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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과 본질

조회 수 7590 추천 수 0 2015.08.23 06:16:40
저자 : 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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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과 본질


 변희수

 




쳐다도 안 보던 껍질에 더 좋은 게 많다고

온통 껍질 이야기다

껍질이 본질이라는 걸 뒤늦게사 안 사람들이

껍질이 붙은 밥을 먹고 껍질이 붙은 열매를 먹는다

이태껏 깊숙한 곳에 있는 것이

본질인 줄 알고 나도 시퍼런 칼을 마구 휘둘렀다

연하고 부드러운 것에 집착했다

거칠고 상처받고 벌레 먹은 것들은 다 껍데기라고 도려냈다

본질은 함부로 닿을 수 없는 곳에나 있다고 믿었다

딴에는 죽어라고 후비고 팠는데

공부할 때도 연애할 때도 시를 쓸 때도 그랬던 것 같다

급하게 칼부터 밀어 넣었다

꼭꼭 씹어 볼 겨를도 없이

혀에 살살 감기는 것만 찾아다녔다

둘러쓸 것도 하나 없이 맨살로 덩그라니

나얹은 것 같은 날

허약한 내부를 달래주듯

껍질째 아작아작 사과를 먹는다

잘 씹히지 않는 본질을 야금야금 씹어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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