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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트해 3개국중 또 다른 한국 “에스토니아”                                       



 

 St. Petersburg를 떠나서 에스토니아의 수도 따린까지는 버스로 갔다. 국경을 넘기전 한 주유소에 들렸다. 그리고 그곳에 미국 주유소의 컨비니언 스토어 같은 곳이 있어 들어가 보았다. 커피를 청하니 화가 난듯한 표정의 젊은 여자가 밤새도록 보드카를 마셨는지 술냄새를 풍기면서 커피를 즉석에서 끓여준다. 머리라도 제대로 빗고 몸을 잘 가꾸면 꼭 소피아로렌같은 미녀가 될텐데 하면서 사진을 같이 찍자니까 잔뜩 찌푸린 얼굴에서 금방 거침없이 안기듯이 나에게 기대면서 포즈를 취한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그들의 마음, 행동같았다.

곧 이어서 국경검문소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 국경검문소는 러시아가 아니라 아직도 권위주의, 비능률의 소련이였다. 지루한 출국절차로 꽤나 오랜 시간을 보낸 후 유럽연합의 하나인 아스토니아로 들어서면서 설명할 수 없는 자유라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설명이 될수 있는 아무런 이유도 없는데 그저 나의 마음이 그래서 그랬을까. 양쪽에 끝도없이 늘어진 콘테이너 트럭들이 러시아 통관심사를 위해서 기다리고 있다. 설명을 들으니 보통 통관을 위해서 3~4일 기다린단다. 역시 소련에서 러시아로 변화하는데는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국경을 지난지 한시간도 안되었다. 내가 글을 쓴다고 거덕거리는 성격 때문일까. 에스토니아의 수도인 따린에 가까이 가면서 중세기시대의 거리가 그대로 있고 그것이 유네스코의 보존지구로 지정되어 있다고 하니까 공연히 음산하고 적막까지한 날씨에 음모, 고뇌, 배신, 사랑, 복수가 엉키고 엉킨 마치 세익스피어의 헴릿같은 이야기가 전개 될 것 같은 것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5월의 따뜻한 햇빛 아래 붉은 지붕의 아담한 집들이 마치 안데르센의 동화에서나 나올법한 모습이였다. 그리고 그들의 진짜 모습이였을까 아니면 관광상품이였을까 관광 가이드가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3지점을 보여준다. 하나는 중세보존도시 큰 도로에서 연극공연장으로 가는 골목, 바람난 여자나 창녀들을 잡아 두었던 룸페이 언덕위에 방공호 같은 곳, 그리고 구시가 도로 가운데에 있는 우물이다. 3곳에는 밤마다 귀신이 나온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방공호 같은 창녀 감옥 위에 카페가 있었으나 문을 닫았고 우물도 뚜껑을 덮고 못박아 버렸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렇게 믿기보다 그러한 이야기를 관광용으로 개발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어찌 되었던 면적은 남한의 반, 인구 총 110만의 작은나라, 외세에 시달리며 살아 온 나라, 그래도 발틱에 있었던 10개 종족 중 현재 남아있고 자신의 언어를 지키고 있는 3나라중에 하나, IT 강국으로 2006년 총선을 세계에서 최초로 전자투표로 실시한 나라이기도 하다.


꼬마 나라가 어떻게 언어까지 지키면서 지탱할 수 있을까요하고 일행중의 김()이란 동문이 묻자, 역사에 관심이 많아 얄타회람 장소, 아일랜드의 독립투쟁장소까지 찾아보았던 김()이란 분이 대답을 끄집어 내려하여 내가 말을 막았다. “우리 좀 각자 생각했다가 나중에 이야기해 봅시다.”

사실 나는 이 나라 역사 인식이 꽤나 흥미로웠기 때문이었다. 한국 같았으면 한의 역사”, “창피한 과거의 역사라고 사실을 감추거나 왜곡 하거나 흥분했을 것 같은데 그들은 역사의 연대를 정복, 식민지로 살았던 시대를 그냥 그대로 역사적 사실로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덴마크 지배시대, 독일 기사단 지배, 스웨덴 지배, 러시아의 복속, 2차 대전으로 나치 점령, 소련의 위성국가로 있다가 1989년 독립등등 치욕의 역사라고 할 그 사실을 그대로 말이다.

그 후 서로 여러 의견을 내놓았다.

“자원이라고는 별로 없고 그래서 빼앗아 먹을거리가 없는 나라이니까 별로 관심을 안두었지.”

강대국의 틈에 끼어서 너희나라에 먹히게 할수는 없어 하면서 서로 견제하느냐고 남아 있었지.”등등 여러 의견이 있었으나 나는 생각이 달랐다.

따린은 5년마다 민속축제가 열린다. 총인구 110, 수도 따린의 인구 40, 곳에서 이만칠천(27,000) 하나가 되어 합창이 이루어지고 시민이라고 만큼의 만명이 손의 손을 잡고 춤을 추는 그들의 민속문화 결집력이 그들의 언어까지 지키며 남아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에스토니아의 유물은 큰것이 없다. 그리고 시대의 대부분이 다른나라의 거대한 종교 성당이니, 궁궐의 건물이 아니라 15세기 독일기사단 지배시대부터 무역, 상업의 도시기능을 위한것들이다. 그리고 유럽을 무대로 상업/무역으로 유명했던 한자동맹의 유물이 가장 남아있는 듯하다. 그것은 아담하며, 당시의 진실된 삶을 보는 듯하다. 그래서 좋았다.

그리고 유럽의 도시가 매년 번갈아 가며 문화수도로 지정하며 관광객에게 소개하는데 2006 유럽문화의 수도로 지정되었을 만큼 크진 않으나 마음을 느긋하게 중세기의 분위기 속에서 즐길수 있다고 느꼈다. 그런 분위기 때문에 광장에서 늦게까지 맥주를 마시며 동행한분들과의 대화를 즐겼는지도 모르겠다.

수도 따린의 떠나서 다음 발트해 라트비아로 향하는 길에 에스토니아 교육의 도시 타르투에 들렸다. 시청광장 상징의 조각이 남녀의 선정적으로 키스하는 모습이여서 어리둥절했고 대학 건물 뒷켠에 페허가 성당에 손의 손을 잡고 이상한 음악에 맞추어 강강수월래처럼 빙빙 돌고 있다. 에스토니아는 종교인이 20% 정도란다. 그것도 러시아 이주민의 그리스정교의 인구를 빼면 그것도 안될 같다. 따린 구시가에서 귀신이야기, 시청광장에서 변질된 불교(?)인들의 선교 행렬, 교육도시 도시 대학 구석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종교의식등등 에스토니아인들의 종교관이 어떤 것인지 어리둥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