 않고 썩지 않는 말들의 세계’가 있다는 가정을 하고 시를 쓴다. 조용미의「태어나지 않은 말들의 세계」는 언어의 근원적 존재 의미를 탐색해봄으로써 궁극적으로 인간의 삶에서 언어가 차지하는 근원적 의미가 무엇인지 탐색해본 시이다. 여기서‘말’은 포괄적으로는 인간의 제유로 쓰이면서 구체적으로는 시를 가리키는 은유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시인이 시의 초두에서 “말을 하고 싶었다”고 고백하는 것은 시를 쓰고 싶었다는 고백과 동일한 것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시인에 의하면 인간은 태어면서 무언가 말을 하고 싶어 하지만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죽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태어나지 않은 말들’이 무수히 존재하게 된다. 이런 현상은 시인을 포함한 인간의‘망설임’때문인데, 이러한 망설임은 인간의 실존적인 망설임이라는 점에서,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 자체를 암시해준다.

  그런데 이 시에는 일상적인 시간이나 공간이 존재하지 않고 절대적인 시․공간이 드러나 있다. “망설임 끝에 말을 하려고 보니 손이 쭈글쭈글해져 있었다/입을 열었더니 얼굴이 부수어졌다//망설이는 동안 백 년이 지나가 버렸다”는 진술만으로도 이러한 상황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처럼 대부분의 시 속에는 상대적이며 일상적인 시․공간을 뛰어넘는 절대적인 시공간이 존재한다. 그런데 시인은 죽은 후에 존재하는 절대적인 시․공간보다는 현실적 시․공간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아무리 요긴했던 말이라도 살아있을 때의 말이라야 값어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에 드러나 있는 바와 같이 죽은 자의 형색은 참담할 뿐이고 죽은 자가 하는 말은 공허할 뿐인 것이다.

 

별이 폭발하면 모자를 써요.

모자를 쓰는 순간 우리는 비행접시가 돼요.

하룻밤을 날아 새로운 행성을 찾거나

푸른 은하를 살피며 기억나지 않는 별들에 대해 묻죠.

우주가 아름답다는 믿음은

확인되지 않은 하나의 가설, 미확인

비행물체처럼, 떠다니는 말의 정거장들과

폐기처분된 접시들이 중력과 척력 사이에서 부유해요.

별과 별 사이를 날 땐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을 의심해야 해요.

관계는 상대적이지만 상처는 늘 절대적이니까요.

날카로운 상처들을 피해 순간이동을 하고

슬픔은 빛의 속도로 버려요.

낯선 언어는 걱정하지 말아요.

새로운 별들은 많고

계수나무마다 챙이 둥근 모자 열리니까요.

문제는 블랙홀이죠.

우주에는 밝혀진 블랙홀만도 10의 10승으로 존재하고

불면의 밤마다 마실 커피나

아침에 쏟아버린 블랙커피처럼

내일의 블랙홀은 더 많아요.

그것들은 대개

우리가 어떤 행성을 사랑하게 되었다거나

다른 접시들과 관계를 맺으려 할 때 발견되죠.

당황하지 말고 모자를 벗어요.

모자를 벗는 순간 모든 혐의에서 벗어나게 되니까요.

미확인이 되니까요.

맘에 드는 정거장으로 가서 며칠 쉬는 거예요.

그러다가 어느 날

접시들 반짝이는 우주의 극장이 그리워지면

모자를 써요.

우리는 비행접시가 되고

낯선 행성에 불시착해 교신을 하고 있거나

중력 이불 끌어다 덮으며 접시처럼 밤을 포개고 있겠죠.

별들의 폭발 중에 발견되기도 하겠죠.

 

            -여성민, 「모자의 진화」,(『동리목월』,봄호)

 

   여성민의 시는 제목처럼 진화된 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서의 모자는 일상적으로 우리가 쓰고 다니는 모자가 아니다. 시인이 이 시의 첫 행에서 “별이 폭발하면 모자를 써요.”라고 진술하고 있는 것은 우주에서 별이 폭발하여 새로운 별이 탄생하듯이, 여기서 모자를 쓰는 행위는 새로운 생명을 입는 행위를 뜻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모자는 생명의 모자라고 말할 수 있다. 시인에 의하면 시적 화자는 모자를 쓰는 순간 비행접시가 된다. 여기서 모자와 비행접시는 그 형상의 유사함을 빌린 은유적 관계의 사물들이지만, 모자는 비행접시가 됨으로써 매우 활발한 관계성을 얻게 된다. 시의 전체적인 내용을 감안해보면 여기서 비행접시는 이 땅에서 끊임없이 이성을 찾아 헤매는 남자와 여자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땅에서의 인간관계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있는‘말의 정거장들’과 그들 사이에서 생겨나는 중력과 척력 사이를 부유하는 행위로 비유된다. 시인이 “별과 별 사이를 날 땐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을 의심해야 해요”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이 서로 사랑하고 상처를 받는 인간관계가 일상적 세계를 넘어서는 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사랑은 절대적인 관계를 요구하지만 인간이 사는 세계는 상대적인 일상 세계이기 때문에 서로 상처를 받게 된다. 시인이 “관계는 상대적이지만 상처는 늘 절대적”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그런데 인관관계에서는 늘‘블랙홀’이 존재하게 된다. 시인은 이런 블랙홀이“우리가 어떤 행성을 사랑하게 되었다거나/다른 접시들과 관계를 맺으려 할 때 발견”된다고 말하고 있다. 즉 우리는 사랑을 하면서 무수한 블랙홀을 만나기도 하고 수많은 상처를 입기도 하는 것이다.

   매우 활달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여성민의 시는 남녀 간의 사랑과 같은 인간관계를 우주적 상상력을 통해서 매우 유니크하게 그려내고 있다. 물론 이 시에 나오는 시간과 공간 역시 일상적 공간이라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이 시에 나타나 있는 시․공간은 절대적인 시적 공간이다. 일반적으로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상상력에 기대고 있는 시일 수록 그 시만이 가지고 있는 절대적인 시․공간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식탁은 육인용

식구는 다섯

의자는 넷

반찬은 세 가지

밥은 두 그릇, 한 사람이

수저를 들고

빈 공기(空器) 속의 공기(空氣)를 먹는다

 

때로, 공기 속의 저녁 공기가 질다

천 개의 눈을 가진 공기 속의 저녁 공기는

밀집한 공복,

공복이라는 구름에 물이 너무 많다

물이 많아서 몽롱한 구름, 구름의 시작점은

언제나 눈물이다

 

구름은 물뿌리개를 달고

어디에서나 줄줄 새는 내일을 실어온다

내일은 주로 물기가 많아서 미끄럽고

구멍에 잘 빠진다

내일의 욕망이 몽롱한 탓이다

 

뿌연 욕망은 정신을 차리려고 목욕을 한다

머리에 물을 뿌리는 내일이

수저를 들고 내키는 대로

욕실 구멍으로 뭉텅뭉텅 실뿌리를 빠뜨린다

 

어느새 이상한 숫자가 꽉 찬 내일의 식탁에는

미리 꽃의 자리를 비워낸 노란 공중이

빈 공기 근처에서

몽환의 식욕을 돋우고 있다

 

저 홀로 몽롱한 식탁에는

의자가 넷

수저에 부딪는 공기가 하나, 공기는

내 배부른 공복이 연주하는 콩나물의 젖은 표정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권행은, 「콩나물이 있는 풍경」,(『시에』,봄호)

 

   인간의 허기는 일반적으로 물질적인 결핍에서 오는 경우가 많지만, 물질적인 풍요로움만으로는 허기를 다 채울 수 없다. 그것은 인간의 욕망이 식욕에 한정되어 있지 않고 다각화 되어있기 때문이다. 권행은의 시는 인간이 느끼는 허기가 식욕의 차원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권행은 시의 첫 연은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는 한 사람의 풍경을 통해서 결핍의 세목들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식탁은 육인용/식구는 다섯/의자는 넷/반찬은 세 가지/밥은 두 그릇”이라는 상황은 시적 화자가 살아가는 환경이 물질적으로 풍요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을 암시해준다. 그런데 총 다섯 식구에 의자는 넷밖에 없고 반찬은 세 가지 밖에 없고 밥은 두 그릇 밖에 없는 시적 상황은 물질적 결핍 뿐 아니라 인간관계의 결핍이 매우 중요한 결핍상황을 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여기까지의 시적 상황은 우리가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일상적 상황인데, 실제로 밥을 먹는 사람이 한 명이라는 사실은 금방 이해되지 않고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밥이 두 그릇인 것은 누군가 함께 밥을 먹어야 할 한사람이 아직 오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적 화자가 먹는 것은 “빈 공기(空器) 속의 공기(空氣)”인 것이다. 여기서 “빈 공기(空器) 속의 공기(空氣)”는 단순히 물질적인 허기뿐 아니라 정신적인 허기를 상징한다. 시인이 2연에서공 기 속의 저녁 공기가 질다”거나 “공복이라는 구름에 물이 너무 많다”고 느끼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천 개의 눈을 가진 공기”는 시적 화자가 무언가를 찾으면서 느끼는 공복의 크기를 수량으로 나타낸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되는 표현이다.

    그런데 시적 화자의 허기는 3연에 오면 콩나물시루에 물을 뿌리는 행위로 나타난다. 화자가 “구름은 물뿌리개를 달고/어디에서나 줄줄 새는 내일을 실어온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화자가 꿈꾸는 내일이 물을 뿌리면 뿌리는 족족 몽땅 빠져나가는 콩나물시루 같은 것임을 암시해 준다. 그런데 콩나물시루에 뿌려지는 물이 구름을 거쳐 눈물에까지 뿌리가 닿아있다는 점은 비극적이다. 하지만 화자는 이러한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서 물뿌리개로 콩나물을 씻어 식탁에 올린다. 그러나 “이상한 숫자가 꽉 찬 내일의 식탁”에 올려진 것은 “미리 꽃의 자리를 비워낸 노란 공중” 즉 ‘이상한 숫자’로 상징되는, 몽환의 식욕을 돋우는 노란 콩나물이다. 시인이 콩나물을 ‘몽환의 식욕’을 돋우는 존재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시인이 꿈꾸는 식욕이 단순한 식욕의 차원을 넘어서 이성에 대한 욕망에까지 닿아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화자의 이러한 욕망은, 마지막 연에서 시적 화자가 “배부른 공복이 연주하는 콩나물의 젖은 표정을/물끄러미 바라보”며 혼자 밥을 먹는 것으로 보아 쉽게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권행은의 시는 현실 공간과 상징 공간이 적절하게 섞여 있다는 점에서 균형감이 있다. 이런 사실은 이 시가 상대적인 시․공간과 절대적인 시․공간을 넘나들면서 공기-구름-콩나물로 이어지는 이미지를 허기나 공복이라는 주제에 부합되도록 짜임새 있게 운용되고 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꽃이 벗어놓은 신발이 열매가 되는 날도

한 번도 그것의 고갈을 염려하지 않은 채

햇빛을 사용하고 공기를 사용한다

라일락이 낭보처럼 피는 날도

보랏빛에게 얼마만큼 아프냐 묻지도 않고

옷을 사용하고 신발을 사용한다

 

봄날이 오전 일곱 시를 데리고 오는 아침마다

치약과 면도칼과 비누를 소모하고

잠들기 전까지 헬 수 없는 수의 말을 낭비하고

허파는 공기를 오염시키고

내 몸을 빠져나간 오줌과 똥이 강물을 더럽힌다

 

바람이 풀밭융단을 밟고 지나가는 날도

만져본 적 없는 광년의 길을 걸어

내게 도착한 햇빛에게 고맙단 말 한 마디 없이 온기를 빼앗고

저 혼자 넉넉한 들판의 푸른 식구들을 베어 끼니를 때우고

내일 태어날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은 채

아낌없이 산의 푸나무들을 소모한다

 

홀씨만한 참회도 없는 이런 말들이

시가 되기를 바라고

누군가가 이 시를 읽어주길 바라고

누군가가 이런 말에 감동해주길 바라는

아, 참회의 길은 어느 만큼 큰가

속죄의 길은 어느 만큼 미려한가

 

   -이기철,「내가 사용한 공기」,(『시와 정신』,봄호)

 

   이기철 시인의「내가 사용한 공기」는 앞에서 거론한 시들과는 달리 시적 공간과 시간이 현실의 시․공간과 밀착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 시가 근본적으로 일상적이고 상대적인 시․공간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시에 나타나 있는 공간과 시간은 시인의 표현이 조금 색다를 뿐 지극히 일상적인 차원에서 운용되고 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가장 귀한 것이 공기인데, 인간은 그것을 어떠한 미안함도, 고갈에 대한 염려도 없이 아낌없이 사용하고 심지어는 낭비하기까지 한다. 특히 공기는 인간뿐 아니라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동식물들이 공유하는 공적 자원이라는 점에서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시인이 라일락이 흐드러지게 피는 날“보랏빛에게 얼마만큼 아프냐 묻지도 않고/옷을 사용하고 신발을 사용”하는 인간의 행위를 탓하는 것은 공기가 결코 인간의 전유물이 아님을 강조하는 것이다. 특히 인간이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오염시키고 파괴하는 행위는 이기적인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자연에게 큰 죄를 짓는 것이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언어도 이미 세상에 오염되어 있어서 자연을 빌려서 시를 지으면서도 자연에게 조그만 고마움도 느끼지 못하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반성은 타인 뿐 아니라 시인 자신에게도 절실한 것이어서“홀씨만한 참회도 없는 이런 말들이/시가 되기를 바라고/누군가가 이 시를 읽어주길 바라고/누군가가 이런 말에 감동해주길 바라는”자신이 얼마나 뻔뻔스러운 존재인가를 반성하고 있다. 이처럼 이 시의 주제는 현실과 밀접하게 연관성을 지니고 있어서 굳이 절대적인 시․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현실에 뿌리를 둔 리얼리즘 시들이 상대적인 시․공간을 바탕으로 있는데 반해, 환상시나 형이상시, 우주적 상상력의 시 등과 같이 현실을 뛰어 넘는 상상력을 보여주는 시들은 절대적인 시․공간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시를 쓸 때 유념할 것은 절대적, 혹은 상대적인 시․공간의 여부를 따지기 보다는 이들을 자신이 추구하는 시적 주제나 상황에 맞게, 짜임새 있게 운용해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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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남희: 경기도 고양 출생. 고려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문학박사). 1996년 경인일보, 199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으로 『폐차장 근처』, 『이불 속의 쥐』,『고장 난 아침』, 평론집으로『존재와 거울의 시학』이 있다. 현재『시산맥』주간, 『창작 21』편집위원으로 있으며, 고려대, 숭실대에 출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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