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문인회 - 문학 뉴스글 수 95
세계문학사에서 위대하다는 후세의 평가를 받는 문호들 치고 당대에 불온하지 않았던 이도 드물다. 도스토옙스키는 사형 직전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닥터 지바고’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옛 소련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시상식장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칠레 국민시인으로 각광받았던 파블로 네루다도 도피와 망명의 세월을 살았다. 스페인 시인 로르카는 네루다가 “철학보다 죽음에 더 가깝고, 지성보다 고통에 더 가까우며, 잉크보다 피에 더 가까운” 가장 위대한 라틴아메리카 시인의 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1980년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 시기는 흔히 소설보다 시가 득세했던 ‘시의 연대’로 규정한다. 광주에서 군인의 총과 몽둥이에 시민이 죽어나가고 학생들은 캠퍼스에서도 사복경찰의 감시 아래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나날이 이어지던 때였다. 이 급박하고 답답한 시대에 긴 서사보다는 상대적으로 짧고 호소력이 짙은 시가 각광받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당대의 ‘체제’ 입장에서는 불온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었다. 문인들이 구속되고 고문당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출판사들도 압수수색을 당하고 미운털이 박힌 곳은 감당할 수 없는 세금폭탄을 맞기도 했다. 적어도 1980년대까지는 이러한배경에 힘입어 문인은 문학의 범주를 넘어선 지식인이요, 존경받는 대상이었다. ‘문사철’을 존중해온 전통도 한몫 거들었겠지만 격동의 한국 현대사가 문인을 더 돋보이게 한 것도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안정된 세상이 도래하면 문학은 서구의 흐름처럼 존재의 심연과 사소한 일상의 결을 파고드는 쪽으로 나아가게 마련이다. 우리 문학도 예외는 아니었다. 1990년대 이래 한국문학은 소소한 개인의 일상을 다루는 쪽으로 바뀌어나갔고, 문예창작과에서 전문적으로 테크닉을 연마한 이들이 평가받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아직 후광이 남아 있는 일부 문인들을 빼고는 더 이상 한국 사회에서 소설가나 시인이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문인의 영광을 위해 가혹한 시대가 다시 오기를 바랄 사람도 없다. ‘불온한’ 문학은 잠수함 속 산소 부족을 맨 먼저 감지하는토끼처럼 반 발짝 앞서 시대를 밝히는 등대 역할을 한다. 같은 예술의 범주에 속하면서도 소리나 색채 같은 물질적 매개를 활용하는 음악이나 미술 같은 여타 예술과 근본이 다르다. 문학의 매개는 언어요, 그 언어는 개인과 사회의 내면을 응축한, 물질이 아닌 관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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