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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중문화와 멀티라이프(Multi Life)시대의 詩들

                            

                    / 김백겸(시인, 웹진 시인광장 主幹)  

                          


 

  문화의식의 다중세계(Polyverse) 

 

  문화가 인간이 설계한 기호체계(Communication)의 공동환상이라는 견해가 있다. 실체가 대응하지 않는 가상(Simulation)이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 낸 체계라는 뜻이다. 두 남녀의 ‘사랑’같은 것은 ‘심리적 사실’에 속한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제외하면 어디에도 실체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인간의 가치체계가 만드는 관계가 아니라면 문화는 어디에 있겠는가. 파르테논 신전에 날아와 앉은 비둘기의 눈은 산의 바위와 신전의 대리석을 구분하지 않는다. 이런 의미라면 현실(現實)은 눈앞에 나타난 현전(現前)이다. 현전(現前)이 현실(現實)일 때 ‘사랑’도 현실이 된다. 가상이며 공동환상인 문화도 현실이며 인간은 물리적 현실과 문화적 현실(가상)이 결합한 이상한 꿈나라의 ‘만다라’ 도시를 살아간다.

  시란 시인이 마음의 환상을 글자(기호)로 표현한 메시지이다. 본질상 두 남녀 사이의 ‘사랑’과 다르지 않다. 다만 시는 세계를 대상으로 한 ‘사랑’을 표현한 ‘연애편지’이다. ‘연애편지’라는 표현을 쓴 것은 나를 보아달라는 ‘외침’과 ‘발화’가 시 안에 타오르기 때문이다. 옛 사람들이 시를 쓰고 물 위에 흘려보냈다는 고사가 있다. 이때의 시는 시인 내부의 자신(Self)에게 보낸 ‘외침’이다. 인간(人間)이 아니라면 ‘시’란 비둘기가 본 파르테논 신전의 ‘대리석’처럼 흰 종이 위의 검은 무늬가 된다. 고가 그림을 구매한 부호는 캔버스의 물감과 액자가 아닌 작가의 예술적 환상에 돈을 지불한다. 전시장 앞의 관객은 환상의 ‘기쁨’과 ‘전율’을 위해 다리가 아픈 수고를 기꺼이 감내한다.

  이 세계가 유니버스(Universe)가 아닌 폴리버스(Polyverse)라는 신과학자들의 생각이 있다. 불교의 ‘삼천대천세계’라는 해석과 맥락이 닿아 있다. 물리적 실체의 여부는 모르겠으나 인간의 심리환상구조는 폴리버스가 맞는 것 같다. 후기정보사회의 문화생산력은 콘텐츠에 ‘멀티(Multi)’와 ‘폴리(Poly)’구조를 요구한다. 뒤집어 생각해보니 인간의 문화의식도 그만큼 복잡해졌다. 복잡해진 세계(문화세계)를 대상으로 시를 쓰다 보니 시인들의 시도 복잡해진다. 그러나 시는 복잡함을 단순함으로 설명대신 암시로 표현하는 기법이 아니던가.

  인간의 내면과 외부세계는 칡넝쿨처럼 복잡하게 얽혀있어 인간의 의지와 운명이 세계상을 만들어내고 있고 예술도 그런 표현의 하나이다. 조지 엘리엇은 ‘예술이야말로 삶에 가장 가까운 것이다’라는 금언을 남겼다. 삶은 환원불가능한 세계상의 모습과 닮아 있고 예술은 삶의 경험을 상상으로 증폭(amplification)해서 관객에게 들려주는 음악이다. 세계상이 ‘시계’ 질서의 코스모스가 아닌 ‘구름’운동의 카오스라는 요즘의 과학은 그 스스로가 신비세계의 미로궁에 갇힌 테세우스가 되었다. 예술적 직관은 말한다. 과학이여, 네가 ‘아리아드네의 실’인 예술의 도움이 아니면 ‘지식의 미로’에서 영원히 탈출할 수 없을 거라고.

  자연의 두 얼굴인 과학과 예술은 몸이 하나이지만 얼굴이 두 개인 ‘야누스’로 표상된다. 실재의 자연은 하나이지만 이를 해석하는 인간의식이 이원적이기 때문이다. 의식이 이렇게 '변이(變移)'한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더 풍부한 세계상을 보고자 하는 생의 욕구였으리라. 자연의 힘 스스로도 중력, 강력, 약력, 핵력의 다중구조로 물리세계를 디자인 했다. 인간의 마음이 다중구조인 까닭은 인간도 자연시스템의 일부이기 때문이 아닐까 상상한다.

  시도 물론 당연히 다중구조로 삶과 세계의 모습을 암시해야 한다. 이미지와 이미지가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만화경의 풍경은 의미와 상상력의 증폭을 가져온다. 폴리버스(Polyverse)의 풍경 앞에 선 시인들은 고뇌한다. 자신이 발 디딘 세계의 좌표에서 어떤 시를 지렛대로 사용해야 다른 세계의 창문을 들여다 볼 수 있을까를 회의하면서.

 

 

  멀티라이프(Multi Life)와 시의 스크린(Screen) 

 

  신경미학은 인간의 미적경험을 신경학적 수준에서 이해하고 신경과학적 기술로 분석하는 경험미학의 한 분야이다. 런던대학에 신경미학원(The Institute of Nueroesthetics)을 설립한 세미르 제키(Semir Zeki)에 개척되었다. 이 분야는 추상미술에서의 자기표현과 신경기능사이의 시각적 유사성을 연구한다. 추상은 구체적 대상의 표현에서 본질적인 구도나 양상만을 표현할 뿐 나머지 부수적인 표현을 생략한다. 사물의 주요특성만 보겠다는 태도이다.

  우리 뇌도 이런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한다. 사물의 세부 정보를 모두 파악해 이해의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시간과 에너지 소모가 많다. 시 지각을 담당하는 뇌는 대상의 특징만 이미지로 저장했다가 다른 대상과의 차이와 같은 방식으로 비교하는데 과감한 생략을 사용한다. 이 과정에서 정보의 요약과 대조가 일어나는 시뮬레이션(Simulation)이 의미작용과 관련하여 인간에게 쾌락과 심미를 주는 것 같다. 신경미학자들은 화가의 표현이 인간에게 심미를 준다면 뇌신경 회로의 최적화가 이루어진 프로그램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예술과 사유의 표현은 신경회로가 작동하는 기전(system)의 외부표현이다. 그래서 거꾸로 예술작품과 문화의 표현을 연구하면 인간의 뇌 구조와 작동방식을 분석할 수 있다고 본다. 시란 사유와 언어의 추상이 결합한 결과이므로.

  신경미학은 시인의 뇌에서 일어난 지각과 추상이미지들의 결합을 뉴런의 결합과 매트릭스로 표현한다. 마음의 흥분(뇌 신경의 흥분)은 왜 일어나는가. 공감을 일으키는 거울뉴런( Mirror Neuron)이 존재한다고 한다. 타인의 행위와 의도를 그대로 알아차리고 모방하는 이러한 능력은 진화적 필요에 의해 발달되었다.

  인간의 꿈도 일종의 시뮬레이션이다. 뇌는 이 가상현실을 참이라고 여기는데 실제의 현실만큼 생생한 정보를 요구하지 않는다. 시도 일종의 꿈과 시뮬레이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시는 대상의 특질을 시인의 주관이 해석한 이미지와 결합해서 몇 개의 그림을 추상으로 그려낸다. 대상을 현실(산문)처럼 세세하게 묘사하지 않아도 우리는 시를 통해 시인이 보고자 한 대상의 특징을 알아차린다.

  시는 꿈을 꾸는 뇌의 작동방식과 같다. 멀티라이프(Multi Life)를 경험하려는 인간의 욕망이 있고 시의 스크린(Screen)이 펼쳐진다. 욕망은 시의 가상세계에서 리얼과 환상을 구분하지 않는다.

 

  

  메타 패턴(meta pattern)으로서의 시들 

 

  인간의 정신활동을 진선미로 구분하는 고전적 분류에서는 예술은 미(美)를 지향한다고 생각해 왔다. 요즈음 학문의 새로운 분류에서는 미(美)는 인간의 육체에서 발현하고 선(善)은 공동체의 관계(문화)에 관한 문제이며 진(眞)은 외부사물(세계)의 참을 구명하고자 하는 과학정신으로 보기도 한다. 미가 인간의 육체에서 발현한다는 생각이 흥미롭다. 미란 사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인간의 욕망형식이라는 귀결이기 때문이다.

  다소 모호한 정의이지만 미란 예술가가 생각하는 어떤 종합패턴을 드러내는 일이다. 연주가가 악보를 보고 음악패턴을 상상하는 것처럼 시인들은 사물을 보고 사물에 내재한 미의 패턴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상상한다. 사물과 사물의 패턴을 종합한 메타 패턴(meta pattern)이 결국 시가 드러내고자 하는 미의 주제와 감성이 된다. 메타 패턴의 크기는 높은 수준의 감수성과 이해력을 요구한다. 고급 시의 감상이 어려운 이유이다

  미가 소위 언어형식(문자, 음악, 그림을 모두 포함하기로 하자)에 어떻게 구현되는가는 창작과 비평의 핵심 주제이다. 양자 모두 작품을 떠나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해석은 그 자체가 넓은 의미의 예술이다. 독자는 그의 개성과 세계관에 따라 미적 판단을 다르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문독자는 창작자의 작품에 자신의 영감을 보태야 한다. 예술에 대한 역사적, 사실적 비평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예술창작이 기존의 도그마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는 만큼 해석도 자유로워야 한다. 예술에 모범 답안이 없는 만큼 해석도 모범답안이 없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의 창작은 실재(경험)와 환상의 불꽃을 결합하는 일이다. 불꽃이 없다면 어떻게 시를 쓰겠는가. 마음의 불꽃들은 잎을 떨어뜨린 겨울나무처럼 뿌리에 가 있다. 시인들은 ‘포에지’라고 부르는 예술의 원천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다. 시가 인간이 만들고 인간이 해석하는 만큼 대개는 인본주의적 가치가 반영된 작품들이 일반적으로 독자에게는 더 편하게 다가온다.

  시란 짧은 글에 전체적인 주제와 느낌을 전달하는 형식이므로 나무하나 혹은 몇 그루로 숲의 전체가 느껴지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표현된 글에서 진부하고 관습적인 형식의 글이나 무의미한 세부를 과감히 지우고 전체를 대표하는 정신만이 남아야 한다. 꼭 좋은 예는 아니지만 널리 알려진 추사의 「세한도(歲寒圖)」를 들어보자. 붓질 몇 개로 겨울나무와 세한(歲寒)의 정신을 그려냈다. 생산력이 적었던 시기에는 이러한 그림들이 당대 현실의 본질을 드러내는 문화의 추상(抽象)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지금은 자본과 물질 그리고 지식과 정보의 풍요가 결합한 문명의 활력(Amenity)이 넘치는 세상이다. 현대시가 표현이 많아지는 이유이다. 그렇지만 많은 이미지들이 동원되는 대신 드러내고자 하는 ‘숲의 전체’는 아마존 밀림처럼 더 사유와 느낌의 크기가 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대시가 추상하고자 하는 지금시대의 문화의 크기는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다. 자본과 기술이 많이 동원된 최근의 입체 영화 「아바타」를 보고 영화 주제와 대중의 신드롬을 정신분석학적으로 생각해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바타」를 오락영화로 본 사람들과 인디언 신화와 북구신화를 합성한 생태영성의 영화로 본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객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반응의 강도로 보아 영화가 대중의 마음 속 콤플렉스를 건드린 것은 확실하다. 이 영화가 융이 말하는 집단무의식의 원형을 드러냈기 때문일까. 시가 이 시대 문화의 콤플렉스를 건드리려면 어떤 장치가 필요할까. 더 연구하고 공부해야 할 숙제이다.

 

 

  공감(Empathy)의 능력과 자폐적 새로움에 대한 단상들

 

  어느 사이엔가 현대시란 재현이 아닌 표현이라는 등식으로 굳어졌다. 미술에서 표현주의가 20세기를 지배하면서 서구예술사조의 세례를 받은 우리 시단의 현주소다. 현대시는 표현의 새로움이 아니면 주목하지 않는다. 표현주의는 ‘작가 개인의 내부생명, 즉 자아(自我)․혼(魂)의 주관적 표현을 추구하는 감정표출의 예술’이 주를 이룬다.

  현대시는 정형화된 고전적 형식을 거부하고 작가가 주관으로 본 세계해석을 드러낸다. 언어란 인간이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의 창이다. 인식의 창은 세계를 바라보는 확장시야(Vision)이기도 하지만 틀(Frame)로도 작용한다. 법이나 시장질서 도덕 관습을 지탱하는 언어에 틀의 변화가 천천히 일어난다. 우리가 상식과 일상의 세계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다. 그러나 철학과 예술의 세계에서는 개념과 가능성의 세계이므로 언어가 기존의 인식과는 새로운 변화(틀)를 보여주어야 하기에 변화가 빠르다.

텍 스트를 어떤 방식으로 읽어내는가 하는 문제(수용미학)도 독자의 인식과 상상력에 달린 문제다. 결국 좋은 작품이란 작가와 독자의 공동 창의력에 의해 탄생한다. 작가의 사물과 세계에 대한 위대한 해석, 풍부한 표현력 못지 않게 독자의 인문학적 수용력과 삶에 대한 정열이 있어야 문학작품(시)의 신비와 비밀이 전달된다. 과학자들도 자신이 해석한 세계상(진리)를 드러내기 위해 직관을 사용한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은 '직감과 직관, 사고 내부에서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심상이 먼저 나타난다. 말이나 숫자는 이것의 표현 수단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마치 시인들의 마음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사물을 직관으로 아는 통찰이 시(포에지)의 중요 미덕이다. 스티븐 스펜더는 말로 표현되지 않는, 단지 암시된 어떤 것(포에지)을 단어를 가지고 나타내려는 시도야말로 '시가 행하는 무시무시한 도전'이라고 말했다. 시인의 마음에서 말하고자 하는 시의 에너지가 충만할 때 시의 표현은 저절로 불꽃처럼 피어오른다.

  제레미 러프킨은 『공감의 시대』에서 ‘공감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일부가 되어 의미있는 경험을 공유하게 해주는 심리적 수단’이라고 말했다. 또한 ‘공감은 갈수록 복잡해지는 사회적 교류와 인프라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접착제’라고 생각했다. 사회학자의 이런 정의가 아니더라도 시인들은 이 정의를 몸으로 느끼며 안다. 예술가들이야 말로 인간과 사물에 대한 공감능력이 없으면 작품을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기는 엄마의 배속에서 만들어지지만 하나의 개인은 관계를 통해서 만들어지듯이’ 시(포에지)는 시인의 마음에서 태어나지만 시 작품 자체는 문화사회적 관계에 의해서 정의되고 살아남는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아기는 공감능력의 장애로 타인과의 의미있는 관계에 실패해서 자폐아 같은 사회부적응자가 된다. 시도 이 경우에 대입할 수 있다. 한 편의 시가 태어나서 타인과 사회의 사랑이 없다면 시는 스스로의 고립과 외로움으로 말라죽는다. 시인은 타인과의 사랑과 인정을 갈망하며 다시 시작을 하지만 그 창작력과 열정은 떨어진다. 시인은 타인과 사회의 ‘마음 읽기’를 부단히 해야 한다. 일부 시인들이 영화 「레인맨」의 더스틴 호프만처럼 ‘자폐아 천재’의 능력을 동경하며 자신만의 언어나 생각을 드러내는 데 몰입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특수한 상황의 능력이 전체 상황에서 어긋난 그림이라면 사회문화적으로는 의미가 없다. 그런 시들은 ‘사랑을 받지 못한 아기’처럼 말라죽는다.

  ‘영장류에게 공감은 언어 이전의 형태로 개체와 개체를 이어주는 연결장치이다’라는 언술을 주목해본다. 언어는 공감을 드러내기 위한 몸짓에서 소리와 색채, 문자 등의 기호를 사용하는 추상에 이르렀다. 사회문화와 관계가 복잡해지면서 공감능력의 크기와 범위가 넓어졌기 때문이다. 예술은 표현의 언어이며 궁극적인 목적은 타인과 사회문화와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은유로서의 예술은 현실의 경험을 풍부하게 하고 새롭게 상상하게 한다. 새롭다는 것은 현실사회관계의 깊이와 넓이를 확장했다는 뜻이다. 뒤집으면 공감의 넓이와 깊이를 확장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가 자폐적 천재의 길로 가면 안 되는 이유이다.


 

  김백겸(시인, 웹진 시인광장 主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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