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은 위대한 사랑/박평일




 며칠 전에 중앙일보에 실렸던 한 여성작가의 '형이상학적 선물'이라는 수필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나도 한국에서 태어나서 유교적 전통의 교육을 받고 성장한 한국계 남성이다. 그런 탓으로 나도모르게

그렇게 무심한 남편으로 또 무심한 아버지로 살아 왔다는 점을 부인할 수가 없다.

그 글을 읽으면서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으로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은혜인 선물을

형이상학적, 형이하학적으로 구분하는것이 나에게는 다소 낯설었고, 필자가 말하는 형이하학적 선물인

물질로 사랑을 저울질하는 요즈음 젊은 이들의 약삭빠른 계산법에 약간의 실망을 하기도 한다.

두 송이 장미꽃이 한 송이 장미꽃보다, 두 캐럿 다이아몬드 반지가 한 캐럿 다이아몬드 반지보다 큰 사랑을 의미하는 것일까?  문득 한 편의 시가 머리 속을 스쳐 갔다.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그 뒤에 숨어 있는/보이지 않는/위대함에/견주어 보면.-칼릴 지브란-

 

 몇 년 전에 여성작가 신경숙이 쓴 '엄마를 부탁해'라는 소설이 한국에서 10만 권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었다. 책 내용은 지난 날 우리들 어머니, 아버지들의 사랑에 대한 평범한 이야기였다. (나는 문학작품을 평할 수 있는 지식이나 조예가 없는 평범한 독자임) 그토록 평범한 내용의 소설이 수많은 한국인들을

감동시킨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여러 날을 생각해 보면서 나름대로의 해답을 찾아내었다. 그것은 옛것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요 상실감이었다. 현대 한국인들은 지난 세대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편리함을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잃고, 잊어버린 것들도 많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눈에 보이지 않는 순수한 사랑이고 인정이다. 순수한 어머니 사랑, 순수한 아버지 사랑, 순수한 우정, 사제간의 사랑, 순수한 남녀간의 사랑 등.

 우리들은 눈에 보이는 물질로만 표현되는 사랑에 다소 지쳐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려서 사내대장부로서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일 수가 없었다. 어머니도 내 앞에서 눈물로 슬픔을 보이신 적이 별로 없었다. 우리들은 슬픔을 늘 가슴속에 묻어두고 살아야 했었고, 흘렸던 눈물은 돌아서서 혼자서 소매 끝이나 손수건에 적셔야만 했었다. 그것이 군자의 도요 양반의 길이라고 믿고 살아 왔다.

 공자는 인류에게 '인' 도를 가르쳤다. 인이란 두 사람이 서로를 침묵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두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은 말이나 몸짓이 아니다.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다. 침묵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하나가 되는 것이 공자가  가르쳤던 '인'의 도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민족이 수천 년동안 배워 온 것은 '인'의 도가 아니라 공자의 껍데기였다. 그래서 한 작가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통탄을 했다. 그러나 진정 죽어야 할 것은 '공자'가 아니라 공자의 껍데기다.


 새는 딱딱한 얄의 껍질을 깨고 나 온다 . '인'은 공자라는 딱딱한 우상의 껍데기를 깨고 나와야만 하늘을 비상하는 자유로운 한 마리의 새가 될 수가 있다. 거기에는 형이상학이나 형이하학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

 조그만 사랑 뒤에 숨어있는 보이지 않는 위대한 사랑, 그것이 바로 '인'의 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