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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박남희(시인, 문학평론가)

 


                        현대시에 나타난 우주적 상상력                    

                                              -2000년 이전 등단 시인들의 시를 중심으로

 

   

                                                                           박남희(시인, 문학평론가)

 

 


 

1.현대시와 우주적 상상력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 탈레스는 천체를 탐구하기 위해 하늘을 보고 걷다가 도랑에 빠졌다

는 재미있는 일화를 가지고 있다. 그 후 사람들은 그를 빗대어 아무리 대 과학자라고 해도 별을 보면

서 발밑은 보지 못한다고 놀렸다고 한다. 이것은 하나의 우스갯소리에 불과하지만, 그 이면에는 고대

천문학이 어딘가 비현실적인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은근히 풍자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

다. 하지만 요즘은 우주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우주에 관한 지식이 훨씬 풍부해진 것이 사실이다. 이른

바 ‘빅뱅 이론’으로 대표되는 현대 우주과학은 우주 탄생의 비밀을 가설로나마 어느 정도 정립해

나가고 있다. 얼마 전에 스티븐 호킹 박사가 신의 창조성을 부인하는 발언을 해서 논란이 된 바

있지만, 우주의 근원을 밝히려는 인간의 노력은 예부터 전해져오던 우주에 대한 환상을 단지

환상으로 방치하지 않고 어느 정도 이론으로 정립해 나가고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의 노력을 문학적인 차원에서 보면, 인간의 꿈과 환상을 축소해서 역설적으로

문학적 상상력을 제한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루카치가 그의 저서 <소설의 이론>에서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고 탄식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것은 본래 우주와 인간을 전체와 부분으로 이원화해서 바라보던 고대 희랍의 우주관에

뿌리를 둔 서구의 우주관에 내재해 있는, 우주와 인간 사이의 좁힐 수 없는 간극에 대한 탄식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서구적 우주관은 인간과 우주를 일체화해서 바라보는 동양적 우주관과는

서로 상치되는 측면이 있다.

   인간이 이처럼 우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인간의 근원이 우주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탄생을 별자리로 구분하는 것이나 별점으로 인간의 운세를 점쳐보는 것은 우주와

인간이 밀접한 관계 속에 있다는 믿음을 대변해준다. 이러한 양상은 시에서도 흔하게 보인다.

이글의 범주(2000년 이전 등단)에 드는 시인은 아니지만 2009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인

도미솔의 「난쟁이 행성 134340에 대한 보고서」만 보더라도 태양계에서 퇴출되어 우주실업자가 된

명왕성과 실직한 남편을 절묘하게 비유한 우주적 상상력을 보여준다.

 

명왕성이 태양계에서 퇴출됐다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의 끝별 명왕성은

난쟁이행성 134340번이란

우주실업자 등록번호를 받았다

그때부터 다리를 절기 시작한 남편은

지구에서부터 점점 어두워져 갔다

명왕성은 남편의 별

그가 꿈꾸던 밤하늘의 유토피아

빛나지 않는 것은 더 이상 별이 될 수 없어

수평선 같았던 한쪽 어깨가 기울어

그의 하늘과 별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는 꿈을 간직한 소년에서 마법이 풀린

꿈이 없는 중년이 되어버렸다

명왕성은 폐기된 인공위성처럼 떠돌고

남편의 관절은 17도 기울어진 채 고장이 났다

상처에 얼음주머니 대고 자는 불편한 잠은

불규칙한 삶의 공전궤도를 만들었다

이제 누구도 남편을 별이라 부르지 않는다

 

                        -도미솔, 「난쟁이 행성 134340에 대한 보고서」부분

 

   이 시는 2006년 8월 24일부로 국제천문연맹으로부터 태양계에서 퇴출당한 명왕성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 시의 모티브는 명왕성 퇴출과 더불어 2000년대 들어서 가속화되어 온

중상층의 몰락과도 연관된다는 점에서 시대적 연관성이 크다. 태양계에서 명왕성이 퇴출당한 후

문학계에서는 오히려 명왕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명왕성을 소재로 한 작품집이 속속 출간되고

있다. 김소연 시집 『눈물이라는 뼈』, 장이지 시집 『안국동 울음상점 』, 한수영 장편소설 『플루토의

지붕』, 조영아 소설집 『명왕성이 자일리톨에게』, 권정현 소설집 『굿바이! 명왕성』, 강동수 소설집

『금발의 제니』, 정용국 시조시집 『명왕성은 있다』 등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특히 『금발의 제니』에

수록된 단편 「청조문학회 일본 방문기」에 등장한 중년 시인의 넋두리인 “내가 아내의 궤도에서

벗어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아니, 명왕성이란 이름에서 〈왜행성 132340〉으로 격하돼 아내의

궤도에서 퇴출당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라는 구절은 도미솔의 신춘시와 유사한 상상력을 보여

준다. 이처럼 명왕성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패러디나 패스티시의 형태로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표절 논란의 위험을 노출하기도 한다. 2010년 『작가세계』시 당선작인 임유리의「명왕성의 퇴출」

역시 퇴출의 위기에 놓인 직장인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사실 ‘명왕성’을 소재로 한 시는 2006년 이전에도 이미 김혜순, 유성식 등 몇몇 시인들에 의해서

씌어졌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김혜순이다. 김혜순의 시집『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2000)에는

「명왕성」,「명왕성에서 온 그녀」등 명왕성을 소재로 한 시 두 편이 실려있다. 이 시집에는 이밖에도

「어머니 달이 눈동자 만드시는 밤」,「아무것도 얼지 않고」,「SPACE OPERA」,「몽유비행선 탑승규칙」,「달이 꾸는 꿈」,「월인천강지곡」,「두근거리네」,「다시 불쌍한 사랑기계」등 우주적 상상력을 보여

주는 여러 편의 시들이 함께 실려 있다. 따라서 이 시집은 김혜순이 본격적으로 우주적 상상력을

보여준 시집에 해당된다.

 

명왕성에 자원 근무 나간 그에게서

e-mail이 왔다

올 겨울 방학, 폭설에 교통 두절되면 꼭 놀러와

이곳은 인력이 미미한 곳

탱자처럼 작은 태양은 누구도 감시할 수 없어

우리 원 없이 함께 타락해보자

살기 좋은 곳도 쌨는데 왜 거기까지 자원해 갔는지

내 책갈피 속 끼워둔 그의 머리칼 아직도 새까만데

 

명왕성, 달력에도 없는 요일에 깨어나

잠에 취한 도시를 달려가보는 맛!

비만 오면 물에 잠기는 무덤에서처럼

몸 속에 안개만 가득한 사람들!

탁자 위에 자신의 미라를 올려놓고

천천히 붕대를 풀며 노래부르는 멋!

 

언젠가 그의 초청을 받아들여야지

죽어도 썩어 문드러지지도 않는 집들,

이제 손자 볼 때가 도래할 나에게

내 엄마가 아직도 시집가지 말라고 애원하는 곳,

이십 년 전의 그 놈이 아직도 하나도 안 늙고 숨어있는 제방,

언젠가 그곳에 가야지

 

                          -김혜순, 「명왕성」부분

 

   명왕성은 1930년 2월 18일에 클라이드 톰보(Clyde Tombaugh)에 의해 발견된 작은 별로 플루토

Pluto라 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플루토는 로마 신화의 저승 신의 이름으로 그리스 신화에서는

하데스로 명명되는 신이다. 명왕성은 지구로부터 워낙 먼 거리에 떨어져 있어서 태양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는 별이다. 별의 크기가 매우 작기 때문에 인력도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이러한

명왕성의 특성들은 김혜순 시인에게 있어서는 매우 의미 있는 것들이다. 그의 시에서 명왕성은

태양으로 상징되는 ‘아버지’의 영향력이 미미한 곳이며, 세상의 모든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이다. 더구나 시간의 유한성으로부터도 자유로운 곳이어서 “명왕성, 달력에도 없는 요일에

깨어나/ 잠에 취한 도시를 달려가보는 맛!”이 있고, “탁자 위에 자신의 미라를 올려놓고/천천히

붕대를 풀며 노래부르는 멋!”이 있는 곳이다. 한마디로 명왕성은 복잡한 지구에서 억압 받는

여성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시인 자신에게 진정한 해방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곳이다. 그곳은

어쩌면 죽음과 연관되는 명왕성의 이름처럼 시간의 유한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죽음 저쪽 세계인지도

모른다.

   이처럼 시인에게 자유를 느끼게 해주는 우주는 시인의 밖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인은 스스로의

몸을 통해서도 우주를 느낀다. 그에게 있어서 우주는 자아와 구별되는 타자가 아니라 자아와

타자가 하나인 천체로서의 우주이다.

 

  밤 하늘 저 머나먼 별자리 하나는 내 눈동자가 있어야만 이 땅과 만날 수 있다네

오늘 밤 술취한 별자리 하나이신 이 몸도 중앙공원 잔디밭 위에서 앉을 자릴 찾아

두리번거리네 수만년 전에 그려준 그 길로는 더 이상 가기 싫단 말이야 빛의

자갈돌이 발에 턱턱 채이는 밤 하늘 영원히 내 손에 잡히지 않을 저 둥근 지붕이

무방비의 나를 옥죄어 오네 누구도 자기 별을 선택할 수는 없는 법 가끔 땅이

눈동자 속에서 솟구쳐 오르기도 하는 것처럼 눈 앞이 캄캄해지기도 하네 몸 속의

저 별들을 꺼내보고 싶네 시디신 전갈이 한 마리 목구멍 속에서 올라와 입술

밖으로 쏟아지고 밤보다 까맣게 반짝이는 전갈을 따라 딸 기다리는 집으로 또

돌아가야 하겠지? 잠깐 허공 중에 머물다 이 세상에 날 던져준 그 손바닥 위로

돌아가야 할 부메랑처럼 이미 돌아가는 길에 들어선 이 몸이지만 오늘 밤 웬일인지

저 별자리들 몸 속에서 두 근 거 리네 

 

                                                 -김혜순, 「두근거리네」전문

 

   시인은 어느 날 술에 취해 중앙공원 잔디밭에 앉을 자리를 찾으면서, 술 취한 자신과 먼 별자리를

연결해서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을 반추해 본다. 시인은 “밤 하늘 저 머나먼 별자리 하나는/ 내

눈동자가 있어야만/ 이 땅과 만날 수 있다”는 인식을 통해서, 인간의 몸이야말로 우주의 중심이며

우주의 별자리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시인이 자신의 몸을 ‘술취한 별자리’로

명명하면서 “수만년 전에 그려준 그 길로는 더 이상 가기 싫단 말이야”라고 투정을 부리고 있는

것은, 그동안 여성으로서 살아온 자신의 삶이 어쩔 수 없는 굴레 속의 억압 받는 여성으로서의

삶이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 시에서 자연의 제유로 사용된 “영원히 내 손에 잡히지 않을 저

둥근 지붕”은 밤하늘을 뜻하고, 자연의 제유인 밤하늘은 자유를 억압당하고 무방비 상태에 놓인

화자를 옥죄고 있다. 하지만 시적 화자는 “누구도 자기 별을 선택할 수는 없는 법” 이라는 숙명적

삶의 진리를 이미 깨우치며 “잠깐 허공 중에 머물다/ 이 세상에 날 던져준 그 손바닥 위로/돌아

가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 별자리들은 몸속에서 두근거리며 새로운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해준다. 여기서 몸속의 별자리는 자신의 운명을 넘어서보려는 여성 자아의 기표로서의

별자리인데, 이는 시인 자신의 페미니즘적 가치관이 반영된 이미지이다.

 

  2. 전통 서정시와 우주적 상상력-미당과 이성선

 

   고전문학을 포함한 한국시가 중에서 이글의 주제에 맞는 우주적 상상력을 지니고 있는 시를

더듬어 올라가다보면, 신라 향가인 융천사의 <혜성가>나 월명사의 <제망매가>, 백제 가요인

<정읍사> 등을 꼽을 수 있다. 당시에 우주적 이미지를 차용해서 씌어진 시들은 그 이미지가

거느리고 있는 설화를 바탕으로 하거나 신원적 대상으로서의 달과 별을 모티브로 삼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삶과 죽음 갈림길/여기 있음에 두려워하여/나는 간다는 말도/ 못다 이르고

가는가/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여기저기에 떨어지는 나뭇잎처럼/같은 나뭇가지에 나고서도/가는

곳을 모르겠구나/아! 극락세계(彌陀刹)에서 만나볼 나는/도(道) 닦아 기다리겠다 ”가 전문인

월명사의 <제망매가>(현대 역)를 예로 들어보면, 이 시에 나오는 ‘미타찰(彌陀刹)’이라는 공간도

불교에서 말하는 ‘서방정토’나 ‘극락’을 의미하는 용어로 현대적 의미의 우주공간과는 거리가

있는 관념적인 공간이다. 이렇듯 고전 시가에 나타난 우주적 상상력은 비과학적이고 종교적,

신화적 성격이 강해서 현대시에 등장하는 우주 모티브와는 거리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전통적 우주관을 현대시에 새롭게 접목시킨 대표적인 시인이 미당 서정주이다.

 

내 마음 속 우리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서정주,「冬天」전문

 

   「冬天」은 미당의 작품 중 사상적 원숙미와 시적 구성력에 있어서 가장 완결된 작품 중의 하나로

평가된다. 이 시는 “내 마음 속 우리님의 고운 눈썹”으로 상징되는 시인의 지고지순한 지상적

사랑을 동천에 떠있는 달이나 새와 같은 천상 이미지로 형상화 한 작품이다. 각 시행이 7·5조를

기반으로 한 3음보의 율격 구조를 가진 것으로, 이 시는 우리의 전통 민요나 시조 같은 고전 시가

형식과의 상관성을 짙게 보여준다. 이 시는 겨울 밤하늘에 눈썹 모양의 달이 떠 있는 주위로 새가

날아가는 모습을 포착해서 쓴 시이지만, 단순한 서경시라기보다는 시인의 높은 정신세계를

우주미학적 상상력으로 승화시켜 보여준 걸작이다.

   이 시에서 시인이 마음속에 있는 님의 고운 눈썹을 천(千)날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걸어놓는 행위는 지상의 세속적 사랑을 천상적 이미지와 결합해서 지고지순한 사랑의 경지에

이르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겨울 밤하늘을 날아가는 새도 감히 그 눈썹(달)에 범접하지

못하고 비끼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시는 시인의 사상적 면모가 표면에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시가 씌어진 시대적 배경을 참고해보면 시인의 불교적 사상이 시의 이면에 숨어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시인의 마음속에 있는 님은 단순히 시인이 사랑하는 여인에 국한되지 않고 숭고한 종교적

대상으로 확대해서 해석해 볼 수 있다.

   이 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서정주의 시에 나타난 우주적 상상력은 우리의 전통적 정서, 또는

사상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미당의 시와 사상적 흐름을 공유하면서도 현실적 삶을

우주적 상상력으로 집약해서 보여준 시인으로 이성선을 꼽을 수 있다. 이성선은 그의 첫 시집인

『시인의 병풍』에서부터 우주적 상상력을 선보이고 있고, 특히 그의 두 번째 시집인『하늘문을

두드리며』에 이르면 우주적 상상력이 연작시의 형태로 집약되어 나타나 있다.

 

최초 땅 속에 허리 구부리고 살던 벌레는 어둠에서 나와 땅 위를 기어갑니다. 작고 보잘것없는 몸 구부렸다 폈다 하며 지구의 한 부분을 기어갑니다.

그 러나 그의 내부는 하늘로 날아오르려는 일념, 우주를 소유하려는 정신으로만 불타, 아무도 모르는 사이 아무도 모르는 곳에 집을 짓습니다. 작은 벌레집을 짓습니다. 집을 짓고 천형(天刑)의 무늬를 두르고 깜깜한 독방에 홀로 들어앉아 웅크리고 가다듬고 꿈꿉니다. 해탈의 순간을 기다립니다. 불타오르며 허물을 벗으며 끝없이 하늘문을 두드립니다.

우주의 위대한 침묵이 그를 감쌉니다.

드디어 그는 자기를 파괴하고 자기 안의 나를 파괴하고 한 마리 나비로 완성되어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우주를 소유합니다.

 

                                     -이성선,「序詩」전문

 

   이성선의 두 번째 시집『하늘문을 두드리며』의 첫머리에 실려 있는 이 시는 제목처럼 시집의

서문에 해당하는 시이다. 이 시집은 서시를 포함한 102편의 연작시가 불교적 초월자로 상징되는

‘그분’을 향한 구도자의 고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인은 ‘서시’를 통해 작은 벌레가 번데기의

과정을 거쳐서 나비에 이르는 도정을 중생이 구도자의 길을 걸어서 해탈에 이르는 과정으로

비유하고 있다. 시인에 의하면 이러한 과정은 참으로 지난한 것이어서, 작고 보잘 것 없는 몸으로

지구의 한 부분을 기어가던 벌레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 집을 짓고 어두운 독방에 홀로 들어앉아

해탈을 꿈꾸다가 나비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르는 과정으로 묘사되어 있다. 시인에 의하면

이러한 행위는 “자기를 파괴하고 자기 안의 나를 파괴”해야만 얻어지는 것으로서 자기부정의

오랜 구도의 과정이 없이는 이루기 어려운 꿈인 것이다. 시인은 작은 벌레가 나비가 되는 것을

우주를 소유하는 것으로 보고 있는데, 시인의 이러한 인식은 이 시의 우주가 단순히 과학적 차원의

우주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즉 시인이 말하는 우주는 종교적으로 높은 승화의 과정을 거쳐서

이르게 되는 신성한 공간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이성선 시인의 ‘우주’ 역시 관념적 성격이

강하다.

   서정주와 이성선 시인이 불교적 구도자의 자세로서의 종교적, 관념적 우주를 지향했다면

기독교적 염결성을 우주적 상상력으로 승화시켜 보여준 시인으로는 윤동주가 있다. 특히 윤동주의

「서시」는 이성선의 「서시」와 마찬가지로 윤동주의 시에서 우주적 상상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떠한지를 잘 보여준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序詩」전문

 

   지난한 시대를 살면서도 그 시대가 지니고 있는 한계상황을 넘어서려는 노력을 보여주었던

윤동주에게 있어서 하늘은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하늘 그 이상의 것이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며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윤동주에게

있어서 우주와 자연은 시인 자신을 비춰주는 거울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별’은 순수한 존재의

상징으로서 자신이 추구해야 할 이상적 자아이기 때문에, 흡사 시인의 분신 같은 존재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의 끝 연에서 시인이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고 한 것은 이상적 자아가

위태로운 시대상황 속에 놓여있음을 말해준다.

   ‘별의 시인’ 윤동주를 떠올리게 하는 그의 또 다른 시「별 헤는 밤」에서 시인이, 하늘에 떠 있는

별 하나하나에 그리운 사람들의 이름들을 붙여보는 것도 별을 향한 시인의 순수성을 말해준다.

즉 ‘별’로 대표되는 우주는 시인에게 있어서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지고지순의 공간이며 그의

기독교적 염결성이 발견한 이상적 공간이다. 윤동주의 ‘부끄러움’은 현실적 자아와 이상적 공간

사이의 괴리에서 오는 부끄러움이며, 죽어가는 것들을 어쩌지 못하고 단지 사랑해야하는 무력감

에서 오는 부끄러움이다. 이러한 시인의식은 서정주나 이성선의 시에서 보여주는 종교적 깨달음

을 통한 초월과는 다른 것으로, 윤동주의 시는 종교적 초월보다는 오히려 현실적 삶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3.우주적 상상력의 다양한 스펙트럼-젊은 시인들의 시

 

   서구의 인간 중심 사상은 인간을 자연과 구별해서 자연을 지배할 수 있는 특별한 존재로 인식

함으로써 자연과 문명을 스스로 단절시키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동양의 전통 사상은 자연과

인간을 유기체적 등가물로 보아서 큰 우주인 천체와 작은 우주인 인간을 동등한 하나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런 관점은 더 나아가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에게 확대되어 지상에 존재하는

풀이나 나무는 물론 하늘을 나는 새들에 이르기까지 작은 우주임을 인식하게 해준다. 이러한

사유는 우주와 인간의 거리를 더욱 가깝게 해주고 큰 우주와 작은 우주가 서로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해준다.

 

별이 하늘의 무늬라면 꽃과 나무는 땅의 무늬일까요

별이 스러지듯 꽃들도 순식간에 사라지니까요

그래서 그들은 불멸을 이루나 봅니다

 

하늘의 무늬 속에 숨어 있는 그 많은 길들을

저 흩어지는 꽃잎들은 알고 있는 듯합니다

이 꽃잎에서 저 꽃잎까지의 거리에 우주가 다 들어 있고

저 별빛이 이곳에 오기까지의 시간 또한 무한합니다

무한히 큰 공간과 거기 존재하는 천체와

모든 살아 있는 존재인 우주를, 그 우주의 은하에서

나는 누구도 아닌 당신을 만났군요

자기 자신에서 비롯되는 마음처럼, 샘물처럼 당신과 나는

이 우주에서 생겨났군요

우주는 깊고 별들은 낮아

나는 별들의 푹신한 담요에 누워 대기를 호흡해 봅니다

천천히, 당신을 들이쉬고 내쉽니다

그러다 나는 밤하늘로 문득 미끄러지듯 뛰어내릴까요

너무 오래 살았거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들이 있는 곳으로

남천에 걸린 남두육성의 국자별자리를 스쳐,

천공의 우주가 겹겹이 내려앉아 우리가 알 수 없는 오래전

어느 시간의 소우주를 보여 주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봉황과 학을 타고 하늘을 노닐며 사현금을 뜯는 신선들과

천지 공간을 가득 채운 일월성수의 별자리 따라

나는 당신의 전생으로 갑니다

우리는 어느 별에선가 또다시 만나게 되겠지요

 

                            -조용미,「하늘의 무늬」전문

 

  이시의 초두에서 시인은 하늘의 무늬인 별과 땅의 무늬인 꽃과 나무를 대비한 다음 “하늘의 무늬

속에 숨어 있는 그 많은 길들을/저 흩어지는 꽃잎들은 알고 있는 듯합니다”라고 하여 하늘의

존재와 땅의 존재가 서로 소통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시인은 여기서 더 나아가 무한히 큰 우주에

존재하는 천체와 모든 살아있는 존재인 작은 우주를 하나의 ‘우주의 은하’라는 개념으로 묶어서

“이 꽃잎에서 저 꽃잎까지의 거리에 우주가 다 들어 있”다는 인식에 이르게 해준다. 시인이 이

시의 서두에서 이러한 발상을 이끌어오는 것은 자신이 경험한 사랑이 얼마나 광대무변한 것인지를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시인은 여기서 더 나아가 우주를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의 보금자리로 인식하게 된다. 즉 시인은

“우주는 깊고 별들은 낮아” “별들의 푹신한 담요에 누워 대기를 호흡해” 본다는 행복한 사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이러한 행복한 상상이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는 유한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죽음 저쪽 ‘전생’의 세계를 떠올린다. 시인에 의하면 ‘전생’은 “남천에

걸린 남두육성의 국자별자리를 스쳐,/천공의 우주가 겹겹이 내려앉아 우리가 알 수 없는 오래전/

어느 시간의 소우주를 보여 주는 고구려 고분벽화의/봉황과 학을 타고 하늘을 노닐며 사현금을

뜯는 신선들과/천지 공간을 가득 채운 일월성수의 별자리 따라” 갈 수 있는 곳이다. 여기서

‘남두육성’은 궁수자리에 있는 국자 모양의 여섯 개의 별로 장수(長壽)를 주관하는 별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시인이 전생을 꿈꾸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더불어 장수를 소망하는 시인의 마음과

다른 것이 아니다.

 

곧 한 번도 오지 않았던 아침이 올 거야

그 무엇에도 닿지 않아 소리가 없는

태양이 떠오를 거야

검은 고양이의 털 속에서 솟구쳐 올랐다는

물의 왼쪽 옆구리로 빠져나왔다는

아니 별들과 모래의 고독에서 새어 나왔다는 아침은

고요하고 고요를 겹겹으로 껴입은 공기는 투명해질 거야

태양은 둥글고 빛은 비리고 나는

피 맛을 온몸에 뒤집어쓰고

당신의 동쪽에서 당신의 서쪽으로 걸어갈 거야

나는 당신에게서 흘러나온 뜨거운 그림자일지도

3만 광년 떨어진 거리에서 그리움으로

내내 타고 있는 당신일지도

당신 안에서 한 발도 못 빠져나온 당신의

흑점일지도 모르는 것

그렇다면 나는 어느 방향으로 가도 그것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당신에서 당신으로?

그렇다면 오늘도 나타나는 천 개의 태양은?

쉴 새 없이 땅속을 파고드는 발소리들은?

당신의 어디와도 닿지 않는

46억 년 전부터 계속된 나의 춤은?

 

                     -이원,「어쩌면, 지동설」전문

 

   시인에게 있어서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서 사랑을 하는 행위는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는 것

만큼이나 놀랍고 새로운 것이며, “한 번도 오지 않았던 아침”을 경험하는 것이고. 태양은 둥글고

빛은 비린 곳에서 피 맛을 온몸에 뒤집어쓰고 사랑하는 사람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걸어가는

행위와도 같은 것이다. 이 시는 은하의 중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인 ‘3만 광년’과 지구의

나이인 ‘46억년’을 명기함으로써 과학적인 근거를 시에 차용하고 있지만, 이는 시를 과학적인

사실성 위에 올려놓으려는 의도보다는 오히려 과학적 근거를 들어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랑을

더욱 더 명료하게 하려는 의도가 드러나 있다. 하지만 이 시에 나타나 있는 시인의 사랑은 확실한

결실의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어딘가로 끝없이 표류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나는

당신에게서 흘러나온 뜨거운 그림자일지도/3만 광년 떨어진 거리에서 그리움으로/내내 타고 있는

당신일지도/당신 안에서 한 발도 못 빠져나온 당신의/흑점일지도 모르는 것”이라고 하여, 사랑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천개의 태양이 매일매일 떠올라도 끝내 사랑하는 사람의 어디와도 닿을 수 없는

시인의 운명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 시의 제목이 ‘어쩌면, 지동설’인 것도, 지구를 향하여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태양(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지구의 안타까운 마음의 표현인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현대시에서는 종종 사랑의 광대무변함과 불확실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우주적 상상력이 동원되기도 한다. 하지만 현대시에서의 우주적 상상력은 종종 동화적

상상력과 결합해서 신비로운 우주를 우화적이거나 풍자적으로 묘사해 보여주기도 한다.

“큰아이가 몰래/달의 분화구에 노란 수면제를 탔나 보다/달빛 마신 꽃밭도/강아지도 새근새근

잠들어 있다/뒤척이는 제라늄 눈을 바라보며 자장가를 부르다/나도 약에 취해 잠든다//내가 잠든

사이 작은아이가 몰래/우주 저편 알파켄타우루스 이삿짐센터에/전화를 걸었나 보다/어두운

공중으로 반짝반짝 트럭이 달려오고/외계인 인부 둘이 나를 옮겨 싣고/뒷자리에 앉아 홍주를

마신다”로 시작되는 함기석의 시 「몰라몰라 행성」은 흡사 시적 화자가 어린왕자라도 된 것처럼

독자를 동화적 세계로 안내한다. 그런가하면 이승희의 시「동틀 무렵」에서는 우주가 “새벽 첫차를

타는 사람들의 눈가에서 떨어지는 잠 같은 것이거나 휘어진 골목을 돌아 나오는 두부장수의

손끝에서 울리는 종소리”와 같은 일상의 하찮은 것들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는 일월성신을 인간과

멀리 떨어진 신성한 존재로 인식하던 근대 이전의 고전적 사유와 변별되는 것으로, 현대시에서

우주적 상상력이 얼마나 인간의 삶 깊숙이 들어와 있는지를 잘 말해준다. 이러한 변화는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고 한 루카치의

탄식이 더 이상 불변의 영원한 명제가 아님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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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 희 약력: 1996년 경인일보, 199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폐차장 근처』,

『이불 속의 쥐』,『고장난 아침』등이 있고 평론집으로 『존재와 거울의 시학』이 있으며,

현재 고려대, 숭실대 강사,『시산맥』주간, 『창작 21』편집위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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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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