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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심상> 10월 호

부정(否定) 감각

( 글은 월간 <심상> 10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아무리 둔감한 사람이어도 어떤 글을 읽을 , 그것이 비록 시가 아니라도, 글인지 글인지는 대강 있다. 하나의 단어, 하나의 문장을 선택하기까지 얼마나 애써 고민했는지 읽으며 즉각적으로 파악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맞춤법이나 비문 같은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적절한 어휘를, 어떻게 능숙하게 배치하는가의 문제는 글쓰기의 핵심이며, 그것은 사실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가끔 아주 어린아이나 글쓰기를 전혀 배우지 못했던 노인의 글에서 대단한 감동을 느낄 때가 있는데, 이는 글이 유려하거나 세련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단어 하나하나가 아주 어렵게 선택되었다는 , 꾹꾹 눌러 썼다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다. 그러니 하물며 시는 어떨까. 시인은 누구보다도 미묘한 어감의 차이를 고민하고, 예민하게 감각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들은 글자 하나, 하나를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고민 끝에 새긴 단어, 완성한 문장에도 결국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시인이다. 그들은 없다 있지 않다 차이를 안다. ‘맞다 틀린 것이 아니다 차이 역시 안다. 시인들에게 부정(否定) 감각은 익숙하면서 동시에 낯선 것일지도 모르겠다. 부정한다는 것은 긍정을 전제하는 것이고, 맥락은 무수히 다르기 때문이다.

 

 

음악이 없으면 걷지도 않아

레이스 속치마를 입지 않으면 걷지도 않아

 

때리면 피가 나는 드럼이 있어

맞으면서도 춤추는 데를 떠나지 않아

 

무너진 바다에 무너진 무너진

무너진 배는 떠나지 않아

 

교황 아버지 앞에선 촛불을 들고 춤을 춰야

물속에 비친 촛불은 흐르는 피를 닦지 않아

 

출렁출렁 고통밖에 없는 고통이 흐릿한 뼈를 일으키는

이생의 모든 얼굴이 나를 불러도 돌아보지 않아

 

물속엔 메아리가 없어서 울지도 않아

내가 여기 없어도 나는 떠나지 않아

 

아직

 

않아

 

김혜순, 「않아」, 《문예중앙》, 2016 가을호

 

 

이것이 김혜순의 시라면 않아라는 제목은 낯설지 않다. 알려져 있듯 김혜순은 『않아는 이렇게 말했다』(문학동네, 2016)에서 아예 않아 등장시켜 시도 산문도 아닌 무엇을 쓰며, 그저 아니라고밖에 말할 없는 어떤 화자를 내세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않아라고 부정하게 되면 우리가 그것을 강하게 떠올린다는 점을 알고 있는 하다. “음악이 없으면 걷지도 않아라고 했을 , 우리는 음악과 함께 걷는 누군가의 모습을 떠올리고, “레이스 속치마를 입지 않으면 걷지도 않아라고 말할 , 레이스 속치마를 입고 걷고 있는 모습을 자연스레 떠올린다. 그리고 않아라고 했으므로, 우리는 모습을 황급히 지운 다음 행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뇌리에 이미 이미지들이 섬광처럼 번쩍이며 박혀 있음은 변함없다. 언뜻 발랄할 했던 시는 때리면 피가 나는 드럼 이미지에 이르러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보여주고, “무너진 바다에 무너진 무너진 / 무너진 배는 떠나지 않아에서 시인은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명백하게 보여준다. 에두를 없이 이것은 세월호의 이미지이고, 이어지는 시구들은 속의 고통 대해 말한다. “피를 닦지 , “돌아보지 , “울지도 , “떠나지 그곳() 아직이라는 말에 걸려 있다. 행간을 띄운 아직 않아사이에는 어떤 단어를 넣어도 무방하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고, 어떤것도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시인이 끈질기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직 잊지않았다는 것이 아닐까.

 

 

이곳은 이상하다. 이곳엔 소리가 없다. 고개를 돌려 검은 창문을 본다. 검은 창문 너머를 건너가는 밤에 대해 말하던 . 떨어지는 눈물을 보며 서로의 눈물을 사랑했다. 떨어지는 눈물로 시작되는 이야기. 떨어지는 눈물을 사랑해서 죽고 싶은 사람의 이야기. 그것은 너무 아름다워 계속 없었다. 그렇지만 떨어지는 눈물로 시작되는 이야기. 어디선가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 오늘 나는 검은 창문을 보고 있다. 영원으로 들어가듯 검은 창문을 보고 있다. 어쩌면 오늘 나는 검은 창문 너머와 검은 창문 너머를 건너가는 밤을 수도 있다. 그곳에서 만나는 너의 푸른꽃. 너의 노래. 비가 내린다. 이상한 이곳에 비가 내린다. 한낮의 어지러운 아래에서 투명한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손바닥 위에서 얼음이 녹는 것을 쳐다보며 울고 싶었다. 어떤 것들은 너무 또렷해서 비현실적이었다. 그런데 비현실적인 감각은 가장 현실 같은가. 비를 보며 비를 들으며. 없는 것들을 그대로 흘려보낸다. 검은 창문 너머에서 걷는 것처럼 떠다니며. 순간의 순간의 소리에 집중하며. 이것은 없는 것들을 생각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어떤 날은 끝없이 걷고 걸었다. 스스로 움직이는 말들을 기다리며. 걸어가는 푸른꽃. 걸어가는 눈물. 걸어가는 소리.

 

박지혜, 「일요일」, 《현대시학》, 2016 9월호

 

 

시를 읽으면 언어를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그리고 퇴적 아래에 응시하는 힘이 전제되어 있음도 알게 된다. 어떤 과장이나 꾸밈도 없이, 지나친 생략이나 함축 없이 그저 묵묵히 사태를 지켜보는 시인의 태도는 없다라는 술어와 관계가 있어 보인다. ‘없다라는 말은 부정의 감각으로 시공간을 확장시키는 힘이 있다. “이곳엔 소리가 없다라고 말하면서 검은 창문 이미지를 내보이는 시의 시작은 시가 막막함에 관해 이야기하리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떨어지는 눈물로 시작되는 이야기 너무 아름다워서 계속 없었, 어디선가에서는 끝없이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다시 검은 창문 영원”. 여기까지 시인은 온통 검은 이미지로 없음 관해 말해왔다. 이윽고 시인은 너의 푸른꽃”, “너의 노래”, 그리고 말한다. 검음과 없음으로 가득한 시인의 내면에 빛과 투명함을 선사하는 것은 이다. 그러나 다시, 시인은 그것이 너무 또렷해서 비현실적이라고 깨닫는다. 동시에 비현실적인 감각은 가장 현실 같은가하고도 묻는다. 시인은 끝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없는 것들을 생각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어느 일요일에 스스로 움직이는 말들을 기다리 시인의 모습은 없는 것을 끝없이 붙잡기 위해 분투해야 하는 시작(詩作) 보여준다고도 있겠다.

 

 

일이 오면 가자고 했다.

 

휴일은 오고 있었다. 휴일이 오는 동안 너는 오고 있지 않았다. 네가 오고 있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지 모르는 채로 오고 있는 휴일과 오고 있지 않은 사이로

 

풀이 자랐다. 풀이 자라는 알려면 풀을 보면 된다. 다음날엔 바람이 불었다. 풀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알게 된다. 내가 알게 것을

 

모르지 않는 네가

 

왔다가 갔다는 이해하기 위해 태양은 구름 사이로 숨지 않았고 더운 날이 계속되었다. 휴일이 오는 동안

 

임승유, 「휴일」, 《문학동네》, 2016 가을호

 

 

공교롭게도 「일요일」 뒤에 「휴일」이다. 앞서 일요일 밖을 응시하는 사유의 시간이었다면 여기 휴일 와의 약속이 예정된 날이며, ‘ 아직 당도하지 않고 오고 있는중이다. 시의 핵심은 휴일이 오는 동안 너는 오고 있지 않았다 것일 테다. 시인은 온다 말하지 않고 오고 있지 않다 표현한다. 그것은 분명히 어떤 의미를 가진다. “풀이 자라는 알려면 풀을 보면 된다라는 구절에서 드러난다. 이것을 에게로 옮기면 너가 오고 있다는 알려면 너를 보면 된다정도가 되지 않을까. ‘ 온다 말에서 느껴지는 어떤 단호함과 의지 같은 것이 오고 있지 않다에서는 약해진다. “오고 있지 않은 다른 무언가를 하면서 조금은 망설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혹은 시인의 말처럼 왔다가 갔다는것일지도 모르겠다. 휴일은 오고 있고 풀은 자라고 더운 날은 계속되었다. 시간이 계속 흘러간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알고, ‘ 모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오는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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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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