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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이미지와 삶

김기택

 


1. 시의 언어는 이미지이다

 

‘노점의 빈 의자를 그냥/ 시라고 하면 안 되나/ 노점을 지키는 저 여자를/ 버스를 타려고 뛰는 저 남자의/ 엉덩이를/ 시라고 하면 안 되나’


- 오규원, 「버스 정거장에서」 부분

 

시인이 묻습니다. 노점의 빈 의자가 시가 될 수 있을까? “나는 내가 무거워/ 시가 무거워 배운/ 작시법을 버리고/ 버스 정거장에서 견딘다”고 말하는 걸 보면, 화자는 작시법에 충실하게 아름답게 쓴 시를 책상에 앉아서 읽는 게 재미없다는 겁니다. 아무리 시의 언어가 매끄럽고 비유나 이미지가 아름답고 리듬이 자연스럽고 인생과 세계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깨달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고정관념에 매인 시적 인식, 틀에 박힌 아름다움은 지겹다는 겁니다. 그런 시를 읽느니 차라리 삶의 현장인 버스 정거장에 가서 먼지와 때와 상처투성이인 노점 의자를 보는 게 더 생생하고 실감난다는 겁니다. 노점의 빈 의자에는 일부러 꾸민 것이 없고 인간중심적인 사고에서 나온 작위적인 의미가 없으며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다 살아있는 세계입니다. 활자로 의미로 관념으로 안전하게 잡아서 죽인 시보다 노점의 빈 의자가 더 큰 감동을 주니 이것이 오히려 진정한 시가 아니겠느냐고 묻는 겁니다.

언어를 쓰지 않으면 문학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인용시의 질문은 애초부터 성립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터무니없는 질문을 했을까요? 언어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성찰 없이 관습적으로 시를 쓰는 태도를 비판하려는 것입니다. 시인은 계속해서 “배반을 모르는 시가/ 있다면 말해보라/ 의미하는 모든 것은/ 배반을 안다”고 말합니다. 오규원 시인은 인간중심적인 사고의 산물인 언어가 불순하기 때문에 틀에 박힌 시작법에 기대어 시에서 뭔가 대단한 것을 찾으려는 독자를 골탕 먹이기 위해 이 시를 쓴 것입니다. 언어가 시를 배반한다면, 시인이 바라는 바를 언어가 표현해 줄 수 없다면, 어떻게 시를 써야 할까요? 시인은 불가피하게 언어를 쓰지만, ‘언어를 쓰되 언어를 쓰지 않는 언어’(박이문)를 씀으로서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합니다.

언어는 사물을 기호로 대체한 것입니다. ‘사과’라는 말은 실제의 사과가 아니라 기호입니다. 사과라는 말은 먹을 수가 없습니다. 만질 수도 없고 냄새 맡을 수도 없습니다. 사과가 달다고 말할 때 혀는 그 단맛을 느끼지 못합니다. ‘달다’라는 말을 처리하는 데 혀의 미각은 참여하지 않습니다. 뇌가 이 말을 처리합니다. 그래서 ‘달다’라고 말하는 순간, 혀는 소외되는 것입니다. 사과라는 사물은 소외됩니다. 자연과 세계도 소외됩니다. 우리 몸이 소외됩니다. 몸의 감각과 감정과 정서가 소외됩니다. 그리고 나 자신도 소외됩니다. '달다'라는 말은 개념입니다. 개념이란 우리가 경험한 내용을 평균화ㆍ일반화ㆍ추상화한 것입니다. ‘달다’라는 개념에는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평균적인 맛이 있습니다.

‘슬픔’이라는 감정을 말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체험한 슬픔은 다른 누구의 체험과도 다른 유일무이한 것이고 대체불가능하고 고유한 것입니다. 그러나 '슬픔'이라고 말하면 그 대체불가능성, 고유함은 사라지고 평균적인 것이 됩니다. 내가 느낀 생생한 느낌은 사라지고 슬픔이라는 개념만 남게 됩니다. 개념으로서의 슬픔은 괴로움이나 기쁨이나 즐거움과는 다른 어떤 감정 상태를 지시하는 의미일 뿐이지 우리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생생한 사건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이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머리는 활동하겠지만 감정이나 정서는 거의 참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언어가 우리 마음, 감정, 정서를 소외시키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겁니다.

우리가 언어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은 추상적인 세계, 자연과의 접촉이 없는 가상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몸은 지수화풍으로 된 사물입니다. 자연과 살과 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언어를 쓰면 우리 몸은 자연과 분리됩니다. 인간은 수천, 수만 년 자연과 더불어 살아왔으므로 우리의 피에는 자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자연과 함께 있을 때에만 충족되는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자연과 떨어져서 살고 있고, 우리가 소외시킨 자연을 언어로 대체하여 살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문학은, 특히 서정시는 우리가 잃어버린 자연, 몸의 낙원을 언어를 통해 회복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박이문은 시적 언어를 ‘언어를 쓰되 언어를 쓰지 않으려는 언어, 언어에서 해방되려는 언어’라고 한 것입니다. 시는 ‘사고되기 이전의 피부로 느낀 가장 원초적이며 직접적인 체험을 표현’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불가피하게 언어를 쓰기는 하지만 ‘언어 이전의, 언어로는 대치할 수 없는 가장 구체적인 경험이나, 경험의 대상 자체를 그냥 그대로 보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르트르는 ‘시인은 단번에 도구로서의 언어와 인연을 끊은 사람이다. 시인은 말을 기호로서가 아니라 사물로서 본다는 시적 태도를 단호하게 선택한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색깔이나 소리를 마술적으로 배합하여 그것들이 서로 끌어당기고 떠밀어내고 불태우고 결합하면서 ‘사물로서의 문장’이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불가피하게 언어를 쓰지만 그 언어는 끊임없이 사물 자체가 되려고 합니다. 언어가 사물의 물성을 풍부하게 지녀서 감각과 감정을 일으키는 기능을 할 때, 우리는 이것을 이미지라고 부릅니다. 


 

종이 위에 ‘수련’이란 글자를 쓰자마자

종이는 연못이 되어 출렁이고

자음과 모음은 꽃잎과 꽃술이 되어 피어난다.

 

만년필에서 흘러나오는 푸른 잉크는

종이 위에 적셔지며 선들로 뻗어 나가거나

둥글게 뭉쳐져 덩어리를 이룬다.

물위에 떠 있는 짙푸른 잉크-잎들.

 

연못 가장자리

녹색 쟁반 위에 흰 수련

과일 같은 하얀 피부가 물위에 씌어진다.

햇빛의 뾰족한 끝에서 공기가 흘러나오면

투명한 수면 위에 수련이 기록된다.


- 채호기 「수련의 비밀 1」 부분


 

시인은 종이 위에 펜으로 수련이라고 쓰지만, 그가 쓰는 말은 수련이라는 관념을 벗어나 수련 그 자체가 되려고 합니다. 종이는 연못이 되려 하고, 자음과 모음은 꽃잎과 꽃술이 되려 하며, 잉크는 수련의 줄기가 되려 하고, 이 모든 것들은 스스로 움직이고 자라고 결합하면서 피부와 향기와 색깔을 지닌 사물의 풍만한 육체가 되려합니다. 시인은 온몸의 감각과 감정의 쾌감으로 이 체험을 즐깁니다. 시인이 쓴 것은 수련이라는 말이 아니라 수련을 보는 체험, 더 나아가 자신의 육체가 수련으로 변형되는 체험입니다. 거기에는 물과 햇빛과 공기와 교접하고 섞이는 즐거움, 결국 자신은 없어지고 물과 공기와 식물성 육체가 끈끈하게 결합하고 뻗어나가는 운동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내 안에서 사물이 운동하고 오감과 감정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미지로 말할 때, 우리는 이상한 기쁨을 느낍니다. 이것이 시를 쓰는 즐거움입니다.

 

2. 이미지는 삶에서 나온다

  

이미지는 시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시의 전유물도 아닙니다. 시 이전에 이미지는 우리들의 몸속에, 그리고 일상 속에 널려있습니다.

 

“나는 내 일생 동안 마셔보았던 모든 신선한 음료수를 다 그려보았다. 어린 시절에 마셨던 진저 비어, 거품이 이는 흑맥주, 워딩튼 생맥주, 마개를 따서 마실 때까지 시냇물에 시원하게 담가두는 뮈스카데 포도주, 핌스 맥주, 그리고 샴페인을 시원하게 냉각시키는 얼음통…….


- 다비드 르 브르통,『걷기예찬』

 

이 인용문은 혹독한 태양 아래 힌두쿠시산맥을 따라 나아가면서 시냇물을 마셔야 했던 사람의 고백입니다. 갈증이 심한데 주변에 물이 없으니 마음에 온갖 시원하고 맛있는 음료수가 떠오릅니다. 상상으로 마시는 음료수는 가짜이지만, 갈증이 심하면 실제와 같은 강렬한 힘을 갖습니다. 극심한 갈증이라는 결핍이 시원한 물을 마시고 싶다는 욕망을 부르고, 그 욕망이 시원한 음료수라는 이미지를 낳는 것입니다.

 

갈증(결핍)→ 물 마시고 싶다(욕망)→ 물 마시는 상상(이미지)

 

결핍이 크면 클수록 욕망도 커지기 때문에 그 욕망이 만든 이미지의 힘도 그만큼 강해집니다. 이미지는 우리가 경험한 내용을 마음에서 재생시킨 것입니다. 그것은 상상으로 만든 허구입니다. 결핍이 충분히 크고 충족을 갈망하는 욕망이 간절하다면, 그 허구는 실제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가까워지고 감각과 감정의 현실감은 그만큼 커집니다. 진짜와 같은 가짜,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가 되는 것입니다.


 

아 바람아, 이 더위를 찢어 열어라,

이 더위를 베어 갈라라,

더위를 갈기갈기 찢어라.

 

과일도 떨어질 수 없다

이 짙은 공기를 뚫고―

과일은 배의 뾰족함을

압박하고 무디게 하며

포도를 둥글게 하는

더위 속으로 떨어져 들어갈 수 없다.

 

이 더위를 찢어 뚫어라―

이 더위를 뚫고 갈아서

네가 가는 길가에

파헤쳐라.


- 힐다 둘리틀, 「더위」 전문

 

창문을 열어도 바람이 들어오지 않는 더위. 숨을 쉬면 더위가 콧구멍을 콱 막아 숨통이 막히는 것 같은 답답한 더위. 이 시는 바로 그런 답답한 시적 화자의 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운 공기가 고체와 같은 물질로 변질되어 있습니다. 숨을 쉬면 마치 묵 같은 물질이 콧구멍을 턱 막는 것 같은 느낌이 드니 그 더위를 베고 찢고 갈라 버리라고 소리치는 것입니다. 스트레스나 현실의 압력이 마음을 꽉 누를 때, 억누르는 힘은 바로 이 더위와 같은 성질을 지니지 않았을까요?

 


방거죽에극한(極寒)이와닿았다. 극한이방속을넘본다. 방안은견딘다. 나는독서의뜻과함께힘이든다. 화로를꽉쥐고집의집중을잡아땡기면유리창이움푹해지면서극한이혹처럼방을누른다. 참다못하여화로는식고차겁기때문에나는적당스러운방안에서쩔쩔맨다. 어느바다에조수가미나보다. 잘다져진방바닥에서어머니가생기고어머니는내아픈데에서화로를떼어가지고부엌으로나가신다. 나는겨우폭동을기억하는데내게서는억지로가지가돋는다. 두팔을벌리고유리창을가로막으면빨래방망이가내등의더러운의상을뚜들긴다. 극한을걸커미는어머니―기적이다. 기침약처럼따끈따끈한화로를한아름담아가지고내체온위에올라서면독서는겁이나서곤두박질친다.


- 이상, 「화로」 전문

 

난방할 돈이 없었던 이상 시인은 식은 화로를 껴안고 독서에 집중하여 추위를 견뎌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독서의 힘으로 추위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시적 화자는 강추위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맙니다. 얼마나 열심히 책을 읽는지 독서의 집중력이 “집의집중을잡아땡기면유리창이움푹해”진다고 합니다. 또 유리창 밖에서는 얼마나 독한 추위가 방안을 넘보는지 “극한이혹처럼방을누른다”고 합니다. 유리는 깨질지언정 휘어지지는 않는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추위(결핍)를 견디려는 시적 화자의 간절한 갈망(욕망)이 유리창도 휘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추위에서 벗어나고픈 절실함은 방바닥에서 어머니가 생겨나게 하고 어머니는 화로를 데워오게 하는 데 이릅니다. 위의 두 시에서 이미지의 신선함과 강렬함은 바로 시인의 결핍의 크기와 욕망의 간절함이 낳은 것입니다. 일상적인 체험의 힘이 곧 이미지의 진정성과 허구를 진짜처럼 만드는 실감을 만든 것입니다.

 

3. 이미지는 ‘나’이며 존재다

 

우리의 경험 내용은 대부분 망각되지만 기억이나 감각, 감정 등은 몸에 저장되었다가 어느 순간 자극이 되면 깨어나 마음에 재생되면서 활동하게 됩니다. 마음에 재생된 온갖 사물과 영상, 그것이 자극한 오감 등이 바로 이미지입니다. 우리의 욕망이 불러낸 이미지는 달력 그림처럼 고정되어 있거나 가만히 정지해 있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움직이는 데에 따라서 활동합니다. 헛것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사물과 같은 힘을 발휘하고 시인과 독자의 감각과 감정을 자극하면서 그들의 마음과 정신에 영향을 줍니다. 살아있는 이미지는 내면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마음껏 숨 쉬게 하고, 현실에서 해방된 새로운 시공간을 꿈꾸게 하고, 몸과 마음에 잠재적으로만 존재하던 새로운 나를 만나게 해줍니다. 이미지가 이런 작용을 할 때, 마음과 정신에 긍정적인 가치를 부여하게 됩니다.

 

풀 한 포기를 살펴보라, 큰 나무 한 그루를 보고 감탄하라, 그래서 그것이 공중에 흘러나오는 한 줄기 세워진 강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머릿속에서 알아보도록 하라. 물은 나무를 통해 빛을 마중하러 나아간다. 물은 땅의 소금 얼마를 가지고, 햇빛을 사랑하는 형상 하나를 스스로 그려낸다. 물은 가벼운 손들 달린 그 흐르는 힘찬 팔들을 우주를 향해 내밀고 뻗친다.


- 발레리, 「물노래」 부분

 

이 시의 화자는 나무를 ‘한 줄기 세워진 강물’이라고 부릅니다. 그 순간 딱딱한 고체인 나무, 움직이지 않고 한 자리에 고정되었던 나무는 물과 같은 운동을 합니다. 땅 속의 물이 햇빛과 바람과 무한한 공간을 사랑하는 현상이 된 것, 그것이 바로 나무라는 겁니다. 어둡고 축축하고 닫힌 공간에서 나와 무한한 공간을 향해 솟구치고 싶은 욕망이 고체의 사물을 액체로 변형시킨 것입니다. 그 순간 나무는 도약하고 팔 흔들고 춤추며 햇빛과 하늘을 향해 적극적으로 구애를 하는 물질성을 갖게 됩니다. 고체에서 액체로 변형된 나무는 어둠과 닫힌 공간에서 해방되어 무한한 공간에서 운동함으로써 심리적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어 세계를 들이마시고 내쉬며 숨 쉬게 해주는 존재 자체가 됩니다. 시인의 심리적인 현실이 됩니다.

사물의 성질은 인간의 심리적인 구조와 닮았습니다. 가뭄에 말라 죽어가는 초목을 촉촉하게 적셔서 생명을 살려내는 봄비의 물과 닥치는 대로 건물과 도시를 파괴하고 사람과 동물을 죽이는 쓰나미의 물은 같은 물인데도 마치 성분이나 성질이 다른 것처럼 느껴집니다. 봄비의 물은 생명을 살리는 부드러움과 이타성 같은 모성적인 성질을 지닌 반면 쓰나미는 가공할 만한 힘과 무자비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같은 물이라도 처한 환경과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성질을 지닙니다. 쓰나미는 부드러운 봄비가 될 수 있고, 동식물이 마시는 부드러운 물도 파괴적인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물의 성질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물 뿐만 아니라 불도, 바람도, 땅도 모순적인 이와 같은 이중적인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 , 공기, 땅이 처한 상황에 따라 생명을 살리거나 파괴하는 성질로 변하듯이 인간도 제 안의 두 성질이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 변화합니다. 누구에게나 부드럽고 자비로운 성품이 있는가 하면 맹수처럼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성질도 있습니다. 이 양면성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의 심리적인 드라마는 자연에서 늘 펼쳐지고 있으며, 자연이 보여주는 변화무쌍한 드라마 역시 인간의 내면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내면의 드라마가 일상이 되고 사건이 되고 역사가 됩니다.

프랑스 철학자 바슐라르는 “상상력이 이중으로 살게 할 수 없는 물질은 원초적인 물질의 심리적인 역할을 할 수 없다. 심리적인 이가성(양가성)의 계기가 되지 않는 물질은, 끝없는 전위를 가능케 하는 그의 이중의 시학을 찾아가지 못한다. 따라서 물질이 전 영혼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그 물질에 대한 영혼의 이중의 참여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눈이 왔다. 포근하게 왔다. 아니지. 처음에는 난폭하게 왔다. 차갑고 춥고 시리게. 그러나 저녁이 올 때 눈은 순하게 왔다. 따스하였다. 눈 하고 불러본다. 눈 하고 따라하는 메아리가 들린다. 눈 풀꽃잎 결정들이 모여든다. 눈이 깊이 오고 깊이 오고. 나는 가끔 거리의 외등 아래서 호흡을 멈추곤 하였다. 마을에서 마을로 떠돌아다니다가 이제는 더 이상 떠돌 수 없어 얼어 버릴 작정이었다. 눈이 왔다. 오늘. 하얗게 눈이 왔다. 아니 파랗게 왔다. 그러나 빨갛게, 어머니가 놓고 가버린 핏줄처럼 빨갛게 오기도 하였다. 작년의 눈을 생각하며 유리창에 더 많이 풀꽃잎을 붙여나갔다. 그 높은 곳. 은지팡이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탁탁. 어린이 이야기 책 속의 그림. 먼저 간 어머니는 천사가 되어 눈 오는 밤이면 은지팡이 짚고 내려온단다. 탁탁. 아아, 내려오세요, 어머니. 이 지상으로. 은지팡이 짚고 내려오세요. 어머니는 지팡이로 제일 고요한 곳을 쳐 길을 내었다. 길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길이 맨 꼭대기 벗은 가지 끝에 닿자 그 옆의 잔가지들이 떨렸다. 길도 같이 떨렸다. 떨리며 내려오던 길이 엉킨 가지들 속에 묶였다. 그 자리에서 아득한 물안개가 일었다. 마침내 그 길은 내 두 눈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아, 눈에는 등() 빛 같은 정신이 숨어 있었다. 눈이 왔다.


- 이진명, 「눈」

 

이 시에는 눈의 두 가지 성질이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는 차갑고 시린, 생명에 위협이 되는 폭력적인 성질이고 다른 하나는 하얗고 포근하고 따뜻한 성질입니다. 시적 화자는 이 눈이 처음엔 차갑고 시리게 왔지만, 저녁에는 순하고 따뜻하게 왔다고 말합니다. 시인의 마음도 바로 이 눈의 양가적인 성질에 따라 변화합니다. 극도로 상심해 있는 시적 화자는 처음엔 일부러 눈을 다 맞으며 떠돌아다니다가 “얼어 버릴 작정이었다”고 고백합니다. 눈의 폭력적인 힘을 빌려서 괴로운 몸을 죽이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다가 유리창에 붙은 눈에서 풀꽃잎 무늬를 보며 성탄절 장식을 연상하게 됩니다. 그 풀꽃잎 무늬는 다시 죽은 사람이 천사가 되어 눈 오는 밤에 내려온다는 동화로, 그 동화 속의 은지팡이로, 은지팡이로 길을 내고 내려오는 어머니로, 그리고 나무에 내렸다가 시적 화자의 눈으로 흘러내리는 눈물로 변화하며 녹아내립니다. 난폭한 눈의 성질은 시적 화자의 상실감이 녹아 눈물로 변하면서 정화되어 맑고 따뜻한 성질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심리를 닮은 사물과 자연의 성질은 그대로 시에서 시인의 정신과 마음을 나타내주는 이미지가 됩니다. 이런 이미지가 살아있는 작품에서는 사물과 인간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가 됩니다. 인간의 정신과 마음을 담아내고 심리적인 드라마를 보여주는 이미지는 바로 인간 존재가 되어 내면에서 새로운 시공간을 찾아, 전에는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자아를 찾아, 억눌린 마음을 해방시키고 숨 쉬게 해주는 삶을 찾아, 꿈을 꾸게 해줍니다.

이미지가 ‘나’라는 존재 자체가 될 때, 그래서 과거의 시공간을 새로운 시공간으로 확장시키고 변화시킬 때, 예전에 알던 ‘나’가 새로운 ‘나’로 변화할 때, 물질에서 계속 새로운 ‘나’가 태어나는 것을 경험할 때, 이미지는 마술적인 기능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미지는 ‘나’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 결코 마술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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