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마음의 등불을 켜라” 치양지(致良知)

파악되지 않은, 알 수 없는 인식의 문제에 집중하는 것은 주로 서양철학에서 발달했다고 알려졌지만, 동양철학에서도 파악되지 않는 사물의 이치를 밝히기 위한 연구와 논쟁이 있었다.

인식과 수양

서양철학은 존재론, 인식론, 윤리학의 세 영역으로 구분된다. 이를 기준으로 동양철학을 보면 인식론이 논란의 대상이 된다. 동양철학에는 참다운 ‘있음’을 묻는 존재론과 선을 지향하는 윤리학이 있지만 진리를 파악하는 인식론이 없다고 보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인식론 대신에 수양론이 발달했다고 본다.(이 주장의 진위는 별도로 논의할 정도로 큰 주제이므로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다.

인식과 수양은 둘 다 앎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겹치는 점이 있지만 차이점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인식은 ‘인식 주관’과 ‘인식 대상’ 사이의 숨바꼭질(긴장)을 전제하고 있다. ‘인식 주관’은 이미 아는 확실한 것으로 바탕으로 밝혀지지 않는 대상의 정체를 밝히고자 한다. ‘인식 대상’은 미끄러워서 잡기 어려운 물고기마냥 파악될 듯하면서 인식 주관의 규정 작업을 벗어난다.

이처럼 파악되지 않는 인식 대상은 그냥 ‘것’으로 남아 있다. ‘인식 주관’과 ‘인식 대상’의 긴장은 범인을 잡으려는 경찰과, 경찰을 따돌리는 범인 사이의 추격과 닮았다. 만약 경찰이 모든 정보를 취합하여 범인이 움직이는 동선을 장악하면 범인의 체포는 시간문제일 뿐이다. 반대로 경찰이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하면 언제 또다시 끔찍한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이때 인식론은 검증 가능하고 재연 가능한 방식으로 앎을 추구한다. 앎을 향한 기도를 포기하면 불가지론이 되는 것이다.

수양은 파악해야 하지만 정체가 밝혀지지 않는 미지(未知)의 어떤 것을 전제하지 않는다. 수양은 지키고 키워야 할 인의예지(仁義禮智)와 같은 본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수양(修養)은 원래 없앨 것을 줄이고 키울 것을 키우고 늘린다는 뜻이다. 이때 핵심은 ‘내’가 본성에 가까운 욕망을 키우고 본성에 어긋나는 욕망을 줄이는 데에 있다.

수양의 긴장은 진리를 기준에 둔 기지와 미지 사이의 지적(知的) 대결이 아니라, 본성을 기준에 둔 일치와 일탈 사이의 욕망(欲望)의 대결이다. 달리 말하면 조심(操心)과 방심(放心)의 긴장이다. 조심은 마음을 꽉 잡아서 본성과 일치되도록 하려는 노력이라면 방심은 마음을 확 풀어서 본성으로부터 멀어지는 움직임인 것이다. 물론 수양을 잘하거나 못하는 차이가 있다. 이 차이는 나에게 맞는 수양을 찾지 못한 방법을 모르는 데에 있을 뿐이다. 이 무지는 도덕적 원리가 뭐가 뭔지 모르는 완전한 무지를 뜻하지 않는다.

왕양명의 ‘격물(格物)’ 사건과 노이로제

동양철학에서 ‘격물(格物)’은 서양철학의 인식론에 가장 가까운 개념이다. 원래 이 개념은 [대학]의 “앎의 확장은 격물에 달려 있다.”(致知在格物)라는 구절에 나온다. 철학사에서 ‘격물’의 해석을 두고 다양한 주장이 나오고 논쟁도 치열하게 펼쳐졌다.

다양한 풀이 중에 주희의 해석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대학]의 구절을 “나의 앎을 이루려면 물에 나아가서 그 이치를 끝까지 밝혀내는 데에 있다.”(言欲致吾之知, 在卽物而窮其理也)라고 풀이했다. 글자에만 주목하면 ‘격물’은 자연의 사물을 전문적으로 탐구하는 지적 활동으로 볼 수 있다.

명나라의 철학자 왕양명의 초상화

주희는 ‘물(物)’을 ‘사(事)’라고 풀이하여 격물이 오늘날 물리학으로 이해되지 않도록 의미의 제한을 분명히 했다. 또 주희는 또 “세상의 사물에는 반드시 각각 그렇게 되는 까닭과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는 규정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원리이다.”(至於天下之物, 則必各有所以然之故, 與其所當然之則, 所謂理也. [대학혹문 大學或問]) 이에 따르면 사물은 개별적으로 고유한 원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명나라 중기 왕양명(왕수인, 1472~1528)은 젊은 시절에 스스로 주희의 ‘격물’설을 충실히 재현하고자 했다. 어느 날 그는 친구와 함께 “성현이 되려면 세상 사물에 나아가서 그 이치를 밝혀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 큰 역량을 얻을 수 있을까?”라고 논의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마침 정자 앞에 있는 대나무에 주목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한눈 팔지 않고 대나무를 쳐다보면서 대나무의 이치를 파악하여 격물의 큰 역량을 얻고자 했다. 친구는 3일째가 되자 그만 지쳐서 병이 나고 말았다. 왕양명은 친구가 정력이 부족하여 도중에 그만두었다고 생각하고 자신은 더욱더 대나무를 대상으로 격물에 몰입했다. 하지만 격물에 몰입한 지 일주일이 지나자 결국 왕양명도 탐구에 지쳐 병이 나고 말았다. 친구와 왕양명은 둘 다 대나무의 이치를 밝혀내는 데에 몰두하다가 결국 노이로제 증세를 보이면서 ‘격물’을 중단한 것이다. 당시 왕양명은 병으로 인한 고통으로 괴로워한 것이 아니다. 그는 7일 동안 집중했지만 대나무의 이치를 터득하지 못했으므로 자신이 영영 성현이 될 수 없다는 불안감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했다.

용장대오(龍場大悟), “내 마음이 곧 이치”

왕양명은 왜 주희의 ‘격물’을 통해서 대나무의 이치를 파악할 수 없었을까? 그는 주희의 “재즉물이궁기리야(在卽物而窮其理也)”라는 구절을 수양의 맥락이 아니라 인식의 맥락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불가지론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주희의 격물에 따를 경우 ‘대나무 살피기’ 즉, 간죽(看竹)은 대나무의 잎, 줄기, 재질 등이 다른 나무와 어떻게 다른지 감각을 이용하여 살펴보는 객관적인 관찰을 포함한다.

대나무의 이치로서 중요한 것은 다른 곳에 있다. 대나무는 사시사철 늘 푸른색을 유지하면서 강한 바람이 분다 하더라도 나무가 휠지언정 부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이 점도 감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사실이지만 재질 위주의 관찰과는 다르다.

상록(常綠)과 불굴(不屈)이라는 대나무의 특성은 사람이 자신의 선의지를 위협하는 어떠한 외적 환경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풀어가는 해답을 제시할 수 있다. 대나무가 변하지도 부러지지도 않은 것처럼 사람도 그렇게 처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외적 상황에 대처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사람과 대나무의 이치는 절개(節介)/절의(節義)로서 일치(연속)되는 것이다.

이러한 일치성의 발견, 즉 절의의 자각은 서로 무관한 대나무와 사람 사이의 공통성을 통찰하는 능력에 의해 가능하다. 이 능력은 대나무의 상록과 불굴을 감각적으로 지각하는 측면과 사람의 올바른 행위를 대나무의 생태와 연결시킬 수 있는 유비 추리 또는 상상력의 발휘라는 측면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격물은 대나무의 생태적 정체를 밝히는 인식을 포함하는 것과 동시에 사람의 도덕적 원리가 사물에게 연속적으로 적용되는지 발견하고, 이를 자신의 생활 세계에 실천하는 수양을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왕양명은 스무 살 즈음에 격물을 인식의 맥락에 한정시키고자 했던 까닭에 ‘대나무 살피기’를 통해 주희의 궁리(窮理)에 이르지 못하고 노이로제에 걸렸던 것이다.

항상 푸르름을 유지하며 구부러지지 않는 대나무를 통해 인간 행위에서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지만, 단순히 외적인 특징만 관찰하여 파악하기는 어렵다.

왕양명은 35세(1506)에 정치적 위기 상황에 놓였다. 당시 무종(武宗)은 15세에 황제에 즉위하여 방탕한 생활을 일삼았고, 환관 유근(劉瑾)이 그런 무종의 비위를 잘 맞추면서 국정을 농단했다. 게다가 인사 청탁의 뇌물을 받고 패전한 장군의 책임을 묻지도 않았으며, 간관이 무종과 유근의 비행을 바로잡기 위해 상소를 올리면 오히려 간관을 투옥하곤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의감에 투철한 왕양명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유근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고 그에 따라 궁전에서 태형 40대를 받는 벌을 받았다. 그는 이 매를 받으며 엉덩이가 찢어지고 허벅지의 뼈가 부러졌으며 급기야 혼절하기에 이르렀다.(최재목, [내 마음이 등불이다], 95~96쪽)

그 뒤 왕양명은 투옥되었다가 오늘날 귀주(貴州)성 용장(龍場)의 역승(驛丞)으로 좌천되었다. 용장은 북경으로부터 5,000km나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이곳은 한족이 드물고 묘족이 많이 살았다. 왕양명은 모든 것이 낯설고 물설어 지금까지 생활하던 곳과 완전히 다른 곳에서 대나무 격물 사건의 실패를 근본적으로 회의하게 되었다. 객관 사물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 이치를 찾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객관 사물에서 그 이치를 찾으려고 했기 때문에 예견된 실패를 감행했던 것이다. 이로써 그는 “내 마음이 곧 이치이다”(심즉리 心卽理)라는 테제를 정립하게 되었다.

이러한 왕양명의 깨달음은 벨기에 극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1862~1949)가 쓴 아동극 [파랑새]에 나오는 행복 찾기 이야기와 닮았다. [파랑새]에 등장하는 소년 틸틸과 소녀 미틸은 늙은 요정의 제안에 따라 행복을 가져다주는 파랑새를 찾기 위해 추억의 나라, 밤의 궁전, 미래의 왕국을 돌아다닌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파랑새를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가 집의 새장에서 파랑새를 발견한다. 즉 행복은 저 멀리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다.

치양지(致良知)

주희의 격물설에 충실하면 사람은 자신의 마음으로 사물에 깃든 이치를 발견(통찰)해야 한다. 왕양명은 이러한 격물이 필연적으로 대상 의존적 활동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대상이 없다면 나의 마음은 어떠한 사물의 이치를 발견(통찰)할 수 없다는 문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효도의 이치를 부모에게서 찾는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부모님이 살아계시면 사람은 자신의 마음으로 그 이치를 찾을 수 있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사람은 자신의 마음으로 그 이치를 찾을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효도를 하려고 해도 할 수 없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인재, 한정길 역주, [전습록], 377~378쪽)

왜 이러한 문제가 생기는 것일까? 그것은 주희가 사람의 마음과 이치를 구분하여 두 가지로 보기 때문이다.(析心與理爲二) 이와 달리 마음과 이치를 하나로 통합하면 자신의 마음에 늘 부모에게 효도할 수 있는 이치를 갖추게 된다. 이렇게 되면 사람은 대상에 주의하는 외적 활동에 의존할 필요 없이 자족성(自足性)을 가진 마음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이로써 격물의 정의도 달라진다. 격물은 더 이상 대상 지향적인 활동이 아니라 마음의 지속적 조율 활동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마음으로 a를 하려고 하지만 실제로 b를 하는 경우가 있다. 고의적으로 다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뜻하지 않게 다르게 하는 것이다. 또 사람은 마음으로 a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b의 강한 욕망에 이끌리는 경우가 있다. a가 올바른 줄 알지만 b의 지향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이때 격물은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b로 향하는 심리적 성향을 억제하고 a를 실천하도록 사람의 방향성을 조율한다.

왕양명은 ‘치양지’를 배를 몰 때 어떠한 상황에서도 배를 이끌어가는 키에 비유했다.

[연보]에 따르면 왕양명은 만년의 50세에 “내 마음의 등불을 켜라!”는 ‘치양지’의 교의를 자신의 대표 이론으로 제시했다. 그는 마음에 선천적인 도덕 능력으로서 양지가 있으므로 그 양지는 자발적인 자기 전개를 할 수 있다. 나아가 왕양명은 ‘양지’ 또는 ‘치양지’를 유학의 근본 종지로 선언했다.

“근래에 치양지 세 자가 성인 문하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모든 것을 간직하는 근본 종지라는 것을 믿게 되었다. 이전에 다소 의심스러워 확실하지 않았지만 지금 여러 가지 일을 겪으니 이 양지야말로 참으로 완전하다. 비유하건데 키(노)를 잡고 배를 몰 때 물결이 잔잔하고 여울이 얕으면 뜻대로 노를 저을 수 있지만 심한 바람과 휘도는 물결을 만나면 키와 그 축을 잡아야만 물에 빠지는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 (近來信得致良知三字眞聖門正法眼藏. 往年尙疑未盡, 今自多事以來, 只此良知無不具足. 譬之操舟得舵, 平瀾淺瀨, 無不如意, 雖遇顚風逆浪, 舵柄在手, 可免沒溺之患矣.)

치양지와 양지는 배를 몰 때 어떠한 상황에서도 배를 뜻하는 대로 이끌어가는 키(노)와 같다. 이처럼 왕양명은 대상 지향적 탐구를 거치지 않고, 전통적 가치의 집적물인 경전을 독해하지 않고도, 양지를 통해 무엇이 옳은지 알고 이를 실천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보면 왕양명은 주희의 격물설이 무엇이 옳은지 파악하느라 도덕적 실천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점에서 불만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은 주희가 실행에 대한 앎의 선차성을 말하는 선지후행(先知後行)을 주장한 반면 왕양명이 “앎은 실행의 시작이고 실행은 앎의 완성이다”(知是行之始, 行是知之成)라는 테제를 통해 지행합일을 주장하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그렇다면 주희와 왕양명의 철학적 차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왕양명은 노이로제와 정치적 위기를 겪으면서 주희의 격물설이 가진 문제를 극복하려는 지적 모험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 마음과 이치 그리고 앎과 실행을 하나로 꿰는 치양지설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는 이민족의 오랜 중원 지배 이후에 한족의 문화 정체성과 이념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 리(理)를 절대의 권좌에 모시려고 했던 주희의 철학적 실험과 궤를 분명히 달리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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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근 |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대학원에서 석,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 (2011), [인문학 명강, 동양고전](공저, 2013), [불혹, 세상에 혹하지 아니하리라](2013), [신정근 교수의 동양고전이 뭐길래?](2012), [논어](2012), [어느 철학자의 행복한 고생학](2010)] 등이 있고, 역서로는 [소요유, 장자의 미학](공역, 2013), [중국 현대 미학사](공역, 2013), [의경, 동아시아 미학의 거울](공역, 2013) 등 30여 권의 책이 있다. 앞으로 동양 예술미학, 동양 현대철학의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하고, 인문학과 예술의 결합을 이룬 신인문학 운동을 진행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