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사과밭에서 온 불빛

조회 수 10239 추천 수 0 2014.04.16 10:51:25
저자 : 신현림 

사과꽃.jpg 



사과밭에서 온 불빛  /신현림



 

사람을 만나서 밥과 술을 마셔도 

결국은 지는 사과꽃처럼 흩어지고 헤어진다

매일 죽어가는 건 아이들도 알까

 

매일 다시 태어나도

고요한 자기안의 길을 못 찾으면

풀죽은 와이셔츠만 걸어 다니고

까만 구두들만 돌아다니네

 

텅 빈 굴다리를 홀로 건너듯 쓸쓸히 

마흔이 되면 나는

죽을 생각을 한 적이 있었지

 

두 손과 두 어깨는 기댈 곳이 없었고

하늘에 구멍은 자꾸 커졌지

태양보다 한숨이 오가는 구멍을 보면서

그저 한심하게 행주처럼 울음을 끌어안고 

슬픔을 멈추는 스위치도 없을 때

 

사과밭에서 온 불빛들이 나를 흔들어 깨웠어

월말, 연말, 종말이 온다는 한계도 생각 못할 때

여기에 내가 있기에 저기는 갈 수 없고

불빛 하나둘을 가지면 다른 불빛을 포기해야함을 알았네

애를 가졌고 혼자 키워야 했기에

포기한 일과 만남들이 늘어남을 받아들였어

묻지는 마, 다 말하면 가뭇없이 사라지니까

이제 상복을 입은 나날을 애도하고

시커먼 눈발이 쏟아지도록 아픈 시간에 묵념할 수 있네

 

나는 천천히 흘러가겠네

괴로워야 할 시간은 충분하고

아파야 할 시간이 허다하고

사랑해야 할 시간이 아직도 많으니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저자 날짜sort 조회 수
169 나무길 file 문정영  2015-12-17 6940
168 file 이기철  2015-12-01 6865
167 적막한 말 file 김경식  2015-11-06 7640
166 반쯤 지워지다 file 마경덕  2015-10-06 7387
165 오래된 독서 file 김왕노  2015-09-18 8882
164 껍질과 본질 file 변희수  2015-08-23 7503
163 百年 file 문태준  2015-07-17 7115
162 대밭에서 file 허형만  2015-06-25 8446
161 꽃병 file 채호기  2015-06-01 7534
160 춤추는 은하 file 황동규  2015-05-19 9384
159 봄의 완성 file 정용화  2015-04-20 8499
158 수선화에게 file 정호승  2015-03-16 8952
157 나의 방명록 file 정호승  2015-02-24 9304
156 오래된 신발 file 고창남  2015-02-02 10809
155 레몬 file 김완수  2015-01-12 10655
154 겨울바다 file 김남조  2014-12-03 11508
153 담배 끝에 매달린 사람 file 김기택  2014-11-10 11355
152 지구인 명상 file 신지혜  2014-10-22 12535
151 시 월 file 이문재  2014-09-30 12356
150 9월의 시 file 문병란  2014-09-03 106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