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민복 에세이

 

산소코뚜레ㆍ1 (2008.12.30}

 

"어머니 저 왔어요. 눈 한번 떠보세요”

조금 더 큰 소리로 어머니를 부르며 몸을 흔들었다.

어머니는 멍 자국에 꽂혀 있는 링거를 통해 항생제와 포도당을 천천히 빨아들일 뿐 반응이 없었다.

엄지와 검지로 집게를 만들어 눈꺼풀을 벌려보았다. 검은자위가 보이지 않 았다. 침대 머리맡에 설치된 모니터에서는 혈압, 호흡, 산소포화도를 나타내주는 수치와 그래프가 바쁘게 움직였다. 그래프 모양이 흡사 파도 너울 같기도 했고, 산 모양 같기도 했다. 어머니 몸이 그리는 그림을 오래 들여다보고 있자니, 어머니 생명이 파도와 산을 넘어 서서히 떠나고 있는 것 같았다.

   

  “저, 할머니 또 저런다!”
  옆 침대에 누워 있는 할머니가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링거 꽂힌 손으로 가리킨 건너편 침대를 바라보았다. 할머니 한 분이 쪼그리고 앉아 한 손에 손거울을 들고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짧은 머리카락을 빗질해주고 있었다. 치매에 걸려서 그렇다고 하며 옆 침 대 할머니가 돌아누웠다. 건너편 할머니가 빗으로 거울 긁는 소리를 내면 옆 침대 할머니가 쯔쯔쯔, 혀 차는 소리로 추임새를 넣었다. 어머니의 부은 팔을 주무르다가 사람이 늙고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감상이 일어 병실을 나섰다.

 

  푸르렀음으로 붉어질 자격이 있는 나뭇잎이, 매달려 있었음으로 떨어질 자격이 있는 나뭇잎이 길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늦가을 햇살도 나뭇잎과의 추억을 접을 뿐 바람에 뒹구는 낙엽을 붙잡지는 않았다. 나는 낯선 도시, 낯선 길, 낯선 병원 앞을 천천히 오갔다. 


  <나의 여집합인 나>. 아버지 죽음을 겪고 썼던, 까마득히 잊고 있던 시 제목 하나가 떠올랐다. 이십 년 전에, 제목부터 너무 관념적이란 친구들 평을 받고 찢어버린 시가 어떻게 갑자기 기억을 헤집고 나온 것일까. 슬픔에 젖은 정서가 세월을 넘어 슬픔에 젖었던 세월에 구멍을 뚫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슬픔과 슬픔 사이에는 항시 맞뚜레가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아버지가 죽고
  내가 슬퍼서 운 것은
  아버지 속의 내가 죽으며 운 것
  내 속에 살아 있는 아버지가 운 것

 

  4행까지 쉽게 떠오른 시는 중간 두세 줄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뒤에 몇 줄은 정확하지 않게 가물가물 이어졌다.

 

  내가 죽으면 나는 하나도 안 죽고
  내 속에 살아 있던 사람들만 죽네
  내 속에 나는 없네
  나는 내 밖에만 있네
  내가 죽으면 내 바깥의 나는 울고
  내 속의 다른 사람들은 울지 못하네
  나는 나의 여집합이네

 

  나는 병원에서 나오고 있는 할머니들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어림잡아봐도 어머니보다 나이가 많은 할머니들이 누군가의 부축도 없이 잘 걸었다. 그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그간의 내 삶이 어머니를 세월 앞으로 밀었구나 싶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어머니는 늘 내가 되어 있었고 나는 어머니가 되어 있지 못했음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는 다시 병실로 올라갔다.


  어머니는 삼 일 동안 의식이 없었다. 가족들이 병원 근처에 잡아놓은 여관방으로 모였다. 얼굴과 입술 빛이 새까맣게 변한 게 이번엔 돌아가실 것 같으니까 맘 준비들 하라고 매형이 말했다. 허리 뒤에 손을 넣어보았는데 침대에 착 붙은 게 틀렸다며 막내 누이가 동조했다.  척추에 금 가 애비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몇 달 만이라도… 작은 형수가 말끝을 흐렸다. 상주가 너 하나니까 미리 잠 좀 자두라던 둘째 누이가 흰 와이셔츠를 내밀며 사이즈가 백호 맞느냐고 물었다. 


  어머니를 고향 쪽 병원으로 모시기로 결정했다. 결정에 따라 일부는 큰일 치를 준비를 하러 떠나고 일부는 남았다.

 

  다음 날, 환자 이송 앰뷸런스가 예상보다 일찍 왔다. 나는 병원 옆 편의점에서 충전이 덜 된 휴대폰을 찾고 병원 원무과에 물어 환자 이송 허가증을 발부받았다.


  둘째 누이와 내가 앰뷸런스에 동승했다. 응급구조사가 서둘러 어머니 코에 산소를 연결했다. 머릿속에서 ‘산소코뚜레’라는 말이 만들어졌다. 차가 출발했다. 응급구조사가 엄밀히 따지면 혈압이 너무 낮아 이송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하며 도중 안 좋은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고 했다. 큰 누이에게 출발했다고 전화를 하니, 이곳 병원에 문제가 생겨서 그렇다며 일단 집으로 오라고 했다. 누이 집 주소를 불러주자 운전자가 내비게이션에 입력했다. ‘가망도 없는 것 같은데, 그냥 찬송가 부르면서 어머니 편하게 모셔드리는 것도 좋지 않겠냐’는 가족 의견 중 하나가 떠올랐다. 운전석 쪽으로 난 작은 유리창을 통해 간간이 보이는 산은 단풍이 들어 피처럼 붉었다. 앰뷸런스 소리는 소리의 단풍이다, 라는 문장이 머리에 써졌다. 나는 산소가 공급되고 있는 압력 게이지를 주시했고 응급구조사는 숨을 점검하는지 어머니 코에 손가락을 가끔 갖다가 대어보았다. 더스틴 호프만이 고향으로 가는 버스에서 죽는 <미드나잇 카우보이>란 영화 장면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따지고보니 나도 산소 코뚜레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처럼 유선이 아닌 무선의 산소 코뚜레. 또 입과 내장과 항문이 맞뚫려 있고 그 사이를 음식물들이 지나간다는 사실을 감안해보면 음식물 코뚜레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입에서 항문으로 통과하는 음식물들 중 바로 통과하지 못한 찌꺼기들이 머물러 있는 게 육체가 아닌가. 그 육체가 산소와 음식물들의 코뚜레를 벗는 날 우린 죽음을 맞게 된다.
죽 음. 그 위대한 스승. 내가 살며 받은 최고의 교육은 면전에서 아버지가 보여준 죽음이다. 그 명강의를 이수하고도 어머니의 죽음 맞기는 왜 이렇게 힘든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차는 시간 반을 달려 목적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여기가 아닌데.”
  차가 비포장길로 접어들어 산 고개를 넘고 있었다. 길을 잘못 든 것 같다고 말하며 흔들리는 어머니를 붙들었다. 당황해 운전석 쪽으로 난 창을 주시하자 멀리 누이 집이 나타났다. 응급구조사가 구조차량 내비게이션은 무조건 최단 거리 길로 되어 있어서 그렇다고 했다. 차가 덜컹거리고 어머니가 인상을 쓰는 듯했다.
  “아구 아구 아파!”


  누이 집에 도착해 침대에 어머니를 내려놓을 때였다. 낯익은 목소리지만 낯설게 들려온 소리는 분명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그 소리에 다들 놀라고 있을 때 어머니가 눈을 슬쩍 떴다. 산길을 넘어오며 등에 난 욕창에 자극을 받아서였을까. 집에 모여 있던 가족들이 모두 어리둥절했다.


  “뭐하냐. 빨리 가서 앰뷸런스 잡아. 의료원이 가까우니까 그리로 모셔. 바로 뒤따라갈게.”
  누이와 매형의 말을 듣는 순간 막막하던 가슴이 환하게 뚫리며 몸에 전율이 일었다.

  나는 신발을 꺾어 신은 채 앰뷸런스 쪽으로 내달렸다.  

 
산소코뚜레ㆍ2 (2009.01.01) 
 

어머니는 눈은 떴으나 말을 못했다.

백발의 이모 두 분이 문병을 오셨다.

“내가 누구유?”

작은 이모가 어머니 얼굴 가까이 얼굴을 갖다대며 다시 물었다.

“언니, 내가 누구유?”

언니라고 이번엔 힌트까지 주었다. 반응이 없자,

“나 주덕읍 사는 막내동상이유.”

“모르시는가?”

작은 이모가 옆으로 비켜서고 이번엔 큰 이모가 허리를 굽혔다.

“나 몰라유? 청주 동상.”

큰 이모의 질문은 결과로 바로 내달았다.

“아는데 말을 못하시나, 내가 누군지 알면 눈 껌벅해봐유?”

“사람도 몰라보시나봐!”

이모들이 어머니를 등지고 돌아서며 눈물을 흘렸다.

“네가 수고가 많다.”

“아녀유. 제가 잘못 모셔 이모들한테 제일 죄송해유. 그렇게 보고 싶다고 했다는데 자주 볼 수 없던 제가 이렇게 오래 같이 있으니 꿈인가 싶어서 대답 안 하시는지도 모르지유. 꿈 깰까봐.”

  

내 목소리가 떨리자 이모들은 눈물을 그쳤다.

 

  다시 열흘이 흘러가고
  그사이
  ‘내가 누구유?’가 ‘제가 누구유?’로 질문이 바뀌고
  큰 형수, 작은 형수, 큰 매형, 작은 매형, 큰 누나, 중간 누나, 작은 누나, 이종사촌, 친조카, 외조카가 와서 똑같은 질문을 어머니에게 던졌다.

 
  어머니는 늘 대답을 못했고 질문자들은 한결같이 자기가 누구라고 문제의 정답을 밝혔다.

 

  질문자들의 내방을 받으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질문자들의 질문은 왜 똑같은 것일까. 질문자들은 어머니 속에 자신이 있나 없나를 질문으로 던졌고 자신 속에는 분명 어머니가 있어 자신은 어머니와 무슨 관계로 존재한다고 밝혔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혹 이게 대화가 성립하기 위한 선결조건이 아닐까. 모르는 사람끼리 만났을 때도 서로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대화가 성립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화장실에서 면도를 하다가 질문자들이 놓친 문제점 하나를 찾아냈다.
  누구세유?


   이렇게 질문을 던져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어머니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다면 상대와의 관계를 어찌 대답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면도를 하다가 멈춘 거울 속의 나를 만져보며 지난번에 만났던 할머니를 거울 속으로 불러냈다. 할머니는 한 손에 손거울을 들고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머리카락을 빗질했다. 치매에 걸려서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면 거울 속에 있는 할머니는 딴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할머니는 자신이 아니라 불쌍한 노인네를 빗질해주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할머니의 행동은 지극히 정상적이지 않은가. 그 할머니가 자신을 잊어버린 게 문제가 될 뿐.


  거울을 어머니에게 보여주면 어떨까. 어머니는 거울을 본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기억력이 쇠약한 노인임을 감안했을 때) 자신의 외모마저 잊어먹었을지도 모른다. 거울을 보고 어머니가 자신이 누군지 깨닫는다면(몸을 통해 정신까지) 많은 내방자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령 이렇게 말이다. 어머니 쪽으로 다가오는 내방자를 향해 검지를 입에 갔다대며 쉬! 동생 왔구나, 나 누이여. 사위 왔구나, 나 장모네. 손주 왔구나, 나 할미다…….


  어머니에게 거울을 보여드리자.
  그러나 나는 어머니에게 거울을 보여드리지 않았다. 어머니가 병에 너무 지친 자신의 모습을 본다면 정신건강적인 면에서 해롭기도 할 테고, 어머니 이전 한 여자에게 너무 잔인한 짓이 아닌가 싶어서였다.

 

  물은 자가 대답하는 시립의료원 508호의 밤은 길었다. 어떤 날은 하룻밤에 사이에 509호, 510호, 511호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찬송가가 들리기도 하고 울음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나는 컵라면을 먹고 있거나, 죽었던 자가 다시 살아나, 첫 출발지에서 다시 시작해 살아나가 박수를 받기도 하는 코리안시리즈를 보고 있었다. 인생도 일회, 이회, 저렇게 기회가 아홉 번 주어지고 경우에 따라서 연장전까지 주어진다면… 생각하다가 인생은 게임이 아니다, 세차게 고갯짓을 하며 망상을 급히 틀어막았다.


  이상하게도 이웃 방에서 사람이 죽어나갈 때마다 어머니는 진땀을 흘리며 신음을 했다. 정말 저승사자가 오고 심하게 아픈 사람 눈에는 뵈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면 나는 겁이 나서, 어머니는 교인이니까 찬송가를 들으며 돌아가시는 게 좋을 것 같아 티브이 채널을 돌려 기독교 방송을 틀어놓았다. 한번은 기독교 방송을 틀려고 티브이에 달라붙어 채널을 누르고 있는 중에 간호사가 들어왔다. 어머니는 아프고 옆방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티브이 채널이나 붙잡고 있는 나를 간호사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밤이 길어 이런 사소한 고민도 링거처럼 천천히 맞으면 내가 처한 상황을 잠시 잊는 데 도움이 되었다. 

 

  코리안시리즈가 끝나고 재팬시리즈가 끝나도 어머니 병은 차도가 없었다.


  어머니는 눈만 떴다가 감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욕창에 살 썩는 냄새만이 어머니 밖으로 외출을 하는 날의 연속이었다. 나는 4층이 F로 표기되어 있는 쇠두레박을 타고 어머니가 누워 있는 침대 곁에 서서 올라오며 꼭 살려 내려가겠다고 다짐했었다. 그것은 나의 순진한 바람에서 끝날지도 모른다. 설사 그렇게 된다 해도 나는 내 생에 가장 행복한 날들을 어머니와 단둘이서 한 달 동안이나 보냈으니 후회는 적다.
 

  508호실에 또다시 밤이 왔고 나는 혼자 서툰 기도 혹은 혼잣말을 했다.
  어머니, 소가 되셨나요. 왜 코뚜레를 하고 계세요?
  어머니, 코끼리가 되셨나요. 왜 코에서 나온 호스로 미음을 드시죠?
  어머니, 소처럼 벌떡 일어나세요.
  어머니, 코끼리처럼 큰 소리로 저를 한번 불러주세요.
  그리고요, 이건 정말 궁금한 건데요,
  ‘내가 누구여?’
  이렇게 물었을 때 제가 ‘엄마’ 하고 대답한 것은 몇 살 때였나요.
  또 장소는 어디였죠?
  저는 왠지 향나무가 있던 우물가였거나, 바깥마당에 있던 대추나무 아래였으면 좋겠어요.
  제 대답을 듣고 어머님 기분은 어떠셨나요?
  어머니 산소코뚜레 빨리 풀고, 아, 호스로 된 유선 말이에요, 코끼리 코 뽑아내고, 걸어서 안 되면 제 등에라도 업혀 쇠두레박 타고 저 평지에 내려가요.
  네?
  그러실 거면 아무 대답도 하지 마세요.
  그러자고요!
  그러자고요!!
  아무 말 안 하셨으니까 분명 대답한 거예요.
  고맙습니다.
  열쇠처럼 쪼그맣지만 내 모든 것을 열어준 어머니,
  나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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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 시인


 1962년 충북 중원군 노은면에서 태어났다.

1988년 『세계의 문학』에 「성선설」등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1989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90년 첫 시집 『우울 氏의 一日』(세계사)을 펴냈다.


1993년 두번째 시집 『자본주의의 약속』(세계사)을 펴냈다.


1996년 세번째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창작과비평사)를 펴냈다.


1998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 상>을 수상하였다.

2005년 네번째 시집 < 말랑말랑한 힘 >을 10년 만에 펴냈다.

2005년 제 2회 애지문학상 수상

2005년 제 7회 박 용래 문학상 수상

2005년 제 24회 김수영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