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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시의 문장 구조상 차이점

 

 

-수필에 있어서의 詩的 表現-

 

 

유 경 환

(시인, 연세대 겸임교수)


 

1.수필문장과 산문정신

 

나는 1957년「현대문학」에서 박두진(朴斗鎭)시인에 의해 시 부분에 추천되었다. 45년 전이다.

20대 초반 대학생 시절이다. 이미 그전에「새벗」,「소년세계」,「학원」따위 월간 문예지에서 몇 가지 문학상을 받은 터였다.

나의 첫 산문집은 70년대 초 범우사에서 출간된『길에서 주운 생각들』이다. 이후 열 몇 권의 산문집을 계속 출간한다.

수필은 겸손하고 담백한 것일수록 향기를 지닌다.

우리 글을 가지고 수필을 쓰는 경우 우리 어문 구조에 철저해야 한다.

우리 글의 구조와 문법에 정확해야 하며 우리식 산문이 요구하는 신문정신에 따라야 한다. 우리 글을 가지고 외국 글처럼 서술하면 번역문장으로 오해되기 십상이다.

 

또 우리 글에서는 문장의 길이가 어느 정도일 때 적당한가. 곧 낱말이 몇 개가 연결될 때 소구력(訴求力)이 큰가를 생각하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 글에서 흔히 생략되는 주어가 거느리는 영향력은 어느 범위까지에 동사와 연결되는지도 생각해야 한다.

 

우리 글에서 좋은 글, 곧 좋은 수필은 겨울나무 가지처럼 주제가 확실하게 보인다.

 

2.수필문장과 시적 표현

 

수필 속에 시적 표현을 삽입하는 기술은 없다. 왜냐하면 수필은 원래 겨울나무처럼 나무의 본 모습을 있는 대로 드러내는 문학 형식이므로 그렇다. 수필은 수필이 요구하는 문장으로 쓰여져야 옳다. 수필은 그것이 요구하는 문장이 아닌 것으로 쓰여질 경우, 이미 수필작품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여성인 한 원로시인을 다 알고 있다. 또 중견시인이면서, 역시 여성인 어떤 분의 이름도 알고 있다. 이분들 산문집이 그토록 오래 여러 증판을 거치며 출간되었건만, 그러나 수필문단에서는 수필작품으로 평가하지 아니하며 또 수필가 반열에서 열외(列外)로 분류하거나 신앙고백서 정도로 치부하려 든다.

 

어째서냐고 물으면 우선 문장에서 수필작품이 아니라는 대답이다. 다시 말하면 신문정신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산문정신에 어긋나면 수필작품이 못되느냐고 되물으니, 이에 대한 대답은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글인데… 그런데 어떻게 수필로 볼 수가 있느냐"이다.(물론 수필에 대한 정의(定義)가 전제되어야 할 문제이긴 하지만). 서양의 수필에는 참회록이 많고 신앙고백서는 더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정통 수필문학의 작품으로 평가하지 않고 있다.

 

되풀이하거니와 수필문장에 시적 표현을 의도적으로 시도(試圖)하는 태도는 옳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성과를 거둘 확률도 지극히 낮다. 다만 원숙한 경지에 이른 문학인의 경우 의도적 시도가 아닌데도 저절로 시적 표현이라 감지될 만한 기교가 발휘될 수는 있다.



3. 수필에서의 형용사·부사 과용

 

시를 쓰는 사람이 수필에 손을 대면 시인이 시안(詩眼)으로 보고 느끼며 품는 정서를 그대로 낱낱이 다 전달하고 싶어서 형용사 부사를 필요 이상으로 구사하기 때문에 격을 떨어뜨린다.

시인이 산문을 쓰게 되면 마치 "풀어서 쓴 시처럼 형용사 부사를 과용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시에 있어서는 다양한 해석을 유도하기 위해 형용사 부사의 복합구사가 용인된다. 창작기법상 형용사 부사의 기술적 재비치를 의도하는 까닭은 복합이미지를 만들어 내어서 단순한 상상이 아닌 연상작용까지 유인하여 상징과 비유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시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수록 시작품으로서의 생명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수필에서는 그 주제가 명료해야 하며 주제의식이 뚜렷이 솟아올라야 하고 또 숨겨놓은 메시지도 드러날 만큼 분명해야 한다.

시는 애매하고 모호한 표현기교로서 독자의 시적 상상의 범위를 확대하는 유인 동기를 설정한다. 시인이 시작품 속에 넣어놓은 고뇌, 갈등, 방황 따위를 독자가 받아들이지 못하면 난해한 시로 튕겨질 수 있다. 시에서는 시인이 지녔던 체험과 그리고 독자가 지닌 체험이 어느 정도 같은 수준이며 동질(同質)의 것일 경우, 정서 이동이 용이하게 되고 마침내 독자의 이해 감상 수용이 가능해진다.

수필에서는 작가와 독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정서이동이 훨씬 쉽다. 까다롭게 동질 동수준의 체험을 반드시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작가와 독자 사이에 정서 이동이 더 쉽도록 문법에 맞고 어문구조에서 일탈이 없도록 산문정신에 충실하기를 요구한다. 그러자면 자연히 문장이 담백해지며 간단명료한 구조를 지니게 되고 형용사 부사는 저절로 줄어들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피천득, 김태길의 수필을 보면 곁가지도 없고 잎도 없는 겨울나무 같다. 그토록 단순 담백하다. 하지만 문장 어느 갈피에선가 글의 향기가 문향으로 은은하게 나온다. 이것이 수필의 향기다. 은연중에 배어나오는 향기라야 오래 갈 수 있다.

 

4. 시인이 쓴 수필의 혼란

 

산문구조와 운문구조가 같지 않음을 다시 말한다. 산문구조에서는 문장이 되기 위해 문장의 주어(또는 생략된 주어)가 거느리는 동사와 반드시 연결되어야 한다. 이른바 주술어의 연결이다.

 

심지어 "한 문장에 한 메시지(One sentence one message)"라는 서양말을 인용해 가며 하나의 문장 속에 복합적인 메시지를 담는 것은 좋은 글이 아니라는 말까지 하고 있다.

 

인문과학이나 사회과학에서 논문을 쓸 때엔 논문작성에서 반드시 "One sentence, one message"라는 말을 힘주어 가르친다. 한번 읽어서 다른 해석이 나오지 않을 만큼 분명하고 명료한 내용을 담은 문장이, 일반적으로 산문에서는 좋은 문장으로 일컬어진다. 수필도 그 성격에 따라 이 범주 안에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반면에 운문 구조는 이와 대조적이다. 운문에서는 의도적으로 토씨를 떼어버린다. 문법 구조를 무시하고 행()과 연()을 자주 바꿔가며 가능한 한 다양한 해석을 노려 이미지의 확대재생산을 유도하려고 한 문장 안에서 단절을 시도한다. 결국 어느 것이 주어이고 어는 것이 술어(동사)인지 식별이 안 되도록 모호하게 쓰는 것이 시적 표현기교인 것이다.

잘 쓰여지지 아니한 시의 경우 의도적으로 행을 바꾸고 연을 갈라놓은 것을 다시 한 줄로 이어 연결하면, 그대로 줄글 곧 산문이 되는 경우가 있다(이것은 산문시와 다르다). 그러나 잘 쓰여진 시는 한 줄로 복원할 수가 없다. 한 줄로 이어 맞춰 놓는다 하여도 그대로 줄글이 되지 않는다.

 

()도 진()이라는 소급법의 논리로 따져 본다면 시와 산문은 구조적으로 다른 것이다. 아무튼 운문에서는 의도적으로 문장의 연결 고리인 토씨를 잘라내어 독자가 앞뒤의 이미지를 연결하여 보도록 유도하는 반면에, 산문에서는 철저하게 완벽한 문장을 쓰도록 완벽주의를 강조하고 있으며 이 완전문장을 통해서 주제를 전달시키려 하는 것이다. 까닭에 수필에서는 그 문장이 교과서적이나 시에서는 변형일수록 묘미를 함축한다고 강조한다.

 

5. 문장에 용해된 시적 분위기

 

수필 속에서 시적 표현을 감지한다는 말은 엄격한 산문문장 속에 용해되어 있는 시적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 옳은 기술이다. 직접 표현된 단어로 오는 것이 아니라 읽고 나서 그 분위기의 여운으로 느낌을 받는 것이다. 완숙한 경지에 이른 화가는 그림 속에 메시지를 숨겨놓는다. 써놓지 않고서 감상자에게 읽어내게 한다.

 

마찬가지로 수필작품 속에 녹아 흐르는 시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며 이 느낌이 전달하는 글의 향기를 맡아낼 수 있다. 이양하의 수필「나무」를 초등학생이 읽으면 그 수준대로 이해할 수 있고, 중학생이 읽으면 중학생 수준으로 감상할 수 있으며 대학생이 읽으면 대학생 수준만큼 수용할 줄 안다. 직접 표현의 의미를 해석하는 연령이 각기 능력 수준에 따라 다른 수용을 가능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이것을 놓고 해석의 문제라고 말한다.

 

처음부터 혼란스러운 문장으로 써놓고, "녹피에 가로 왈자" 같은 해석이 가능하도록 써놓고 수필문학이므로 괜찮다고 변명하는 것은 곤란하다. 혼란스런 문장은 기준미달의 글이므로 처음부터 해석 자체가 어려운 글일 뿐이다

 

수필은 정도(正道)의 문학이다.

그러므로 수필작품은 기교보다 정신에서 바른 격을 찾고 있으며, 써놓은 글뿐만 아니라 쓴 사람의 사람됨까지 돌아보게 한다. 수필은 글로 만들어 놓은 제 얼굴이며 오래 남는 분신이다. 기교는 돌아보는 세월의 때를 타나 기교가 아닌 향기는 세월의 때를 타지 않는다. 세월의 때를 타지 아니하는 향기는 문장 속에 녹아있는 향기다. 수필은 이런 문향을 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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