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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뇌하는 작가의 흔적 / 허 정 자  수필가





   1964년 이른 봄, 서울행 밤기차가 서서히 대구역을 벗어날 때 나는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정든 집, 정든 친구들을 두고 떠난다는 것이 쓸쓸하고 아득하기만 하던 먼 기억. 반드시 훌륭한 작가(作家)가 되어 돌아오리라 다짐하며 맹세하던 그 밤의 여운은 낯설고 막막하기만 하던 서울의 봄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 당시 우리 동국대학교 국문학과엔 양주동, 서정주, 조연현, 이병주 교수님 등등, 이름만 들어도 문단을 대표할 교수님들이 많이 계셨다. 더욱이 동문이라는 끈끈한 인연으로 문학의 맥을 이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대학 4년이라는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버렸다. 방황 속에 내 젊음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욕망의 찌꺼기를 걸러 올리지 못해 허우적이던 나날들. 문학으로 내 인생의 구원을 갈구하던 수많은 날들이었다. 결국, 교사 자격증 하나만을 가진 채 숨 막힐 것 같은 서울을 떠나오고 말았다. 우울한 귀향(歸鄕)이었다.
  오랜 세월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안타까움, 후회와 망설임 속에 가슴 졸이던 나날들. 이제 스물여덟 해 만에 처음으로 창작 수필집을 엮는다.
  돌아보면 전전긍긍하며 살아온 날의 흔적이 드러나는 부끄러움과 민망함에 얼굴이 붉어지지만, 이렇게라도 쓰지 않았다면 얼마나 허망한 삶이었을까 생각하며 위로받는다
 ―1992년 봄 『강물에 비친 얼굴』 후기 중에서


  나의 수필작법을 쓰기 전에 먼저 글을 쓰게 된 동기, 혹은 이유 같은 것이 담겨 있는 후기의 일부분을 옮겨 본 것이다.
  문학은 인생의 거울이라고 한다. 자신의 삶을 개성 있는 문장, 감동적인 문장으로 그려낸 삶의 잔잔한 모습들이다.

  대체로 한 편의 수필을 쓸 때 나름대로 기준을 세워 본다.
  ① 주제는 잘 나타나 있는가?
  ② 소재의 특이성
  ③ 표현 기법은 참신하게, 글의 전개는 무리 없게
  ④ 시적인 리듬을 갖추자.
  대강 이런 몇 가지 나름대로의 기준을 정해 둔다. 그리고 가능하면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덧붙여 언제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작가 정신이다.
고뇌하는 흔적이 담긴 글, 깊이가 있는 글, 쓰는 이의 고뇌와 감성이 잘 어우러져 있는 작품을 쓰고 싶은 것이 내 간절한 소망이다.
  내가 내 자신에게 주문하는 이러한 것들은 언제나 내 분신처럼 곁에 머물러 있다.
그 옛날 교수님들이 특히 강조하셨던 내용들이 생각난다. 냉혹하리만큼 다듬고 다듬어야 한다던 치열한 작가 정신을.
  “작가는 자기 작품에 책임을 져야 한다. 쉼표 하나, 마침표 하나도 다 작가가 책임져야 한다. 아무렇게나 휘갈겨 쓴 글이 뿌리가 있겠느냐. 뿌리 없는 작가는 쉽게 시들고 곧 작가의 생명이 끊어지는 것이다.”
  지금도 원고지 앞에 앉으면 깊은 산골의 메아리처럼 그 말씀들이 들려오는 듯하다. 인생에 대한 풍부한 체험을 바탕으로 예리한 관찰로 투시하는 작가의 문장이 비교적 좋은 문장이라고 하지 않던가.
  너무 어렵게 생각에 생각을 많이 하지만 내가 쓴 글들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듯 느껴질 땐 우울해진다. 작품을 아기로 생각한다면 다시 말해 글쓴이를 임부로 친다면 나는 지극히 난산(難産)하는 부인네일 것 같다. 태교는 누구보다 열심히 한다. 올바른 마음가짐에서부터 온갖 정성을 다 모아 오직 훌륭한 아기가 태어나길 기원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막상 태어난 아이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그 기대만큼 허망함에 잠긴다. 글을 많이 쓰다 보면 좋은 작품도 있고 별 볼일 없는 작품이 있을 수도 있다. 나의 경우 몇 배의 고통에 비해 수확이 턱없이 적을 땐 쓸쓸해진다.
  이런 과작(寡作)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내 문학적인 소양의 부족에서 오는 것과 지나치게 조심스럽게 배운 문학 수업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냉혹하리만큼 다듬고 다듬어야 한다던 교수님들의 충고와 왜 그런 이야기밖에 쓸 수 없느냐는 과제를 안고 있는 수필의 문제점들이 쉽게 글을 쓸 수 없는 요인 중의 하나일 것 같다.
  자기만의 세계를 담을 수 있는 글, 광대한 소재의 결정으로 사상이나 철학을 심도 있게 다루는 의식의 작품을 쓰고 싶다.

  삶이 고달프고 마음이 무거울 때 나는 곧잘 서점을 찾는다. 며칠 사이 새롭게 쏟아져 나오는 책들의 제목을 읽고 책갈피를 열면서 작가의 고뇌를 떠올려 본다.
  문학이 어느 소수인이나 특수한 계층의 전유물일 수는 없다. 문학은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가장 따뜻하고 포근하게 해 주는 힘이 있다. 자기 각성을 해 주는 문학이란 모든 사람에게 고루고루 사랑받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문학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의 흐름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울러 문학 인구의 저변 확대와 대중화도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하지만 일부이긴 해도 너무 쉽게 글을 쓰고 너무 빨리 책을 출판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 같다.
  씨앗을 뿌리고 열매를 맺기까지 희망과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농부들의 긴 인내가 아쉽다. 그저 바쁘게 글을 쓰고 빨리 책을 내려는 사람들에게 그 긴 기다림의 의미를 들려주고 싶다.

  가장 만만하고 쉽게 쓰여지는 것이 수필이다. 붓 가는 대로 쓰면 된다는 위험한(?) 생각 때문일까. 수필가가 많기도 하다. 외국에서는 에세이스트가 상당한 대우를 받고 그 유명도가 높은 데 반해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수필에도 영혼이 들어 있어야 한다. 철학이 들어 있어야 한다. 좀 더 깊이 있고 책임 있는 글을 쓰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글쓰기의 어려움을 다시 한 번 느끼면서.
  밤을 밝히며 내가 쓴 글들이 아침이면 불만의 얼굴로 다가온다. 내가 추구하고 나타내고자 하는 문장이 매끈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채 다가오는 나의 분신들. 그러나 결코 미워할 수만은 없다. 결점이 많은 자식이 더욱 안쓰러운 부모의 심정이 이러할까.
  쓰여지지 않는 글 때문에 애꿎은 커피만 마셔대는 어리석음에 젖을 때도 많았다.
나를 알고 있는 분들에게서 가끔 듣는 얘기다. 나의 글이 물 흐르듯 막힘없고 자연스럽다고. 읽기에 편하다 말을 들으며 나는 안으로 고소를 금치 못한다.
  원고 마감까지 이 핑계 저 핑계로 미루다가 마감일이 되어서야 어쩔 수 없이 글을 쓰는 다시 말해 어렵고 힘들게 쓴 글들이다.
  평범한 가운데 나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살리는 글. 이것이 내가 추구하는 수필이다. 글쓴이의 인격이나 인생에 대한 가치관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수필이기에.

  지난날 외국 여행이 많지 않았을 땐 외국 물건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물건들이 많았다. 외국 여행이 많아지면서 외국 물건의 희소성이 적어졌다. 이제는 그 지방 그 지역에서만 찾을 수 있는 토산품이 각광을 받듯이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독창성과 그 작가에게만 느낄 수 있는 향기. 그런 작품을 쓰기 위해 노력하리라.
  앵무새의 똑같은 말 반복에서 오는 지루함과 의미 없음에서 벗어나는 작품을 쓰고 싶다. 고뇌하는 작가의 흔적이 담긴 글을 언제쯤이면 자유스럽게 쓸 날이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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