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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6 16:23

권 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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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시, 수필
이메일 yep0810@hotmail.com

                                       

                                                 권영은.jpg

                                                


                                                 *경기도 강화 출생
                                                 * 숙명여자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졸업
                                                 * 아이오와 대학교 영양학 석사
                                                 * 2004년 “향인문학” 등단
                                                 * 2005년 워싱턴 문학상 당선
                                                 * 주간 워싱턴 문인광장에 수필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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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Two

 


  "엄마, 엄마는 학교 다닐 때 모범생이었지?"
 "글쎄, 머리는 귀밑 1.5센티, 구두는 늘 반짝반짝, 칼라는 풀을 먹여 빳빳하게. 하긴 그 때는 거의 모든 학생들이 다   그랬어.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으니까"
 "아마 엄마가 유난히 더 그랬을 거야. 남학생은 안 사귀었어?"
 "학교하고 집만 왔다갔다, 앞만 똑바로 보고 걸었으니 어디 남학생 만날 기회가 있었겠니?"
 "아빠는 아닌 것 같던데?"
 "응, 아빠는 약간 문제 학생이셨던 것 같더라. 책가방은 주로 옆구리에 끼고, 모자는 늘 삐딱하게 쓰고, 교복단추  몇 개는 열어 놓고"
 "호호, 정말? 그러셨을 것 같아. 여자 친구는?"
 "그래, 우리학교 선배언니하고도 사귀셨다고 하던데, 아니 주로 따라 다니었나봐."
 "정말! 엄마도 알아? 그 선배?"
 "그럼 꽤 유명한 언니였어. 한 학년 위였는데 예쁘고 똑똑하고"
 "그런데 그런 이야기 듣고도 엄마는 아무렇지 않았어?"
 "뭐가?"
 "음. 그런 거 있잖아, 질투 같은 거"
 "얘는, 아빠가 나한테 이야기 하신 것을 보면 심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더구나 고등학교 때 일인데 그런걸 뭐  신경 쓰고 그러냐."
 "그래도. 더구나 요새는 인터넷으로 첫사랑 찾는 것이 유행이라던데……. 엄마가 너무 무심한 것 아닌가? 내가  들어도 기분 별로인데."
 "하하. 딸밖에 없구나." 
 

 "김 선생님, 어젯밤 선배님 너무 늦게 보내드려 죄송해요. 꽤 많이 드셨는데, 아침에 괜찮으셨어요?"
 "네? 예! 뭐, 괜찮지요. 그럼요!"
 어젯밤, 잠결에 남편이 들어오는 소리를 듣기는 들었던 것 같은데 공연히 내 잠만 설칠까봐 눈도 떠보지 않았으니  몇 시였는지 알 길이 없고 남편 역시 오밤중에 마누라 잔소리 듣기 싫어 살그머니 들어와 멀찌감치 누웠을 것이다.
 중 3 담임을 맡고 있는 나는 3 학년 학생들 졸업시험 준비 때문에 딸 도시락만 겨우 싸 놓고 남편은 자는지 깼는지  쳐다 볼 사이도 없이 새벽같이 뛰어 나왔다.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남편이 어떤 모습으로 들어왔는지, 오늘 어떤  기분으로 일어났는지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우리학교 체육과 담당이며 나 하고는 사범대학 동기인, 따라서 우리  남편에겐 같은 대학 이 년 후배인 박 선생과 어젯밤 늦게까지 한 잔을 했다는 사실을 방금 박 선생 자신의 입을 통해  들은 것이 전부이니 적당히 얼버무릴 수밖에. 중 고등학교 선생님들의 행동반경이라는 것이 그리 멀지도 않거니와  비싼 술집 같은 데는 갈 처지도 못 된다는 것을 같은 직업을 가진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남편이 누구를  만나서 한 잔을 했는지 어디에 가서 노래를 불렀는지 일일이 알려고 한 적도 없거니와 그럴 필요도 없었다.
 "김 선생님, 바쁘시더라도 선배님께 신경 좀 쓰세요."
 "네?"
 "중년을 지나고 있는 같은 남자의 입장에서 서로 안쓰러워서 그래요. 머리는 희끗희끗 해지지요. 몸은 하루가  다르지요. 사는 게 뭐 별겁니까 부부가 서로 아껴주고 받아주며 알콩달콩 사는 것이지요."
 "저의 애 아빠가 박 선생님께 무슨 말을 하던가요? 가을인데 마누라가 보약 한 제 안 해 준다고 불평이라도 했어요?"
 "그럴 리가 있나요. 그 보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문 선배님 노래솜씨는 대단해요. 전에 제가 임시교사로 같은 학교에  있을 때에도 선배님은 노래 때문에 학생들에게 인기 최고셨는데, 어제도 '사랑 two'를 기가 막히게 부르시더라고요.
 나이 들어도 마음은 청춘이니까요. 사랑은 더 애틋하죠."
 사랑 two? 그런 노래도 있었나?' 딸이 하던 말이 갑자기 생각났다. '질투, 옛사랑, 첫사랑……. 이번엔 웬 '사랑 two'?
 두 번째 사랑이란 소린가? 두 사랑을 동시에 한다는 말인가? 아니면 다시 온 사랑? 그러고 보니 요즘 이 사람 가끔
 혼자서 멍하니 앉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옆에 와서 생전 안 하던 살가운 소리를 해 대기도 하고, 특히 핸드폰에  무척 신경을 쓰는 것 같기도 하고……? 나이 들어……. 사랑은 더 애틋하다고…….
 "김 선생님!"
 "네?"
 "뭘 그렇게 놀라세요.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고 계셨기에. 호호……. 우리 반 부반장 아시지요?"
 "네, 왜요?"
 "언제 시간 내서 그 아이 상담 좀 해 주세요. 아직 결혼도 안 한 제가 도와주기엔 좀 그래서요. "
 "무슨 일 있어요? 성적도 좋고 잘 웃는 것 같던데"
 "글쎄, 부모님이 이혼을 했다네요. 내용이야 잘 모르지만, 그 어머니 꽤 소박해 보였는데. 그러니 여자들 자기 치장도  못하고 알뜰살뜰 살림해야 남편에게 촌스럽다는 소리나 듣지, 누가 알아주기나 하나요. 남편 바람피우는 것도 무조건  남편 책임만은 아닌 것 같아요. 전 이담에 결혼해서 그렇겐 안 살 거예요."
 결혼 후 단 한 번도 질투는커녕 남편에 대해 의심이라는 것을 해 본적이 없었다. 졸업을 하고 나는 문교부에 근무하시는 큰 아버지 덕으로 지금 근무하는 여자중학교에만 가정선생으로 20년 가까이 버티고 있지만, 공립학교 영어선생인 남편은 가끔씩 전근을 다녔고 그래도 젊은 시절, 여고에 근무하는 동안에는 학생들의 핑크빛 편지나 카드가  심심치 않게 집으로 배달 되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일에 별로 신경을 쓴 적도 없었고 사실 그런 일에 신경을  쓸 만한 여유도 없이 바쁘게 살아 온 날들이었다.
 사범 대학에 입학을 하고, 다른 여대생들처럼 멋을 부리거나 미팅 같은 것엔 별 관심도 없이 밍밍한 대학 일 학년을  시작하고 있었다. 축제 때 파트너 없는 서클사람들 끼리 잔디에 둘러 앉아 노래 부르기를 하는데, 라일락이 피던 그  봄날까지 물들인 야전잠바만 걸치고 다니던 말 없는 선배의 윤형주 뺨치는 목소리에 그만 나의 눈과 귀가 번쩍뜨이고 말았던 것이다. 쟤네들 진짜 커플 맞아? 하는 의심을 받을 만큼 미지근한 세월을 보내긴 했지만 상대방이  떠날 것이라는 생각은 해 본적도 없고 다른 사람이 곁에 있다는 상상은 꿈에도 할 수 없는 두 사람이었다. 어쩌면 남편에 대한 믿음은 신앙에 가까울 정도 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딸이 고등학교를 다니는 이 마당에 이 무슨  해괴한 생각을 하는 것인지. 이러다 의부증환자가 되는 거 아냐? 내가? 하하하. 왜 아냐? 나 같은 사람이? 남편에게 별로 관심도 없는 줄 알았는데……. 정말? 글쎄……. 아니었나? 
 

 “이 선생님, 며칠 전 부탁하셨던 학생 카운슬링, 선생님 반 부반장, 부모님 이혼 때문에 걱정 하셨잖아요. 어제 방과  후 잠깐 이야기 했어요. 녀석, 속이 꽉 차 있더라구요. 아빠가 사업상 만나던 여자와 사업자금 때문에 곤란한 입장에  놓이셨다면서 이혼을 하지 않으면 회사가 버티지 못할 처지였데요. 언젠가 아빠가 돌아오실 거라고, 엄마와  동생  불쌍해서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각오가 대단해요. 안 되긴 했지만 너무 염려하지마세요”
 “그래요! 아무튼 요즘은 돈 많고 능력 있는 무서운 여자들이 많아요. 김 선생님은 걱정 안 하시겠지만 아무튼  애인단속 남편단속들 잘 해야지요.”
 "왜요? 우리남편은 인기가 없어 보여요? 하하하……. “
 “문 선생님은 애처가에 틀림없는 보증수표라고 소문이 났던데요.”
 “글쎄요……. 그야 모르지요…….” 
 

 어젯밤엔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어찌나 큰지 옆에서 통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결혼 후 이제까지 단 하룻밤도 잠을  설치게 한 적이 없던 그 소리가 왜 갑자기 천둥소리처럼 느껴지는지. 자는 남편의 다리를 가끔씩 발로 툭 차면 잠시 끊겼다가 다시 이어지는 소란한 소리에 잠을 잤는지 꿈만 꾸었는지 찌뿌듯한 아침이다. 그나저나 남편은 오늘따라  왜 저리 기분이 좋은 것인지 샤워를 하며 부르는 노래 소리가 목욕탕문밖까지 들려온다. 나는 또 왜 이러나. 내가  언제 남편의 샤워소리 노래소기까지 귀에 담아 본 적이 있었다고. 쏟아지는 물소리와 넘치는 노래 소리 사이로  우렁차게 울리는 남편의 핸드폰소리. 내 전화도 아닌데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머뭇하며 문갑위의 전화기를 집어 들자 겨우 한 번 울린 벨소리가 멈추더니 문자메시지가 들어온다. ‘레스토랑 이름, 추억 그리고 첫발자국. 학교로 전화 드리겠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누가 보낸 메시지인가? 기겁을 하고 핸드폰을 내려놓는데 머리카락이 모두 위로 서고 피가 거꾸로 도는 것 같다. 도대체 이런 야릇한 이름의 레스토랑에 누구랑 가려고 하는 것일까?
 학교까지 태워다 주겠다는 남편의 제의를 거절 할 기분조차 나질 않고 사람 많은 지하철을 타기 위해 계단을  오르내릴 힘도 없어서 그냥 말없이 남편의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교통방송 듣는다고 막히던 길이 뚫리는 것도 아닌데, 저 시끄러운 라디오는 뭐 하러 노상 틀어 놓는지. 하긴, 저 소리라도 들리지 않으면 이 작은 공간에서 숨이  꽉 막혀 버렸을 터인데,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라디오 소음의 위로도 잠시, 윤도현의 '사랑 two'를  보내 드리겠다는 아나운서의 다정한 소리에 그만 눈물이 울컥 나와 얼굴을 창밖으로 얼른 돌렸다. 박 선생과 술  마시고 그토록 잘 불렀다는 노래. 남편의 가슴속에 숨어 있던 누군가가 저 노래 소리가 들릴 때마다 살며시 미소  지으며 나타나는 생각을 하니 차와 함께 달리고 있는 멀리 한강물에 돌멩이라도 힘껏 던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저 큰 강에 나 같은 사람이 돌멩이를 백 날 던져봐야 물 위에 자국 하나도 남기지 못 할 것이고, 옆에 앉은 남편이 눈 하나 깜짝 할 리도 없다. 역시 그랬구나! 추억속의 첫 사랑을 찾았구나. 남들이나 하는 줄 알았던 옛 애인찾기 대열에 이 사람도 끼어 있었구나. 아니지, 나이 훨씬 어린 옛 제자가 젊디젊은 모습으로 찾아왔는지도  모르지……. 그럴 수 있지. 소설 같은 상상이 이아침 현실이 되어 내게 나타났다는 기막힌 생각이 들었다. 
 

 "김 선생님, 아까 저희 반 반장 왔었어요. 저희 반 바느질 숙제 수업 전에 미리 와서 찾아 가라고 하셨다고……. 제가 보기에 아직 채점 다 안 끝내신 것 같아서 반장 그냥 돌려보냈는데요. “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오늘 수업 전에 채점 다 해서 돌려주려고 했는데…….”
 "김 선생님도 가을 타세요."
 "왜요? 저는 가을 같은 거 타면 안 되나요? 안 어울려요? “
 “그런 뜻이 아니고요. 오늘 출근 하시고 나서 아직 아무 말씀도 안 하셨어요. 뭔가 생각에 잠기신 것 같기도 하구요.
 걱정거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하구요. 이러시는 거 처음 뵙거든요.”
 “그게 아니고요. 벌써 치매가 오는지 한 가지 생각을 하면 다른 일들은 거의 잊어버려요. 이러다가 정말 딸 결혼식  날 아침에 미장원에 갔다가 파마 말고 앉아 있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추억 그리고 첫발자국' 핸드폰화면을 가득 채웠던 글자들이 종일 머릿속을 휘 집고 다닌다. 추억속의 여인을 오늘
 만난다 이거지. 첫발자국인지 첫사랑인지 아무튼 유치하기 짝이 없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궁금하기도 하다. 우리  또래일까, 예쁜가, 옛 애인일까, 아님 여우같은 젊은 여자에게 홀린 것은 아닐까. 옆에서 알랑거리면 넘어 갈 수도  있겠지. 남에게 거절 잘 못하는 사람이. 너무 착해도 문제야. 아이들의 바느질 숙제를 채점 한답시고 앉아 있긴 한데  마음은 텅 빈 11월 거리를 혼자 걷고 있다. 이런 것이 방황이라는 것인가. 바람은 남편이 피는데 내가 왜 방황을  하나. 박음질, 시침질, 감침질, 바느질 한 땀 한 땀을 따라가 본다. 비뚤어지지도 않고 땀과 땀 사이의 간격이  재봉틀로 박은 것처럼 일정하게 이어지는 박음질을 보니 가슴이 답답하다. 꼭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이렇게 콱  막힌, 나 같은 사람과 살면서 내 남편과 내 딸이 숨 막혀 했던 것은 아닐까. 무엇을 위해 앞만 보며 이렇게 쉬지 않고  걸어 왔나. 학교 다닐 때 치맛단이 뜯어지면 그 것 꿰매기도 귀찮아 스카치테이프로 단을 붙이고 다니던 친구는 지금 얼마나 여유 있게 잘 살고 있는가. 반박음질만 해도 결코 올이 풀리지 않을 텐데, 난 왜 언제나 바늘땀 하나라도  건너뛰면 티가 나는 온박음질만 하려고 했던가. 시침질 같은 삶을 사는 사람보다 더 나은 것은 또 무엇일까?
 금요일 오후, 오늘따라 모두들 일찍 퇴근하고 히터마저 나간 교무실 나무 바닥으로 저녁 냉기가 스미어 올라온다.
 20년 가까이 내 집처럼 드나들던 교무실의 시퍼런 칠판이며 우중충한 책상들이 나를 향해 왜 사느냐고 물어 오는  것만 같다. 어디서부터 잘 못 되었기에, 이렇듯 균형을 잃고 뒤뚱거리는 것인가. 그렇다고 정말 내 남편이 무슨 일을  저지르기라도 한 것인가. 그런 것도 아닌데, 결혼 전이나 결혼 후나, 지금까지 한 번도 궤도를 벗어난 적이 없는   사람인데. 이렇게 혼란스러워 하는 것은 남편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자신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김 선생! 아직 퇴근 안 했네? 오늘은 좀 일찍 나가지않구?"
 "응, 교무실에 아무도 없다고 또 반말이구나! 좋아! 그러는 박 선생은 왜 아직도 못 나가고 있어? 난 채점이 남았어.
 와이프는 잘 있고?"
 "응, 우린 아직 애들이 어려서 힘들어하지. 손이 많이 가니까"
 "아들 둘은 뭐 아무나 키우나? 박 선생 와이프니까 군소리 없이 잘 살아 주는 거야. 와이프한테 잘 해"
 "하하, 내가 지난번에 문 선배님께 잘 해드리라고 했더니 금방 갚는구나! 여자들은 다 똑같다니까. 금요일이라  핸드볼  연습이 있어서 운동장으로 나가려는 참이야. 11 월 해가 무척 짧지? 벌써 어둑어둑 하네. 연습도 오래 못  하겠는걸.
 참, 김 선생은 좋겠어."
 "뭐가?"
 "지난번에 선배님과 노래방 갔을 때, 글쎄, 선배님은 노래를 할 때도 아내 생각을 하면서 부른다고 하시더라. 그 '사랑 two' 있잖아, '널 만나면 말없이 있어도……, 아! 맞다 수수한 네 모습에…….' 뭐 이런 가사가 꼭 내 마누라  얘기 하는 것 같아 하면서 후렴을 부르고 또 부르고 하시더라니까. 학교 때, 저 두 사람은 무슨 재미로 사귀나하고 이상해  했는데, 선배님에게 그런 모르는 면이 있더라니까. 약간 닭살이긴 한데, 진짜 애처가야!
 로맨틱하기도 하고 말이야.
 보기에 나쁘지 않아. 하하하……."
 눈동자는 학생들의 정성스런 바늘 땀 사이를 오가는데 머릿속에는 어느 분위기 좋은 양식집 그윽한 불빛 아래 붉은색 와인 잔을 놓고 마주 앉은 중년의 연인 둘이 영화처럼 들어 앉아있다. 왜 하필이면 남자 주인공이 별 볼일  없는  줄 알았던 우리 남편이어야 하는지. 생각 할수록 기가 막힌다. 두 사람이어서 ‘사랑 two’인가? ‘When I   dream…….
 ’  영화 ‘쉬리’에 나온 이 노래 좋다 했더니 남편이 핸드폰에 다운 받아 준, 아……. 이 노래도 오늘은 정말 지겨운데 누가 전화람……. 이 사람이 웬 일로? 아마도 늦게 들어온다고 무슨 변명거리를 늘어놓겠지? 그래 어디 들어나  봅시다. 
 

 "여보 아직 학교에 있지? 난 오늘 조금 일찍 나왔어. 오늘 아침에 당신 화 난 것 같아서 말도 못 했는데. 오늘  결혼기념일인 거 내가 잊고 있다고 생각했지?"
 '앗! 세상에나, 오늘이 11월 15일, 우리 결혼기념일이구나. 내가 왜 이러지! 나 뭐 하고 사는 여자인가? 아니, 정말  치매인가!'
 "그렇다고 뭐 그렇게 퉁퉁 부어서 출근을 하냐. 그래서야 어디 학생들 카운슬링 하겠어? 나 지금 지난번에 당신이  이야기 하던 그 식당가에 와 있어. 우리 결혼식 올렸던 그 예식장 자리에 고급 레스토랑들이 많이 들어섰다고  기념일에 꼭 가보자고 했었잖아. 며칠 전에 당신 학교에 있는 박 선생에게 어느 레스토랑이 괜찮은지 물어 보았더니  오늘에서야 연락이 왔더라구. 그 친구, 워낙 그런 거 잘 알잖아. 아침엔 문자메시지를 보내주더니 낮엔  확인전화까지 해줬어. 곰살궂은 데가 있지? 난 오늘 일찍 퇴근해서 사전답사를 했어. 음식점 이름이 하나는  '추억'이고 다른 하나는  '첫발자국'이라고 알려 주었는데, 밖에서 슬쩍 분위기 보니까 '추억'에 필이 더 꽂혀서  일단 들어와 봤는데 괜찮은 것  같아. 내 필 정확한 거 당신도 알지? 그리고 메뉴를 보니까 당신 좋아하는 스파게티도 있고. 그런데, 여긴 스파게티도 종류가 무지하게 많다. 해물 스파게티, 가든 스파게티, 미트 볼  스파게티, 알프래도. 뭐가 뭔지 난  모르겠어.
 당신 오면 바로 먹을 수 있게 미리 주문할까 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당신이 와서 골라. 와인도 한 잔 해야겠지?  한 20분이면 도착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첫발자국'이 아니고 '추억'이니까 헷갈리지 말고 잘 찾아와. 건물  3 층으로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오면 오른쪽에 바로 보여. 알았지? "
 "여보!!" 
 채점 하던 바느질 숙제 던져버리고 교무실을 나와 땅거미 지는 운동장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교문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운동장의 핸드볼 선수들 보다 내가 더 빠른가? 여보 미안. 무조건 미안해요. 나도 '사랑 two', 당신이  좋아한다는 그 노래 좋아 할래요. 그리고 이젠 스파게티 말고 스테이크 먹을 거예요. 스테이크가 더 좋은데 너무 비싸서 스파게티가 더 좋다고 했었지. 스프는 크림스프로……. 나 지금 달려가고 있어요. 조금만 기다려요. 



 

 

                               

  • mimi 2009.07.17 12:23

     




                                        


                                         헬스장 풍경




                                       유리창 너머 숲 속엔

                                       겨울이 하얗게 흩어져 있다


                                       허기진 배를 채우려
                                       저 숲, 저 나무 사이를
                                       끊임없이 걷다 죽어간
                                       혼魂들이

                                       계절도 느낄 줄 모르는
                                       감각 없어 배 부른 육신들의
                                       징그러운 몸부림을
                                       유리창에 붙어
                                       빤히 들여다 보고 있다





  • hyun 2009.08.03 21:48






    달거리



    내 안에
    달이 차오른다
    기다림에 지친 작은 서러움이
    꽃물 되어 흐르는가

    아득히 먼 그 봄
    수줍고 두렵던 꽃봉오리
    벙그러 올 때
    여인이 되었다고
    어미가 될 수 있겠냐고
    조용히 물어 오더니
    마른 가지 몇 남은 가을 잎새
    마다하지 않고 흔들어 준다

    둥근 달이
    아직 떠 있을 때에
    사랑을 하라 한다
    꽃잎이 으깨져 붉은 즙이 되도록
    목숨 같은 사랑을 하라고 한다.


     

     

     

  • hyun 2009.08.08 21:32



     


    초여름


    논두렁 풀잎 사이로
    여름이 나풀댄다
    수염 난 보리이삭
    까실까실 발길을 스친다

    빨래터 이불호청
    하얗게 춤 춘다
    입 안 가득 자줏빛 오디
    알알이 새콤하게 터진다

    초사을 눈썹달 가는 길에
    뜸부기 불러댄다
    와글와글 개구리
    동문서답을 한다

    흐르는 세월에 밀려
    등꽃이 흔들린다
    올 여름도
    보랏빛 먼 추억

     

     



  • hyun 2009.08.08 21:41 Files첨부파일 (1)




    흉터


    설설 끓는 찻물을
    정신은 어디다 팔고
    손등에 부었다
    한 순간 떠오르는 내 못난 삶이
    앗 소리도 못 내게 한다

    뒤 돌아
    얼음 같은 수돗물 틀어 화기를 식힌다
    부끄런던 생각들은
    손잔등 열기 따라
    깊은 하수구로 흘러 이미 잊혀지고
    벌건 자국이 영영 남을까 어느새 걱정하고 있다

    이제 아리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야 아픔을 느낀다
    서랍속의 연고를 찿아 바르고 보니
    한참 전에 유효기간이 지났다
    흐르는 것들은 다 이렇게 빠른가

    나의 유효기간이 다 되었을 때
    사라진 기억속의 날들이 얼마나 아프게 스쳐갈까
    아프기 보다는
    깊은 흉터가 부끄러울지도 모를 일이다
    남에게 안겨준 상처는 또 얼마나 많을지......

    유효기간 넘어버린 연고라도
    바르고 다시 바른다






  • mimi 2009.08.09 18:52

       


                              
                                                 해후( 邂逅)


                                                   오래도록 지녀온
                                                   퍼즐 몇 조각씩 들고 만났지
                                                   색은 바랬고
                                                   형체 우스워도
                                                   그저 좋기만 하더구나

                                                    잃어버린 조각들
                                                    굳이 찾지 않아도
                                                    웃음소리 손놀림에
                                                    지난 시간들
                                                    오히려 짧게 느껴지더구나

                                                    네 모습 속에서
                                                    숨겨졌던 나를 보았고
                                                    네가 그린 원을 따라
                                                    세월닮은 동심원을
                                                    나도 그려 보게 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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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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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강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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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강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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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권 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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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권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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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권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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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김 레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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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김 은영

    Reply0 Views1512 장르 이메일kimeuny20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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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김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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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김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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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김 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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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김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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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김 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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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김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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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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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김미영

    Reply0 Views3697 장르동시 이메일meyoungkim20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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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김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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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김양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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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김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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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김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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