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16 23:14
제26회 신인문학상 소설부문 장려상/ 이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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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장려상 안나의 세 남자-이재훈
어둠에 깔린 객실은 바깥의 구름처럼 희미하기만 하다. 안나는 가벼운 한숨을 쉰다. 주위가 모두 무겁게 눌린 잿빛이다. 손가방을 뒤져 전화를 꺼내어 더듬거려 켜고 시간을 본다. 아직도 한국 시각으로 한밤중이다. 엊저녁에 인천공항을 떠난 후에 벌써 일곱 시간이 지났다. 세 시간은 더 가야 목적지인 시애틀에 도착한다. 비행기의 엔진 소리와 함께 몰려오는 피곤을 이기려고 눈을 감았지만, 정신은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 안나는 지금 어디로 무엇을 하러 가는지 생각해 본다. 그녀는 어떤 남자를 만나러 간다. 30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그를 찾아가고 있다. 안나는 독서용 전등을 켜고 조심스럽게 손가방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오랫동안 간직하면서 수도 없이 꺼내어 봤기 때문에 가장자리는 고물 서점에서 보던 책처럼 낡았다. 사진이 닳아 없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사용한 비닐봉지에 들어 있는 사진에는 갓난아기 모습이 들어있다. 저절로 긴 한숨이 나온다. 1972년에 헤어진 후에 처음으로 만나러 가는 길이다. 그 남자는 안나의 생애에서 첫 분신이며 세상에 둘도 없는 아들이다. 사진을 돌려 뒷면을 본다. 거기에는 ‘1972년 1월 15일, 박 야고보’라고 적혀져 있다. 30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불러 봤던 이름이다. 안나가 병원에서 퇴원할 때, 야고보는 곧바로 수녀가 데려갔다. 그들이 택시를 타기 전에, 안나가 포대기를 잠깐 열어 아들의 얼굴을 본 게 마지막이었다. 안나는 자기가 몹시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사치한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 부정을 해본다. 차선의 선택이 없었기 때문이다. 세 시간 후에는 아들이 사는 곳에 도착한다. 아들을 만나는 것을 결정한 후 더 혼란스러웠다. 언젠가는 한 번을 거쳐야 할 일이다.
사람은 만남으로 인연을 맺고 혈연으로까지 이어진다. 안나도 우연히 만난 한 남자에 의해서 운명의 길이 결정됐다. 안나는 대전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D 여자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안나가 서울 외삼촌 집으로 올라온 이유는 그녀의 부모가 6·25동란 전까지 살던 집이었다. 서울이 인민군의 손으로 넘어가기 하루 전에 안나의 아버지는 잠깐 볼 일이 있다고 나간 후에는 아무도 그를 본 적이 없고, 지금까지도 아무런 소식을 듣지도 못했다. 안나는 일요일이면 혜화동 성당에 나갔다. 안나가 성당에 나가게 된 이유는 대전댁이 대전으로 피란을 간 후에 시장 근처에 셋방을 얻었는데 성당이 바로 집 근처에 있었다. 대전댁은 아이들을 가게로 데리고 가거나 외할머니가 보아주었지만, 안나의 동생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외할머니는 더 오지 않았다. 안나는 동생과 함께 방과 후에 가는 곳이 성당이었다. 성당에 가면 미국에서 온 구호품을 받고 또래들과 함께 놀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성당에 갔었지만, 수녀의 도움을 받아 중학교 2학년 성탄절에 영세를 받으면서 ‘안나’라는 새 이름을 받았다.
안나가 성당에서 야고보라는 대학생의 권유로 청년합창부에 들어가 성가를 부르면서 서로 가까워졌다. 야고보는 성당에서 만날 때마다 안나를 친여동생처럼 귀여워해 줬다. “나는 안나가 내 동생이 돼 주면 좋겠어. 남동생만 하나 있어서.” 둘은 자연스럽게 성이 다른 오누이가 됐다. 안나가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여름 방학과 겨울 방학을 제외하고는 매주 미사 후에 합창 연습을 하면서 둘은 보이지 않는 힘으로 가까워졌다. 안나는 미사에 참석하는 것보다 야보고와 만남을 더 기다렸다. 안나의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자석에서 나오는 자장은 볼 수 없지만, 이 두 젊은이의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힘이 서로에게 작동했다. 안나는 요한이 S 공과대학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약간은 주저하였지만, 보이지 않는 손을 거절하지 못했다. 안나는 아버지가 없어서 어머니, 여동생, 외할머닌, 외숙모와 같이 지내면서 남자의 세계를 몰랐다. 세상에 처음 만나는 남자였다. 세월은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두질 않았다. 안나는 졸업하기 전에 외삼촌이 근무하는 은행에 취직하였다. 반에서 제일 좋은 직장을 얻은 그녀는 무지개의 빛을 보는 것 같았다. 안나의 졸업식에는 외숙모만 참석했다. 대전댁은 가게의 일이 바빠서, 외삼촌도 업무 관계로 시간을 낼 수 없었다. 안나는 졸업식을 마치고 외숙모와 친구들과 같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안나! 여기 있었구나, 똑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이 너무 많아 못 찾을 뻔했네. 졸업을 축하해. 여기 축하 꽃다발. 하하.” “고마워요. 오빠.” 안나 외숙모의 안색이 갑자기 변하면서, “안나야! 오빠라니 이게 무슨 말이냐?” “예, 그게 아니고, 제가 여동생이 없어서 성당에서 그렇게 부릅니다.” 사진과 주고받는 인사의 물결 속에 졸업식이 끝나고, 외숙모는 친구와 점심 약속이 있다면서 둘만 남겨 놓고 먼저 떠났다. 안나가 어쩔 줄 몰라 망설이고 있는데, “안나, 점심 먹으러 가자. 오늘 학교 땡땡이치고 도망 나왔으니까 시간이 많거든.” “그렇지만, 어떻게 우리 둘이서 같이.” “오누이인데 뭐가 어때서. 안나도 졸업했으니 이젠 성인이잖아.” 둘이서 택시를 타고 조선호텔의 식당에 갔다. 점심시간이라서 손님이 많았다. 요한은 양식을 주문했다. 안나는 양식이 처음이라서 요한이 하라는 대로 따라서 먹는데, “안나, 이젠 교복도 안 입어도 되고 머리고 마음대로 기를 수 있잖아? 자, 안나가 성인이 됐으니 우리 축하주 한잔하면 어때?” “술이요? 저는 술을 입에 대본 적도 없는데요. 아직 교복도 입고 있어요.” “맥주 한 병만 주문해서 안나는 입만 대는 시늉만 하고 나머지는 내가 다 마시면 되지.” 요한이 반 잔쯤 따라준 맥주를 입에 댄 안나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본 요한은, “그냥 눈감고 쭉 들이켜.” 안나는 억지로 잔을 비웠다. 갑자기 메스꺼워지면서 하늘이 빙빙 도는 것을 느낀 안나는 화장실에 간다면서 일어났다. 물 위에 발을 디딘 것처럼 그대로 나둥그러졌다. 어떻게 자기가 방에 누워있는지 알 수 없었다. 지끈거리는 머리와 축하 꽃다발만이 말없이 지난 일을 설명했다. 요한의 마음에는 아무 일도 없었지만, 안나의 가슴에는 알지 못하는 고마움에서 시작한 사랑의 새싹이 자라기 시작했다. 사랑이 봄바람처럼 살며시 안나의 가슴을 두드렸다. 새 직장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을 하다가 집에 오면 외숙모가 해주는 밥을 먹고 자는 게 일과였다. 졸업반인 요한은 성당엘 자주 나오지 못했는데, 하루는 학교에서 오픈 하우스가 있으니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불암산 아래에 있는 청암사라는 남자만의 기숙사에도 들어가 봤다. 축제에서 같이 춤도 추고 게임도 즐겼다. 축제에 참여한 파트너는 모두 E 여대나 S 여대에서 여대생이었다. 안나는 야고보에게 약간 미안했다. 둘이서 공식 행사가 끝나고 학교 근처에 묵동의 유명한 배밭에 가서 배가 부르도록 함께 먹었다. 배밭에 갈 때, 요한이 안나의 손을 잡았을 때 안나의 얼굴은 홍시만큼이나 붉었다.
다음 해 봄에 야보고의 졸업식은 S 대학교 본부에서 열리기 때문에 안나는 직장에 휴가를 내고 꽃을 들고 졸업식장으로 갔다. 요한이 친지에 둘러싸여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요한의 오른쪽에 안나의 나이에 비슷한 여자가 꽃다발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안나의 갑자기 가슴이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괜히 왔나 망설이고 있는데 요한이 안나가 저편에 서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안나, 어서 이리 와. 여기서 우리 같이 사진 찍자. 올 거라고 믿었어.” 안나는 머쓱한 표정으로 꽃다발을 요한에게 건너 주고, 왼쪽의 가장자리로 걸어가는데, “안나, 이쪽 내 옆에서 찍어. 얘는 내 사촌 여동생. 여기는 부모님. 저놈은 내 동생. 그리고 저놈들은 같은 반 동창 놈들.” 안나는 하는 수 없이 요한의 옆에 섰다. 사진 촬영이 끝나자 요한은 부모님에게, “어머니, 아버지. 제가 말씀드린 안나입니다. 맘에 드세요?” “어디 사람을 겉으로만 봐서 알 수 있느냐?” 졸업식에 온 축하객은 종로에 있는 한일관에 가서 점심을 같이했다. 요한은 다른 참석한 사람들에게도 안나는 자기와 같은 성당에 다니는 성가대원이고 지금은 C 은행에서 근무한다고 간단히 소개했다.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지만 억지로 참고 점심을 먹었다. 떠들썩한 분위기에서 갈비탕을 어떻게 먹었는지 몰랐다. 요한은 집으로 돌아가려는 안나를 붙잡고, ‘안나, 우리 음악감상실에 가자. 바로 옆에 ’르네상스‘라는 음악감상실이 있거든. “ “네? 음악감상실이요? 저는 처음이라서.” “오빠만 믿어. 거기는 절대로 나쁜 데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감상실에서 어떤 음악을 듣고, 무엇을 마셨는지 도저히 기억할 수가 없었다. 단지 안나의 머릿속에 남은 것은 자욱한 담배 연기와 귀청을 두드리는 소음뿐이었다. 그녀에게는 고전음악을 들은 것이 처음이기도 했고 커피도 처음 맛을 봤다. 또 기억에 아주 생생한 것은 요한은 졸업 후에 ROTC 훈련을 거쳐서 3년 동안 군에서 복무하고 유학을 하러 갈 예정이라고 아무 거리낌이 없이 말하면서 안나의 주소를 달라고 했다. 감상실에 나왔을 때, 요한은 바람을 쐬자면서 북한산에 있는 팔각정에 택시를 타고 갔다. 돌아오는 동안 요한은 안나의 손을 꼭 잡고 놓아 주질 않았다. 그렇게 사랑의 흐름은 두 사람을 하나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안나가 요한의 첫 편지를 받은 것은 늦은 오월이었다. 두 장에 여백도 없이 쓴 글이었다. ‘안나에게, 내가 태어나서 어느 여자에게 처음으로 쓰는 편지라서 그런지 며칠 동안 벼르고 별러서 글을 쓰는 마음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어. 늘 마음은 안나의 옆에 있으면서 쉽게 글이 나오질 않았어. 미안해. 훈련을 마치고 배치를 받은 곳이 바로 휴전선을 가로지르는 철조망이 환히 내려다보이는.........(중략) 자주 편지를 쓴다고 장담은 못 하지만 내가 안나가 보고 싶다고 생각하면 글을 쓸게. 힘든 군 생활에 안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야. 내일부터 작전이 있어 당분간 글을 쓰지 못할 것 같아. 다음까지 안녕.“ 그렇게 시작한 편지는 어떨 때는 매주, 어떨 때는 두 달 만에 왔다. 그때마다 안나의 가슴을 뒤집고 다녔다. 안나는 답장을 한 번도 쓴 적이 없다. 쓰기가 싫어서가 아니라 답장에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몰라서 망설이기만 했다. 요한이 군에 입대한 후에 안나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외삼촌이 부산으로 전근하였기 때문에 가회동 집이 팔렸고 동생이 서울로 유학을 왔다. 안나는 삼청동 근처에 셋방을 얻어서 동생과 같이 자취하는 바람에 아주 바쁘게 살았다. 주소가 바뀌었으니 어차피 한번은 편지를 써야 했다. 처음으로 오빠라는 말을 쓰네요. 제가 새로운 집으로 이사했기에 글을 드립니다. 이젠 군대 생활도 많이 적응됐으리라고 믿습니다. 부디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뵙기를 바랍니다. 아주 사무적인 편지다. 직장생활이 몸에 젖은 안나의 글은 무척 사무적이었다. 그러나 요한의 편지 내용은 그와 정반대로 가고 있었다. 요한이 가을의 끝자락에 안나에게 보낸 편지는, ‘(앞부분 생략). 여기는 벌써 첫눈이 내렸어. 눈이 내리던 날 전방을 지켜보는데 막연한 그리움이 눈발 사이로 날아다니는 거야.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봤지. 그리움의 주인공이 안나인 걸 알고 나 자신도 놀랐어. 지난 3년간 알게 모르게 정이 들었나 봐. (뒷부분 생략.)’ 안나가 편지를 읽고 나서 손이 바르르 떠는 것을 알았다. 졸업식에 꽃다발을 건넨 유일한 사람. 생전 처음 꽃다발을 준 남자. 음악감상실에 데리고 간 사람. 손을 잡아 준 사람. 그게 말 없는 정표일까. 안나의 가슴과 머리는 따로 생각한다. 아니다. 그건 값싼 감정인지도 몰라. 그는 일류 대학교 졸업한 후에 군에서 복무를 마치면 유학하러 갈 사람이고, 자기는 고작해야 여상을 졸업하고 은행에 근무하는 직원. 지나간 날은 지나간 날이고 그저 지나가는 사람처럼 잊고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람의 운명이란 그렇게 수학 공식처럼 간단하질 않다. 또한 사람의 만남에 정해진 공식이 있지 않은 것처럼 인연이란 것도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될 수가 없다. 그런 공식이나 함수가 있다면 인류의 역사는 아주 평범했을 것이며 동물의 세계처럼 아주 단조로웠을지도 모른다.
시애틀 공항에서 입국 수속을 마친 안나는 간단한 짐을 찾아서 출구로 나왔다. 그녀는 공항에 나와 기다리겠다는 야고보와 그의 양아버지를 찾아야 했다. 사진으로 본 그들을 알아볼지 궁금했다. 뒤에서 계속 나오는 승객에 밀려서 출구의 왼쪽으로 돌아 나왔다. “Hello! Mrs. Choi, 어머니?" "어! You. 야고보?“ 안나는 훤칠한 젊은이가 가슴 앞에 들고 있는 흰 종이에 ‘Mrs. Choi’를 확인했다. 그는 안나에게 빨간 장미 한 송이를 주고 어머니 품에 안겼다. 30년 만의 아들과 해후는 아주 쉽게 이루어졌다. 안나는 아들의 목을 양팔로 얼싸안았다.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야고보가 갈 길이 바쁘다며 긴 포옹을 풀었다. 안나는 달리는 차의 뒷좌석에서 아들의 손을 잡고 놓질 않았다.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으나 마음만 앞서가는 안나는 지금이 꿈인가 생시인가를 구분하지 못했다. 아들네는 오리건주 포틀랜드시의 교외에 있었다. 차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야고보의 양어머니는 차에서 내리는 안나를 반가이 맞이했다. 아래층에 화장실이 딸린 방에 안나를 안내한 야고보는, “Mama, 나 school 한국말 little learn 했다.” “야고보야, I can speak English little, too." “Mama, You look very tired. Please take a quick nap. We will have a dinner after you wake up." "OK. 아들." 야고보가 방문을 닫고 나간 후에 욕실에 들어가 간단히 씻고 침대에 누웠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이불도 덮지 못하고 그냥 잠이 들었다. 언어장벽이 30년의 긴 세월보다 더 두려웠다. 그러나 모자를 가로막고 있는 그 장벽은 혈연의 사랑 앞에 힘없이 허물어져 버렸다. 요한이 첫 휴가를 나왔을 때는 입대한 지 6개월이 넘는 1월 중순이었다. 한동안 요한에게서 편지나 연락이 없어서 무슨 일이 생겼나 걱정을 했는데 갑자기 서울에 왔다는 요한의 전화에 안나는 은근히 부아가 났지만, 만나고 싶은 마음은 누를 수가 없었다. 은행 앞에서 그은 얼굴에 늠름하게 소위 계급장을 단 군복을 입은 채 기다리고 있던 요한을 본 안나는 안심과 마음이 교차하는 것을 느꼈다. “안나, 표정이 왜 그래? 안나가 보고 싶어서 집에도 가지 않고 여기로 곧장 달려왔는데.” “오빠, 그게 아니고 은행에 할 일이 너무 많아 골치 아파서 그래요.” 새빨간 거짓말. 퇴근길이라서 거리가 복잡했다. 망설이고 있는 안나의 손을 덥석 잡으면서, “거의 몇 달 동안 먹고 싶었던 게 많았는데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은행의 직원이 보면 어쩌나 하고 꽉 쥔 손을 빼려 했지만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전류는 회로를 타고 온몸에 흘렀다. 근처에 있는 중국집에 가서 몇 가지 요리와 자장면을 시켜서 배불리 먹었다. 요한은 전방에서 근무하는 바람에 돈을 쓸 기회가 없다면서 비싼 고급요리를 이것저것 시켰다. 삼청동에 있는 안나의 집에까지 데려다주고 다음 날 다시 만나자면서 요한은 집에 갔다. 이번 만남이 더 깊은 인연으로 가는 길목을 안나는 미처 모르고 있었다.
다음날도 안나는 퇴근 후에 요한과 명동에서 저녁을 먹었다. 둘이서 소화를 시킬 겸 남산에 올라갔다는데, 요한이 집에까지 같이 걸어가자고 제안했다. 둘이 손을 잡고 가는 도중에 인사동 근처에 있는 포장마차에 들러 꼬치를 먹는 바람에 많이 늦었다. 통행금지가 걱정됐다. 집 근처에 거의 왔을 때, 많은 무장 경찰이 총을 들고 길을 막고 있었다. 군복을 입고 있는 요한을 보고 전국이 비상사태이니 빨리 귀대하라고 경고했다. 요한은 경찰에게 여자 친구가 근처에 살고 있으니 잠시 데려다주고 가겠다고 사정해 허락을 받았다. 안나의 집에는 동생이 겨울 방학이라 비어 있었다. 요한이 작별 인사를 한다며 안나의 볼에 뽀뽀했다. 바로 그 순간 통금 사이렌이 울렸다. 하는 수 없이 안나와 요한은 얼었던 몸을 한 이불 속에서 녹였다. 그 유명한 1.21 공비침투가 있던 날 밤이었다. 안나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Mama, 밥 ready." "OK, 아들.“ 야고보와 양부모, 안나 넷이 저녁을 먹었다. 서먹서먹한 분위기였지만 안나는 아들이 밥 먹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느라고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몰랐다. 그렇게도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았는데 어디에 숨었는지 찾을 길이 없다. 3개월 동안 배운 영어 회화도 어디에서부터 시작할지 종을 잡을 수가 없었다. 밥맛도 없다. 가슴이 점점 답답하다. 눈치를 챈 야고보가, “Mama, You don't look good at all. Something wrong?" "응, Airplane sick. But OK." 안나는 탐이 멀미와 피로에는 포도주가 좋다면서 따라준 잔을 훌쩍 비우고 다시 방에 들어와 잠에 곯아떨어졌다. 다음 날에는 야고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유명한 Canon Beach로 갔다. 그렇게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았었는데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운전하는 아들만 보고 또 보았다. 화창한 날씨에 유명한 오리건주의 해변 풍광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 둘이 손을 맞잡고 해변을 거닐고 바다에서 이주하는 고래를 보면서 해물 요리도 아주 맛있게 먹었다. 야고보는 가끔 알 수도 없는 부모가 생각나면 이 바닷가로 와서 한국이 있는 서쪽을 바라보면서 외로움을 달랬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안나는 눈물이 어디서 그렇게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야고보 앞에서 절대로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 왔건만 말뿐이지 감정 앞에는 아무 소용도 없었다. 손수건을 짜면 눈물이 떨어질 정도로 울었다. 눈두덩이 어항에 헤엄치는 금붕어처럼 부었다. 갑자기 요한이 보고 싶었다. 아니 그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다. 요한이 지금 미국 어디엔가는 자기를 피해서 숨어서 행복하게 살 것 같아 더욱더 가슴이 아팠다. 그날 새벽에 요한은 통금이 해제되길 기다렸다가 서둘러 나가면서, “안나, 사랑해.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면 결혼해.“ 요한은 그날로 부대에 귀대했다. 안나의 사랑은 우연한 만남이 불쏘시개가 돼 시작됐다. 불을 지핀 요한은 기회만 있으면 서울에 와서 안나를 만나 불을 태웠다. 사랑의 봇물이 터졌다. 요한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말을 성경 구절보다도 더 믿었으며 시도 때도 없이 성경 고린도서에 있는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를 중얼거렸다. 사랑의 열병에 단단히 걸린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매달 월급을 타면 대전에 가서 어머니에게 드리던 것도 잊어버리고 변명의 편지와 송금으로 대신했다. 사랑이 안나를 통째 바꾸어 놓았다. 요한이 휴가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게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해가 바뀌면서 두 사람 간의 사랑은 깊어가고 바닥이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서 달려갔다. 안나는 행복한 꿈에 세상을 모두 가진 것보다 더 기뻤다. 게다가 대리로 진급까지 했다. 외삼촌의 힘을 입어 은행이 생긴 이래로 여고 출신이 처음이라 더 그랬다. 행복의 여신은 안나를 품에 안고 기뻐했다. 세상에 보이는 것이 모두 쌍 무지갯빛이었다. 천국이 따로 없다. 안나는 언제나 여자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왔다. 안나의 아버지가 전쟁 통에 행방불명이 된 후로는 주변에는 늘 여자뿐이었다. 어머니, 여동생, 외할머니, 외숙모. 이젠 한 남자의 사랑을 받으면서 완전히 다른 세상을 엿보았다. 첫돌 때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서 대전댁과 같이 찍은 사진을 보는 게 안나가 아는 남자의 전부이었다. 안나는 아버지가 없어 받지 못한 사랑을 요한이 덤으로 더 주는 것 같아 정말 행복했다. 안나는 야보고가 학교에 출근하면 야고보의 양어머니와 같이 지내며 서툰 영어로 시간을 보냈다. 영어학원에서 3개월 동안 회화를 배웠지만, 말은 여전히 막혔다. 웃음이 국제 언어 중에 가장 유용하다는 것도 배웠다. 점점 헤어질 시간이 다가올수록 사형수가 집행을 알리는 간수의 재촉보다 더 무서웠다. 그러나 만남은 헤어짐의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라도 헤어진다는 것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남긴다. 안나는 공항에서 오랫동안 아들을 얼싸안고 놓아주지 않으려고 몸부림쳤지만 야속한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만 갔다. 납덩이보다 더 무거운 걸음으로 출구로 가면서 야고보에게 손을 흔들고 눈물을 삼켰다. 기내에서 아들이 준 조그마한 사진을 가방에서 꺼내 봤다. 해변에서 둘이서 찍은 사진이었다. 하나뿐인 아들과 헤어진 게 안나에게는 남자와 세 번째의 이별이었다. 세 남자. 모두 이젠 같이할 수 없었다. 허전한 마음은 태평양의 푸른 바다보다 더 넓어 보였다. 요한이 제대한 후에 미국으로 바쁘게 유학 준비하고 있던 어느 날 갈 데가 있다고 해서 함께 간 곳이 돈암동의 요한네였다. 오래된 한옥이지만 깔끔하게 정돈이 잘 돼 있고 ㄷ자형의 집안에는 작은 정원도 있었다. 짐작은 했지만, 요한과 같이 대문을 들어선 안나는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요한의 졸업식에서 보고 처음이구나. 서로 사귀는 사이라고 들었다. 요한이 유학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지 궁금해서 만나보자고 했다.” “네, 아버님, 저는 언제까지든지 선생님만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안나는 긴장을 풀고 모기만큼 아주 여린 목소리로 대답을 마쳤다. “그럼 됐다. 그렇게 알고 있겠다. 요한이 귀국하는 대로 결혼하는 거로 알고 있겠다. 부디. 몸조심하거라. 시간이 허락하면 종종 놀러도 오고.” 서울 K고등학교의 교장다운 말 한마디에 요한의 부모님과 점심을 같이 했건만 밥을 먹었는지 아니면 고문을 당했는지도 모르게 지내다가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안나는 어머니의 허락도 없이 결혼을 승낙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요한은 출국 준비가 바쁘다면서 며칠 동안 얼굴도 내밀지 않다가 출국하기 이틀 전에야 은행에 왔다. 곧바로 택시를 타고 워커힐로 갔다. 둘이서 식사를 마치고 공연도 보고 호텔에 투숙했다. 예비 신혼여행이었다. 이틀 후에 요한은 김포공항에서 안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의 환송을 받으며 출국했다. “안나, 도착하는 대로 연락할게.” 사람의 마음은 매우 간사스럽다. 뒷간에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는 말이 있듯이 갈대와 같이 변하는 게 사람의 천성이다. 사람의 마음이 시간과 환경에 따라 바뀌지 않으면 사람의 자격이 없다. 아니 존재할 수조차 없다. 안나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일 편지를 기다리는 일이었다. 집배원의 손에 운명을 걸어 놓은 사람 같았다. 도착하는 대로 연락하겠다는 요한의 말을 믿었지만,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도 기다리는 편지는 오지 않았다. 국제우편이라서 시간이 오래 걸릴 거로 생각했으나 마음은 늘 불안했다. 타국에서 안착하려고 바쁘게 지내서 그러리라고 마음 편하게 생각했다. 3월 초에 떠난 사람이 7월이 돼도 소식이 없다. 더는 참을 수가 없어서 돈암동 요한의 집에 가서 대문을 두드렸으나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요한의 졸업식에서 만났던 사촌 여동생의 집을 어렵사리 찾아갔지만, 그녀는 없었다. 갑자기 낭떠러지 위에 홀로 서 있는 느낌이었다. 애타게 기다리던 요한의 소식은 엉뚱한 곳에서 왔다. 한 달, 두 달 거르던 달거리는 7월에도 아무 낌새가 없어 마지못해서 산부인과에 갔다. 청천벽력이 따로 없다. 병원 문을 나오자마자 곧바로 성당에 가서 수녀를 만났다. 유산은 살인이란다. 본당 신부도 싸늘하게 같은 말을 반복했다. 온 세상이 뒤집혔다. 처녀가 애를 배? 아무도 몰래 유산을 생각했지만, 살인만은 피하고 싶었다. 무소식인 요한과의 임신은 안나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갔다. 그녀는 사랑의 업보라 생각했다. 지난 연말에 대전댁이 교통사고를 당한 것을 핑계 삼아 휴가를 냈고, 다음 해 1월에 병원에서 홀로 눈물을 흘리면서 야고보를 봤다. 요한의 이름을 빌려서 출생신고를 마친 뒤 수녀를 통해서 입양하는 곳으로 보냈다. 안나는 더 기댈 곳도 없고 허탈해서 다니던 은행마저 퇴직했다. 그제야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는 대중가요를 이해했다. 그치지 않고 흐르는 눈물로 앞날을 생각하지만, 길이 없었다. 한 사람을 사랑한 죗값을 이렇게 받는 것이 너무 야속한 것 같았다. 그러나 요한을 미워하고 싶지 않았다. 인연이 따로 있나 보지. 잘못 끼운 단추는 다시 끼우면 되지만 한 번 틀어진 인연은 어찌할 수가 없다. 안나는 그제야 사랑의 기쁨은 잠시 머무르지만, 사랑의 슬픔은 일생 지속한다는 노래의 가사를 기억했다. 안나는 걷잡을 수 없는 허망함과 배신감으로 세상을 끝내려고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결국 본당신부의 설득으로 새 삶을 개척하기로 했다. 그녀는 요한이 타국에서 주위 환경이 바뀌면서 신발을 거꾸로 신었다고 생각하고 아예 체념했다. 신부의 권고로 은행 퇴직금과 삼청동 집 전세를 털어 조그마한 건물을 사서 의정부에 ‘안나의 집’, 불우 어린이를 돌보는 집을 차렸다. 의정부는 주위에 미군 부대와 다른 군인 시설이 많아서 부모를 모르는 청소년이 많아 보호시설은 언제나 바빴다. 신부와 수녀의 도움을 받으며 하루도 쉴 사이 없이 지냈다. 요한의 생각은 아예 접고 살았다. 안나의 아들, 야고보가 미국으로 입양됐다는 소식을 나중에 들었다. 안나의 가슴 속에 숨 쉬던 모든 남자는 떠나갔다. 아버지, 요한, 야고보, 그녀의 곁에 머물 수가 없어서 떠나버렸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어머니와 동생과 같이 살 때처럼 주위에 남자 없이 홀로 살게 됐다. 감사는 선택이며 또한 추억도 선택이다. 안나는 요한이 자기에게 베푼 사랑에 감사하며 좋았던 추억과 첫사랑의 순정을 고이 간직하고 싶었다. 이제는 모두 떠나간 사람들이다. 아버지도, 요한도, 야고보도 함께 있을 수가 없어 떠난 사람이다. 그녀는 ‘안나의 집’과 성당, 두 곳만 오가며 오직 믿음에 의지하여 지탱했다. 대전댁은 안나가 갑자기 퇴직한 게 수상스러워 딸과 만나 그간 사정을 듣고 그만 병을 얻었다. 안나는 모든 게 눈먼 사랑 때문이라면서 요한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성경 고린토의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를 하루에도 수없이 되뇌고 지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친구들과 부르던 ‘회상‘이란 노래가 현실로 다가왔다. ‘창밖에 비바람 불 때면 내 마음을 나래 달고/정든 임 손 잡고 거닐던 강가를 헤맨다. 그리운 내 임이여 내 너와 떠나던 날/말없이 강변에 앉아서 강물만 보았지. 유유히 흐르는 물결에 나뭇잎 떨어져/흰 구름 떠도는 저 먼 곳 향하여 떠 갈 때 임이여 잊지 말자 붙들고 하던 말/강물이 마른들 내 어이 잊으랴.‘ 안나는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 야고보와 가끔 연락했다. 두 번째의 이별이 있은 지 2년 되던 해 봄에 야고보가 두툼한 편지를 안나에게 보냈다. 청첩장이었다. 야고보는 자기 결혼식에 꼭 참석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왕복 비행기 표와 약혼녀의 사진을 보내왔다. 야고보의 결혼식은 교외에 있는 조그마한 포도원에서 열렸는데 하객은 모두 얼추 오십 명 정도였다. 파란 눈동자와 금발의 머리의 며느리는 아주 예뻤다. 아들은 그녀가 같은 대학에서 근무하는 교수라고 소개하며, 한국 교수분도 한 명 초청했는데 그분은 오래전에 유학을 온 후에 금세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을 다쳐 거동이 불편하다고 덧붙였다. 안나는 시간이 되면 인사하겠다고 생각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피로연도 같은 장소에서 열렸다. 잘 차려진 음식과 포도주, 흥겨운 음악과 춤, 신랑 신부와의 춤과 양가의 부모와 교대로 주는 춤, 아들과 춤을 추면서 안나는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며느리가 환하게 웃으면서 춤을 추자고 손을 내밀었을 때는 눈물이 앞을 가려 춤을 추었는지 무얼 했는지 기억도 없다. 단지 며느리의 발등을 몇 번인가를 밟은 것밖에는. 오월의 지는 해와 함께 파티는 시간을 잊은 채 돌아가고 있었다. 사회자가 갑자기 모든 것을 멈추라고 술잔을 숟가락으로 뚜드렸다. 모든 하객이 하던 행동을 멈추고 각자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신랑인 야고보가 마이크를 잡고, “I hope you have a good time, and thank you for coming here this special day. Before I introduce all of you, I have a very special guest today. As you know, I came from Korea thirty-two years ago. Here is my biological mother, Anna. 안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고 하객에게 인사했다. 음악이 다시 울리고, 분위기에 취한 하객들의 춤이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안나는 하객들이 건배할 때마다 달콤한 맛에 무심코 조금씩 마신 게 한 잔을 다 비웠다. 아무도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없었지만, 기분이 좋아 아들이 따라주는 대로 샴페인을 홀짝홀짝 마신 덕분에 온몸이 불덩이처럼 화끈거렸다. 이렇게 좋은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머리를 식힐 겸 식장에서 나와 분수가 물을 뿜는 정원의 모퉁이에 있는 긴 의자에 앉았다. 흥분과 함께 갑자기 피곤한 졸음이 몰려왔다. “저어, 실례합니다.” 안나는 잠결에 언젠가는 한 번쯤은 들은 목소리 같아 눈을 살며시 뜨고 앞에 서 있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올려다봤다. 그 한국인 교수가 왼손에 지팡이를 짚고 앞에 서 있었다. “저어, 조금 전, 신랑이 생모, 안나라고 소개하던데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몸이 많이 불편하신가 봐요. 옆에 앉으시지요.” 안나가 그를 위해서 옆자리를 조금 비워주려다가 지척거리는 발걸음으로 의자에 힘겹게 앉는 교수의 옆모습을 훔쳐봤다. 안나는 자기 눈을 의심했다. 그의 머리는 반백이고 얼굴은 주름살이 많았지만, 바로 그 모습이다. 목소리가 어디서 들었던 것 같았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에 이럴 수가. 지팡이를 의자 옆에 세워 놓고, 두 손을 얌전히 무릎 위에 모은 교수는 “안나 씨, 혹시 저를 알아보시겠습니까?” 그녀는 머뭇거리며 할 말을 못 찾고 고개를 숙이자, 교수는 울먹이며 천천히, “저 요, 한, 입니다.” 안나는 갑자기 전원이 다 된 핸드폰처럼 세상이 까맣게 변하며 의자에서 미끄러지면서 맨바닥에 주저앉았다. 아주 먼 하늘에서 천사의 나팔소리를 들은 듯싶었는데, 아들의 품에 안겨서 정신을 차릴 때까지 안나는 벙어리가 됐었다. 때아닌 일로 소란하던 장내가 차분하게 정리되고 하객들이 다시 각자 자리에 앉았을 때, 야고보가 다시 마이크를 잡고 흥분된 목소리로. “We are very sorry for disturbance and surprise. But I am very happily obliged to reintroduce Professor Park. I have just found that he is my biological father. Today is my best and happiest day of my life. Let us celebrate this wonderful day with you, all. Thank you very much." 또 한 번의 요란한 박수 속에 파티는 계속됐다. 요한은 안나의 손을 다시 놓지 않으려는 듯이 꼭 잡고 하객의 흥겨운 모습을 보면서도 말이 없었다. 그녀는 이게 생시인가 꿈인가를 구분을 못 하고 눈물, 콧물을 주체할 수 없으면서도 요한이 배우자가 있는지에 매우 궁금했다. 해가 서산에 걸렸을 때 축하연이 끝나고 아고보와 신부는 꽁무니에 깡통을 주렁주렁 매단 차로 밀월여행을 떠났다.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때로는 희열을 느낀다. 심은 대로 걷는다. 하객이 모두 떠난 텅 빈 식장에서 요한과 안나는 둘이 마주 앉았다. 30년 동안 파인 단절의 골은 깊었다. 한참 만에 요한이 포도주 한 잔을 벌컥 마시고 말문을 열었다. ‘내가 오리건주의 포틀랜드에 도착하여 학교 등록을 마치고, 대만에서 한 해 전에 유학 온 ‘칭’과 같은 방에서 지내게 됐어. 칭은 내가 동양인이라 반가워했고 만남을 축하하자면서 입주한 주의 일요일에 칭이 자가용 포드 머스탱을 운전하고 해변에 같이 갔지. 둘이서 해변 근처에 있는 산에 등산한 후에 식당에서 저녁을 마치고 태평양에 지는 해를 보며 맥주를 한 잔씩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운전이 익숙하지 못한 칭이 어둠 속에서 과속으로 달리다가 전복되는 사고가 났지. 칭은 현장에서 숨을 거두고 나는 응급실에 실려 가서 목숨을 건졌지만, 다친 곳이 많았어. 다행히 여행자의 신분으로 보호를 받으면서 6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지고 퇴원했지. 지팡이를 짚고 보행할 수 있지만, 남자의 구실은 사형선고를 받았지. 큰 충격을 헤어나지 못하다가 한국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 만 일 년 후에 다시 입학하여 학위를 받고 그 학교에 교수로 근무했지. 부모님은 돈암동 집을 팔아 내 치료비를 지불했어, 나는 안나에게 절대로 알리지 말라고 부모에게 신신당부했지. 부모님도 10년 전에 이민을 와서 함께 살고 계셔.’ “그땐 연락할 용기가 전혀 없었어. 너무 힘든 세월이었어. 몇 번인가 자살하려고 했지. 믿음이 없었으면 벌써 저세상의 사람이 됐을지도 몰라. 항시 안나의 행복을 위해 기도했지. 이젠 나를 용서해주면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아. 정말 한 번은 꼭 보고 싶었어. 그런데 아이까지 낳고 고생을 너무 했으니 무슨 말이 필요해. 나를 미워하고 원망 많이 했지.” “그래요. 맞아요. 그런 줄도 모르고. 이젠 모든 것을 알았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요. 저도 30년 동안 힘들게 지내면서 정이 무엇인지를 알았어요. 제 가슴의 상처가 치유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요. 이제 죽어도 소원이 없어요.” 야고보의 양아버지 탐이 잔치로 어지러운 식장을 정리하다가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있는 부부를 안쓰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야고보의 결혼식이 있던 다음 날, 요한이 안나를 데리고 요한네에 갔다. 안나는 그의 부모에게 큰절로 인사했다. “어젯밤에 요한한테 대강 들었다. 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더구나. 다 내가 부덕한 탓이다.” “아닙니다. 아버님, 모두 제 잘못이 더 큽니다.” “그래, 이젠 지난 일은 모두 잊자. 네가 요한을 용서하고 받아들인다니 늙은 우리는 더 바랄 게 없다. 앞으로 부디 행복하게 살아라. 그동안 못 누렸던 것까지 합해서.” 안나는 서울로 돌아가기 전에 요한과 함께 성당에 가서 요한의 부모, 아들과 며느리만 참석한 가운데 혼배성사를 받았다. 결혼 신고도 마치고 이민 수속을 변호사에게 의뢰했다. 이제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일만 남았다. 미움이 사랑으로 변하는 사랑의 묘약을 터득한 안나만이 아는 비밀이다. 그녀가 세 살 때 아버지가 행방불명이 되는 바람에 받지 못한 사랑은 영원히 되찾을 수 없지만, 남편 요한과 아들 야고보를 되찾았으니 세 남자 중에 두 사람의 사랑을 받게 된 셈이다. 기다림은 만남의 서곡이다. 그 뒤에는 그리움, 기쁨, 헤어짐, 슬픔, 미움 등의 복병이 기다리고 있다. 그게 사랑의 전장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통은 그리움이다. 성경 고린토에서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처럼 인내의 종점은 행복이다. 봄날을 알리려고 얼어붙었던 땅을 헤집고 나오는 수선화 같다. 그녀는 앞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숯처럼 까맣게 탄 가슴을 부여잡고 기도를 드리면서 힘든 세월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 살아있음에 다시 감사하며 자기의 불행을 남의 탓이라고 하기 전에 참고 살다 보면 언젠가는 행복의 여신이 짓는 미소를 볼 수 있다. 사람의 힘으로 풀 수 없는 사랑의 신비다. 안나가 미국에 이민 와서 요한과 함께 다 늦게 신혼살림을 차린 지가 일 년이 넘었다. 야고보의 집에서 외손자, 빌의 첫돌 잔치가 있는 날이다. 생일잔치에는 양가의 부모는 물론 요한과 안나도 참석한 조촐한 생일잔치였다. 대전댁이 증손자를 위해서 손수 지어서 보내준 한복을 입은 빌은 연신 거북스러운 옷차림에 자꾸 옷고름 풀었다. 그러면 안나가 가서 다시 매주기를 거듭한 후에야 안심이 되는지 케이크가 있는 식탁으로 갔다. Happy Birthday Song이 이어지고 촛불도 빌이 몇 번을 불고 나서야 꺼졌다. 생일잔치에 참석한 모든 이의 웃음소리는 멀리 태평양을 건너 왕 할머니인 대전댁에까지 들렸다. 안나가 전화로 실황중계를 했다. 이제 그녀는 삼 대에 걸친 세 남자의 사랑의 품에서 여왕이 된 기분이었다. 사람은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난다고 한다. 우리는 흔히 ‘All is well that ends well.'이라는 말, 즉 ’결말이 좋으면 모든 게 다 좋다.‘라고 자주 말한다. 한 치 앞을 보지 못하고 사는 우리 인생이지만 인내와 사랑이 있으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 성경의 글귀를 빌리지 않더라도 믿음과 희망과 사랑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이란 것을 알 수 있다.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