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대구매일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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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크로드 / 이미영


 
   가끔씩 산길을 오른다. 그 길은 봄이어도 좋고 겨울이어도 상관이 없다. 그저 참고 숨이 턱에 차오르는 것을 즐기며 발걸음을 옮길 뿐이다. 정상에 다다르기까지 쉬는 일도 거의 없다. 신체의 한계를 알고 싶은 것인지 목적은 오직 꼭대기 그곳이다. 계절을 느끼게 해주는 나무들의 변화도, 산새의 지저귐도 귓전에서 사라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무거워오는 다리를 당겨놓으며 인내하는 스스로를 대견해 한다. 함께하는 동행들은 한마디 건네지도 않고 걷기만 하는 내 모습이 비구니 같다고 놀려댄다.

 

  드디어 견디어낸 이유를 찾는다. 더 오를 곳 없음이 정상이 아니라 시선 닿는 전부가 발 아래인 지점이다. 멀리, 더 멀리 겹겹이 싸인 산들 저 너머가 보고 싶다. 사방 어디에도 솟은 봉우리와 골짜기뿐이다. 가슴 깊은 곳에서 숨겨 놓은 빛바랜 꿈이 의지와 관계없이 삐져나온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는 불혹을 지났음에도 그곳은 예외 없이 마음을 요동치게 한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 준비로 도서관을 드나들 때이다. 어느 날 신문에서 본 벽화 하나가 앞날을 바꾸어 놓았다. 끝도 없는 산등성을 지나 메마르고 뜨거운 모래바람이 부는 중앙아시아 사막을 밟고 싶었다. 모래언덕을 뚫고 물 한 방울 찾아보기 힘든 척박한 곳에 숨겨진 동굴, 부식시킬 습기조차 허락되지 않아 오랜 세월에도 고이 간직될 수 있었던 벽화, 그 그림이 그려진 둔황 막고굴을 동경했다. 이 굴속의 벽화에는 신라 탑이 등장하고 고구려, 신라 때 즐겨 쓰던 조우관(鳥羽冠)을 쓰고 있는 우리네 조상들의 모습이 있다. 어찌하여 그들은 그 그림 속에 서 있었을까. 왜 그곳에서 이국 사람들 틈에 사진처럼 박혀 있었던가. 조상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가며 밝혀지지 않은 비밀의 행로를 찾아내고 싶은 열망이 일어났다.

 

  모래 태풍이 이는 험난한 길을 오고 간 선인들의 옛이야기가 궁금했다. 낙타 등에 짐을 싣고 걷기만 했을 터이다. 얼마나 걸릴지 기약 없는 교역길을 지나며 고단한 시간을 위로하기 위해 벽을 종이 삼아 그림을 그렸을까. 목숨을 담보한 고행길에 안전하게 인도해 달라고 신들에게 염원을 그려 바쳤을까. 잠시의 휴식으로 용기를 얻으며 다시 묵묵히 걷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그 길이 이어져 중국에서 유럽까지 다다른 비단길이 되었다. 실크로드라는 단어 자체야 얼마나 매혹적인가. 누구라도 보드랍고 매끈한 그 위로 가고 싶지 않겠는가. 비단이 전해진 통상로는 삶의 몸부림의 흔적은 아닌지. 어디 사막뿐이랴 몸 하나로 버티며 지구의 지붕을 가로지르기도 했으리라. 험준한 산맥을 오르내리고 모래바다를 건너면서 비단을 나르고 종이를 옮겼을 것이다. 자신들의 행로가 훗날 인류의 문명을 실어 나른 위대한 발걸음이 되리라는 사명감 따위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척박한 삶을 이어가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으리라.

 

  실크로드로 가기 위해 채비를 차렸다. 대학원에 진학했다. 신기루처럼 손짓하는 비단길은 눈을 가리게 만들었다. 오직 그곳으로만 향하고 있었다. 한 학기를 지나면 그만큼 비밀의 열쇠에 가까워진 듯했다. 함께 가고 싶은 사람도 만났다. 같이 가면 더 쉬운 줄 알았다.

준비 없이 달려간 길에서 부딪힌 일들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새로운 가족을 만든다는 것은 응원군을 만난다는 사실이 아니다.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과 각자에 대한 배려와 때로는 희생을 필요로 한다. 꿈길을 위해 배낭을 꾸려주고 나침반을 손에 쥐여주는 가이드를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다. 친정 부모님은 언제나 무조건적인 지지자이셨다. 당신들의 헌신이 특별하다 여겨 본 적이 없었다. 지독한 이기심에 사로잡혀 혼자서만 질주하는 모습이 부끄러운 것인지 알지 못했다.

 

  18세기 말경 신화 속에 묻혀 있던 트로이를 발굴해 낸 독일인 하인리히 슐리만이 떠오른다. 그는 어릴 적 동화책 속에서 불타는 트로이를 보고 언젠가 찾아내고야 말겠다고 결심한다. 소년 시절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먼저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그리스 여인과 결혼한다. 모은 재산을 바탕으로 그리스어를 할 줄 아는 안내자를 아내로 맞이하고 열정을 다해 발굴 작업에 몸을 던진다. 준비된 열정은 결국 전설 속의 호메로스 이야기를 역사로 만들었다.

 

  욕망만 가득하고 현실감 없는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 형벌은 가혹하다. 학교 생활 이외에는 모든 것에서 어설펐다. 받는 것밖에는 모르는 나이 든 어린아이였다. 설 자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지은 모래성은 금세 흘러내린다. 하늘이 주신 첫 번째 생명을 지키지 못하고 떠나보냈다. 이기심에 갇혀 있던 내게 하느님은 살이 찢기는 형벌을 주셨다. 이천여 년 전 돌아올 기약도 없이 수레와 낙타에 비단을 싣고 떠나던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벌어오기 위해 자신들의 먹을거리는 줄여서 짐을 꾸렸는지도 모른다. 모래가 얼굴을 때리고 광풍이 발걸음을 막아도 기어이 뚫고 돌아가고자 했으리라. 손꼽아 기다리는 피붙이들에게 허리가 휘어져라 등짐을 지고 돌아가고자 하지는 않았는지……. 목숨을 건 행로에는 오직 처자식들이 있었으리라.

 

  내 모습을 비춰 본다. 남편과 친정 부모님이 주시지 않으면 책 한 권 살 수 없는 무능력자였다. 아이를 가진다 해도 시부모님이 돌봐주시지 않는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손을 잡고 함께해야 하는 생활인이 되었으면서도 업혀 있으려고만 했다. 가야 할 방향을, 생명을 잃고 나서야 찾을 수 있었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받아 불같이 타오르고 밤이면 송두리째 빼앗겨 강풍이 몰아친다. 아무리 둘러봐야 몸뚱이 하나 숨길 곳이 없다. 모래와 불과 바람이 몰아치는 땅으로 가고자 신기루를 좇았다가 다시 얻은 아이를 지키려고 현실로 돌아왔다. 돌아선 길에서 비스듬히 보이는 예전의 실크로드는 가끔씩 달콤한 속삭임으로 살아나기도 한다.

 

가지 못한 길은 더 아름다워 보이는 법이 아닌가. 자신만을 위해 걸어가기를 포기하니 성장시켜야 할 아이들과 같은 곳을 바라보는 동반자가 옆에 있다. 스스로를 빛내려 하기보다 앞날을 밝혀주고 안내해 주는 도우미로 살아간다. 산들바람이 일다가 태풍이 불다가 모래산이 옮겨진다. 두 발로 걷는다. 참는 것이 아니라 이겨낸다. 묵묵히 견디다 만나는 오아시스는 생활의 활력소이다. 삶의 시간은 쌓여서 지혜가 된다. 고통은 상처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때에 맞춰 감당할 줄 아는 책임감 지닌 존재로 만든다.

 

  나는 인생의 비단길을 가는 카라반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