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시 쓰지 마세요 / 김형술 시인....부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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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종 시인 지망생들을 만나게 된다. 대개 거절할 수 없는 지인들의 소개이거나 연락처를 알아낸 사람들이 직접 찾아오거나 해서이다. 그들은 대부분 한 뭉치의 원고를 내놓고 묻는다. "그동안 남모르게 써 놓은 습작들이다. 그런데 시 쓰는 일에 재능이 있는지 모르겠다. 한번 읽어 보고 알려 달라." 이런 만남은 늘 난감하다. "저는 이렇다하게 해 놓은 것도 없고 제 시도 변변히 못 쓰는 처지입니다." 정중하게 거절하지만 큰마음 먹고 찾아왔을 그들을 그대로 돌려보내는 일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게다가 시를 읽지 않는 시대, 시와 시인들이 잊혀가는 시대에 시를 쓰겠다는 마음은 얼마나 또 고맙고 아름다운가. 

편안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시 작업

"시를 왜 쓰려고 하십니까" 하는 질문에는 다양한 대답이 있지만 나이에 상관없이 시를 쓰는 일이 오랜 꿈이었다는 게 그들의 공통적인 대답이다. "시 쓰지 마십시오. 시 쓰고 사는 일 결코 편안하지 않습니다. 그냥 시를 좋아하고 어느 정도 시를 이해하는 좋은 독자가 되어 사시는 일이 훨씬 좋습니다"라고 대답은 한다. 하지만 그래도 원고를 받아 들고 와서 몇 날 며칠 읽고 내가 해 줄 수 있는 만큼의 조언을 써서 부쳐 주곤 한다. 

올해로 등단 22년째, 돌이켜보면 나는 시 쓰고 사는 일이 전혀 편안하거나 행복하지 않았다. 어쩌다가 등단을 하게 되어서 좋았던 건, 책에서만 읽고 보면서 존경하던 훌륭한 시인들과 가까이서 교류를 갖게 되었다는 일 정도이다. 시인을 꿈꾸는 사람은 누구나 등단을 하면 여러 문학지에 작품을 발표하고 시집을 내고 평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게 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오랜 습작기간을 거쳐 천신만고 끝에 등단을 하게 되지만 아주 특출하게 주목을 받는 신인이 아닌 이상 원고 청탁은 몇 년이 지나도 거의 없거나 한두 번에 불과하다. 어쩌다가 원고 청탁을 받게 되면 기쁨도 잠시, 좋은 작품을 써 내야 한다는 중압감에 내내 시달려야 한다. 

시만 써서 밥벌이가 된다면야 일 년 내내 시에만 매달리면서 시에 몰두할 수 있겠지만 대한민국에서 시를 써서 밥벌이가 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맴도는 자투리 시들은 퇴근 후에 밤이 새도록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도 좀처럼 마침표를 내어 주지 않는다. 그렇게 써진 시가 지면에 발표가 되어도 문학지의 월평이나 계간평에 언급이 되는 일 또한 극히 드물다. '나는 시에 별 재능이 없거나 내 노력이 모자라는구나.' 그런 자괴감에게도 늘 마음 한구석을 내줘야 한다. 

그러면서도 살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과 사물과 상황과 공간에서 시를 찾고자 하는 긴장감은 늦추지 못한다. 그렇게 모여진 시들을 모아 시집을 내고 싶지만 시집 내는 일은 시 쓰는 일보다 더 험난하다. 교과서에 시가 실릴 만큼 유명하거나 유수한 문학상을 수상할 정도의 시인이 되지 못한다면 시집을 내자고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이 올 리는 만무하다. 

자신과의 싸움 각오한 후 도전해야 

내 돈을 들여서 자비출판을 하자니 그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고 할 수 있는 일은 창작지원금을 신청해 보는 일 뿐이다. 하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은 게 전국 대부분의 시인이 신청하는 이 사업에 원고를 보내 채택이 되는 일은 고작 각 지역에 한두 명 혹은 서너 명 정도. 그것도 운이 좋아야 가능한 일이다. 

어찌어찌하여 천신만고 끝에 시집을 발간했다 치더라도 그 기쁨 또한 잠시. 어느 문학지에 서평 하나 실리지 않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일이 가져다 주는 서운함과 부끄러움도 오롯이 혼자 챙기고 견뎌야 하는 시인 자신의 몫이다. 신춘문예나 문학지를 통해서 등단을 하는 시인들 중에는 소식 없이 사라지는 시인이 생각보다 많다. 그만큼 시인으로 사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뜻이다. 

늘 자신을 거울처럼 마주보면서 내가 가진 어리석음과 우매함을 깨닫고 세상과 사람들을 대범하게 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껴안으며 사는 일, 그게 시인이 살아가는 힘이고 시인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 험난한 자신과의 싸움에 모든 것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시를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