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21 19:50
심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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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리데이심재훈 집을 나왔다. 차를 몰고 US 29번 도로를 20분쯤 서쪽으로 달리면 US 15번 도로가 나온다. 다시 남쪽으로 10여분을 가면 버지니아 55번 도로를 만나고 스트라스버그 로드를 따라 산길로 십 여분을 달렸다 마침 라디오에서 ‘비지스’의 ‘홀리데이’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산길의 곡선을 따라서 핸들을 감았다 풀었다를 반복하며 손목에 힘을 빼다가 갑자기 탈주범 지강현 인질극과 함께 이신혜 생각이 났다 산길을 벋어나 캐나다까지 뻗어있는 81번 도로에 접어드니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차들의 속도가 제한속도 70 마일을 지키고 가는 것은 바보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냥 이 길을 따라 캐나다까지 가 볼까 하는 생각과 함께 갑자기 내 자신이 지강현이 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가던 컨테이너 차량 두 대가 처음엔 장난을 하듯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더니 두 대가 나란히 두 개의 차선을 점령하여 막아버리고 다른 차들의 진행을 방해하며 경쟁을 그칠 줄 모르고 가고 있다. 갑자기 저들 뒤를 따라가기가 싫어 졌다. 나는 81번을 포기하고 작은 도로로 돌아섰다. 윈처스터 산 길로 접어들어서 얼마 가지 않아 불현듯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1998년식으로 이미 이 십만 마일을 넘긴 포드 엣지가 산속에서 고장이라도 나면 큰 일이라는 걱정이 들자 갑자기 온몸이 오그라드는 느낌이다. 얼른 네비게에션을 켜서 집을 누르고 가까운 곳을 찾아서 버지니아 7번 도로에 들어섰다. 이 십 여분을 달려 오니 오른쪽으로 챈틀리 아울렛 쇼핑센터가 눈에 들어 온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는 유일한 군대 친구 호규에게 전화해서 술이나 한 잔 해볼까 생각을 했다가 마음을 바꾸었다. 자동차 데시방에 찍힌 초록색 시계가 가르치는 시간이 이미 자정을 조금 지나고 있었다. 호규를 미국에서 만났을 때 이미 그는 꿈을 이룬 미국인이 되어 있었다. 제법 규모가 되는 레스토랑을 세 개나 운영하며 이곳에서 새로 만난 열 세 살 연하의 예쁘고 세련된 젊은 여자와 살고 있었다. 호규는 한국에서 고등학교 영어 선생을 하다가 1995년에 아내와 이혼을 하고 누이가 살고 있는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영어를 잘한 덕에 누님이 운영하던 일식 집에서 스시맨으로 몇 년 고생 하다가 누님이 하던 가계를 인수 하고 십 년 만에 비슷한 가계를 세 개나 만든 사업 수단 좋고 능력이 있는 친구다. 호규가 제일 잘 하는 것은 부지런 하고 남들보다 열심히 노력 하는 것이다. 군대 동기인 호규를 처음 이곳에서 만난 것은 특전사 전우회 모임에서 였다. 호규를 세번째 만나던날 비엔나에 있는 호규가 운영하는 일식집으로 우리 부부를 초대했다 그 날은 일요일 이었다. 교회 예배에 참석하고 약속 시간에 맞추려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다 조금 이른 시간에 호규의 식당에 도착 했다. 입구에 마련된 안내 석에 서있던 쌍거플 수술 자국이 선명한 젊은 여자에게 사장님을 만나러 왔다고 하자 젊은 여자는 쌍거플한 눈으로 우리 부부를 잠시 흩어 보더니 조금 의외라는 표정으로 억지 미소를 짓고 잠시 기다려 달라는 말을 남기고 식당 안쪽에서 손님과 이야기 중인, 얼핏 보아 매니저인 듯한 중년 여자에게 우리의 방문을 알리는 듯 했다. 우리를 한 번 힐끗 쳐다 본 그녀는 멀리서 목 인사로 우리를 맞이했다. 상당한 거리에다가 조명이 어두운 탓인지 정확한 모습은 아니라도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왔다. 어디서 봤지? 현재의 모든 생각을 정지 시키고 과거로 기억을 더듬었다. 우리 쪽으로 돌아온 쌍거플의 젊은 여자가 우리를 식당 안쪽에 가장 아늑해 보이는 자리로 안내해 주어서 아내와 내가 자리에 앉으려는 순간 나의 기억은 이십 여 년 전으로 돌아가서 그 녀의 기억을 끄집어 내려 했다. 마침 손님과 이야기가 끝났는지 우리를 향해 가까이 오며 환한 모습으로 인사를 하려던 그 녀의 표정이 정지를 하다가 얼른 고개를 돌리며 당황해 하는 모습에 순간 나는 그녀가 이신혜 라는 것을 직감 했다. 그녀는 이미 중년을 지나 갱년기로 넘어가는 모습의 대부분의 아줌마 들이 그렇듯이 어느 정도 살이 불어난 모습과 눈가의 잔 주름이 내가 기억하던 젊은 시절 그녀의 모습에서 많이 멀어져 있었지만 어느 정도 도도하고 무심한 듯한 표정은 의심의 여지 없이 그 녀를 내 기억의 중심에 있게 하였다. 조금 당황해 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내 행동과는 달리 침착한 아내는 마침 우리 자리로 다가오는 호규를 보며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었다. “안녕 하세요, 식당이 엄청 크고 정말 멋있어요” “어서 오십시요…… 아이 뭐 별거 아닙니다. 이런걸 세 개나 하니 내가 얼마나 힘이 들겠어요” 누가 물어 보지도 않은 자랑 질을 자랑이 아니듯이 하는 호규의 말이 귀에 거슬렸으나 그런 것들은 지금 내게서 판단을 유보 하게 하였다. “야! 어마 어마 하네…… 호규 너 대단하다. 그리고 부럽다 호규야” 허공에다 한 마디 의례적인 인사를 던지듯이 하고는 내 시선은 신혜가 있을 듯한 주방 입구 쪽으로 향하고 있다. 우리가 온다고 미리 지시를 해 놓았는지 처음 우리를 안내 하던 쌍거플 수술한 젊은 여자가 물을 따라주고 야채 샐러드와 미소 된장국, 일인용으로 작은 계란 찜을 식탁에 가지런히 놓고 쌍거플한 눈으로 눈웃음을 살짝 짓고는 호규에게 목례를 하고 갔다. 샐러드가 신선해 보이고 된장국의 냄새도 그렇고 쑥갓 입사귀로 장식을 한 계란 찜의 모양도 꽤 고급스러워 보였다. 신혜는 청년시절 내가 지키려고 노력 했고 가슴으로 사랑했던 여자다. 그녀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에 명보극장 옆에 있는 화실에서 근무를 하였고 그 때의 시간이 내가 간직하고 있는 그녀와의 추억 전부이다. 명보극장 옆 명보다방은 그녀가 매일 오후 세시에 들러서 음악을 듣고 커피를 마시던 곳이다. 다방 DJ이는 그녀와 약속이라도 된 듯이 그녀가 다방에 들어서서 커피를 시키고 마실 때쯤에서는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들려 주었고 나는 마음속으로 DJ가 신혜를 좋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기도 했다. 그 당시 나는 광교와 을지로 입구 사이에 있는 광고 회사에 근무 하고 있었다. 그녀의 화실과는 걸어서 이 십분 정도의 거리인 관계로 시간이 허락 되는대로 명지다방을 찾고는 했다. 원래 신혜에게는 종림이라는 남자 친구가 있다. 종림이는 내 고등학교 동창이며 나와 매우 가까운 친구다. 종림이는 집안 좋고 부유한 가정에서 부족함 없이 모든 일에 당당하고 자신감이 있는 친구이다.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키가 크고 사이클 국가대표 상비군을 하고 있었다. 머지 않아 아버지의 사업체를 물려 받아 회사를 운영 할 예정이었고 친구 모두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런 그를 감히 내가 대적해서 그에게서 그녀를 빼앗기란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것들은 내 마음의 결정을 무너뜨리는데 장애가 될 수 없었다. 사실 신혜는 종림과 연인 관계라고 유지 하고는 있었지만 그것은 종림의 일방적 생각일 뿐이지 신혜는 친구인 우리들 모두에게 친구 이상으로 편하게 상대해 주는 그런 여자였다. 다행히 그녀의 화실과 나의 직장이 가까운 거리에 있는 관계로 나에게는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있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가끔 점심도 같이 먹고 술도 한잔 할 수 있는 그런 관계로 발전되어 있었다. 신혜에게서 연락이 왔다. 바람이 스산하게 불며 금방이라도 비를 내릴 것 같은 어느 날 퇴근 시간 무렵이다. 그냥 술이 먹고 싶은데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너를 선택 했다는, 하지 말아도 될 말을 서슴없이 하는 그녀가 약간은 원망스러웠지만 선택 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마음에 밀린 일들을 뒤로 미루고 단숨에 술집으로 향했다. ‘골뱅이와 홍합의 만남’ 이라는 조금 특이한 이름의, 골뱅이와 맥주를 파는 을지로 백 병원 뒷골목의 허름한 집에서다. 그 날 골뱅이와 홍합이 섞인 안주를 먹으면서 나는 골뱅이와 홍합, 그 둘의 생김이 아주 이상적이라는 조금은 야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여섯 시부터 마시기 시작한 사 홉들이 크라운맥주를 다섯 병을 비우고 나오니 밖엔 이미 어둠이 짖게 깔렸고 비가 주적주적 내리고 있었다. 인쇄 골목을 막 빠져 나와 버스 정류장을 향해 가는 도중 제법 취기가 오른듯한 신혜가 나에게 물었다. “문호야” “응…… 말해” 그녀가 조금은 심각한 어조로 부르기에 나도 조금 심각하게 대답을 했다. “너 저 길 건너 빨간색과 파란색의 간판 보이지……” 신혜가 오른 손에 우산을 들고 왼손으로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는 나를 붙잡으며 말했다. “응 그래 보여” 그녀의 그런 행동이 약간은 당황스러워 천천히 대답했다. “너…… 간판을 크게 한번 읽어봐, 아주 크게, 두 개다” 신혜는 묘한 웃음으로 표정을 바꾸고 다그치듯 나에게 말했다. “홍 보 지 물 포 청 자 지 물 포” 비도 오고 약간 으슥한 모퉁이 앞 검은 전신주에 억지로 붙어 있는 듯한 방범등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간판에 내가 얼굴에 미간을 찌프리며 더듬더듬 읽었다. 그 때 까지도 나는 그냥 두 개의 지물포가 나란히 붙어 있는 것만을 생각했다. 신혜가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굽혀가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쳐다볼 정도로 크게 웃었다. 한참을 웃고 난 그녀가 아직도 입가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내게 물었다. “아직도 그 뜻을 모르겠니” “문호 너 생각 보다 머리가 나쁜 건지 순수한 건지……” 무슨 상황 인지를 몰라 한동안 어리둥절해 있는 나에게 신혜가 말했다. “다시 한 번 천천히 읽어봐……” 그 때서야 신혜가 큰 소리로 읽어 보라는 뜻이 이해가 됐다. 그 순간 나는 웃음 보다는 신혜의 새로운 모습에 약간은 어이가 없으면서도 웃음이 났다. “빨간 거시기, 파란 거시기, 둘이서 나란히 있는 게 재미 있지 않니?” 재미 있어 하기 보다는 황당해 하는 나의 모습이 더 재미 있다는 듯 신혜가 나에게 다시 물었다. 어쩌면 억지로라도 재미있어 하라는 그녀의 강요가 담긴 표정과 재미있어해 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어 억지 웃음을 웃으면서 둘은 나란히 버스 정류소로 향했다. “괜찮겠어……?” “응 나 괜찮아……” “그냥 택시 타고 가지 그래……?” 그 때 마침 사당동행 버스가 왔다. 늦은 시간인지 버스 안에는 빈 자리가 많아 보였다. “문호야 오늘 즐거웠다. 잘 가고 또 연락 하자” 나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신혜가 버스에 올라 탔다. 버스가 떠나려는 순간 나는 급하게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안에는 빈 자리는 많은데 묘하게도 한 자리에 한 사람씩 앉아 있어서 둘이 함께 앉을 자리가 없었다. 우리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버스 손잡이에 의지해서 버스가 흔들리는 데로 몸을 지탱 하고 있었다. “그냥 아무 자리에나 앉아라” 나의 배려 섞인 말에도 신혜는 못들은 척하며 버스 손잡이가 조금은 버겁다는 듯이 어깨에 가방을 두른 체 안경을 벗어서 자기 블라우스 소매 자락에다 빗물을 닦아냈다. “왜 그냥 가지 그래……” 신혜가 의아해 하며 조금 불편한 표정으로 나를 흘긴 쳐다 보며 말했다. “응 시청 앞에서 갈아타면 돼” 그때 나는 원효로 3가 용문시장 부근에 살고 있었다. 버스가 을지로 입구 정류장에 도착하자 여러 사람이 내리고 빈 자리가 여기 저기 생겼다. 그 중, 내리는 문에서 가장 가까운 창가 쪽에 신혜가 앉고 나는 그냥 서 있었다. “너도 앉아……” 창가 쪽으로 몸을 밀치며 내가 앉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 주면서 다정하게 말했다. “응 괜찮아, 다음이 시청 앞 인데 그냥 서서 갈 깨……” 약간 쌀쌀한 날씨에 히터를 틀었는지 버스 안의 열기에 약간의 취기가 몰려 왔다. 버스가 시청 앞에 도착하고 몇 사람이 내리고 또 몇 사람이 탓다. 그러나 나는 내리지 않았다. 버스는 비 내리는 한강대로를 종점을 향해 질주해 나갔다. 서울역을 지나고 남영동 금성극장 앞을 지날 때 잠깐 망설였지만 나는 내리지 않고 그냥 지나치기로 마음 먹었다. 원효로로 가려면 이곳에서 갈아타야 하지만 잠든 그녀를 두고 그냥 내리기가 망설여 졌다. 삼각지를 지나서 한강대교를 지날 무렵 신혜가 눈을 떴다. 그리고는 이내 옆에 서있는 나를 확인 하고는 그녀 특유의 놀란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뭐야 너…… 왜 안 내렸어?” “응 그냥…… 너 바래다 주고 택시 타고 가면 돼” “피~ 근데 김문호 너는 왜 모든 것을 그냥 이라고 하니” 신혜가 이름 앞에 성을 붙여서 부를 때는 그녀가 조금 진지할 때 하는 버릇이다. 버스는 어느덧 동작동 국립묘지 부근을 지나고 있었다. 중 고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십 년을 함께한 나에게는 아주 낮 익은 곳이다. 비계 마루턱을 넘을 때에는 버스 안에 사람이 신혜와 나를 포함해서 여섯 명으로 줄었다. 그 때서야 나는 잔뜩 몸을 움츠려서 신혜 옆자리에 앉았다. 그런 내 행동이 어색 했는지 의도적으로 신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