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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4 22:40

박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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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소설
이메일 sukzah@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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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대구 출신

*FDA 독성학자(Toxicologist )  
*뉴욕문학 등단 (철원의 하루)
*12회 삶의 향기 동서문학상 (밀물)
*저서영문단편소설집  River Junction
            단편 소설집두물머리
 (두 소설집은 Amazon.com에서 Sukza Park으로 검색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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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야 할 강

 

 

 

교수회의가 끝나자마자 나는 학장실로 돌아왔다. 창밖에는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고 서편 하늘에는 노을이 붉다. 학생들이 바쁘게 오가던 캠퍼스는 이제 정적이 흐른다.

퇴근 전에 밀린 우편물을 정리하고 있는데, 학술잡지 등 인쇄물에 섞여 육필로 푸른 볼펜을 사용하여 차분하게 영어로 서울 주소를 쓴 항공 우편이 눈에 띈다. 보낸 이는 라이언 존즈(Ryan Jones), 그 이름을 보고 나는 가슴에 비수가 꽂히는 듯한 아픔을 느낀다.

친애하는 닥터 김으로 시작하여 컴퓨터로 쓴 편지 끝에 같은 색깔의 볼펜으로 사인했다. 라이언이 나를 닥터 김이라 부르다니. 너무나 의례적인 호칭이라 마음에 걸린다. 그러나 그 애가 어떻게 나를 달리 부를 수 있는가?

엄마의 장례식을 한 달 전에 치렀습니다. 닥터 김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할지 생각하다가 이제야 편지합니다. 유방암 진단을 받고 약물치료로 고생하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엄마 나이를 기억하실지 몰라도 이제 겨우 50입니다.”

나는 무의식중에 하며 앞으로 고꾸라진다. 지금까지 나 자신의 일이 아니면 모두 무심하게 지나쳐 온 나다. 가슴이 무너진다는 말을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으나, 지금이 바로 그런 심정이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일어나, 라이언이 한 달 전에 혼자 치렀다는 메기 존즈의 장례식 식순(式順)을 다시 들여다본다. 식순은 그가 컴퓨터로 직접 고안한 것 같다. 4페이지로 되어있으며 천연색 첫 페이지 표지에는 힘차게 쏟아지는 폭포, 하얗게 부서지는 물살, 폭 넓은 강 위로 지붕 덮인 긴 다리가 놓여 있다. 그 경치를 배경으로 크게 웃고 있는 중년의 메기. 살이 조금 오른 것 같으나 처녀시절의 그 화사하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표지의 배경이 눈에 익다. 옛날 메기가 살던 미국 남부 조지어 주() 코머(Comer)에 있는 그 긴 다리이다. 다리 위에 지붕이 덮여 있는 것이 특색인데, 이런 종류의 다리로는 조지어 주에서 가장 길다고 했다.

, 생전에 좋아했던 그곳을 표지로 했구나. 얼마나 오랜만에 보는 풍경인가? 브로드 리버, 이름조차 폭 넓은 강이라고 했다. 그 폭 넓은 강 위에 이 왓슨 밀(Watson Mill) 다리가 있는 공원은 메기 집에서 가까웠다. 강을 따라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산책길이 끝없이 이어진 곳이었다.

 

코머는 애틀랜타 시내에서 동북쪽으로 약 두 시간 떨어진 곳이었다. 30년 전, 애틀랜타 시내에 있는 조지어 텍 대학원에서 내가 공부하던 시절,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메기는 코머 출신으로 내가 속했던 생화학과의 비서였다. 주말에 거길 가면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보스턴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던 메기의 모친은 남자 친구와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조지어 주에 정착하여 메기를 낳았다. 그와 헤어지고 난 후 슈퍼마켓에서 일하며 아이를 길렀다. 자기 부모가 한때는 히피족이었다고 메기가 웃으면서 말한 적이 있다. 가난 때문에 그녀는 일찌감치 대학을 포기하고 일을 시작했다. 워낙 부지런하여 자기 일이 끝나면 내가 일하는 실험실에 와서 시험관이며 비커 등을 깨끗이 씻어주었다.

메기는 언어감각이 뛰어나 작가가 되기를 원했다. 내가 쓰고 있던 박사 논문, 한국인이 쓴 그 어색한 영어를 일일이 고쳐주었을 뿐 아니라, 논문구성이며 앞뒤 서술 형식까지 바꿔주었다. 우리 세대는 선다형 객관식시험 등 그 당시의 한국식 교육을 받아 글 쓰는 훈련이 안 되었던 터라 나는 고등학교를 나온 시골 아이로부터 논문작성에 큰 도움을 받았다.

항상 남 도와주기를 좋아했던 메기는 동양인인 나에게 호기심이 많았다. 혼자 있는 나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기도 하고 과자도 구워 주곤 했다. 하루는 왓슨 밀 다리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 어머니가 거기서 가까운 곳에 살고 있으니 주말에 한번 가보자고 했다. 그 후 나는 가끔 그 어머니의 점심 초대를 받았으며 왓슨 밀 다리에도 갔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남부지방이라 인종편견이 심했고 동양인을 무시하는 백인을 자주 보았다. 그러나 미국 동부 출신 어머니 밑에서 자란 메기는 생각이 자유롭고 편견이 없었다. 보수적인 백인들의 눈에는 메기가 가난한 백인 쓰레기(white trash)였을지는 몰라도, 그녀는 남부 사투리를 쓰지 않고 올바른 영어로 말했다.

그보다 먼저 나는 조지어 택에서 아내를 만나 결혼했으며 같이 공부하다가 아내가 먼저 학위를 받았다. 아내가 첫돌 지난 아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먼저 돌아갔다. 우리 내외는 동갑인데 나는 군 복무 때문에 늦게 미국에 와서 아내보다 일 년 더 머물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나 혼자 대학원에 남아 있을 때 메기를 만난 것이다. 한국에 가족이 있고 또 나이가 열 살이나 더 많은 걸 알면서도 메기는 내게 관심을 보였고 나는 그것이 싫지 않았다. 한국 남자로서 큰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 용모에는 자신이 있었고, 생전 처음 백인 여자를 상대하니 마음이 붕 떠 있었다. 어느덧 논문도 거의 끝나가고 마음에 여유가 생긴 터라 그 터질 것만 같은 젊음으로 자유분방한 아이의 초대를 마치 보너스라도 받는 기분으로 주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여름날 오후, 우리는 강가로 갔다. 아름드리 큰 플라타너스 한 그루가 강 위를 가로지르며 쓰러져 있었다. 메기와 나는 강에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며 강물 위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나무둥치 위로 걸어가 걸터앉았다. 짙은 나무 그늘, 발밑으로는 강물이 유유히 흘러가고, 바람이 시원했다. 빛나는 금발, 그녀의 눈은 깊은 바다와 같은 초록빛이었다. 몸에 꼭 끼는 청바지에 목이 깊이 파인 흰 블라우스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은 메기를 보며 나는 체격이 빈약한 아내를 생각했다.

여간해서는 남에게 내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나였다. 혼자 힘으로 유학 왔고 또 이름 있는 집안의 딸을 유학 중에 만나 결혼하는 동안 내 마음의 고삐를 단단히 쥐고 살아왔다. 그러나 그날 나는 메기에게 편모슬하에서 어렵게 자란 나의 과거를 얘기했고 서툰 영어로 나의 마음을 털어놓았다. 가정교사 노릇을 하며 공부하던 중 가르치던 아이가 대학에 떨어져 그 집에서 당장 쫓겨난 이야기를 했더니 메기가 한없이 따뜻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시절이란 말을 들으면, 으레 그 한적한 여름 오후, 쓰러진 나무 둥치 위에 앉아 그녀와 보낸 시간을 떠올리곤 한다. 그해 여름은 내 인생의 여름이었다. 일생 중에 그때가 유일하게 거리낌 없이 생각하고 행동한 시절이 아니었을까? 메기와 나는 주말마다 그 공원에 가서 아무도 없는 언덕 위로 갔다.

아름드리 큰 나무에 기대앉으면 그녀는 내 무릎에 올라앉아 두 팔로 나의 목을 감았다. 땀으로 끈적이는 그녀의 젖무덤, 내 혀끝에 말려드는 젖꼭지의 감촉, 나를 원해서 능동적이었고 나를 가져서 황홀해 하는 메기가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늘 차갑게 느껴온 아내에게서 경험하지 못했던 희열이었다.

 

눈을 감고 그날을 생각하니 지금도 메기의 입김을 느끼는 듯하다. 장례식 초청장을 다시 들여다보며 표지를 넘기니 둘째와 셋째 페이지에 장례식의 순서가 적혀 있다. 나는 어느덧 시골 교회에서 치러지는 조촐한 장례식 앞자리에 앉아 오르간 장송곡을 들으며 그녀의 마지막 시간을 생각한다.

약물치료로 머리칼이 빠지고 먹지 못해 초췌해진 메기의 모습,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것은 메기의 자제력이었고 자존심이었다. 마지막 페이지 유가족 난에는 아들 라이언, 며느리 케스린, 손자 에디라고 적혀 있다. 또 시() 한 수가 적혀 있는데 마지막 대목이 이러하다.

 

……

내가 죽어

가슴 아프고 외로울 때

넌 친구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며

네 슬픔을 묻어다오.

 

나를 사랑하여 옆에 있어 주길 바라더라도,

날 떠나게 해 줘.”

 

지금 심정으로 도저히 집에 가서 아내를 대면할 수 없어 전화한다. “여보, 나 오늘 저녁 먹고 들어갈 거야.”

, 그래. 괜찮아. 나도 오늘 아주 바빠. 우리 부서에서 10월 월말보고서를 준비하고 있어. 내가 지켜봐야 해.”

경영학을 공부한 아내는 삼성 계열회사의 중역이다.

 

어젯밤 회사에서 늦게 들어온 아내가 곤히 자고 있다. 토요일 아침이라 나는 가벼운 하이킹 차림으로 일찍 집을 나섰다. 지하철 2호선으로 충정로역에서 내려 약현성당 쪽으로 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1891년에 지었다고 한다. 주위에 고층 건물이 없었던 시절엔 언덕 위 성당첨탑이며 아름다운 벽돌 건물을 멀리서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고층 건물에 가려 성당을 찾는 데 한참 시간이 걸려 겨우 본당으로 향하는 오솔길에 오른다. 서소문에서 살던 어린 시절 어머니 손을 잡고 자주 오던 곳으로 소박하나 아름다운 이 성당은 내가 유아세례를 받은 곳이기도 하다.

요즘은 집에서 가까운 청담동 성당에 다닌다. 나는 이런저런 핑계로 일요일 미사도 빠질 때가 많지만, 아내는 성당 일이라면 아주 열심이다. 나는 평소에는 소홀히 하고 있다가 어려울 때는 어머니의 추억이 어린 이곳을 찾는다.

30년 전, 메기가 임신했다는 편지를 받고 제일 먼저 찾은 곳이 여기였다. 나는 그 당시 학교에서 전임강사 자리를 얻으려고 여념이 없을 때였다. 같은 자리를 노리는 경쟁자에게 혹시 이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웠고 아내가 알까 봐 전전긍긍했다. 괴로웠지만 메기에게 답장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간신히 고해성사를 받았지만, 메기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 내가 고해성사를 받으면 뭘 하는가? 그 후 성당에 다니는 그 자체마저 위선이라, 오랜 세월 동안 일요일 미사도 소홀히 해왔다.

그런데 그녀가 세상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니 자석에 끌리는 쇳조각처럼 나는 다시 이곳에 왔다. 본당으로 올라가는 십자가의 길에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예수님이 사형선고를 받은 후,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이르기까지 일어났던 중요한 사건들을 돌에 새겨 열네 군데에 세워놓았다. 수난과 죽음 사이에 일어났던 그 사건들을 하나씩 묵상하며 나는 간절히 메기를 위해 기도한다.

일생을 소박하게 살며 고생만 하다가 외롭게 죽은 그녀는 독한 약물에 시달리면서도 나에게 알리지 않았다. 예수님이 기력이 떨어져 십자가를 지고 쓰러지는 장면 앞에서 나는 오래 서 있다. 죽임을 당한 때가 30대 초반, 나는 그 나이에 남의 어려움과 고통에 무관심했을 뿐만 아니라 나의 출세와 안락을 위해 남을 이용만 했다. 메기도 이용당한 사람 중의 하나였다. 영어 회화 연습을 위해 자주 만나다가, 나의 아름다운 시절에 희생되어 라이언을 낳았다. 작가의 꿈을 접고 생계를 위해 학과장의 비서로 남의 뒤치다꺼리만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나는 대학에서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남에게 대우를 받으며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하며 살아왔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오던 나는 순간 딱 멈추게 되었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 메기를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달려갈 것 같다.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업적을 마무리하려고 앞으로 몇 년 더 일할 계획이었으나 이제는 그런 것들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 라이언의 편지를 받고 비수에 찔린 듯했던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2년 전에 라이언이 내게 메일을 보내왔다. 그때는 메기가 살아 있었고 내가 한국에서 무엇을 하는 사람이란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의 메일 주소를 알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메일을 깊숙이 컴퓨터에 숨겨 놓고 그동안 회답하지 않고 있다가 오늘 프린트하여 안주머니에 숨겨 가져왔다. 예수님이 기력이 떨어져 십자가를 지고 쓰러지는 장면 앞에서 그걸 끄집어내어 다시 읽는다.

 

친애하는 닥터 김,

저는 라이언입니다. 제가 누구인지 설명이 필요 없겠지요? 저의 성은 존즈, 길러 주신 아버지 성입니다. 어머니보다는 20년 연상이었고 작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저의 아버지가 제게 쏟은 정성을 잊을 수 없습니다. 보이스카우트, 야구 연습 등에 항상 저를 데려다주셨지요. 사랑과 절제를 통해 저를 단련시켜 주신 분입니다.

그러나 저는 생부가 어떤 분인지도 알고 싶습니다. 저는 작년에 결혼하여 곧 첫아기가 태어납니다. 특히 유전적으로 유의할 사항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생부가 어떤 분인지 알면 아기 기르는 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건강한 아기가 태어나도록 같이 기도해 주십시오. 연락 바랍니다.

라이언 드림

 

아기 때문에 나와 연락하고 싶다고 했지만, 사실은 라이언 자신도 생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을 것이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러나 그즈음 나는 자연과학대학 학장에 선임되었다. 은퇴하기 전에 학장이 되는 것은 큰 실수 없이 이끌어 온 나의 학자 인생에 금상첨화였다. 그전 해에 우리 내외는 여성잡지에 이상적인 부부로 선정되어 표지에 사진이 나오고 기사가 실렸다. 생화학 부문에서 이룬 나의 학술적인 업적이며, 아내의 신분과 성당에서의 활동 등이 상세하게 실렸다.

그때 인터뷰에 참가한 성당 간부의 말을 인용하면 아내는 하나도 버릴 데가 없는 사람이었다. 한번 잡지에 나니까 텔레비전과 신문에서도 인터뷰를 요청해 우리는 화려하게 매스컴을 탔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라이언의 이-메일을 컴퓨터 깊숙이 숨겼다.

우리 아들 진수의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라이언보다 두 살 위라 서른둘인데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 화려한 부모 그늘에서 자라서 남과 경쟁하지 못하고 어렵사리 얻어준 직장에서 배겨내지 못한다. 지금 우리가 주는 생활비로 오피스텔에서 살고 있다.

 

이튿날 일요일, 아내가 성당 봉사활동을 마치고 다섯 시경에 집에 돌아왔다.

여보, 이리 좀 와요. 긴히 할 말이 있어요.”

주말에 읽어야 할 사업실적 보고서가 있는데.”

언제까지 그렇게 아등바등하면서 살 거요? 여보, 이리 와요. 지금까지 말하지 못하고 미뤄 온 이야기가 있소.”

그제야 아내는 긴장하며 내 옆에 앉는다. 내가 메기와 라이언에 얽힌 과거를 얘기하는 동안 아내는 석고상같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듣고 있었다.

미안해요. 당신한테 이런 고백을 하게 되어. 오랜 세월 괴로웠소. 이제 학교에서도 은퇴하겠소. 그리고 미국에 며칠 다녀와야 해요.”

아내가 조용히 일어나 화장실로 가더니 변기에 토하는 소리가 들린다. 자기감정을 쉽게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지만 이런 일을 당하면 신체적인 증상으로 나타난다. 열이 난다든지 구토를 한다든가.

사업을 크게 일으킨 부친의 성격을 닮은 아내는 연민의 정을 일으키기에는 너무나 강한 사람이다. 그러한 아내가 두려워 지금까지 감히 말하지 못했는데, 지금 충격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아내의 강직한 성격을 생각하면 앞으로 우리 결혼 생활에 큰 파탄이 올 것 같다.

그 이튿날 아내가 출근하지 못하고 누워 있더니, 삼 일째 되는 날 짧은 편지를 한 장 써놓고 출근했다. 자신과 그 백인 여자를 위해 한마디 하겠다고 전제하고 나서, 자기 목적을 위해서라면 남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인 것은 이미 알았지만, 한때 정을 주었고 자기 아이까지 낳은 여자에게 이토록 매정하게 또 경박하게 행동할 줄 몰랐다고 했다. 너무나 실망하여 앞으로 같이 산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도 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한 인간으로서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아내에게 시간과 공간을 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여행사에 연락하여 애틀랜타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했다.

 

인천 공항을 출발해서 현지 시각으로 아침 9시 반 경, 애틀랜타 공항에 도착했다. 인천에서 직행으로 13시간 걸렸다. 대한항공이 애틀랜타 공항을 비롯하여 미국 중요 도시에 직행한다는 것은 바로 국력을 의미한다. 30년 전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두 번이나 비행기를 갈아타며 그 두 배의 시간이 걸렸던 것을 생각하니 감회가 깊다.

애틀랜타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소개되었던 옛 도시였으나, 1996년 올림픽 이후 당당한 국제도시로 변모했다. 시내에서 가까운 조지어 택 대학 캠퍼스 안에 올림픽 선수촌을 지었는데 지금은 학생들의 기숙사로 사용한다. 이 대학은 바로 나와 아내가 공부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엔 한국인 인구가 많아서 인천에서 이곳까지 오는 비행기에 빈자리가 없었다.

공항 지하전철역에서 라이언을 만나기로 되어 있다. 남쪽 역으로 오라고 했으므로 나는 그 방향으로 걸어간다. 5일 예정으로 오니까 손가방 하나뿐이라 짐을 찾을 필요 없다. 라이언과 케슬린, 그리고 아기에게 줄 선물만은 명심하고 챙겼다. 그 애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뿌듯하지만, 라이언이 나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그가 2년 전 이-메일을 보냈을 때 연락조차 하지 않던 사람이 메기가 죽고 나서야 겨우 찾아왔다.

공항 지하철 남쪽 역에 내려, 라이언에게 휴대폰으로 전화한다. “나 지금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1층 출구 쪽으로 올라갈 거야.”

오케이.”

처음 들어보는 그의 음성은 잔잔하나 확실하다.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며 위를 쳐다보니 아기를 안은 젊은 남자가 다른 손으로 휴대폰을 들고 있다. 서로 간의 교감이라고 할까? 안고 있는 아기가 아니더라도, 또 손에 들고 있는 전화기가 아니더라도 나는 알았을 것이다. 손을 흔드니 라이언이 알았다는 듯 손짓을 한다.

우리는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만났다. 라이언은 백인에 더 가깝다. 진한 꿀 빛의 머리카락. 초록빛 눈, 그리고 나보다 더 큰 키, 살결은 백인의 그 창백할 정도로 흰 살결이 아니라 동양인과 백인 혼혈에서 흔히 보는 상앗빛이다. 준수한 용모에 마른 편이고 눈빛이 잔잔하다. 덜렁대지 않고 행동에 흐트러짐이 없다. 사람들은 나에게서 그런 첫 인상을 받는다고 했다.

아기 이름이 에디라고?”

, 한 살 반이에요.”

에디는 엄지손가락을 빨며 다른 손은 아빠의 목을 꽉 잡고 있다. 작은 손이 터질 듯 젖살이 올라 있다. 빨간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는데, 바짓가랑이가 당겨 올라가 통통한 다리가 노출되어 있다. 숱이 적은 금빛 머리카락이 피부에 찰싹 들러붙어 있다. 나는 아기를 만져보고 싶고 바짓가랑이도 내려주고 싶으나 참는다. 지금까지 남의 아이들을 보았지만, 한 번도 이처럼 귀엽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에디의 코와 둥그런 볼에서 돌아가신 내 모친의 모습을 본다. 이 아이를 보니 마치 나 자신을 보는 것 같다. 서로 닮았다는 것이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구나. 왜 귀하지 않겠는가? 처음으로 보는 손자 놈인데.

 

라이언이 내 가방을 자동차 트렁크에 넣는 동안, 나는 에디를 뒷좌석 카시트에 앉히고 벨트를 고정한 후 그 옆에 앉는다. 낯선 사람을 보고 울지 않는 것만도 다행인데 손가락을 빨며 나를 쳐다보고 씩 웃기까지 한다. 메기의 친절한 성격을 닮았나 보다. 한국서 가져온 폭신한 베이지색 아기 곰을 손가방에서 꺼내 주니까, 빨던 손가락을 얼른 빼고 두 손으로 덥석 받는다.

라이언이 운전대를 잡으며 묻는다. “오늘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있습니까? 어디든지 모셔다드릴게요. 일요일이라 시간이 있습니다.”

네가 만든 장례식 초청장 표지그림이 아주 좋던데. 그 왓슨 밀 다리(Watson Mill Bridge)에 가고 싶어.”

좋아요. 케슬린이 이번 주말엔 당번이라 제가 아기를 봅니다. 우유랑 기저귀도 충분해요.”

우리는 애틀랜타 시내를 빠져나와 85고속도로 북쪽으로 달린다.

케슬린은 무슨 일을 하니?”

간호사입니다. 저는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고요.”

아기 키우며 내외가 바쁘겠구나.”

요새같이 경기가 나쁠 때 직장이 있는 것만도 고맙지요.”

에디가 곰을 떨어뜨리고 에에하면서 손가락질한다. 곰을 집어주며 나는 기어이 아기의 다리를 꽉 잡아본다. 터질 듯 탱탱하면서도 보드라운 그 피부의 감촉을 내가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데, 라이언이 그러고 있는 나를 백미러로 훔쳐본다.

우유 먹일 시간입니다. 가방을 열어봐요.”

에디는 아기 곰을 나에게 맡기고 우유병을 두 손으로 꽉 잡더니 힘차게 빨기 시작한다. 만족한 듯이 다리를 흔들거리면서.

오랜만에 하는 영어이긴 하나 라이언과 대화가 쉽게 이어진다. 상대방을 편하게 해 주며 대화를 쉽게 끌어가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그 점은 메기를 닮았는가?

어머니가 에디를 아주 귀여워했겠네.”

그럼요. 엄마에게 희망을 주었어요. 에디가 태어나서 엄마는 한동안 아주 행복했어요. 그러다가 왼쪽 유방에 붉은 반점을 발견했습니다. 엄마의 암은 희귀한 급성이라, 우리가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더군요.”

일찍 세상을 떠나려고 메기가 그토록 성급했던가 보다. 그녀는 우리 관계에서 항상 나를 이끌었다. 그러나 결국 하나가 될 수 없었던 우리였기에 귀국할 때쯤 나는 그녀에게 냉정했다. 비겁한 줄 알았지만, 우리 두 사람을 위해 그래야만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모친과 내 가족이 있는 한국에 가야 했으며, 메기도 역시 자신의 인생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라이언과 에디를 보니, 메기의 어렵던 시절에 도와주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 그때는 아내와 사회가 두려웠다. 30년 전에는 한국이 가난하여 미국으로 송금하기도 어려웠다. 그리하여 나는 내 아이를 메기의 가냘픈 손에 맡겼고 메기가 결혼했다는 사실을 그곳에 사는 친구를 통해 들었다.

라이언이 양부(養父) 이야기를 할 때 그의 얼굴 표정이 부드러워진다. “우리 아빠가 계셨더라면 엄마를 잘 보살폈을 텐데,” 하며.

뻐꾹새는 산란기가 되면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다. 어미 뻐꾹새는 저보다 작은 새가 알을 품고 있으면 우는 소리나 둥지의 형태를 관찰하여 새끼가 자라기에 적당한 환경이라 생각되면 어미 새가 잠시 나간 틈을 타서 남의 보금자리에 있는 알 한 개를 땅에 떨어뜨리고 가장 따뜻하고 안전한 가운데 자리에 제 알을 낳고 떠난다. 작은 새는 그것도 모르고 남의 새끼를 품어 부화시키고 열심히 먹이를 물어다 주며 기른다.

뻐꾸기는 산란기에 12개 내지 15개의 알을 낳는데 남의 둥지에 제 알 한 개씩만 맡기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나는 뻐꾸기처럼 내 새끼를 남에게 맡겨 기른 얌체이다.

에디가 젖병을 떨어뜨리며 잠이 든다. 에디가 파란 눈을 감으니, 동양인에 가까운 코, 둥그스름한 볼로 아이는 영락없는 내 새끼다. 다른 아이들과 섞어놓아도 쉬이 찾을 것 같다. 라이언이 운전하는 동안 잠든 에디가 편안하게 기댈 수 있도록 머리를 받쳐준다. 에디의 달콤한 젖 냄새를 맡으며 나는 행복에 젖는다. 내가 이토록 행복하다고 느낀 적이 언제였던가? 그런 때가 있기나 했던가? 내 아들 진수를 키울 때는 우리 내외가 바빠서 보모 손에 아이를 맡겨서 길렀다.

드디어 코머에 도착하여 왓슨 밀 다리가 보인다. 70미터나 되는 긴 다리에 지붕이 덮여 있는 풍경이 눈에 익다. 조지어 주에서 지붕 덮인 다리 중에서 가장 길며 미국 전역에서도 몇 번째라고 옛날에 메기가 말한 적이 있다.

이제 우리의 차는 지붕 덮인 다리 위에 들어섰다. 지붕과 벽에 가려 다리 내부는 어둠침침한데 차가 침목 위를 덜컹거리며 지나간다. 다리 끝에 보이는 햇빛 밝은 곳을 향해 한참 가다가, 다리가 끝나는 곳에서 갑자기 사위가 밝아지면서 오른쪽 강기슭에 차 예닐곱 대를 댈만한 평지가 보인다. 다리가 끝나자 라이언이 차를 세우면서 말한다. “여기서 에디와 내리세요. 제가 차를 세워놓고 갈게요.”

내가 카시트를 풀어서 자고 있는 에디를 안으니 잠을 깬다. 차에서 내리고 싶어서일까? 아니면 나를 믿어서일까 아빠가 차를 몰고 가도 울지 않는다. 아이를 안고 강 오른쪽에 있는 풀밭으로 간다.

아직도 잠이 덜 깨 눈을 비비고 있는 아이를 추스르며 나는 다리의 유래가 적힌 표지판을 읽는다. 19세기 말엔 물레방아 동력으로 강가에서 목재소를 운영했다고 한다. 목재수송을 위해 강 위에 다리를 건설하고, 다리 침목을 보호하기 위해 지붕을 덮었다. 20세기에 들어서자 전기가 이 시골까지 들어와 물레방아 동력이 필요 없게 되자 그 시설은 한동안 버려져 있다가,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이 지점에 지붕 덮인 옛 모양대로 다리를 옮기고 물방아도 옛 모습대로 만들었다고 쓰여 있다.

다리는 1,000에이커가 넘는 방대한 이 공원의 중심이 되어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30년 전 내가 처음 보았을 때는 갓 보수하여 새 재목으로 벽을 만들고 지붕을 얹었으나, 그동안 재목에 연륜이 쌓여 짙은 고동색으로 변하여 더욱더 장중하고 역사에 걸맞은 모습이 되었다.

이제 그 긴 다리와 폭포를 배경으로 빨간 티셔츠에 앙증맞은 청바지를 입은 에디가 웃으며 넓은 풀밭을 뛰어다닌다. 라이언이 이쪽으로 걸어온다. 낡은 청바지에 흰 와이셔츠를 입고 잔잔한 눈빛, 우뚝한 코, 쉬이 가까이할 수 없는 예리한 인상을 준다. 비행장에서 본 첫인상과 같이 행동거지에 흐트러짐이 없다. 나의 첫인상이 바로 저렇다고 하던 사람들의 말이 다시금 생각난다.

에디가 제 아비를 보고 쫓아가서 덥석 안긴다. 아이는 나의 어머니 모습과 메기의 성격을 닮아 나를 쉽게 받아들이는 반면에, 라이언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라이언, 강가를 좀 둘러볼게.”

그러세요. 마음 놓고 천천히 둘러보고 오세요.” 라이언이 차분하게 말한다.

나에게 원망스러운 감정이 있겠지만, 라이언은 조금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는다. 구질구질하기 싫은 미국인의 자존심, ‘너는 너, 나는 나하는 그의 분명함이며 또 냉정함이기도 하다.

폭포를 지나 강 상류로 올라가니 물결이 잔잔하다. 아름드리 플라타너스가 강물 위에 쓰러져 있던 곳이 이 근처일까? 메기와 나는 강물에 쓰러져 있는 아름드리 나무둥치 위를 조심조심 걸어갔었지. 마주 보며 걸터앉아 모친이 삯바느질하며 가난하게 자란 내 과거를 이야기했다. 메기 앞에서는 이야기가 쉽게 풀려 나왔고 언어가 문제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영어회화 연습을 위해 메기를 자주 만났다. 그녀는 늘 어색한 표현을 지적해 주었고 나의 발음을 고치고 반복시켰다. 다행히 메기 어머니가 미국 동부 출신으로 교육을 받은 분이라, 모녀는 남부 사투리를 쓰지 않았다. 내가 지금 이만큼이라도 영어를 하는 것은 순전히 메기 때문이며 영문학을 공부했다던 그 히피 어머니의 덕택이다. 샌드위치 점심을 대접하며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분은 그 나이에도 참으로 순수하고 인간적이었다. 왜 그 착한 사람들이 가난하고 고통스럽게 살아야 했는지?

크나큰 나무둥치가 쓰러져 있던 그 자리를 끝내 찾지 못하고 돌아섰다. 그것이 아직도 거기 있으리라고 예상하지 않았지만, 없으니 서운하다. 강가를 거닐다가 돌아오니 라이언이 풀밭에 타올을 깔아놓고 에디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있다. 물티슈로 사타구니를 꼼꼼히 닦아준다. 나는 저토록 정성스럽게 내 아들 진수를 돌봐 준 적이 없었다. 통통한 두 다리 사이에 있는 예쁜 고추를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라이언, 엄마 묘지에 한 번 들렀으면.”

그럼요. 여기서 멀지 않아요. 그러지 않아도 모시고 가려했어요.”

우리는 침례교회 뒤에 있는 교회묘지로 갔다. 묘지에는 평평한 땅에 메기 존즈라고 새긴 작은 동판에 생년월일과 죽은 날짜가 적혀있다.

겨우 50에 세상을 떠난 메기, 너무나도 일찍 가버렸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라이언이 만든 장례식 프로그램조차 날 사랑하여 옆에 있어 주길 바라더라도 떠나게 해줘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 교회가 바로 장례식을 치른 곳이구나.”

, 그래요.”

우리는 계단을 올라가 육중한 교회 문을 열고 들어간다. 장례식 초청장을 생각하며 앞자리에 가서,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는다. 지난 30, 잊으려고 무한히 노력했고 그래서 잊고 살았다. 그러나 라이언과 에디를 눈앞에 보니, 그 애들이 바로 나의 현실인데 잊으려고 했던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이었던가? 물론 한국에서 배신감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아내도 나의 현실이다.

착잡한 마음으로 교회를 나오는데, 라이언이 말한다. “엄마가 살던 집이 여기서 가까워요.”

나는 다시 라이언에게 관심을 돌린다. “그래, 가보자.”

팔려고 내놨어요.”

그럼 그렇게 해야지.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어느덧 우리는 부동산세일 푯말이 있는 집 앞에 왔다. 소박한 단층집, 대지가 넓고 뒤에 숲이 있는 집, 옛날에 내가 왔던 바로 그 집이다. 모친으로부터 집을 물려받았구나. 가을 햇볕에 양지바른 거실이 눈에 익다. 고객에게 언제라도 보여줄 수 있도록 집은 말끔히 정돈되어 있다. 여기서도 라이언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좁은 아파트에 살다가 이곳에 오면 에디가 아주 좋아해요. 여긴 제가 갖고 놀던 장난감은 물론 엄마가 어릴 때 갖고 놀던 것도 있거든요.”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에디는 장난감 상자 쪽으로 쫓아간다. 라이언이 나무로 만든 강아지를 꺼내 단추를 누르자 음악 소리가 나면서 강아지는 아장아장 걸어간다. 신나게 강아지를 따라 한참 쫓아다니는데, 음악이 멎으며 거실 한가운데에 뚝 선다. 에디가 나를 끌고 가 단추를 꾹 누르라고 시늉한다. 아직 제 혼자서는 할 수 없으니, 어른을 시켜 힘들여 꾹 눌리도록 한다. 라이언이 부엌에서 덜그럭거리는 동안 나는 에디와 같이 논다. 만 두 살도 안 된 놈이 꽤 눈치가 있고 붙임성도 있다.

라이언이 점심 준비가 되었다면서 오라고 한다. 나무로 된 하이체어는 자기가 어릴 때 쓰던 것이라며 에디를 앉힌다. 라이언이 따끈한 피자를 찬 콜라와 함께 내놓는다.

피자가 웬 거냐? 먹을 만하구나.”

냉동해놓았던 피자를 오븐에 구웠어요.”

어느새 자기 몫을 다 먹은 에디가 모아(more)” 하면서 접시를 내민다.

모아라는 말을 배웠구나. 나는 웃으면서 조그맣게 잘라 접시에 담아준다. 이 아이를 보면 절로 웃음이 난다.

이 집은 얼마나 받을까?”

“15만 불에 내놨는데 통 소식이 없네요. 경기가 나빠서.”

한국 돈으로 15천만쯤 된다. 시골집이라 그렇구나. 어서 이것을 팔아 보태어 애틀랜타에 집을 하나 샀으면 좋으련만. 좁은 아파트에 산다니 군색해 보인다. 집 장만하는데 보태주고 싶으나 미국 아이들의 독립심을 생각하면 라이언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말 한마디라도 조심해야 할 처지인데, 거절할 것을 알면서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더군다나 초면에 그런 말을 하면 라이언이 모욕을 느낄지 모른다.

점심 후, 라이언이 집을 보여준다. 메기가 쓰던 침실에는 퀸 사이즈 침대가 아직도 그대로 있고 작은 탁자 위에는 메기 내외의 결혼사진이 놓여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메기와 중년이 훨씬 넘어 머리가 희끗희끗한 미스터 존즈, 아버지와 딸 같다. 라이언의 어릴 때 사진이 여러 장 탁자 위에 진열되어 있고, 에디 사진도 있다. 얼굴이 몇 번씩 바뀐다고 하더니 라이언이 어렸을 때는 통통하게 살이 쪄서 지금 에디와 같았구나. 라이언이 나를 작은 방으로 인도한다.

이 방은 엄마가 처녀 시절에 쓰던 방이에요.”

창문을 통해 숲이 보인다. 그래, 이 방이지. 내가 처음 이 집에 왔던 날,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먹고 나서 메기가 이 방으로 살며시 나를 데리고 와서 나에게 매달리며 키스를 하던 곳. 그때를 생각하니 온몸이 나른해진다.

 

오후에 애틀랜타로 돌아왔다. 예약한 호텔로 데려다주면서 라이언이 말한다. “내일은 제가 좀 바빠요.”

월요일이니 당연하지. 나는 학생시절 옛 친구를 만날 거야. 이곳에 계속 눌러앉아 사는 친구가 몇 있거든.”

내가 이곳에 여러 날 머물면서 라이언과 친해지고 싶지만, 눈치를 보아하니 그의 생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바쁜 아이에게 밉상을 보이기 전에 며칠 안으로 떠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난 목요일쯤 떠날까 하는데 어떨까?”

그렇게 하세요. 그 전에 제가 다시 들를게요. 화요일과 수요일엔 낮에 시간을 낼 수 있어요. 아무 때나 연락하세요.”

그래, 잘 됐구나. 그렇게 하자,” 하고 나는 기회를 놓칠세라 얼른 대꾸한다.

케슬린을 만나고 싶으나 라이언이 먼저 제의하지 않으니,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다.

 

라이언은 고맙게도 화요일과 수요일 양일간 나를 만나주었다. 수요일엔 애틀랜타 시내 한국 식당에서 점심으로 갈비정식을 나누며 우리 집안 얘기를 했다.

당신의 아버지는 왜 그렇게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까?” 하고 라이언이 물었다.

당신의 아버지? 그 호칭에 움찔했다. 그러면 이 애가 우리 아버지를 어떻게 달리 부를 수 있나? 그러한 나의 심정을 내색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해줬다.

장티푸스로 돌아가셨다. 당시 유행했던 전염병이었거든. 유전적인 문제가 아니었어.”

라이언이 안심하는 눈치였다. 에디의 아비로서 중요한 질문이었고, 또 나를 만나려는 이유였다. 그런 까닭이 아니면 오랜 세월 상처받은 마음을 다스려가며 구태여 나를 만나야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목요일 아침에 라이언과 나는 애틀랜타 비행장에 왔다. 인천행 대한항공이 1155분에 출발하니 시간이 넉넉하여 우리는 공항 내의 맥도널드에서 아침 커피를 나누고 있다.

커피 맛 좋은데.”

그럼요, 맥도널드 커피라고 무시할 게 아녜요. 스타벅스 커피는 비싸기만 하고 저에겐 너무 진해요. 저는 맥도널드 커피가 더 좋아요.”

우리가 같은 커피를 좋아하는구나. 서로 간의 공통점을 발견하며 이해하는 과정이다.

라이언은 내가 한국서 가져온 주황색 소매 긴 셔츠를 입고 있다. 나의 기분을 생각해서 이 미국 아이가 예의로 입고 나온 줄은 안다. 오기 전날 롯데 백화점에서 이걸 샀는데 라이언의 피부 색깔에 맞는다. 특이한 색깔로 옛날에 메기가 내 생일날 셔츠 한 개를 사주면서 번트 오랜지(burnt orange)색이라고 한 적이 있다. 오렌지를 태운 색깔? 했더니 그녀가 웃으며, 빨강과 노랑의 중간색이라고 했다. 여러 해 동안 그녀를 생각하며 입었는데 내용을 모르는 아내는 내게 어울리는 색깔이라고 했다. 나에게 맞는 색깔이면 라이언한테도 어울리겠지 하고 샀는데 과연 보기 좋다.

아내가 괴로워하고 있을 때, 나는 이 식구들의 선물을 사겠다고 백화점을 몇 군데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30년 전에 지은 죄 때문에, “해도 죽일 놈, 안 해도 죽일 놈이 되어 내 인생이 아주 복잡해졌다.

 

떠날 시각이 가까워 온다. 라이언이 손목시계를 보며 말한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랫동안 미룬 것이 후회돼. 너와 엄마한테 미안하다.”

다 지나간 일이에요. 지금 와서 원망하지 않아요.”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마워.”

라이언이 가방에서 은색 사진액자 한 개를 꺼내어 나에게 준다.

이 사진은 엄마가 가끔 한 번씩 꺼내보던 것인데, 이제는 가져가시는 것이 좋겠어요.”

메기가 왓슨 밀 공원에서 찍은 컬러 사진인데 내가 등산 조끼를 입고 숲을 배경으로 웃고 있다. 지금과 같이 단풍이 찬란하던 계절에 인물위주로 찍어서 나의 모습이 잘 나온 것이다. 숱이 많은 검은 머리, 주름살 하나 없이 매끈한 피부, 지금 라이언과 같은 나이였다. 빛나는 젊음, 나도 이런 때가 있었구나.

나는 사진을 그에게 도루 내밀며 네가 가지렴.” 했다.

“It’s okay.” 하며 괜찮다고 한다.

그는 내 사진을 간직할 의사가 없다는 듯 그것을 받지 않는다. 나의 손이 무안하게끔.

라이언이 다 지나간 일이에요. 지금 와서 원망하지 않아요.”라고 했다.

그 말은 나를 너그러이 봐 준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나에게 아무런 애착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모자가 나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나는 그들을 외면했다. 무슨 애정이 있겠는가?

제 아이를 위하여 주로 유전적인 측면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그의 입장에선 더 이상 상처를 받지 않으려면 나를 사무적으로 대하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 이제야 찾아온 나, 그는 나를 믿지 않는다. 일정한 거리에서 나를 관찰하려는 것 같다. 우리 사이에는 큰 강이 있다. 다리가 놓여 있으니 그래도 희망이 있는 것일까? 게다가 침목이 썩지 않게끔, 그 넓디넓은 강 위에 놓인 다리는 지붕으로 덮여 있지 않은가? 기다려 보자. 시간이 약이라고 했다.

떠날 시간이 되어 우리는 일어섰다. 에디를 한 번 더 내 품에 꼭 안아본다. 나의 살, 나의 피, 세상에 이렇게 귀한 것이 있는 줄 몰랐다. 아이를 라이언에게 주고 출구 쪽으로 나간다.

에디가 갑자기 팔을 뻗치며 나에게 오겠다고 한다. 나는 출구 쪽으로 나가며 그들 부자에게 손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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