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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2 23:25

김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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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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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워싱턴문학 신인문학상 수필부문 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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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부는 날



                                                                                                                  


     연 이틀을 밤낮없이 바람이 몹시 불었습니다.

어둠에 싸인 바깥으로부터 창문 틈을 비집으며 웅웅거리는 바람소리에 잠을 깨어

폭풍의 언덕에서 캐더린의 영혼을 부르는 히스클리프의 절규를 생각했습니다.

간절하고도 미치광이 같은 바람이었습니다.

날이 밝은 뒤에도 바람은 그치지 않고 길 위를 사자처럼 포효하며 휘몰아쳤습니다.

숲의 나무가 찢어지고 가지들은 부러지고 쓰레기통이 구르고 빗물받이 홈통이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나는 하루 종일 바람의 광기가 수그러들지 않기를 내심으로 바랐습니다.

밤이 되면 어둠 속에 몸을 묻고 꼭 저 바람 속에 서보고 싶었습니다.

이 나이에 참 이상한 여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폭풍우 치는 날이면 나무꼭대기에 올라가는 남자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으신지요.

세상의 높은 산들과 깊은 물들을 건너며 오래 여행을 한 그는 미국으로 돌아와 어느 산맥 깊은

골짜기에 통나무집을 짓고 살았답니다. 날씨가 험악한 날, 골짜기에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이

찾아오면 그는 창문을 꼭꼭 닫고 벽난로에 장작을 더 집어넣으며 어서 날이 밝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기는 커녕 재빨리 집을 빠져 나와서 골짜기를 달렸습니다. 그리고는 산 정상에 있는

커다란 나무로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거기, 나무의 가장 높은 가지 끝에 매달려서, 거센 바람에 몸을 맞기고 이리 저리 출렁이며 대자연이

연출하는 장관을 그의 온몸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 얘기를 늘 좋아하고 이렇게 미친듯한 바람이 부는 날은 더욱 서늘하게 이 멋진 남자의 영상을

떠올리게 되곤 합니다. 그리고 비록 나는 그렇게 살지 못했으나 내 아이들은 삶을 이런 자세로 살아줬으면

생각하는 것입니다. 몸을 사리지 않고, 상처받거나 멍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 남자가 가슴을 활짝

열어 눈과 비와 바람을 받아들이듯, 강렬하게 생의 한가운데서 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러나 그야말로 마음뿐이었고 자식들을 그렇게 키우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야성적 생명력을 거세시키며, 누구에게나 사랑 받을만한 온순한 애완견으로 키우기에

급급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와서 후회하며 미안한 마음으로 눈치를 보지만 이미 늦은 것이겠지요.


드디어 저녁식사가 끝나고 이야기도 끝나 식구들이 각자 제 일로 돌아간 늦은 시각, 두툼한  숄을 몸에

두르고 데크로 나가는 문을 열었습니다. 순간 세찬 칼바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가슴으로 돌진하여 곧바로

피부를 뚫고 폐부 깊숙이 들어 옵니다. 순식간에 몸 속이 가을 물처럼 맑아지는 듯 하며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어둠에 싸인 숲은 바람에 붕 떠올라서 앞으로 다가오는 것 같고 사방천지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에

귀가 먹먹합니다. 고개를 들어 쳐다 본 지붕 끝에는 접시같은 노란 달빛이 머리카락처럼 풀어지고 먼

곳에서 일제히 몸을 흔들며 다가온 별들이 머리위로 하얗게 부서져 내립니다. 모두 날보고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자기들끼리 떠드는 것 같기도 합니다.

폭풍 부는 밤의 대기엔 우주의 언어가 가득합니다. 나는 왜인지 그 신호들을 알아들을 것도 같은 기분이

되어 먼 곳을 향해 가만히 웃으며 어둠 속에 오래도록 서있었습니다.





 




시간의 저편


                                                                                                                    

                                                                                                                      




   어두운 새벽에 잠이 달아났다.  자리에 누운 채로  침실 벽 상단에 있는 두 개의 아치형 창문으로

바람 많은 날의 강물처럼 구름들이 급하게 흘러가는 것을 바라본다. 배경의 하늘은 어둡고 투명한 푸른

빛이다. 여학교 때 만년필에 넣어 쓰던 블루블랙의 잉크 빛깔과 똑같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에서

본 적 있는 너무 깊어 그  깊이를 측량할 수 없다는 어느 해구의 빛깔 같기도 하다. 문득 지구는 바닷가의

모래알 한 개보다 작은 별이며 은하계에는 수천억의 별이 있고 우주에는 무수한 은하계가 있다는

가늠되지 않는 크기를 생각해 본다. 순간 내 안으로 깊고 푸른 빛의 공간이 해구처럼 끝없이 깊어지면서

나는 그 안팎으로 깊이와 넓이를 잴 수 없는 무한대의 공간 속에서 어느 궤도를 돌다가 떨어져 나온 작은

행성처럼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영혼들의 여행>이라는 책에 보면 영혼은 죽음과 동시에 인간의 몸을 떠나 영혼의 세계로 간다고

한다. 불멸의 존재인 영혼은 여러 번 환생을 거듭하는데 이번 생을 마치고 다음 생으로 환생하기 전에

잠시 머무는 곳이 영혼의 세계라고 한다. 거기에서 영혼들은 지구에서 인간으로 살 때 받은 상처를

치료하거나 피로를 풀면서 다음 환생을 준비한다. 환생은 영혼의 진화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므로 이미

성숙해진 영혼은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더 이상 인간으로 환생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필요한만큼

성숙할 때까지 영혼들의 환생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강물이 바다를 향해 흘러 가듯 영혼들은 존재의

원천이며 창조주라 불리는 고귀하고 드높은 영혼을 향해 성숙을 열망하며 끝없이 나아간다.

카운셀러이면서 임상 심리학자인 저자가 수년간의 최면요법을 통해서 연구한 사례를 토대로 묘사한

영혼의 세계는  그 이미지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과 무척 비슷하다. 또한 영혼은 명상에서 말하는 眞我

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쨋거나 한 번 존재한 이상, 지상에서든 영혼의 세계에서든

“존재하기”를 피할 수는 없을 모양이다. 그러므로 존재의 피곤함도 벗어날 길이 없어 보인다.


나는 존재하는 것 자체가 걱정인걸요.

방학이 끝나 학교가 있는 시카고로 돌아갈 때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는 딸이 짐도 두 번 체크아웃 해야

하는지 걱정하길래 내가 글 읽고 말 되는데 무슨 걱정이니 가보면 다 알겠지 했더니 엄마, 당연히 걱정이

되죠 하면서 아들이 한 말이다.

뒤뜰에 핀 달리아들이 어느 동물에게 처참하게 뜯겨나갔을 때 망연자실해하는 나를 위로하며 다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하라던 아들은 초등학생이었다. 가끔 도통한 영감님 같은 소리를 하는 그 아이는

혹시 지구에서 마지막 여행을 하는 오래된 영혼일까. 그렇다면 나는 아직 멀었으며 내 영혼은 앞으로 몇

번의 환생을 거듭해야 하나. 밥 딜런의 노래가사에서 처럼  how many roads must a man walk

down..before you call him a man…얼마나 많은 길을 걸은 후에야 비로소 나는 한 사람의 인간이 될 수 있

는 것일까.


전날 밤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여 31일은 늦도록 날이 밝지 않았다. 나는 발등까지 빠지는 어두운

눈길을 걸어 강으로 갔다. 눈 덮인 강 가의 살얼음 가장자리에서 싸락눈이 가볍게 강물위로 떨어져

내리는 것을 가만히 바라 보았다. 강 가의 나목들은 거울처럼 맑고 차가운 강 수면 아래에서 거꾸로 그린

세밀화가 되어 어른거렸다. 강물은 흐르지 않는 것처럼 가만 가만 흘러갔다. 사위가 너무 고요하여

청솔모 한 마리가 먹이를 찾느라 눈 덮인 낙엽 사이를 헤치는 소리가 성능 좋은 스피커를 통해 나오듯

강 가에 명료하게 울려 퍼졌다. 강 건너 숲과 하늘의 경계선 틈 사이로 한 해의 마지막 아침이 뿌옇게 밝아

올 때까지 나는 한자리에 붙박인 것처럼 서서 천천히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 보았다. 언젠가 내 영혼도

마침내 삶의 강 가를 떠나 영혼의 강물을 타고 시간의 저편으로 흘러 갈 것을 생각하면서.


존재한다는 것은…봄에 처음으로 피어나는 꽃을 바라보는 것과 같아요. 그리고 그 꽃이 자신인 것을 알게

됩니다…그리고 수많은 꽃이 피어나고  아름다운 들판에 흐드러진 다른 꽃들을 알게 되지요…그것은 비할

수 없는 큰 기쁨입니다. -- 마이클 뉴턴, 영혼들의 여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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