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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박남희

                                                                                                                                                                                                                                         편애와 결벽증 사이를 떠도는 섬

                                   -김성조의『영웅을 기다리며』해설

                                                /박남희

 

 

 

1. 낯선 별에서의 길 찾기

 

  시인은 오래된 지도 한 장을 가지고 있다. 그 지도를 펼쳐보면 어릴 때 뛰놀던 고향의 그리운 골목이 보이기도 하고, 낯선 사막을 지나 잊고 있던 시인의 내면이 보이기도 한다. 지도의 한쪽 구석을 보면 소리의 근원을 찾아가는 이정표가 보이고, 또 다른 한쪽 구석에는 삼생三生의 어느 한 계절이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시인의 지도는 낯익은 듯 하면서도 낯설고 기이하다. 시인의 지도가 낯선 것은 근본적으로 그의 삶이 낯설기 때문이다. 그의 삶은 동면의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시인의 내면에 겨울과 같은 결핍의 공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결핍의 공간에는 잘 익은 고요에 중독된 달이 봄빛 푸른 5월 쪽으로 보이는 연두빛 소리를 엿듣고 있다.

  시인은 스스로를 낯선 별에 “잘 못 떨어진 ”(「구절초」)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아무도 없는 들길을 혼자서 간다”(「구절초」). 시인의 이러한 외톨이 의식은 자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어긋나는 인간관계에 기인한다. 그는 “내가 거기 서있는 것을 모른다는 듯이/마치 투명유리를 건너간다는 듯이”“사람들이 자꾸 내 곁을 비켜간다”(「관계」)고 말하고 있다. 이렇듯 시인의 답답한 현실은 난세를 헤쳐나갈 영웅에 대한 편애와 낯선 세상에 대한 결벽증을 낳기도 한다. 그는 스스로가 무인도가 되거나, 때로는 “여자가 부재한 여자”의 심장을 가진 ‘투명인간’이 되어 세상을 살아간다 (「투명인간」). 이러한 편애와 결벽증은 필연적으로 이상과 현실의 괴리와 좌절을 낳게 되고 그것은 시인의 슬픔과 우울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시인은 낯선 별에서의 고립을 해결하기 위해 오래된 지도 한 장을 가지고 지금도 길 찾기를 하고 있다.

 

내 걷는 이 길 내 길이 맞는가, 혹 낯선 별을

떠돌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 차오를 때가 있다

어릴 적 해 넘어 길 잃은 그때처럼

아직도 혼몽한 울음 피워 물고 있는지도

안개 골목 자욱 헤매고 있는지도

 

이런 날은 꿈속에서도 구름이 돋아 온몸이 풀잎처럼 젖는다 태어날 때부터, 아니 전생에서부터 나는 이미 젖어있었는지 모른다 흩날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오래전 어느 한 손이

시련으로 영웅을 빚는 불길 뿌려놓았다

물살에 아슬아슬 몸을 푸는 나룻배

아무리 키를 세워도 걸음 익숙해지지 않는다

사람의 마을에 닿는 일이 소리의

근원을 만지는 만큼 멀고 난해하다

 

달마의 옆구리를 스쳐간

오래 된 지도 한 장

지도의 흐린 강줄기를 따라

흐르고 사유하고 타오르고 비어간다

 

돌을 쪼아 별을 사르는 석공처럼

가장 깊은 눈물 뒤에 흐르는 강

 

―「오래된 지도」전문

 

  시인은 문득 자신이 낯선 별을 떠돌고 있을지 모른다는 의구심을 느낀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은 그가 어린 시절 길을 잃고 헤매던 미아체험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보다 근원적인 성격을 지닌다. 시인은 현실을 읽어내기 위해 ‘오래된 지도’를 펼쳐든다. 그런데 이 ‘오래된 지도’는 유년을 넘어 전생에까지 닿아있다. 이것은 시인이 자신의 삶을 운명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자꾸만 어긋나는 시인의 삶도 그 근본은 “오래전 어느 한 손이/시련으로 영웅을 빚는 불길을 뿌려놓”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시인이 자신을 “돌을 쪼아 별을 사르는 석공”에 비유하고 있는 것도 “시련으로 영웅을 빚는” 노력을 위한 것이다. 시인이 ‘오래된 지도’를 면벽고행의 상징인 “달마의 옆구리를 스쳐간” 지도로 묘사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이렇듯 시인은 고행을 통해 초월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시인의 고행이 달마대사와 다른 점은 그 원동력이 마음을 비우는 고행과는 다른 ‘슬픔’에 있다는 점이다. 그의 또 다른 시「선인장」에서 시인은 선인장이 되어 사막을 건너면서 “내 몸에 돋아난 날카로운/슬픔의 손을 보라/눈물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이 사막을 건너지 못했을 것이다”고 고백하고 있다. 또 시인은 “눈물은 가장 깊은 강물과/가장 어둔 별빛을 건너간다/풍경소리가 산도화 둥근 가슴을 적시듯/냇물이 흐르는 구름을 품고 가듯//눈물 없는 삶은 쓸쓸하다”(「달빛과 엉겅퀴」)고 말한다. 시인에게 있어서 ‘슬픔’이나 ‘눈물’은 또 다른 삶의 의미를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오래된 지도’ 속의 “가장 깊은 눈물 뒤에 흐르는 강”을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내 몸에는 달이 살고 있다

그리운 달 서러운 달 쓸쓸한 달

 

달을 보면 기도한다

매번, 기도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냥 바라만 본다

깊이깊이 나를 던진다

 

내겐 神도 사랑도 친구도 없었다

달빛만이 먼 생애를 쓸어 주었다

 

어머니, 어머니......부르듯

달, 달, 달님......하자

달이 내게로 왔다

 

아무도 달이 내 몸속에 들어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찰랑찰랑 달의 푸른 숨소리

그 숨소리에 맞춰 숨을 쉬고

걷고 생각하고 잠이 든다

 

이제 내 생애는 달빛처럼 서늘하다

 

―「무인도 2」전문

 

  이미 「달빛과 엉겅퀴」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듯이 ‘달’과 ‘눈물’은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눈물이 찰랑거리듯이 달도 찰랑거리는 액체처럼 느껴진다. 시인은 어머니를 부르듯 달님을 부르면서 자신의 몸속으로 달을 초대한다. 여기서 시적 화자인 ‘나’를 ‘무인도’로 본다면, 이 시는 쓸쓸한 섬인 무인도가 달을 자신의 몸에 초대해서 일체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는 마치 인간이 기도를 통해서 신을 자신의 몸에 들이는 행위와도 같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달은 무인도에게는 ‘쓸쓸한 신’인 셈이다. 그런데 이 ‘쓸쓸한 신’은 ‘그리운 신’도, ‘서러운 신’도 된다. 시인이 그의 시들을 통해서 꿈꾸는 것은 형이상학적 초월이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인 초월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신을 찾지 않고 ‘영웅’을 기다리거나 스스로 결벽증을 지닌 쓸쓸한 섬이 되어 세상을 살아간다. 이렇듯 시인의 내면에는 ‘희망’과 ‘체념’이 공존해 있다. 시인이 희망을 꿈꿀 때는 봄빛 속의 꽃이 보이고, 그의 마음에 체념이 싹틀 때는 스스로 겨울 달빛처럼 서늘한 무인도가 되기도 한다.

 

  2. 편애-영웅, 혹은 어긋난 사랑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시인의 내면을 지배하고 있는 주된 정서는 슬픔과 눈물이다. 시인의 이러한 정서는 자유의 상실과 관계의 어긋남에 기인한다. 시인에 의하면 “자유라고 믿었던 날들이/꽃가지처럼 꺾여나간다”(「자유, 아름다운 허구」). 시인은 공원 산책길에서 데이트를 즐기던 여자가 사진을 찍기 위해 목련꽃을 꺾는 모습을 보면서 꽃을 꺾는 인간의 자유와 꽃으로 피어있고 싶은 목련꽃의 자유를 대비시키고 있다. 힘 있는 자유에 의해 힘없는 자유가 사정없이 꺾이는 모습은 분명 시인에게는 ‘아름다운 허구’일 뿐이다. 시인은 아름다움으로 포장된 자유의 허구성에 슬픔을 느낀다.

  이렇듯 이 세상은 상대적 허구성만 난무할 뿐 절대성이 사라진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은 불안하고 때로는 허무하기까지 하다. 인간이 신을 찾는 것도 인간에게 부족한 절대성에 대한 열망 때문이다. 하지만 시인은 신을 찾는 대신 영웅을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니체의 ‘초인’과도 흡사한 영웅은 시인이 대망하는 또 다른 신이다.

 

무협지를 보면

세상이 어지러울 때

숨어있던 고수 번쩍 나타나

세상을 평정하고 또 훌쩍 사라졌다

사람들은 그를 영웅이라 했다

영웅은 당대 한 명만 태어난다고 했고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래 그런지 나는 아직 영웅을 만나지 못했다

 

이 시대의 영웅은 어디에 있는가

빛나는 이름 자칭 영웅들을 비껴

어디 한가로운 세상을 흐르고 있는가

말갈기 흩날리며 계곡을

누비던 말굽소리 들린다

번쩍이는 눈, 구름처럼 피어나고

바람처럼 사라지던 발자국들

 

그러나 달빛 아래 시름 깊은 사내

한숨에 녹아드는 한 꽃잎을 물고

먼 남쪽 바다를 건너간다

지금 내 안에 반란이 일어났다

달려와 나를 거두어 평정해 주지 않는가

아직도 내 소리 듣지 못했다면 그는

참 아득히도 멀리 있나보다

 

내 안의 슬픔으로 늘 그리운 그는

어느 날엔가 소리없이 번쩍 날아와

내 정신의 공백 채워줄까

세상이 시시하고 쓸쓸한 날엔

영웅이 그립다

 

―「영웅을 기다리며」전문

 

  영웅은 난세에 탄생한다. 시인에 의하면 영웅은 당대에 한 명만 태어나고 사람의 눈에도 잘 띄지 않는다고 한다. 시인이 꿈꾸는 영웅이 니체적이고 정신주의적인 영웅인지 아니면 징기스칸 같은 정복자로서의 영웅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영웅은 끝내 시인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인용시를 읽어보면 시인이 바라던 영웅은 “달빛 아래 시름 깊은 사내”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한숨에 녹아드는 한 꽃잎을 물고/먼 남쪽 바다를 건너간다”. 시인이 영웅을 이렇게 그리고 있는 것은 시인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란조차 평정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답답함 때문이다. 시인이 늘 영웅을 기다리는 것은 시인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슬픔’에 기인한다. 시인의 슬픔은 정신적인 공백을 낳고 이를 채울 수 없는 답답함에 시인은 영웅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시인이 그리는 영웅은 일반적인 의미의 영웅은 아니다. 시의 문맥을 살펴보더라도 “달빛 아래 시름 깊은 사내”를 영웅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는 오히려 시인에 가깝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시인이 꿈꾸는 영웅은 어쩌면 시인 자신인지도 모른다. 김성조 시인의 시가 “절반의 사랑과 절반의 이별/절반의 영웅심 절반의 결벽증이 피워낸/꽃 한송이”(「조팝꽃 봄날」)라면, 시인 자신이야말로 또 다른 의미의 영웅이다. 이런 의미에서 시인이 꿈꾸는 영웅은 그립고 서럽고 쓸쓸한 달 같은 영웅이고, “파도에 뿌리를 묻고 초록 하늘을 베고 누운”(「무인도 1」) 섬 같은 영웅이다. 사실 그의 시들을 통해서 시인이 보여주는 영웅은 일반적인 의미의 영웅이 아니라 역설적 의미의 영웅이거나 면벽에 든 달마 같은 영웅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시인이 영웅일 수 없는 영웅을 등장시키고 있는 것은 끝없이 어긋나는 사랑, 즉 편애偏愛로 인한 결핍감 때문이다.

 

그 여자는 사랑할 줄을 모른다

사랑받을 줄만 안다

그 여자는 사랑받을 줄을 모른다

사랑할 줄만 안다

넝쿨손 초록 계절을 기어오르는 동안에도

수심(水深)의 절반을 닫아건다

 

그 여자를 흐르는 빛이

무인도를 닮아있는 것은

태생의 전설 낯설기 때문이다

여자는 맘껏 바다를 이고 살지만

태양을 품은 죄로 고립의

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때로 섬이 날개를 단다는

소문이 떠돌기도 한다

 

―「그 여자를 흐르는 빛」전문

 

  일반적으로 섬은 바다 한가운데 혼자 고립되어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섬은 끊임없이 파도와 이야기하고 갈매기와 같은 새들을 통해 외부세계와의 소통을 꿈꾼다. 그러나 김성조 시에 주로 나타나 있는 섬은 외부와의 소통이 단절된 채 고립된 ‘무인도’인 경우가 많다. 인용 시에서 그 여자로 표상되는 섬은 일방적으로 사랑을 하거나 사랑을 받을 줄만 알았지, 사랑을 주고받을 줄 모르는 편애의 섬이다. 그런 점에서 무인도를 닮은 이 섬은 소통이 단절된 섬일 뿐이다. 시인은 이 섬의 이러한 성격이 “태생의 전설이 낯설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태생의 전설’이란 ‘태양을 품은 죄’와 연관되어 있다. 여기서의 ‘태양’이란 시인이 앞에서 말한 ‘영웅’과도 상통하는 이미지이다. 시인의 내면에는 태생적으로 영웅에 대한 선망이 내재해 있다. 그러면서도 시인의 마음 또 한 켠에는 세상에 대한 결벽증이 자리하고 있다.

  인용 시의 말미에서 시인이“때로 섬이 날개를 단다는/소문이 떠돌기도 한다”는 것은 태생적 결벽증으로 인해서 외부와 단절된 섬이 초월을 꿈꾸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섬의 결벽증을 넘어선 영웅심의 발로가 아닐 수 없다. 일반적으로 김성조의 시는 ‘영웅심’과 ‘결벽증’이 길항하면서 얻어진 아이러니의 산물이다. 그의 시에서 아이러니가 느껴지는 것은 ‘영웅심’과 ‘결벽증’의 언발란스와 관계된다. 고립을 고집하는 섬이 날개를 다는 일이야말로 아이러니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3. 정오의 기적소리와 각성의 세계

 

  이상의 소설『날개』의 끝부분을 보면 주인공이 미쓰비시 백화점에 올라가서 정오의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 한번만 더 날아보자꾸나”라고 절규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상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을 김성조식으로 말하면 ‘분열된 의식의 무기력한 영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무기력한 영웅이 절규하고 있는 것은 일종의 ‘소리를 통한 초월에의 의지’로 해석될 수 있다. 인간은 놀라운 일이나 즐거운 일이 생기면 소리를 지른다. 여기서 소리를 지르는 일은 억압되었던 내면이 외부와 소통하는 행위에 해당된다.

  김성조의 이번 시집은 우연인지는 모르나 소리와 연관된 시들이 상당히 많이 등장하고 있다. 이 글의 첫머리에서 인용한 「오래된 지도」에서 시인이 “사람의 마을에 닿는 일이 소리의/근원을 만지는 만큼 멀고 난해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시인은 실제로 소리의 근원을 찾는 행위를 통해서 ‘사람의 마을에 닿는 일’을 꿈꾸고 있다.

 

 1.

어머니는 바다 건너 안채에 살아요 아버지는 바다보다 먼 사랑채에 살아요 나는 징검다리도 없는 안채와 사랑채 사이 생각이 많아 입이 무거운, 외로움을 일찍 배운 막내별이에요

 

밤이면 할아버지 이불깃 스치는 소리, 아버지 옛이야기 고적한 사랑채 풍경 속에 잠이 들어요 꿈속으로 어머니의 가만가만 손놀림, 두런두런 언니들 비밀한 이야기 소리, 꽃잎 흩날리는 웃음소리 산안개처럼 자욱 따라와요

 

툇마루 무늬 결엔 오늘도 잠자리 날개 같은 햇살 날아다녀요

총총 뛰어다니는 생각의 곁가지 마다 선비가 그래선 안 되느니, 할아버지의 편애 (偏愛)는 사랑채 담장 위 호박꽃넝쿨로 피어나고,

 

나는 외로운, 외로움을 몰라도 되는 일곱 살 의젓한 선비에요

 

 

 2.

정오의 기적소리 들려오면 아이는 먼 딴 세상의 동화가 그립다 귀 기울여도 닿지 않는 그 세상의 차가운 이마를 만지고 싶다

 

사랑의 수심(水深)으로도 안 되는 슬픈 그리움의 수액이 아이를 키웠다

 

―「정오의 기적소리 2」전문

 

  이 시의 두번 째 단락에서 시인이 “정오의 기적소리 들려오면 아이는 먼 딴 세상의 동화가 그립다 귀 기울여도 닿지 않는 그 세상의 차가운 이마를 만지고 싶다”고 진술하고 있는 것은, 이 글이 이미 『날개』의 끝부분을 염두에 두고 쓰인 것처럼 읽힌다. 이러한 추측이 맞는다면, 인용 시는 시인이 이상 소설의 ‘정오의 사이렌 소리’를 ‘정오의 기적소리’로 패러디해서 쓴 시가 된다. 여기서 시인이 꿈꾸는 ‘먼 딴 세상’은 정오의 기적소리를 통해서 깨닫게 되는 새로운 세계이지만, 그 세계는 “귀 기울여도 닿지 않는”세계라는 점에서 관념 속의 세계이거나 꿈의 세계에 가깝다. 이처럼 시인이 꿈꾸는 세계는 비현실적인 세계이지만, ‘정오의 기적 소리’는 시인을 각성시켜서 새로운 꿈을 꾸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각성제 역할을 하고 있다. 인용 시에서 화자는 유년 시절의 온갖 소리들을 회상하면서 영웅의 부재와 결벽증으로 닫혀졌던 자신의 내면이 문을 여는 소리를 듣게 된다.

  이 시의 앞부분을 보면 화자인 ‘나’는 바다 건너 안채에 사는 어머니와 바다보다 먼 사랑채에 사는 아버지와 멀리 떨어져서 “징검다리도 없는 안채와 사랑채 사이 생각이 많아 입이 무거운” 별이라는 점에서 고립된 존재이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는 특히 “생각이 많아 입이 무거운”이라는 수식어가 눈에 띈다. 여기서 입이 무겁다는 것은 말하지 않는 것, 즉 소통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시인의 고립감은 유년에까지 그 뿌리가 닿아있다. 하지만 이러한 소통의 부재는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언니의 정겨운 소리로 인해서 소통을 통한 각성의 세계에 이르게 된다.

 

연두에는 소리가 없다

옛이야기 무늬 지는 물결이 있을 뿐이다

물결 위엔 방금 겨울 건너온 독경소리

햇살은 연두에 한 층 길을 내어

저희끼리 천년을 살다 간다

 

한때나마 곁을 스쳤을 그 무엇을 서성이며

산새는 돌무덤의 낮은 속삭임에 귀 기울인다

햇살과 산새의 둥지인 저 연연한 물결은

뿌리의 한 시절, 잎잎 제 사연에

숨을 놓아 바위 등성까지 뛰어오를 것이다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 무언지도 잊어버린 채

오래 하산하지 못하는 木佛

오늘은 연두에 소리 하나 내걸고 있다

 

―「하산하지 못하는 木佛」전문

 

  이 시에서 ‘연두’는 ‘나무’의 제유 이면서 “햇살과 산새의 둥지”라는 점에서 생명 성을 내장하고 있다. 시인은 ‘나무’를 ‘木佛’로 은유하여 수도승의 이미지로 사용하 고 있다. 이 시에서 목불이 하산하지 못하는 이유는 ‘소리’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소리’는 ‘깨달음’과 연관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목불이 하산하지 못하는 이유가 타당성을 얻게 된다. 이처럼 시인에게 있어서 ‘소리’는 새로운 깨달음에 이르는 통로가 된다. 그런데 시인에게 있어서 ‘소리’가 깨달음과 연관되는 것은, “언제부턴가 국적불명의 언어들이 내 안의/원시림에 바람을 풀어놓았다/귀로 듣고 귀로 흘리던 온갖 소리들이/빛의 속도로 명주실을 잣고 있다”(「이명耳鳴」)고 한 시인의 진술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즉 시인은 자신의 내면의 원시림 속에 숨어있는 소리를 일깨우는 일이 외부의 수많은 소리들임을 명시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시인이 시를 쓰는 일도 역시 잃어버린 소리를 찾아서 자신의 내면을 일깨우는 것이 된다.

  지금까지 시인의 삶이 영웅심과 결벽증에 갇힌 삶이었다면 앞으로의 시인의 삶은 내면의 “결박을 풀어야 한다/숨 한 번에/버리고 비우고 지우고 뛰어넘어야 한다”(「이명耳鳴」). 그리하여 자신의 내면의 이파리로 흔들리는 연두를 외부적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켜 “한 번도 초록인 적 없던 날들”(「안개 주의보」)과 진정한 화해를 이루어야 한다. 시인이 시를 쓰는 일이 단순히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초록에 이르는 일임을 시인은 알고 있다. 이것은 앞으로 김성조 시인의 시가 어떤 세계를 우리 앞에 새롭게 펼쳐낼지 기대를 모으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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