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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윤의섭

 



                  타자화된 입술의 유니크한 발화법                                 

                                        - 이수진의 詩                                                                                                     

 

 

 

 

 

2009년 《현대시》로 등단한 이래 이수진 시인은 지속적으로 자기변모를 도모하고 있다. 어쩌면 시인은 자신이 한 때 도달한 시의 영역에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되는 유목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필자 역시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전에 쓴 시와 스타일이나 구성이 비슷한 시를 쓰는 경우가 있다. 습관은 끈덕진 것이어서 그것을 갑자기 버린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자기모방, 더 나아가 자기표절로 이어지는 정체적인 시 쓰기는 부단한 자기반성을 통해 청산되어야 할 태도이다.

이수진 시인이 시도하는 시의 변화는 시 자체의 깊이와 비중 있는 의미를 형성함과 동시에 항상 다음 시를 기대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는 이수진 시인의 초기 시에서 보이는 유니크한 문체, 다시 말해 고유하면서도 독특한 발화 방식에 의해 나타나는 시의 특징이 최근에 이르러 좀 더 강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과 그것이 경직되어 있지 않고 전보다 더 유연해졌다는 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유니크한 발화법의 실체는 분명 쉽게 내뱉은 말이 아닌 언어적 고뇌의 강을 통과한 표현 방식에 있겠지만 여기에는 대상을 대하는 시인의 개성적 인식이 토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때의 개성적 인신은 신체 일부나 의식을 떼어내어 타자화 시켜놓고 그것에 자아를 투영하고자 하는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1

입 술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다 입술이 꽃봉오리라는 생각은 식상하고 입술 보고 썰어놓은 육고기 연상하는 것 또한 식상하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가슴 아닌 머리로라도 한 마디 하라면 이 한 마디는 입술의 문 밖으로 내동댕이쳐진 입술의 사생아, 그러니까 입술은 입술이 아니라 몸의 마지막 관문, 생각의 하문인 셈, 한 쪽 문 비스듬히 열리면 무엇이든 쏟아내고 보는 습성에 집착하는 문, 쏟아내기는 하되 어떤 형식으로든 주워 담지 못하는 상상유산,

 

2

알고 보면 우리도 쏟아진 존재, 배설의 기쁨이 꽤 크므로 기쁨의 뒷면은 생각도 않는다 입술의 시간은 어디로부터 왔을까, 암흑으로 열리는 빛, 한 말씀 있었으므로 그 말씀으로 모두 태초가 되어버린 세상은 처음부터 한 세상이었다 단지 밀폐된 곳은 냄새부터 다르므로 되도록 문을 오래 열어두어서는 안 될 일,

 

3

한 말씀 있었으므로 그 말씀으로 새들은 일생 울부짖는다

한 말씀 있었으므로 그 말씀으로 노새들은 일생 짐만 지고다닌다

한 말씀 있었으므로 그 말씀으로 개들은 일생 허공을 물어뜯는다

 

4

지 금 이 시간 나는 말씨름 중이고 지금 이 시간 어느 곳에선 사랑에 배신당할 것이고 지금 이 시간 어떤 이는 까닭 없이 얻어맞을 것이고 지금 이 시간 누군가는 목매고 있을지도 모른다 밤의 얼굴은 밤의 입술로 붉게 부풀어 오르고 어둠에 찢겨도 어둠은 어둠의 피를 흘리지 않는다 밤의 문을 박차고 나가도 여전히 밤인 밤, 까닭 없어라 밤의 상처는 고름 한 점 흘리지 않으니, 흐르지 않기에 아픈 줄도 모른다 밤이 통과할 때마다 우리는 풀 죽은 얼굴로 우리가 살아온 전 생애를 갈아엎을 분기에 남는 기력을 쏟아낸다

- 이수진, 붉은 문전문

 

입술은 수용과 배출이라는 두 가지 형식에 의해 각기 다른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시인은 그러한 두 가지 형식 중 배출의 형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시인이 생각하기에 입술입술이 아니라 몸의 마지막 관문, 생각의 하문인 것이다. 배출에 집중되어 있는 입술에 대한 일방향적인 사유는 그것을 타자화 하려는 전략에 의한 것이다. 이렇게 입술을 떼어놓고 보면 입술에 대해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숨을 내쉬고, 음식물 등을 뱉는 기능 외에 또 다른 중요한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말하기의 기능이 부각되고 더 나아가 말씀의 창조적 능력과 존재의 관계성에 대한 성찰까지 가능해 진다. 신체 일부의 타자화는 우선 신체로부터의 절단을 수행한 것이지만 그 절단은 오히려 신체를 구성하는 세계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 타자화로 인해 입술에 시인의 자아와 그 존재성이 투영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시의 제목 붉은 문은 나가기 위한 입술, 배설하기 위한 입술, ‘상처분기로 가득 찬 기력을 쏟아내기 위한 입술이다. 또한 입술이 배설하는 것은 말씀과 등가성을 이루는 말씨름이기도 하다. 이로써 우리는 타자화된 입술을 통해 시인이 욕망하는 것이 의 분출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글에 인용된 이수진 시인의 시 중 가장 근작인 위 시는 그 이전의 시보다 한층 매끄러운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아래의 시를 보면 전 생애를 갈아엎을 분기에 남는 기력을 쏟아내고자 하는 시인의 입술은 이미 독특한 발화법을 그 표출 형식으로 마련해 놓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정의 대합실,

창백한 화원입니까

 

차표 구겨 쥐고

엉덩이엉덩이 맞대 앉은 이들

 

꽃 중의 꽃으로 모였습니까

 

대낮의 번쩍이는 햇살, 꼬깃꼬깃 주머니에 구겨 넣고

천둥 번개로 오가던 붉은 발바닥, 국배판 신문지로 봉해놓고

깃대 없는 생각의 끝으로 피워 올린

일회용 꽃입니까

 

대구로 광주로 대전으로

칭얼칭얼 보채는 애기 꽃, 애인 무릎에 얼굴 휘묻이하는 애인 꽃

살핌과 보살핌으로 떠날 채비 중입니까

 

매번 어디론가 떠나 다시 돌아가야 할

길의 잠시에서

발매되는

너 나 우리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부동의 얼굴로

유령처럼 혼령처럼 몸서리치지도 않고

개찰될 준비 됐습니까

 

커다란 슬픔의 향기도 근심의 향기도

움켜쥐고 밀랍으로 피어난 꽃이라서

영혼의 문제는 더 이상 매혹적이지 않습니까

- 이수진, 잠시,전문

 

이수진 시인의 유니크한 발화법은 어떤 요소에서 발생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흔히 은유는 ‘AB의 형식을 취한다. 위 시의 1연도 대합실화원이 은유적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화원입니까라는 의문형의 화법은 1연이 형성하는 은유를 좀 더 심층적으로 들여다보게 하는 기능을 한다. 쉽게 말하면 이수진 시인의 발화법은 일반적인 화법이나 예상 가능한 화법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이 방식을 뜻밖의 비약이라고 명명하기로 한다.   ‘뜻밖의 비깃대 없는 생각의 끝으로 피워 올린/일회용 꽃입니까로 매듭지어진 3연에서도 나타난다. 3연의 진술 과정이 ‘~하고 있다로 끝날 것이라는 예상을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연에서도 밀랍으로 피어난 꽃이라서라는 문장과 영혼의 문제는 더 이상 매혹적이지 않습니까이라는 문장은 그 연계성에 대한 어떤 설명도 없이 비약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이런 일반적이지 않은 흐름, 예상의 빗나감이 이수진 시인의 시에서 자주 발견되는 바, 그것은 이수진 시인만의 독창적이고 감각적인 발화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길의 잠시에서라는 어절에서는 비문법적인 결합이 가져다주는 낯설음과 이 부분에 좀 더 읽는 이의 시선을 머물게 하는 유혹이 형성되고 있는데 이 점 또한 이수진 시인만의 발화법을 이루는 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다음 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몇 해 째 국화는 죽음을 기억하지 않는다

 

몇 해 째 국화는 모락모락 죽음을 쌓는다

 

모든 육체엔 황량하고 구슬픈 노래가 담겨 있다

 

눈감고 들으면

버려진 뜰에 동그마니 뒤틀리는 국화

 

죽음은 죽음으로 다시 출구를 짓고

사랑도 기쁨도 어둠의 저편에서 노랗다

 

그래요 국화

 

꽃잎

배배꼰다

 

막막한가보다, 다시 또

죽음을 목전에 두고 한창 뜨거워지고 있는 것이

- 이수진, 그래요 국화전문

 

앞의 시를 통해 뜻밖의 비약비문법적인 결합이 유니크한 발화법을 이루는 주 요소라고 지적했는데 위 시에서도 그러한 양상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두 가지 요소는 다른 시인의 시에서도 은유, 상상력, 과도한 생략과 결합을 통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수진 시인의 시에서는 그러한 것들이 겉으로 확연하게 돌출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차이를 형성한다. 즉 이수진 시인의 시에서는 비약과 비문법의 양상이 마치 태생적인 것인 양 자연스럽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국화의 구슬픈 노래눈감고 듣는다’. 그런데 시인의 진술은 국화가 버려진 뜰에 동그마니 뒤틀린다는 진술로 이어진. 이때 눈감고 들으면/버려진 뜰에 동그마니 뒤틀리는 국화라는 진술은 일반적인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서 벗어나 있다. 대개는 눈감고 들으면그것을 듣는 자에게 어떤 현상이 나타난다는 방향으로 뒤의 문장이 전개될 것이다. 그러나 위 시의 4연은 그러한 관계성에서 벗어나 있다. 이러한 뜻밖의 비약그래요 국화//꽃잎/배배꼰다에서도 나타난다. ‘그래요는 누군가에게 말을 건넬 때 쓰는 말이다. 또는 자기의 생각이나 말을 스스로 확인할 때 쓰이는 말이기도 하다. 이 시에서는 국화를 제외한 화자제 삼자에게 건네는 말로 읽힌다. 그런데 곧바로 이어지는 7연에서는 국화에 대한, 그것도 국화가 자신의 일부인 꽃잎을 배배 꼬는 행위에 대한 얘기로 이어진다. 일반적인 화법이라면 그래요 국화다음에 화자나 제 삼자에게 어떤 말을 건네는 방향으로 이어지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시는 그렇게 평이하게 전개되지 않고 어투가 바뀌면서 그래요 국화이전의 흐름을 이어간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시인이 대상에 대한 제시, 의미부여, 묘사로 시를 전개하는 가운데 시 중간에 그래요 국화를 끼워 넣음으로써 화자의 의식과 존재성을 표출해 놓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국화에 대한 진술 가운데에다 국화에 대해 인식하고 깨닫고 있는 시인을 세워놓은 것이다. 이 메타적인 구도에 의해 시는 대상을 바라보고 그 의미를 파악하고 있는 시인 자체를 중심으로 하여 수렴 확산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우리는 위 시에서 국화와 함께 국화에 대해 사유하고 있는 시인을 보게 된다.

 이수진 시인의 시에서 느껴지는 독창적인 발화법은 어쩌면 낯설게 하기의 다른 장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수진 시인 시에서는 그것이 이질적이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고 왠지 걸림돌이 있는 것같이 느껴지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는 점에서 보다 진화된 낯설게 하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독창성은 시인이 타자화된 대상을 통해 자기존재를 더욱 면밀히 탐구해 나가고자 할 때 중요한 연장이 되고 있다. 물론 그것은 이수진 시인이 좀 더 다양한 대상을, 좀 더 심층적인 세계를 시 속으로 끌어들이고자 노력할 때 보다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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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의섭(시인, 대전대학교 교수)

 

 1968 년 경기도 시흥에서 출생. 아주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 同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취득. 1992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와 1994년 《문학과 사회》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말괄량이 삐삐의 죽음』(문학과지성사, 1996), 『천국의 난민』(문학동네, 2000), 『붉은 달은 미친 듯이 궤도를 돈다』(문학과지성사, 2005), 『마계』(민음사, 2010)가 있음. 애지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현재 '21세기 전망' 동인으로 활동 中. 대전대학교 교수.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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