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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3 22:08

미완성의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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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완성의 울림


                                              /문 정 희




  “나, 미인대회에서 받은 트로피 다 버렸어.”

  지방에 사는 여동생 집에 전화했더니 예전에 멋모르고 미인대회에 나갔던 것을 후회한다고 했다. 미스코리

  아   예선전인 미의 대전에서 왕관을 받아 영광스러운 일인데, 시간이 흐를수록 부끄러움으로 남는다니.

  나는 좀 당혹스러웠다.

  하이라이트를 받는 무대 위의 미인이 아닌, 순수하고 소박한 미인이 되고 싶다 했다. 자신만이 갖는 개성미,

  그 개성미가 무엇인지 이제사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공감이 가는 얘기였다. 그날, 난생 처음 미인대회가 열리는 대회장에 나가 출전한 후보들을

  보며 진, 선, 미의 영예가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 맨 앞좌석에 앉아 있으면서도 판가름 못했었다.

  이왕이면 내 동생 에게 그 왕관이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는 유심히 그들을 눈여겨 보았다.

   날씬한 몸매, 오똑한 코. 서글서글한 눈, 하얀 치아. 단상 위에 한 명 한 명 나와 나란히 서 있는 미인들은

  하나같이 아름답고 모습이 비슷했다. 물론 키는 얼마라야 되고, 허리는 어느 정도 가늘어야 된다는 엄격한

  기준치에 달하는 후보들만 모인 탓인지, 얼굴이며 체형이 마치 자로 잰 듯했다.

  같은 여성으로써 시샘이었을까. 채소 가게에 진열된 쭉 고른 오이나, 당근, 고추처럼 모양새나 웃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어찌 그리 비슷할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사뿐한 걸음으로 무대 위를 행진하는 미인들이 선뜻 정이 가지 않았다. 아름다운 것은 분명한데,

  그 아름다움을 인위적으로 포장해 세상에 내 보이는 것 같아 내 눈엔 왠지 야단스럽게 느껴졌다. 타고난

  미모까지 경쟁하며 화려하게 불을 뿜게 해야 할 필요가 없는 듯 해서다. 


  한 편의 문학작품을 퍼내는 일도 그와 같은 일이 아닐까. 미흡한 글일망정 화려하게 세상에 내놓고 싶고,

  독자들에게 찬사를 받고 싶은 마음.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요즘 나오는 시나 수필들 흐름이 거의 비슷해! 그 글이 그 글 같고” 이런 얘기를 듣지 않으려면 나만의 뚜렷한

  개성이 필요했다.

  등단한 후로 글이 지면에 한 편 한 편 발표되면서 그러한 내 소망은 더욱 커지고 있었다. 늘씬한 몸매의

  미인처럼 내 글도 뛰어나게 잘 생기길 바랬다. 읽을 때마다 섬세한 감각이 나긋 나긋 배어 흐르고, 슬픔,

  기쁨이 잘 절제되어 품격 높은 글이었으면 했다.

  그래서인지 글이 활자화되어 지면에 내놓고 나면 겨우 이 정도인가 싶은 생각에 책장을 덮어버릴 만큼

  몸이 노곤해졌다. 하고 많은 일 중에 문학을 택했는데, “겨우 이렇게 밖에 쓸 수 없을까?” 생각하며 이유 없이

  나를 학대했다.

  그것도 모자라 언젠가는 틈틈이 써 놓은 원고들을 아파트 빈 공터로 상자 채로 들고 가 태워버리기까지

  했다.  이것들을 쓰려 그토록 피마르게 고통스러워했나? 하는 생각에 이르자 문학에서 일단 손을 떼기로

  마음 먹었다. 그 순간엔 그것들이 마치 한 장의 휴지 조각처럼 대수롭지 않은 물건일 뿐이었다.

  그러나 원고지에 불길이 달라붙는 순간 눈가엔 이슬이 맺히고 있었다. 글만 타고 있는 게 아니라 그 불길

  속엔 피땀 흘려 쏟았던 내 열정도 원고지와 함께 활활 타고 있었다.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 퍼부었던 내 혼까

  지 여지 없이 타고 있는 것이다.

  머리 속은 겉잡을 수 없이 흔들렸다. 금메달도 없고, 은메달도 없는 길. 종착역이 없는 길을 무작정 혼자 걸어

  건 아닌가 해서다.

  견디기 어려울 때 감미로운 음악에 기대듯, 그때도 습관처럼 슈베르트의 미완성을 들었다. 그 음악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는 것보다는, 미완성의 사랑은 완결 이상의 충만이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생각에 아무 생각

  없이 그 음악에 빠졌다.

  그때 무언가 가슴 문을 허물고 들어왔다. 마치 봄 흙의 보드라운 느낌처럼 마구 나의 가슴속으로 벅차게

  들어오는 것이다.

  헝클어진 마음을 추스르게 한 건 장엄하고 불타는 의욕을 자극했던 영웅주의적 음악이 아니었다. 은은한

  실내악의 소규모의 서정성 바로 그것이었다. 빈틈없이 완벽한 음률이 아닌, 어딘가 좀 미흡한 듯한 소탈하고

  느슨한 선율. 화려하지도 장엄하지도 않은 선율이 굳어 있는 마음을 꿰뚫고 들어오는 것이다.  

  내 글도 누군가에게 이런 울림이어야 했다. 엄숙하고 장엄한 벤자민 브리틴의 연주곡은 못 될지라도

  신경내과 전문의처럼 부드럽고 잔잔한 상처를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따스하고 유연한 울림…

  “나는 무엇 때문에 문학을 하는가?” 그 질문이 서서히 풀리는 듯했다. 나는 내가 차지하는 비중 중에 삼십 프로

  의 나와, 나머지 칠십 프로가 있다면, 그 칠십 프로는 내 글을 읽어줄 독자의 몫이었다. 그래서 마음을 열어

  이웃을, 친구를, 들에 핀 풀 한 포기마저 아름다운 눈으로 바라보려 노력했다. 그들에게 증오심이 가해질 때 나

  의 삼십 프로도 증오로 차게 되고, 그들을 사랑할 때 밝고 환한 느낌의 울림이 나머지 칠십 프로에게도 전달되

  는 게 아닐까.


  문학은 삶, 그 자체였다. 빈곤한 삶이든, 여유있는 삶이든, 신중하고 견고하게 삶을 붙잡아 주지 않는다면

  무슨  가치가 있을까.

  이제 나는 높은 이상을 달성하려 스스로를 닥달하며 조바심치지 않을 것이다. 그저 본래의 향기가 무엇인지,

  하고 많은 목숨 중에 나만의 품을 수 있는 고유의 향기는 무엇인지, 그것만을 생각하면 될 일이었다.

  그래서 눈이 가서 머무는 곳엔 미미한 미물까지도 숨죽여 엎드려 들여다보았고, 나를 성원해 주는 스승이나

  부모님께 짤막한 한 장의 편지를 보내며 감사했다. 답장이 없는 글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새록새록 나의 그리

  움을 간결하고도 낮은 음성으로 빈 백지 위에 수놓아 보내면, 그 울림이 마음 한 자락에도 가 닿을 게 분명

  하기 때문이다. 백지를 펴고 앉아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생각이 멎어질 땐, 언어가 고갈되고 감정이 이미

  메말라 있음이 증거라 하지 않은가.

  이제는 한 점의 색깔로 선명하게 전달해야 할 것이다. 내가 아닌 내 글을 읽어줄 독자들에게. 존재 가치가

  넉넉한 마음속, 한마디의 언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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