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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

 

 

 

강민선

 

 

나는 미아였다. LAX 공항(로스엔젤리스 공항) 버려진 스물아홉 살의 미아. 뜨겁고 건조한 바람이 기다렸다는 달려들더니 치마를 풍선처럼 부풀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유전자에는 없는 사막이었다. 할머니의 할머니의 까마득한 할머니가 전해준 피에는 , 눈물, , 바다만이 녹아있어 울창한 녹음과 습한 공기만을 기억한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귀에 익지 않은 언어와 나를 둘러싼 생경한 사람들의 생김새에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손을 잡고 있던 아이의 손가락에도 힘이 들어갔다. 작은 새의 발가락을 연상시키는 앙상하고 차가운 아이의 손가락에 깍지를 끼었다. 앞장 남편의 왜소한 어깨에 얹힌 가방이 시지포스가 들어 올리는 무거운 바위처럼 보였다. 우리는 태평양너머의 머나먼 타국에서 헤매고 있는 걸까. 우리를 마중 나올 사람도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 막막한 곳에 우리 가족은 한참이나 있었다. 갑자기 목이 메었다.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 불법 택시를 타고 미리 예약한 숙소로 향했다. 차창에 비친 낯선 사막의 도로에는 가시덤불이 구르고 모래 바람이 회오리쳤다. 비수기 놀이 공원에 버려진 아이처럼 우리 가족은 절망과 비애감에 말없이 그저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

 

 

밥솥 뚜껑을 열자 뜨거운 김과 함께 냄새가 피어올랐다. 알알이 익은 밥알이 뭉개지지 않도록 주걱으로 조심스럽게 뒤적이며 식탁 위에 준비한 재료를 눈으로 더듬었다. 소금 간을 해서 무친 시금치, 두툼하게 익힌 계란 지단, 볶은 당근, 불고기 양념으로 볶은 소고기……. 시계를 보니 벌써 메건 집으로 출발할 시간이었다.

나는 재료를 차에 싣고 시동을 걸었다. 열어놓은 창문 틈으로 바람이 새어 들었다. 황급히 창문을 올렸다. 시월의 산타 애나 열풍이 불면 메뚜기 떼가 지나간 것처럼 잔디와 나뭇잎들은 수분을 잃고 바싹 말라 버린다. 만약 여기에서 죽는다면 바람은 시체마저도 태평양 너머 나라 밑에서 썩지 않는 미이라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기후 때문인지 처음엔 이곳 여자들의 나이를 가늠할 없었다. 뜨거운 햇빛은 어린 시절 황금처럼 빛나던 금발을 윤기와 색을 앗아가고, 바람은 그녀들의 이마 가운데 밭고랑 같은 깊은 주름을 만든다.

길가에 자카란다 나무가 몸을 흔들 때마다 연보라색 꽃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이제 사오월이면 동네를 보라색으로 물들이던 자카란다를 없을 지도 모른다. 자카란다 꽃이 날리면 어릴 학교 붉은 벽돌담을 따라 있던 라일락이 떠올라 없는 서글픔에 차를 세우고 울기도 했다. 라일락 꽃그늘 아래 앉아 바라보던 파란 하늘과 허공으로 흩어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운동장에서 피어오르던 흙먼지, 그다지 특별할 없는 사소한 추억 하나하나가 그리웠다. 벌써 다섯 번의 자카란다 꽃을 봤으니 이곳에서 다섯 번의 봄을 보낸 셈이다. 사이 남편은 박사 과정을 마치고, 아이는 한국말 보다 영어로 재잘거리며 학교를 다닌다. 아침마다 그들을 배웅하는 눈가에는 기미와 주름이 세월의 흔적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후회는 없었다.

남편은 정리해고 당하고 직장을 구하려 했지만 마치 달리기를 못하는 아이가 술래가 것처럼 자신의 자리를 되찾지 못했다. 술로 밤을 지새우는 남편의 처진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아파트 전세금과 퇴직금을 계산했다. 술래에서 벗어날 없다면 방법은 가지밖에 없었다. 술래잡기를 그만 두는 것이다.

남편은 기댈 때마다 삐걱거리는 사인용 식탁에 앉아 컵에 소주를 따랐다. 거실에 켜놓은 티브이에서는 재벌 3 본부장이 소리를 버럭 지르며 여주인공과 사랑 싸움 중이었다. 남자는 자기가 주는 명품백은 여주인공에게 던지며 자존심이 사랑 보다 중요하냐고 외치고 있었다. 내가 TV 리모콘 버튼을 누르자 24 아파트 구석 어딘가에 숨어 있던 정적이 기다렸다는 소음 대신 자리를 차지했다.

당신, 공부 하고 싶다고 했지?

남편의 처진 눈이 번쩍 뜨였지만 빛은 금세 사라지고 어깨는 다시 내려앉았다.

처자식이 딸린 가장이 무슨 공부…….

백세 시대야. 이제 당신 나이 고작 서른 넘었는데 뭐가 무서워? 앞으로 남은 칠십 년에 투자해야지. 퇴직금이랑 전세금 합치면 얼마간은 버틸 있어. 우리 떠나자, ?

그의 손을 잡고 격려하던 역시 속으로는 사시나무처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자카란다 나무도, 시월이면 부는 산타 애나의 건조한 열풍도, 더더구나 라일락 따위에 울게 줄은 몰랐다.

상념에 잠겨 있는 동안 어느 차가 메건의 집에 다다랐다. 나는 차를 세우고 깊은 곳까지 공기를 들이마셨다. 아마 시간 지키는 엠버는 벌써 와서 메건과 홍차를 마시며 수다 떨고 있을 것이다. 내가 들어서면 그녀는 살짝 올라간 작은 눈으로 나를 훑어보겠지. 두려운 서툰 영어 보다는 엠버의 날카로운 눈빛과 꽈배기처럼 꼬인 말이었다.

현관문이 열리며 빛을 잔뜩 머금은 메건의 금발이 나를 맞았다.

와우, 오늘 메뉴가 도대체 뭐야?

그녀는 손에 들린 짐을 받아들며 호들갑을 떨었다. 집안은 향초에서 뿜어져 나오는 인위적인 꽃향기로 가득했다. 집안 구석구석 놓인 사계절 시들지 않는 조화와 향초에서 흘러나오는 향기로 가득한 그녀의 집은 고운 화장을 그녀를 닮아 있었다.

, 안녕?

지나가 찻잔에 뜨거운 물을 따르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이태리의 후손답게 풍만한 몸집과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탐스런 갈색머리를 날리며 다가와 뺨을 마주대고 세게 끌어안았다.

안녕, 지나?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자 지나 역시 메건처럼 소리로 아는 했다.

정말 섭섭해. 오늘이 마지막이라니. 앞으로 쑨의 음식을 어디서 먹을 있지?

지나가 서운한 표정으로 머리를 흔들 때마다 귓불에 매달린 크고 화려한 귀걸이가 찰랑찰랑 부딪치는 소리를 내었다. 나는 고맙다는 대신 배시시 웃으며 반찬통을 열어 보였다. 뚜껑을 열자 시금치와 계란 지단, 소고기와 당근, 아보카도가 색동저고리처럼 알록달록 드러났다.

어머머, 정말 색이 곱다.

도대체 오늘 무슨 요리를 할지 기대된다. , 정말 대단해.

사람이 과장된 칭찬을 쏟아내자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거렸다.

 

 

*

 

 

내성적이라 어릴 때부터 친구 사귀기 힘들었던 내게 먼저 다가온 메건이었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간 일주일쯤 되었을 것이다.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치맛자락을 놓지 않는 아이를 억지로 들여보내고 까치발로 높은 너머 아이를 눈으로 따라갔다. 아이는 처진 어깨로 아이들이 동그랗게 모인 곳으로 가더니 차츰 입술 끝이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또래 아이들도 아직 말이 서툴 나이였다. 괜찮을 거야. 아이에게인지 나에게인지 모를 위로의 말을 속으로 건넸다. 종소리가 나자 아이들은 줄을 서더니 선생님을 따라 교실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사라진 작은 놀이터에는 엄마들의 걱정과 아이들의 기운이 동그랗게 고여 있다가 조금씩 공중으로 흩어졌다.

아이니?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키가 금발의 여자가 나를 보며 우아한 미소를 지었다.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애도 지금 아이랑 같이 교실에 들어갔어. 그래도 겪은 일이라 적응이 됐는데. 미시즈 커크가 워낙 좋은 선생님이라 걱정하지 않아도 . 아이 모두 선생님 반이었거든.

갑작스런 그녀의 등장에 나는 그저 얼굴만 붉히며 머리만 위아래로 움직일 뿐이었다.

메건이야. 우리 애는 카메론이고 아이와 같은 반이야.

그녀는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연분홍색 매니큐어가 곱게 칠해진 손톱을 보며 나는 손톱 거스러미가 신경 쓰였다.

지순이야. 그냥 순이라고 불러도 .

손톱이 보이지 않도록 살짝 오므린 그녀의 손을 잡았다.

반가워. 혹시 아침 먹었으면 친구 지나하고 같이 아침 먹으러 갈래?

그녀가 활짝 웃으며 차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유쾌한 미소의 여자를 가리켰다. 메건, 지나, 그리고 나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내가 사는 동네는 번화가와 한참 떨어진 곳이라 운전을 못하면 아무 것도 없었다. 한국과 달리 상가는 허허벌판에 띄엄띄엄 위치해서 아이 학용품 사러 시간, 야채를 사기 위해 삼십 이상 걸어야 했다. 메건과 지나는 그런 나를 위해 아이 학교부터 보는 것까지 오랜 시간을 싫은 내색 없이 도와주었다.

나를 도와주는 거야?

그들의 이유 없는 친절을 끊임없이 의심하던 어느 나는 용기를 내어 물었다. 혹시 그들이 이상한 종교를 가진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려 말할 모르는 질문을 두고 지나가 입을 열었다.

우린 친구잖아.

친구, 우편함에 꽂혀있는 광고지처럼 흔한 친구라는 말이 뒤통수를 쳤다. 우리는 인종도 다르고, 국적도 다르고, 말도 통하지 않는데 어떻게 친구라는 거지?

뭔가 공평하지 않아. 해주는 것도 없는데 너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똑같이 도와주고 있어. 이런 친구가 아니야.

이번엔 메건이 대답했다.

물론 처음엔 친구로 도와준 아니었어. 너도 알다시피 우리 동네 사람들은 대부분 여기서 태어나 여기서 자란 토박이들이야. 그래서 너희 가족이 처음 이사 왔을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 말도 못하고, 아는 사람도 없는데 이렇게 다른 나라에 자리 잡는다는 대단해 보였거든. 당연히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지금은 우리 친구잖아.

메건의 말에 지나가 동의하듯 눈을 마주쳤다. 우리가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그저 집세가 쌌기 때문이었다. 학교에서 가까운 지역은 월세가 너무나 비쌌다. 그들의 대답에 마음 깊은 곳에 괜한 죄책감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너도 우릴 도와주면 되겠네.

메건의 제안에 지나가 거들었다.

한국 음식을 먹어본 없는데 한국 요리를 가르쳐주면 어때? 주씩 돌아가면서 이태리 음식, 메건은 독일계 시어머니에게서 배운 독일 요리.

미국에 후론 언제나 낮은 포복하듯 존재감 없이 지내던 내가 뭔가를 시작하게 되다니,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목요일마다 요리를 하자는 메건의 아이디어였다.

목요 쿠킹 클래스. 이름 어때?

목요 쿠킹 클래스. 나도 그들을 위해 뭔가를 있다는 사실에 입술이 떨릴 정도로 흥분되었다.

같이 해도 될까?

그래? 좋아.

엠버라는 친구가 있는데 물어볼게.

그래, 엠버는 부모님 분이 동양인이라고 했던 같은데.

동양인이라는 말에 괜히 가슴이 설레었다. 세계 어딜 가도 만날 있다는 중국인조차 보기 드문 동네에서 동양인이라니, 문득 그녀가 한국 사람이기를 은근히 바랐다.

그래? 기대된다.

쿠킹클래스 첫날이 되었다. 나는 재운 불고기와 새우냉채 재료, 그리고 들뜬 마음을 안고 메건의 주방으로 들어갔다.

굿모닝.

나는 창문을 등지고 있던 동양인 여자를 보자 반가운 마음에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가무잡잡한 피부에 밝은 갈색 머리를 질끈 묶은 동양인 여자는 나를 보더니 입을 다물고 인상을 찌푸렸다. 당황스러웠다. 잠시 망설이던 여자는 내키지 않는 동작으로 손을 내밀었다.

안녕? 엠버라고 . 지금 메건은 잠깐 학교에 가서 지금 집에 없어.

그녀는 내가 내민 손끝을 슬쩍 스치기만 했다.

그렇구나.

어디 출신이지?

한국에서 왔어.

엠버는 가느다란 눈을 조금 크게 뜨더니 입술 꼬리를 끌어올렸다.

북한, 남한?

미국에선 흔히 듣던 질문이지만 그녀의 말투는 어딘가 불편했다.

당연히 남한이지. 이름은 지순인데 모두들 이라고 불러. 남편이 여기 유학 오는 바람에 오게 됐어. 너는 어디서 왔어?

나는 짐짓 명랑하게 물었지만 그녀는 눈을 내리깔며 턱을 치켜들었다.

어디서 오다니? 미국 사람이야.

벼려진 식칼로 모가지 내리치듯 자르는 그녀의 태도에 머쓱해진 나는 그저 들고 반찬통만 만지작거렸다.

 

, 엠버가 처음엔 낯을 가리지만 친해지면 정말 괜찮은 사람이야.

나중에 지나가 차가운 엠버의 태도가 걸렸는지 그녀 대신 변명을 해주었지만 그녀와 사이의 간격은 시간이 지나도 좁혀지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모임에 나타나면 큰소리로 웃다가도 샐쭉한 표정을 지으며 투명인간 취급하기 일쑤였고, 지나와 메건를 붙들고 귓속말로 무언가 속닥거렸다. 그들이 이유를 없는 웃음을 터뜨리며 빠른 영어로 떠들어대면 홀로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혀있는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따라 웃느라 경련이 이는 입술을 마사지하며 자리를 지켰다. 견딘다는 , 그것만이 자존심을 지키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쿠킹 클래스는 다리가 개밖에 없는 사각식탁처럼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하며 사년 가까이 계속 되었다. 수요일 저녁마다 두개골을 가르는 같은 두통으로 끙끙 앓고 있으면 남편은 때려치우라고 했지만 메건과 지나를 생각하면 그럴 없었다.

나는 엠버가 빠졌던 어느 목요일에 메건과 지나에게 그녀에 대해 물었다.

엠버의 부모는 어느 나라에서 거지? 중국? 일본?

모르겠어. 엠버도 동네 출신이 아니고 결혼하고 이사 터라 우리도 몰라. 그저 아는 부모님 중에 분이 일본 사람이라고 했던 같아. 하지만 하와이에 살아서인지 만나지 않는대.

수다쟁이 지나의 말에 메건이 슬쩍 눈치를 주었다.

하지만 중요한 현재이지 과거가 아니잖아.

과거를 물어 아니었는데. 편치 않은 표정에 메건은 갑자기 정원에서 꽃을 꺾어오겠다며 자리를 피했다. 다시 남편이 학위만 받을 때까지만 버티자고 다짐했다. 메건과 지나와 헤어지는 싫었지만 엠버를 마주하는 정말 괴로웠다. 그러나 모든 일엔 끝이 있다고 얼마 남편의 박사 논문이 통과되고 버지니아에 직장을 잡으면서 이사가 결정되었다. 정말 마지막 클래스가 것이다.

딩동, 소리가 집안을 울렸다. 엠버였다. 지난 목요일엔 지나가 자기 집안 전통의 라자냐를 선보였는데 엠버는 이런 맛은 세상에 태어나 처음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세우고 감사의 표시로 유명 베이커리의 케이크를 사오겠다고 했다. 상기된 뺨으로 주방에 들어서는 그녀의 팔에는 커다란 케이크 상자가 들려있었다.

말도 , 얼마나 줄이 긴지 시간이나 기다려서 사왔지 뭐야.

엠버는 내겐 눈길 주지 않고 수다를 시작했다.

엠버, 그럴 필요 없는데. 라자냐는 언제든지 있어.

지나는 엠버의 뺨에 입을 맞추고 메건은 그녀에게서 케이크 상자를 받아들었다. 나는 마지막이라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녀의 눈을 맞추며 인사를 했다.

안녕, 엠버?

그녀는 시선을 피하며 어쩔 없다는 짧게 하이라고 인사할 뿐이었다. 이젠 괜찮다. 다시는 무례한 그녀를 보지 않게 됐으니까. 마지막에 감정을 폭발시킬 필요도 없이 좋은 인상만을 남기고 그들의 무대에서 퇴장하고 싶었다.

쑨이 오늘 대단한 모양이야. 벌써 기대되는 .

인사치레지만 메건의 말은 언제나 상대방을 기분 좋게 만든다. 엠버의 입술이 아주 짧은 순간 비죽거렸지만, 모른 무시했다.

사실은 알고 보면 아니야. 오늘은 너희들이 이라고 부르는 만들려고 .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지나가 환호성을 올렸다.

그럼 일식인건가?

아니, 오늘 내가 만드는 한국식 김밥이야. 일본식과는 조금 달라. 김의 맛에 적응하면 정말 좋아하게 거야. 갖은 야채와 고기도 들어있어서 야채 먹은 아이들에게 영양식이기도 하고.

메건이 나를 도와 재료들을 넓은 쟁반에 나란히 펼쳤다.

와우, 오이, 당근, 계란, 쇠고기까지. 노란 뭐지?

무를 피클처럼 노란색으로 새콤달콤하게 절인 거야. 옆에 연한 오렌지 색이 나는 씻은 김치를 길게 찢은 거야. 원래 익은 김치를 씻어서 단무지 대신 쓰기도 .

지나와 메건은 흥미로운 눈으로 노트에 열심히 적었다.

사실 재료는 뭐가 되든 상관없어. 샌드위치처럼 냉장고 안에 있는 재료를 적당히 넣고 말면 되거든. 그래서 일본 레스토랑에서 롤에 많이 쓰는 아보카도도 가져왔어.

엠버는 손가락으로 김발을 건드리다가 뭔가 생각난 것처럼 끼어들었다.

뭐야, 결국 일본식이잖아. 뭐가 한국식이라는 거지?

나는 눈을 감고 다시 심호흡을 했다. 마지막이야. 유종의 . 머릿속에 말을 새겼다.

비슷할 있어. 하지만 우리는 조선시대에 이미 김이 있었고, 거기에 밥을 싸먹었지. 일본이 엄청난 양의 김을 우리나라로부터 수입하는 알지?

미리 준비해 말을 천천히 풀어놓았다. 그리고 나는 김발을 쓰지 않고 김에 밥을 얹고 준비한 재료들을 차례로 올렸다. 메건과 지나 역시 내가 마는 대로 따라했다.

이런, 잘되지 않는데. 보기보다 어려워. 김밥은 도저히 사람이 먹을 것처럼 생기지 않았어.

지나는 밥알이 덕지덕지 붙은 김을 들어 올리며 절망했다.

너희는 김발을 . 이걸 쓰면 쉬울 거야.

나는 김발을 깔고 김밥 마는 것을 시연했다.

했어.

솜씨 좋은 메건이 그럴싸하게 김밥을 쌌다. 하지만 칼로 썰자 느슨하게 말았던 김밥의 모양이 무너지면서 시금치와 당근이 빠져나왔다.

정말 어렵다. 쑨의 김밥은 썰어도 모양이 그대로야?

우리가 떠들어대는 동안에도 엠버는 여전히 지켜보기만 손도 대지 않았다.

?

김밥 재료를 쳐다보는 그녀의 눈빛이 유난히 그늘졌다.

오늘은 쑨의 마지막 날이야. 우리를 위해 오전 내내 준비했을 텐데 만들어 .

지나의 권유에 엠버는 마지못해 김을 접시 위에 올렸다. 나는 그녀의 손끝이 살짝 떨리고 있음을 놓치지 않았다. 마지막이라는 감상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의 태도에 대한 후회인지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녀의 내부 안에서 뭔가가 흔들리고 있었다. 세상 누구도 김밥 싸는 일에 긴장으로 떨진 않을 테니까.

잘하는데.

사실이었다. 손이 투박한 지나나 어딘가 어설픈 메건 보다 엠버의 손은 야무지고 익숙하게 움직였다. 김을 깔고 흰밥을 고르게 다음 서슴없이 시금치, 씻은 김치, 당근, 고기를 색이 겹치지 않게 올리고 꼼꼼하게 말기 시작했다. 김치가 입에 맞지 않을 수도 있어서 말리려 했지만 그녀의 손길은 거침이 없었다. 나는 칼에 물을 묻힌 그녀가 완성한 김밥을 썰었다. 재료들이 빠져나온 김밥 끝은 한쪽에 치우고 일정한 간격으로 김밥의 단면을 보여주자 지나가 발을 구르며 감탄했다.

정말 예뻐! 식당 열어도 되겠어!

이럴 때가 아니지. 빨리 사진 찍어서 인터넷에 올려. 이번에 학교 행사에 이걸 해가면 어떨까?

메건은 스마트폰으로 여러 각도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지나는 접시 한쪽에 방치된 김밥 끄트머리 하나를 집어 먹었다.

와우! 맛있어. 게다가 건강한 맛이야.

나는 웃으며 건강식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지나에게 경고를 했다.

물론 건강에는 좋지만 밥이 많이 들어가서 의외로 열량이 높으니 조심해야 .

한국 사람들은 김밥을 주로 언제 먹어? 명절이나 파티 음식으로 먹어?

요즘은 핑거푸드처럼 먹기도 하지만…….

잠시 생각에 잠겼다. 초등학교 소풍날이면 엄마가 싸준 김밥과 과자가 잔뜩 가방을 메고 관악산까지 걸어갔다. 입구에 있는 광장에 전교생이 모이면 선생님의 주의사항을 듣고 친구들과 나무 그늘 아래 삼삼오오 짝을 지어 서로 김밥과 과자를 나눠먹었다. 파란 하늘과 오른 신록, 멀리서 들리는 흐르는 소리……. 세월이 지날수록 추억은 더욱 선명해진다.

지금은 모르지만 내가 어릴 학교에서 야외로 소풍 가면 김밥을 도시락으로 먹었어. 모두가 자기 엄마가 싸준 다른 맛의 김밥을 자랑하면서 점심으로 먹는 거야. 지금은 김밥 파는 식당도 많고 아무 때나 먹으니까 추억이 많이 퇴색되었지만. 우리 또래에겐 김밥은 소풍과 추억의 맛이지.

너에겐 김밥이 우리에게 마카로니치즈나 닭고기 수프처럼 추억의 맛이구나.

우리가 떠들어대도 엠버의 의식은 다른 세상에 있는 여전히 멍한 표정이었다.

아무튼 엠버가 이렇게 김밥을 말다니 의외네. 정말 잘하는데.

나는 선심처럼 엠버를 다시 칭찬했다.

고마워.

이거 만들어 있어?

메건의 말에 엠버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 그럴 리가 없잖아.

나는 부모님 중에 분이 일본인이라고 해서 만들어 적이 있는 알았지. 엠버가 눈썰미가 좋은가 . 보고 이렇게 만들다니.

엠버는 자신이 만든 김밥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쩐지 그녀의 태도가 다른 때와 달랐다. 그녀가 비아냥거리거나 나를 무시한 적은 있어도 이렇게 어둡고 우울한 적은 없었다.

어디 아파?

, 몸이 좋은 같아. 미안하지만 먼저 갈게.

의자에서 일어난 엠버가 어지러운 잠시 휘청거렸다. 그녀가 이쯤에서 사라져준다면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하지만 돌아서는 그녀를 보며 조금은 서운했다. 기대했던 걸까. 마지막 순간에 이루어지는 감상적인 사과나 화해?

엠버! 정말 너무한 아니야?

그러나 발화는 엉뚱한 곳에서 시작되었다. 지나의 날카로운 말이 돌아서는 엠버의 한가운데 박혔다. 그녀는 정말 화살이라도 맞은 것처럼 움찔하더니 자리에 멈췄다.

오늘은 쑨의 마지막 날이야. 도대체 네가 그러는지 , 아니 우린 이해할 수가 없어. 동안 쑨은 계속 너의 무례한 행동을 참고 참아왔어. 우리가 쑨의 송별 파티를 열어줘야 하는데 쑨은 우리를 위해 음식을 준비해왔어. 그녀가 너에게 잘못한 거니? 네가 지금 그대로 가버린다면 나도 다시는 너를 보지 않을 거야.

그동안 이태리 여자 특유의 수다스럽고 푸근한 지나의 모습으로는 상상도 못할 반응이었다. 그녀의 깊이 파인 셔츠 위로 드러난 풍만한 가슴이 위아래로 오르내렸다. 그만하라는 의미로 지나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그러나 지나의 행동은 그동안 퍽퍽한 고구마를 억지로 삼킨 것처럼 답답하던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었다.

엠버가 아픈 같아. 괜찮아.

! 너와 쑨의 다른 점이야. 끝까지 생각부터 하잖아.

메건이 엠버에게 다가갔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 엠버의 턱에는 눈물이 흘러내려 방울방울 맺혀 있었다. 그녀의 눈물을 보자 나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엠버는 다시 우리를 외면하더니 어깨를 들썩였다. 그리고 그녀가 낮게 중얼거리는 말에 귀를 의심했다.

너에겐 행복한 도시락이었는지 몰라도 아니야.

분명 영어가 아니었다. 서툴지만 분명 그녀는 한국말로 말하고 있었다.

나에겐 마지막 밥이었어. 동물원에 버리기 엄마가 마지막 .

지나와 메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아무 말도 없었다. 그녀의 말은 조금 전까지 터지기 직전의 풍선 같았던 팽팽한 긴장감을 맥없이 쭈글쭈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몸이 굳은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지금 엠버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 너는 이해했어?

엠버는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고 그대로 나가 버렸다. 그녀가 사라진 뒤에도 그녀가 남긴 여운에 남은 사람은 조용히 침묵했다. 그들은 묻지 않았고 역시 엠버가 말을 굳이 통역하지 않았다.

메건은 엠버가 가져온 케이크를 디저트 접시에 옮겨 담았다.

어쩌면 엠버는 쑨을 좋아했는지도 몰라.

온갖 생과일로 장식된 케이크 가운데에는 이름이 적힌 화이트 초콜릿이 고속도로 표지판 모양으로 박혀 있었다. 그녀는 라자냐에 대한 감사의 표시가 아니라 송별 파티 케이크를 들고 것이다.

남편은 버지니아에서 기다리고 있어?

지나가 내게 포크를 건네며 물었다.

, 거기서 우리가 구하고 아이 학교도 알아보고 있어. 다행히 회사에서 영주권 스폰서도 해준다고 해서 바로 영주권 수속 들어간대.

됐다!

지금까지 유학생 배우자 비자라 아무 것도 못하고 시체처럼 살아왔는데 영주권이 나오면 일도 있어.

축하해. !

언제 떠나?

지나가 시무룩한 말투로 묻자 나는 가만히 그녀의 위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메건도 샌드위치처럼 손을 얹었다.

다음 월요일에 부치고 바로 떠나니까 어쩌면 이렇게 너희와 시간 보내는 이게 마지막일 거야.

지나와 메건은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어깨를 끌어안았다.

, 너를 알게 돼서 정말 감사하고 네가 해준 음식을 잊지 못할 거야. 오늘 김밥까지도 말이야.

코끝이 욱신거리며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고마웠어. 정말 외로웠던 내게 친구가 되어줘서. 너희가 아니었다면 나는 여기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영원히 미아가 되었을 거야.

우리도 버지니아로 놀러갈게. 너도 잊지 말고 놀러와.

언제든지 . 기다릴게.

메건이 주방으로 뛰어가더니 와인을 꺼내왔다.

캘리포니아를 잊지 . 캘리포니아 와인으로 너의 앞길을 축복해야지.

우리 사람은 잔에 검붉은 색의 와인을 채우고 높이 올렸다. 샹들리에의 불빛에 와인잔이 반짝거렸다.

쑨의 새로운 인생을 위해!

쑨도 마디 .

나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가지만 얘기할게.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친구들을 위해! 그리고 엠버의 행복을 위해!

우리의 웃음소리는 집안 가득히 울려 퍼졌다.

 

*

 

 

이삿짐을 싣자 집안은 무척이나 넓어보였다.

진영아!

자기 방에서 꼼지락거리던 아이가 콩콩거리며 뛰어왔다. 공항에서 손을 잡던 아이가 살에서 여덟 살이 되었다. 작은 새처럼 여리기만 하더니 제법 키도 크고 힘도 세졌다. 아이는 손에 넓적한 비닐봉투를 들고 있었다.

그게 뭐니?

할머니가 보내주신 . 엄마가 키친에 올려둔 내가 챙겨놨어.

여행 가방에 넣는다는 깜박 잊은 모양이었다.

엄마, 이제 정말 가요?

.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까 마지막으로 다시 둘러보자.

지난 년의 추억과 흔적은 사라지고 집안엔 아이와 발소리만 울려 퍼졌다. 주방 선반에는 메건이 우리가 떠나고 버려주겠다고 자질구레한 살림들이 담긴 박스와 캐비넷에는 봉투에 담아둔 쌀이 줌이 전부였다.

엄마가 가기 전에 일이 생겼어.

뭔데요?

도시락 싸려고. 김밥 좋아하지?

! 좋아해요!

우리 김밥 같이 만들까?

!

나는 마켓으로 달려가 시금치 대신 오이와 통조림 , 계란, 당근 그리고 병아리가 그려진 카드를 샀다. 내가 오이를 소금에 살짝 절이는 동안 아이는 햄은 플라스틱 칼로 햄을 길게 자르고 계란을 풀었다. 재료가 준비되자 냉장고에 남아 있던 김치를 씻어 손으로 길게 찢은 김밥을 말기 시작했다.

엄마! 오늘 김밥이 제일 맛있어요.

아이는 엄지를 세우고 엉덩이를 씰룩이며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었다. 나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카드를 썼다.

 

내가 조금 솔직했다면 너와 친해질 있었을까? 짧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너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해서 미안해. 혹시 내가 버지니아에 도착하고 나서 너에게 연락해도 될까? 우리가 친구가 된다면 너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거든. 김밥이 너에게 외롭고 아픈 기억이 아니라 우리가 친구가 따뜻한 기억이 되길 바라며.

 

나는 마켓에서 사온 일회용 상자에 김밥을 담은 엠버의 집으로 향했다. 그녀의 집으로 가는 길엔 자카란다 나무들이 유난히 많았다. 그녀는 한국의 라일락꽃을 기억할까? 그녀에게 내가 다니던 학교 담장에 피어있던 라일락을 보여주고 싶다.

우리 잠깐 술래잡기 거야.

나는 아이에게 차에 숨어있으라는 말을 하고 카드와 도시락을 포치에 놓인 테이블에 두었다. 초인종 누르는 손끝이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딩동소리가 나자 나는 얼른 차안에 몸을 숨기고 현관문을 지켜봤다. 아이는 뭐가 즐거운지 뒷좌석 바닥에 누워 어깨를 들썩였다.

! 이러다 들키겠어.

아이는 손으로 입을 막았지만 새어나오는 웃음을 막을 없었다. 어른들의 숨바꼭질이 즐거운 모양이었다. 잠시 , 엠버가 문을 열고 나오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누른 사람을 찾던 그녀는 포치에 놓인 도시락을 발견했다.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아이가 보는 앞에서 버리지 말기를. 그녀는 도시락 뚜껑에 붙어 있던 카드를 읽기 시작했다. 그녀의 미간 사이에 심각한 주름이 잡혔다. 그리고 카드를 주머니에 넣더니 상자를 열고 김밥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갑자기 오물거리던 입술이 일그러지며 그녀가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엄마, 아줌마 울어요? 아줌마가 술래라서 그래요?

아이의 천진한 물음에 나는 손을 뻗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그녀에게 김밥을 선물하고 떠났다고 해서 그녀의 아픈 기억이 달라지거나 행복해지는 아닐 것이다. 엠버가 도시락을 품에 안고 집안으로 들어가자 차를 움직였다.

이제 우리 공항 가요?

. 이제 정말 떠나는 거야.

세찬 바람이 자카란다 나무의 길게 뻗은 가지를 흔들었다. 나무는 팔랑이는 이파리를 떨구어 내며 가라고, 행복하라고 인사한다. 고향의 라일락도 예쁘지만 자카란다의 꽃도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 지내!

아이도 뒤를 바라보며 어딘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있으라고, 행복하라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나도 소리 높여 인사했다.

안녕! 동안 고마웠어!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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