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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백겸(시인, 웹진 시인광장 主幹)

 



                              죽음과 시간의 무한궁전

                                                    

                                               - 김백겸(시인, 웹진 시인광장 主幹)-  


 

 

 
  계간『시와 시학』에서 ‘윤동주 시 다시 읽는다’의 제목으로 ‘젊은 비평가가 뽑은 윤동주의 시 한편에 대한 시평’을 청탁하였다. 나이가 오십을 넘었으니 젊다고는 할 수 없고 비평가가 아닌 시인이니 어느 쪽으로도 해당사항이 없는 일인데 왜 내가 뽑혔을까 궁굼하였다. 그러나 돌아가신 윤동주시인에게 비하면 나도 젊은 사람이요, 시인이 시평을 못하란 법이 없으니 그저 들은 풍월로 흉내를 내 볼 수밖에.

   마 침 서가에 미래사 간 윤동주시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있다. 원고를 핑계삼아 정독을 한 소감은 요즈음의 시는 과거의 시에 비해 너무 정보와 해석이 많다는 것. 현란한 비유나 거창한 주제가 아니더라도 시는 감동과 재미가 있으면 독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짧은 인생을 사신 분이라 작품이 많지 않았으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서시」 「자화상」등의 몇 편의 감동을 주는 시만 가지고도 한국대표시인 100인선집에 들어간 행운아라는 것.

   교과서에서 배웠던가? 평생 10편의 좋은 시를 쓰기 어렵다는 릴케의 말씀. 그러고 보니 시인은 높이 뛰기 선수처럼 한번의 기록이 중요하다. 시집 수십 권을 내도 기록에 못 미치는 연습 시는 다 불 쑤시개로 돌아갈 운명이니까.

   널리 알려진 유명 시는 다른 젊은 비평가에게 맡기자. 나는 내가 아는 주제로 편하게 이야기 해보자. 시집을 뒤지니 편차가 심해서 고르기가 쉽지 않은데 마침 "무서운 시간"이 눈에 들어온다. 좋구나. 어려운 비유도 없고 거창하게 외국담론을 들여와서 분석해야 할 환유나 상징도 없고 시인의 솔직한 인식만 담담하게 드러났으니... 이 소박함이 오히려 메시지를 강화하고 있구나.

  그런데 전문독자인 비평가나 시인이 시평을 쓰는 이유는 일반 독자가 읽지 못하는 부분을 드러내거나 재해석해서 뭔가 재미거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니까 좋으면 왜 좋은지를 말해야 하겠지. 전문비평가들은 당연히 전문적인 얘기를 끄집어내겠지만 시인은 창작에 전문이니 창작이야기나 해보기로 하자.

 

 

 무서운 시간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


           가랑잎 이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나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 있소


           한 번도 손들어보지 못한 나를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어디에 내 한 몸 둘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오


 일을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 떨어질 텐데


 나를 부르지 마오


  " 무서운 시간"은 죽음을 말하고 있다. 죽음이라. 삶이 기쁨이라면 죽음은 우울이 깊어져 어둠을 만드는 일. 더 이상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같은 아름다움을 바라보지 못하는 일이고, 아름다움의 원천인 욕망의 샘이 그치는 일. 지상의 영화와 부유함으로 만족할 수 없는 인간이 영생을 의식하면서 신비와 공포를 가지고 바라보는 시간. 시인이 문득 어떤 기척을 느끼고 바라보니 "가랑잎 이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같은 생의 유현幽玄에서 누가 부르고 있다.

 그 누구는 말로 할 수 없는 까닭이나 원인이지만 기미나 느낌으로 인식되는 존재/죽음이므로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라는 질문으로 시를 시작하였다. 여기서 시인은 애원하였지. "나 아직 호흡이 남아 있소"라고... 그 죽을 수 없는 이유는 아름다움을 더 느끼고 시를 써야할 일이며, 사랑하는 사람과 충실한 시간을 더 보내야 할 일이며, 세상에 碑銘비명으로 남겨야 할 일이어야 아귀가 맞는 일인데.... 그 다음 연은 기대를 배반한 다른 이야기이다.


 한번도 손들어 보지 못한 나를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어디에 내 한 몸 둘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요


  부 귀영화를 세상에 대해 주장한 적도 없고 명예를 위해 출사를 한 바도 없으며, 영생이나 무한을 바란 적도 없는 산림과 재야의 백수인데, 그 무슨 인연과 까닭으로 하늘의 자리에 나를 부르냐는 반박이요, 탄원이네. 하늘에는 고귀한 사람이나 영혼만이 가는 무언가 특별한 자리인데 시인은 그런 자리를 사양하겠다는 역설이고, 사당에서 제사를 받는 거룩한 거북이 껍질신세는 사양하고 진흙구덩이에서 미물로 살겠다는 장자의 자연주의이고, 그러니 권력자는 권력자의 위치나 지키고 초부樵夫는 초부로서 살터이니 간섭하지 말라는 항의이고, 그런데도 죽음이야말로 생을 좌우하는 가장 큰 권력이므로 그 두려운 마음이 드러난 슬픈 탄원이다.


  서양속담에 가장 확실한 일은 죽음이고 가장 확실하지 않은 일은 죽는 시간이라고 했던가? 그러므로 죽음의 인식이야말로 절벽에 선 시인이 자신이 살고 있는 자리의 심연과 함정을 보는 일. 생이란 등 뒤에 있는 매의 눈초리 같은 죽음을 의식해서 시간의 강가에 얼은 박빙의 살얼음을 밟고 가는 일. 그래서 무서운 시간에 사로잡힌 시인의 무의식이 시 한편을 만들어내었다.


  시인은 죽음의 초월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므로 종교적 사유가 들어와 있지 않으며 심각하거나 무거운 주제로서가 아닌 소품의 시가 되고 말았지만, 불교사유의 윤회나 기독교사유의 천국과 지옥대신 한국인의 소박한 생사관- 죽으면 하늘로 돌아간다는 자연회귀-이 도가道家사유와 혼합되어 있다. 불멸의 영혼을 믿지 않는다.


 일을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 떨어질 텐데


 나를 부르지 마오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라... 시인은 현생에서 진선미를 다 추구하고 모두 소진한 육체를 바람 속의 재처럼 날려보내고 싶은 모양이더. 나태주시인이 어디선가 얘기했더라.‘가을에 엽록소를 다 발산하고 영영분을 뿌리와 줄기로 다 내보낸 나뭇잎은 태우면 원두커피같은 냄새가 난다‘고, 원두커피같은 인생의 향기를 위해서라도 제발 죽음이여, 나를 미리 부르지 말아다오. 미천한 삶 위에 제왕처럼 군림한 죽음이여, 시간의 무한궁전 속에서 그대의 황금옥좌가 단단하고 검은 반석 위에 세워져 있음을 내 이미 알고 있음이니.



 

 김백겸(시인. 웹진 시인광장 主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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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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