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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쯤 지워지다

조회 수 7464 추천 수 0 2015.10.06 06:14:32
저자 : 마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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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쯤 지워지다

  
 
         마경덕



 
  몸을 쪼개고 쪼개서 시간은 모래로 변했다
  척추마저 물러진 시간들제 나이를 기억하고 있을까
  모래시계의 좁은 통로를 빠져나온 모래알처럼  
  누군가 오늘의 등을 떠밀어 지금(只今)이 밀려가고
  내일로 이어지는 지루한 행렬
  아무도 저 행군을 막지 못하였으니,
 
  시간은 비대하고 거대한 몸뚱이를 가졌을 것이다
  년도나 날짜를 기록하는 것은 시간의 한 귀퉁이에 끼적거린
  낙서에 불과한 것,
  모두 지워지기 쉬워서흘러간 것들을 그리워한다
 
  나는 왜한 번도 나를 뒤집지 않았을까
  내게 간을 맞추느라 탕진한 시절은 팽나무 그넷줄처럼 삭았는데,
  계절끼리 담합해서 차례를 바꾸고 몸값을 올릴 수도 있었는데,
  봄은 꼬박꼬박 지루한 얼굴로 나타났다
 
  한동안 몸 밖에 나를 세워두고 고장 난 시간을 수리하지 않았다
  물새울음을 긁어모아 적금을 붓고
  모래무덤을 헐어 시를 써야한다고
  나를 조르지 않았을까
 
  한 장 한 장 인화되어 풀려나오는 기억의 눈금들
  생의 바늘에 찔려 무딘 심장은 꿈틀거리며 이어지고
  무릎이 닳듯 시간도 닳아서,
 
  나는 소모품이었다
  할당된 시간이 돋보기를 들고 반쯤 지워진 나를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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