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09.03.23 15:12

김영주

추천 수 0 댓글 1
Extra Form
장르 소설
이메일 giantess@gmail.com
                                      신인상 시상식.jpg                                         


                                  * 워싱톤문학 신인상 소설부문 당선(2009)
                                           * '해외문학' 제 12회 신인상


*************************************************************************************
 

 


        새로운 발자국


                 

 


1. 다운프트(Downshift)족이라구?

 

랩탑을 열고 인터넷이 연결되었다는 뜻의 작은 아이콘이 푸른 빛을 발하면 구글 검색창을 열고 <......>이라고 타이프한 엔터 키를 친다. 관련문구가 들어있는 다양한 종류의 정보 창을 손에 잡히는 대로 열어본다.

[다운쉬프트라는 말은 원래 자동차 용어로써 저속 변속(變速)을 의미......경쟁과 속도에서 벗어나 여유있는 자기만족적 삶을 추구......생활의 패턴을 여유롭게 바꾸어 여가를 즐기고 삶의 질을 향상 시켜 만족을 추구......일과 생활에 건전한 균형과 행복감이 넘치는 삶 추구......원하는 형태의 삶을 위해 고소득을 기꺼이 포기하는 것이 뚜렷한 공통점......중산층 전문직이 많은 것도 특징 중의 하나......증권금융업이나 법조계, IT업계종사자들이 많다......연령층은 가족에 더 큰 가치를 두는 30대와 40대가 많다......]

 

어제 저녁 뉴욕에 사는 미영 언니랑 통화를 했을 때 그녀에게서 이 단어를 처음 들었다.

너도 <다운프트족>이구나!”

, 무슨 족요?”

------이라구. 전문직을 가지고 잘 나가던 사람들이 돈은 더 적게 받아도 스트레스를 피해 자기가 선호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선택하는 사람들을 요새 그렇게 부르더라구. 최근 유럽에서 시작된 사회현상이라는데 그런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가 봐. 우리 회사팀에도 얼마전에 플로리다에 가서 케잌 데코레이션 비지니스 한다고 그만둔 젊은 여자 하나 있어. 아주 똑똑하고 다부진 여자 였는데. 케잌 클라스 다닌다고 행사 때 마다 케잌 하나 씩 만들어 오곤 하더니 어느날 자기 케잌회사 명함 하나 씩 나눠주곤 정말 떠나버린거 있지.”

언니는 IBM에서 연봉 이십만불을 받고 일하는 수퍼우먼 IT메니저이다. 케잌 데코레이션 비지니스를 위해 떠났다는 여자는 언니가 리더로 있는 IT팀에 수 많은 명석한 두뇌들을 제치고 수석으로 들어왔던 엘리트였다고 한다. 언니는 그 여자가 떠나버린 것이 못내 아쉬운 듯 그녀가 얼마나 훌륭하게 임무들을 수행했었는지에 대해 장황히 늘어놓는다. 몇 십만불의 연봉을 포기하고 IBM IT팀을 그만둔 여자라니! 뉴욕의 산골이 아니라 바닷가를 더 좋아하는 여자였나보다. 자기가 설 곳은 컴퓨터 앞이 아니라 따끈따끈한 빵이 모락모락 김을 내며 탄생되는 오븐 앞과 이벤트가 벌어지는 파티 장소라는 것을 최근에 깨달았을 여자. 지금 행복할까 그녀는?

앞으로 뭘 해볼 생각이니?”

차분한 어조, 조심스러운 질문이지만 내 가슴에 내려앉는 질문의 무게는 숨이 턱 막힐 지경이다.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친구 소개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긴 했는데……”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마. 우선푹 쉬면서 천천히 생각해. 좀 재충전 되면 더 좋아하는 일을 시작할 기회가 분명히 생길거야

유능하지만 따뜻한 사람. 미영언니가 그렇다. 서른 해를 넘게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보았지만 탁월하게 유능하면서 동시에 마음 깊이 자신과 다른 종류의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따스함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내 주변에서는 미영 언니가 유일하다. 언니는 자신의 일에 파묻혀 있는 것을 즐기고-어느 정도냐 하면 자신이 배아파 낳은 아기의 존재를 일하는 순간 깜박 잊을 수 있을 만큼!!-그 일을 즐기는 사람이 많지 않은 세계에서 언니의 존재는 점점 탁월해져가고 경쟁을 위해 목을 메고 있는 것이 아닌데도 언니의 직함은 높아져만 간다. 언니는 그저 운전을 즐길 따름인데 회사에서 알아서 가장 최신형의 레이스카로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프로레이서가 된 것처럼.  

언니가 나에게 다운프트족이라고 이름 붙여준 것은 언니의 친절함이 묻어난 배려 깊은 말이다. 내가 고소득 연봉을 자랑하는 금융, 법조, IT계의 전문여성이었다고 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고, 현재 뚜렷하게 건전한 균형과 자기만족적 삶을 제공해주는 새로운 일을 하고 있다고 명함을 내밀만한 처지도 아니다. 내가 7년동안 일하고3개월전 그만둔 회사는 메릴랜드 어룬델 밀스 몰 가까이에 위치한 조그만 엔지니어링 회사다. 연봉 72천이 내가 그 회사에서 마지막으로 받은 연봉 액수였다. 그렇게 적은 월급이 아니라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7년 전 48천에 첫 연봉협상을 했던 25세였던 나는 그 사이 32세가 되었다. 머리카락은 윤기가 없어지고, 이마가 더이상 젊음으로 팽팽하지 않은 32. 72천에 내 모든것을 다 내어주고 싶지 않은 나이가 되어 버린 일까?

 

2. 경고등이 깜박 깜박……그리고 멈춤

 

다른 일을 해보고 싶어요.”

회사를 그만두기 한달 전쯤 어느 주말 오전, 빨래를 개고 있 엄마 옆에 앉아 불쑥 던진 말이다. 빨래를 개던 손이 멈추었다. 엄마는 뭔가 말하려고 입을 여셨다가 꾸욱 다무셨다. 정적이 흐르자 열어놓은 창 틈으로 맑게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려왔. 먹이가 풍성한 여름이 오고 있음을 축배라도 하듯 여러 마리의 새들이 한꺼번에 재재거렸다. 엄마는 한참 만에 입을 여시곤,

지금까지 공부한 것 아깝지 않겠니?”

천천히 빨래개기를 이어가는 엄마의 거친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며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고 있었다.

스트레스를 견딜수가 없어. 의미도 없이 화학약품 냄새나는 실험실에 아침부터 밤까지 갇혀있는 일 더 이상은 못 하겠어.”

엄마는 다시 입을 열었다가 더 굳게 입술을 다무셨다. 울 엄마의 좋은 점은 말을 많이 아끼신다는 점이다. 적어도결혼은 언제 할래?” 같은 말은 하지 않으신다. 엄마는 결혼제도를 믿지 않는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내가결혼이나 해버릴까?” 라고 싱거운 말을 꺼내면, 엄마는일단 좋아보이는 남자가 나타나면 적어도 삼년은 살아보고 결혼 할지 말지 결정해라고 말하신다. 결혼이 딸의 장래를 보장해주는 보증수표라는 믿음 따위는 전혀 없다.

어쨌든, 이 나이에 결혼을 못해서 소위 말하는 히스테리가 생겼다거나 집에서 스트레스를 준다거나 뭐 그런 건 아니라는 말이다. 엄마는 다만 나의 독립적인 삶을 위해서 경제적으로 성공하기를 바라신다. “너는 훌륭한 사람이 될거야”, “이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등불처럼 소중한 존재가 될거야……. 기억에도 없는 순간부터 내내 들었던 나를 향한 엄마의 주문이었다. 아빠가 술에 만취해 계집애가 쓸데없이 공부는 왜 해?”하면서 내 책상 위의 책들을 잡히는 대로 그러모아 문 밖으로 던져버려도, “낼 부터는 밖에 나갈 생각 하지 말고 엄마 옆에서 집안 살림하는거나 배워!”하고 며칠간 집에 가두거나 할 때에도, 엄마는 잠들기 전 내 머리맡에 앉아 내가 공부를 많이 하고 분명 훌륭한 사람이 될거라고 속삭이며 내가 훌쩍이다 잠들 때까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곤 하셨다. 엄마는 엄마가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으로 내가 나의 길을 갈 수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주셨다. 하지만 엄마는 나의 갑작스런 선고에 더 이상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어쩌면 엄마는 이런 종착역을 예상하고 계셨는지도 모른다. 내가 공학을 전공했던 이유. 남자에게 기대지 않기 위해서 남자들이 하는 공부 남자의 직업을 선택했던 것. 우리 형편에 힘들지 않게 학비보조를 쉽게 받을 수 있었던 분야. 월급을 받으면서 대학원도 다닐 수 있는 분야. 내가 공학을 과학을 좋아하는가 이 분야에서 보람을 느낄수 있는가는 이차적인 문제였다. 그럭저럭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했다. 몇 년간의 젊음을 고스란히 바쳐 1인치쯤 되는 논문집과 함께 대학원도 무사히 마쳤다. 문제는 엔지니어로 일을 하면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나 자신의 영혼을 팔아 하루하루 사는 듯 내 내부가 고갈되어 말라가고 있었던 것이었. 그 일에 대한 열정의 기반이 너무 얇은 탓이었다.

 

본격적인 매릴랜드의 후덥지근한 여름 냄새가 실험실에 스며들기 시작했을 즈음, 1초도 더 거기 앉아 있을수 없이 숨이 막혀오던 순간 보스에게 전화를 했다. 아직 그 다음에 뭘 할지도 모르면서도 나 자신을 막을 수가 없었다.

본부 사무실에 자리를 하나 마련해 주실 수 없을까요?”

무슨 일이지?”

실험실에서 일하는 것 그만두고 싶어요. 여기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너무 스트레스가 되요. 본부에 마땅한 포지션이 없을까요? 실험실 일만 아니라면 어떤 일이든지 열심히 할께요.”

“……”

어이없어할 그의 표정이 눈 앞에 보이는 듯 했다.

갑자기 이렇게 말씀드려서 죄송한데요. 하지만 진심으로 실험실이 아닌 곳에서 일해보고 싶어요

수지, 이번 <에어포스 로켓엔진 인젝터 프로젝트> 3개월 뒤면 끝나. 조금만 더 견디고 그때 가서 이야기 하자. 그래줄 수 있지?”

아니오. 3개월 더 이렇게 할 수 없는 상황에 왔어요.”
뭐가 문제지? 왜 진작 의논하지 않고 갑자기 이러는거야?”

문제는……”

누군가의 쫓김을 당하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듯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진다. 불끈 용기가 솟아 그의 사무실 전화번호를 꾸욱 꾸욱 누를 때의 기백은 어디가고 침이 마르고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 내 머릿속에 도는 말들은 너무 많은데, 그가 납득할만한 적당한 대답을 집어낼 수가 없다.

문제는 바로화학약품을 더이상 만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예요.”

우리는 그렇게 치명적인 화학약품을 쓰고 있지 않는데? 그리고 그런 약품을 안전하게 사용할 줄 아는 것이 화학공학하는 사람들이 학교에서 받는 트레이닝 아닌가?” 그의 목소리에 순간 싸늘한 기운이 감돈다. 가장 타당하게 들릴 수 있는 답일거라 퍼뜩생각해 낸 대답인데 화학공학 전공자로서는 정말 바보같은 대답을 하고 말았다.

그래도 이런 환경에 있는게 저에게 스트레스가 많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젠 되돌릴 수도 없으니 끝까지 가본다.

그럼 수지는 더 이상 여기서 일하면 안겠군. 당신이 원하는게 정말 실험실에서 일하는걸 그만두는거야?”

.” 보스의 고드름이 떨어질 듯 냉기 서린 질문에 다른 답을 찾지 못하고 결정적인 대답을 하고 말았다.

당장 내 사무실로 오게. 켈리에게 사직절차를 밟도록 지시하겠네.”

이것이 다시는 되새기기 싫은 구두사직서가 되어버린 대화였다.

 

내가 7년을 보낸 그곳에서 더 이상 있기 싫어졌던 것은 그 회사 탓은 아니었다. 업무분량이 상당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정도 혹은 그 이상의 일중독 생활을 하지 않는 엔지니어는 어디서든 찾기 어렵다. 그리고 그러한 오버타임 스케쥴을 회사가 공식적으로 강요한 적도 없다. 한가지 유일한 책임이라면 7 전 나를 고용했었던 것이겠다. 그때 이 회사든 어느 엔지니어링 랩이든 나를 받아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다른 길로 갔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공부한 것이 아깝다고 그렇게 못했을 것이다.

! 그 회사에서 정말 싫었던 것이 하나 있기는 있다. 그 랩을 나와 오른쪽으로 난 복도를 발자국 걸어가면 있는 그 화장실 거울! 그 거울이 정말 싫었다. 그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누렇게 뜬 얼굴, 가늘게 얼기설기 얽힌 붉은 실핏줄로 광채가 가려진 눈빛, 끝이 갈라진 칙칙한 머릿결…… 시간이 갈수록 더 나빠지고 있다는 그 느낌이 견딜수 없이 하루도 더 회사에 나오기 싫을 만큼 싫어졌다고 하면 내 보스는 뭐라고 했을까? 전 회사 직원들과 돈을 거두어 백설공주같은 하얗고 보송보송한 붉은 혈색의 여인 모습만 나타나는 마법의 거울을 사주었을지도 모르겠다.

서른이 되기 전까지는 괜찮았던 같다. 짓 단에 밴 기름때도, 각종 화학약품들이 튀어 군데군데 색이 바래고 소매끝이 타들어간 실험가운도. 매일저녁 실험보고서를 마무리하고 어둑한 밤 하이웨이를 1시간 달려야 하는 일도. 머리를 뜯으며 밤새 논문을 쓰는 일도. 내가 정말 열심히 살고 있다고 느껴져 뿌듯하던 순간도 분명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넝마처럼 낡고 벙벙한 실험가운에 갖혀 밤낮으로 기계하고만 씨름하는 일상이 싫어졌다. 급속도로 빠르게 변하는 테크놀러지의 세계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숨쉴 틈 없는 일과 속에서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점점 큰 소리로 메아리쳐 올라오는 울림이 있었다.

무엇을 위해서 나는 이렇게 살고있는 것일? 누구를 위해서?’

공허한 마음이 바닥으로 치닫고 있었다.

국수주의에 머리를 흠뻑 적시고 있던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과학 발전을 통한 조국의 경제력 강화>라는 명분이 있었다. 내가 미국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맡아 진행하던 대부분의 연구 프로젝트를 지원하던 자금들은 미 국방부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다름아니라 미 국방부 산하 군 연구소의 진두지휘 하에 진행되고 있던 방위산업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이 나에게 배당되었던 주 업무였다. <새로운 조국의 군사력 강화를 위해서>라는 사명감이 내 가슴팍에 새겨지기엔 머리도 가슴도 너무도 차갑게 굳어져 있었다. 첫사랑의 열병이 지나고 나면 절대 다시 재현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새 나라에서 내 인생의 정착>이 내가 그 회사에서 청춘의 황금기를 보낸 보다 진솔한 이유일 것이다.

유명 과학 잡지에 논문을 발표하는 일도 몇 십만불의 연구자금을 따내는 성과도 이력서에 한줄 빛나는 것 외에 가슴깊이 내 삶의 의미가 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저녁을 먹는 일이 그리워졌고, 다른 옷들을 입고 다른 곳으로 가고싶어졌다. 그리고 남자동료들에 둘러싸여 눈에 쉽게 띄는 마이노리티로 지내는 것도 힘겨워졌다. 여자가 없는 공대생활부터 홍일점으로 지낸 것이 어언 십 수년이 되었지만 마이노리티로 산다는 것은 결코 적응되는 일이 아니다. 공유할 수 없는 시선의 칼날에 베인 흉터 자국만 늘어갈 뿐.

 

3. 바꿔 타기

 

오랜만에 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 진현이와 연락이 되었다. 진현이가 바로 나에게 가구점 아르바이트 일을 소개했던 친구다. 가구점에서 일하고 싶다는 목적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 장식>이라는 분야에 대해서 호감도 있었고, 실용성과 예술적 가치를 동시에 갖추어야 하는   아이템을 가지고 세일즈 사업을 하는 현장에서 배우면서 부딪칠 기회는 즐거운 시도로 느껴졌다. 진현이는 박사 학위를 받을 즈음 임신을 하여 졸업하고 한동안 아기를 키우면서 근처 대학에서 강의 하나 하는 것으로 박사라는 이름의 갈증을 채우며 가구점에서 주말에 아르바이트하고 있던 차였다. 한번도 써보지 못한 졸업학위를 못내 아쉬워하며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다가 아기가 프리스쿨을 갈 수 있는 나이가 되자 마자 연방 연구소직에 응시를 했고 그녀가 원하는 대로 풀타임 일을 찾았다. 그녀는 내가 직장을 그만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나에게 자기가 있던 자리를 권했고, 우린 기차를 바꿔타듯 서로의 인생을 바꿔탔다. 정말 타이밍이 절묘한 일이었다.

그 녀의 새로 시작한 풀타임 일이 얼마나 바쁠지 충분히 예상가능하기에 별 기대 없이 전화를 넣었는데 마침 아이 정기 검진도 있고 해서 하루 쉬고 있다며 병원검진은 아침 일찍 다녀왔으니 점심 먹자고 해서 여느 때와 같이 캐톤스빌 한국가게 옆에 있는 분식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엘 리콧시티에 사는 그녀와 볼티모어에 사는 나에게 딱 중간지점이 되는 곳이라 항상 그곳에서 만나 분식집에서 돌솥비빔밥을 한 그릇 씩 먹고 한국가게 내 빵집에서 파는 뜨거운 커피를 함께 마시는 동안 쫓기듯 서로의 일상을 보고하고 늘 짧은 만남을 아쉬워 하며 헤어지는 것이 정해진 대본 같은 우리의 만남이었다. 그녀는 아이 때문에 바쁘고 나는 일 때문에 바빴으니까.

나는 진현이를 거의 몰라볼 뻔 했다. 긴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 찰랑이는 단발머리로 변화를 준 탓도 있지만 볼살이 많이 빠져 한층 여윈 모습이었다.

가구점 일은 어때? 할만해? 같이 일하는 미국 애들 좀 까칠하지 않니?”

자리에 앉기도 전에 딸아이를 의자에 앉히며 질문을 쏟아낸다. 그러다 얼핏 시선이 내 얼굴에 머무는가 싶더니, 뭔가 신기한 광경을 갑자기 목격하기라도 한 것처럼 눈이 둥그래져 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노골적으로 훑어 내린다.

뭐냐? 선보냐?”

맨날 티셔츠에 기름때 묻은 청바지 차림만 보다가 스커트에 롱 부츠를 신고 있는 내 모습을 본 진현이의 반응이었다. 순간 내 얼굴이 붉어졌지만 짐짓 태연한 척했다.

흠흠뭐 먹을래?” 이야기를 슬쩍 돌린다. 솔직이 말해서 너무도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이 자리에 나왔을 진현이 얼굴을 대하고 보니 내가 이런 옷을 꼭 한 번 입어보고 싶었다는 둥 하는 이야기들을 재재거릴 의욕이 물거품처럼 사그라든다.

돌솥 먹자. 여기 그게 제일 낫잖아역시 오늘도 돌솥비빔밥이다. 갈비살을 얹은 돌솥비빔밥 두 개를 사서 쟁반에 들고 자리에 오니 진현이가 지갑을 열고 돈을 꺼낸다.

됐어. 내가 살게. 가구점 일을 알선해 준 보답!.”

……우리 사이에 뭘 그 정도 가지구 밥을 사고 그러냐? 가구점 쥐꼬리만한 급료 내가 다 아는데……”가구점 일이 급료도 적고 은근히 노가다인데다 까다로운 손님들 비위까지 맞춰야 한다고 불평이 많던 그녀였지만 이젠 친구의 일이다 싶은지 평소 레퍼토리를 줄줄 읊으려다 말고 주춤하며 내 눈치를 살핀다.

그래도 내겐 지금 이 일이 그나마 붙잡을 지푸라기야. 너한테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생각보다 나한테 일도 잘 맞는 것 같고. 너는 어때? 바쁘겠다. 아이도 아직 어려서.”

말도 마! 지금은 그래도 많이 나아졌어. 첨엔 애 프리스쿨에 떼어놓고 일가는 게 어찌나 어렵던지. 일주일 동안 울고 불고 난리였어. 아침마다 전쟁을 치르고 눈물 글썽한 애를 억지로 떼놓다시피 하고 출근해서는 보스 눈치 살피랴, 새로 맡은 일 파악하랴……” 홀 쪽 살이 빠져 볼 뼈를 앙상히 드러내며 그간 있었던 일을 한숨 섞어 하소연하는 진현이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신경 써 주어야 할 아이가 있는 진현이의 어깨에 지워진 풀타임이라는 책임의 무게가 짓누르는 느낌이 그대로 내게 전해지는 듯해서 그녀와 같이 있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집에서 하겠다고 들고 온 직장 일이 있어 가서 일해야 한다고 밥을 먹자마자 부랴부랴 일어서는 진현이에게 한국가게로 금방 뛰어들어가 사 들고 나온 커피 캔을 하나 손에 쥐어주고 아쉬운 마음을 숨긴 채 헤어졌다. 진현이에게 아이가 생긴 후로 늘 우리의 만남은 이렇게 정신 없고 짧을 수 밖에 없었지만 왠지 이번엔 조만간 진현이의 얼굴을 다시 보기는 힘들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슬프고 외로운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동안 만나기만 하면 이런 저런 프로젝트에 주말도 없이 바쁘다고 징징대는 나와 헤어져서 돌아가는 진현이의 기분은 이런 것이었을까? 아마도 내가 지금 느끼는 것과는 달랐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때의 진현이에게는 가보지 않은 길이었고 지금 나에게 진현이의 길은 짐작이 가는 길이니까.

 

4. 이제 어디로 갈까?

 

치카치카 양치질을 정성들여 하고 초록색 스웨터를 꺼내입는다. 오늘 가구의 모토는 크리스마스이다. 가구뿐 아니라 이나 꽃병등의 모든 집안 장식용품, 인테리어 관련 도서까지 판매하는 이 가게는 계절이나 절기에 따라 전문 디자이너가 와서 가게를 적절하게 장식한다. 회사가 정해주는 컨셉대로 일하는 직원들도 옷을 맞추어 입고 . 아직 땡스기빙도 지나지 않았지만, 상점들은 할로윈에서 바로 크리스마스 절기로 건너뛰었다. 초록색 상의와 대조를 이루도록 붉은 악세사리를 하고 검은 바지를 맞추어 입었다. 옷에 향수를 살짝 뿌리곤 볼티모어 다운타운에 있는 가구점 <SU CASA(당신의 집)>로 향했다.

초겨울이 벌써 입성한 듯 볼티모어의 저녁거리는 뿌연 가로등 아래 매서운 바람이 불어치고 봉지와 종이 조각들이 길잃은 영혼처럼 여기저기를 떠돈다. 가구가게 입구에 파킹을 하고 큰 정면 유리문을 여는 순간 세찬 바람이 내 몸을 수욱 밀어넣고 다시 문을 쾅 닫는다. 가구안의 벽걸이 장식들이 동시에 파도에 밀린 해초처럼 딸랑인다. 평일저녁 치고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미국사람들 중에는 크리스 마스 쇼핑을 아주 일찍 하는 사람들이 많다. 요즈음은 가구보다는 크리스마스 장식을 위한 붉은 색 그릇, 테이블 보, 양초등의 테이블 액세서리들이 선물용으로 많이 나간다. 덕분에 일하는 사람 모두 너 나 할것없이 선물포장을 해주는데 일하는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다. 커미션 노트엔 11월이 시작된 이후로 기록할 것이 없다. 커미션 노트란 150불 이상의 가구를 팔때마다 그 가격의 5%를 커미션으로 받는데 그 커미션을 매번 기록해 두는 장부를 말한다.

시작했던 첫날 얼떨결에 300불 짜리 오토만과 800불 짜리 와인 바를 하나 팔고 55불이 누적되어 있는 것은 노트를 펼쳐보지 않아도 내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는 사실이다. 첫날 커미션을 받고 계산을 해보니 급료가 거의 기본급의 두배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너무 흥분에 들떠 엄마께 알리고우리딸이 말도 잘하고 똑똑해서 뭐든 잘하는 구나하고 말씀하시게 만들었지만 사실은 그게 나의 세일즈 실력이라고 하기엔 좀 무리가 있다. 가구가게에 들어오는 고객들 중에는 따로 세일즈를 하지 않아도 이미 필요한 정보수집을 마치고 특정 가구를 사겠다고 결심하고 오는 고객들도 상당수 있는데 그들이 들어와서 누구에게 말을 하느냐는 그 세일즈맨의 운일 따름이다. 그날 나는 그저 거기에 서 있었을 뿐이었다. 내가 특별히 한 일이라곤 고작 고객이 원하는 가구가 가게 창고에 들어와 있는지 확인해 준 것 밖에 없었다. 그리고 55불이라는 커미션을 받았다.

기대도 없었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모르는 사이 받게 되었던 그 커미션 이후로는 다시 그와 같은 기회가 없었다. 가구를 살듯 살펴보는 손님들 주변을 배회하며 도움을 줄 기회를 엿보기도 했지만 실제로 그러려고 마음을 먹고나니 생각보다 사람들은 가구사는 결정을 쉽게 내리지 않고, 같은 먹이를 노리는 같은 시간대에 일하는 동료 세일즈맨들과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도 상당했다.

가구가게의 뒷방은 넓고 화려한 매장 플로어와 대조적인 공간이다. 좁고 긴 공간 양옆으로 물건박스들이 산적해있고 왼쪽 끝엔 사장과 매니저가 쓰는 컴퓨터가 놓인 책상이 있고, 오른쪽 끝엔 직원들이 한명씩 돌아가며 도시락을 먹거나 쉴 수 있는 테이블이 하나 있다. 테이블 옆에 캐비넷을 열어 옷과 가방을 걸고, 케비넷 문에 붙어있는 조그만 거울조각에 비춰가며 찬 바닷바람에 트실트실해진 입술에 꿀냄새가 나는 립밤을 바르고, 심호흡을 크게 두번 한 후 큰 철문을 밀어 열고 매장으로 나간다. 극을 위해 꾸며진 세팅장을 걸어나가는 연극배우 처럼.

매장플로어는 밝은 조명아래 가구와 장식품들이 가득하다. 줄리와 데이나가 손님선물을 포장하는 일로 분주히 손을 움직이고 있다. “수지, 넌 그냥 손님들 맞고 플로어를 돌아봐 줘. 여기 포장하는 일은 우리 둘이면 된것 같아서비스 데스크로 가까이 다가가자 데이나가 지친 기색으로 말한다. 데이나는 아침부터 지금까지 일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노련하고 눈치가 빨라 여기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가게 사장이 풀타임을 주었을 만큼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런 가게에서는 베네핏이 주어지는 풀타임을 얻는 자체가 큰 승진. 그녀의 커미션 장부는 벌써 두페이지를 넘어서고 있는 걸 얼핏 본 적이 있다. 

 

“Hi, how are you? How can I help you?”

(어서오세요. 안녕하세요.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처음에 어색하고 머뭇거리던 손님을 맞는 인사가 두어 달이 지난 지금은 여느 세일즈맨처럼 빠르고 매끄럽게 흘러나온다. 한 중년부부가 저녁을 먹고 와인을 한 잔 걸친후인 듯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붉고 후덕한 웃음을 띄며 훅 불어치는 바닷바람과 함께 유리문을 밀치고 들어온다.

플로리다에 있는 별장에 놓을 가구를 찾고 있는데 등나무로 만들어진 오토만 혹시 있나요?” 최근 별장을 마련한 듯 목소리에 흥분감이 서려있다. 안정되고 여유있는 중년의 문턱에 마침내 다다른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만족감과 뿌둣함이 질문에 묻어난다.

마침 이번 주에 들어온 오토만 중에 등나무 제품이 있어요.”

붉은 스웨이드 카우치 앞에 커피테이블 대용으로 놓여진 등나무 오토만으로 이 중년부부를 인도하면서 가격표를 슬쩍보니 500불이다.

 어머나! 이 디자인좀 봐요. 우리집 카우치랑 너무 잘 어울리겠어! 우리가 찾던 거예요. 이렇게 살짝 안으로 들어갔다가 바닥이 스커트 처럼 넓어지는 이 모양이잖아요!”

여자의 목소리가 흥분감으로 잔뜩 고조되었다. 흰머리가 끗한 남자의 얼굴에 만족스런 미소가 가득 번지며 나에게 한쪽 눈을 찌긋 윙크를 던진다. 나도 따라서 미소를 입가에 띄우는 동시에 가슴이 두근두근 방망이질 치며 입안에 침이 고이기 시작한다. 뭐부터 하더라. 가구를 팔아본지 한참이 되어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맞다. 일단 이 가구가 창고에 남아 있는지 확인해야한다.

원하시면 저희 창고에 이 제품이 남아있는지 혹은 더 주문을 해야 하는 상황인지 알아봐 드릴 수 있어요. 창고에 있으면 내일 당장 배달이 가능하구요. 주문을 더 해야 하면 1-2주 기다리셔야 하구요.”

숨을 쉬지 않고 말을 했나보다. 숨이 찬다. 이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입을 살짝 열고 조용히 천천히 큰 숨을 들이킨다.

한 번 알아 봐 주세요

부부는 붉은 카우치에 앉아 다시 한 번 등나무 오토만을 이리저리 쓸어본다. 마음이 변하지나 않을지 그들의 얼굴을 다시 한 번 힐끗 살피며 서비스 데스크로 종종걸음쳐 간다.

저 등나무 오토만 창고에 더 있는지 알아 보려는데...”

있어.” 하며 이미 나와 손님들간의 대화를 짐작한 눈치 빠른 데이나가 <등나무 오토만 3>라고 적 창고물품목록을 보여준다. 다시 종종 걸음으로 그 부부에게 가서 소식을 알린다

창고에 이미 들어와있는 제품입니다. 급하시면 내일 오전 창고 여는 시각에 바로 픽업하실 수 있어요. 볼티모어 안에 사시면 댁으로 배달해드릴 수도 있어요. 물론 무료로요.”

자선이라도 베푸는 듯 얼굴을 활짝 펼쳐 미소지으며 고개를 상냥하게 끄덕이고 있는 내 모습이 문득 낯설게 느껴진다.

저희 벤으로 내일 오후에 픽업할께요. 그건 그렇게 하고 여기 이 등나무 의자는 얼마예요? 이 의자 두개 창고에 있는지도 좀 알아봐 주시겠어요?” 하며 부인이 오토만을 사이에 두고 붉은 카우치와 기역자를 이루며 놓여있는 등나무 의자의 어깨를 쓰다듬는다. 심장이 더 빠르게 고동치기 시작한다. 들릴것만 같아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한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금방 알아봐 드릴께요.”

창고 물품 목록을 재빨리 훑어내려 <등나무 의자 2>라고 적힌 것을 확인한다. 오늘 밤은 운명의 여신이 나에게 미소짓고 있음이 확실하다.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외친다. “창고에 딱 두개 남아 있어요!” 이젠 매장은 이 중년부부 외에 다른 손님이 없이 한산해져 줄리와 데이나도 이쪽만 쳐다보고 있다. 다크 초콜릿이라도 입안에 물고 있는 듯 씁쓰름한 눈빛을 하고 있다.

어머! 너무 잘 됐다. 우리가 그 등나무 의자 다 살께요. 내일 다 함께 픽업하는 걸로 약속잡아 줘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로 계산할거예요.”

 

세 가구의 총 가격은 택스를 제하고 도합 2000불이 나왔다. 따라서 커미션은 100! 하룻밤에 백 불을 만들었다! 문밖까지 달려나가며 정성스런 배웅으로 손님을 보내고 커미션 장부에 기록을 하려고 데스크로 다가가니 데이나는 뒷방에서 휴식중인지 자리에 없고, 줄리는 데스크에 두 팔꿈치를 얹고 인테리어 잡지를 뒤적거리고 있다.

네가 그 손님들을 맞게 된건 그저 우연일 뿐이야, 운이 좋았을 뿐이라구!” 불만스럽다는 듯 줄리는 보고 있던 잡지를 후르르 넘겨 덮어버리고는 입을 삐죽거리며 말을 한다.

우리 중 누구라도 한사람은 손님을 맞아야 했고, 두 사람은 선물포장일을 했어야 했으니까.” 이제 스무살이 갓 넘은 줄리는 예쁜 얼굴의 미간에 세로로 주름을 잔뜩 세우고 있다. 불편한 공기가 줄리와 내가 서 있는 데스크 주변으로 흐른다. 끼익하는 소리가 정적을 깨며 뒷방으로 통하는 철문이 열리고 데이나가 매장으로 걸어나온다. 데스크로 오지 않고 저쪽으로 걸어가 손님들이 흐트려놓은 침대 세팅과 쿠션들을 정리한다. 100불을 내가 독차지하면 줄리와 데이나는 억울함을 느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언제까지 이 곳에서 일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불편한 기분으로 일하고 싶지도 않고 반목의 씨앗을 키우고 싶은 생각은 더더구나 없다. 나는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위해서 나에게 맘 편하고 즐거운 일을 찾기 위해서 이 모든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니까.

그럼 이렇게 할까? 우리 셋이 오늘 생긴 커미션을 나누자.”

줄리의 얼굴이 순간 붉어진다 싶더니,

? 네가 번 커미션이잖아.”

내 눈을 보지 않고 볼멘소리로 말한다.

아니. 나는 들어온지 얼마 안돼서 정말 잘 몰랐어. 너와 데이나가 그 자리에 있어서 서류랑 카드 결재 하는 거랑 이렇게 저렇게 도와주지 않았으면 아마 손님을 놓쳤을거야. 너희 도움이 컸어. 나누는 것이 옳다고 봐.”

커미션 장부를 펼쳐 줄리와 데이나와 내 이름 앞으로 오늘 받은 커미션의 삼분의 일 값을 각각 적어 넣는다. 솔직이 정말 옳은 결정을 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마음을 조이던 불편한 공기는 거두어진 듯 하다.

가게 문 닫을 시간이 다가와 레지스터를 열어 돈계산을 하며 크레딧 카드 머신 영수증을 뽑고 있는 줄리와 마루를 쓸고 있는 데이나의 얼굴을 흘깃보니 피곤한 기색이라도 약간의 미소가 입가에 번져 있는 듯도 하다. 가구를 팔며 긴장을 하고 심장이 하늘로 솟구쳤다 땅으로 떨어졌다 방망이질 쳐대서인지 피곤이 갑작스레 덥쳐왔. 12시가 가까운 시각 밤이 이슥한 가로등만이 환한 이너하버 밤거리를 지나 집으로 돌아오면서 왠지 전쟁에서 지고 돌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바보 같다는 말이 자꾸 입에서 맴돌았다. 바보 같다 바보 같다 바보 같다…… 일이란 건 이렇게 전쟁 같은 순간을 견디고 돈을 받아야만 하는 것인가? 행복한 일이란 게 있을까? 없을까? 시간은 자꾸 가는데…… 나는 미아가 되어버린 듯 나의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듯 갈피를 잡을 수 없다. 

 

5. 유혹

 

아직 5월이지만 여름 밤의 열기가 조금씩 골목길을 메우기 시작한다. 가구가게 맞은편 정원식 스테이크 레스토랑 앞에 세워진 장난감 같은 노란 램브라기니 스포츠카가 눈길을 끈다. 차는 잘 빠진 청년 같은 이미지지만 아마도 차의 주인은 머리 결이 희끗한 인생말기의 문턱에 다다른 중 노년일 것이다. 미국에선 오렌지족-부모의 재산으로 부유한 삶을 즐기는 사람들-을 아직 본 적이 없다. 물론 젊은 사람이 연예인으로 혹은 영화작가로 성공하거나 월 스트리트에서 탁월한 금융 기술로 돈방석에 앉는 경우도 있을 수는 있겠지만 여긴 캘리포니아도 뉴욕도 아니다. 돈이 웬만큼 있다 해도 누가 십억을 호가하는 저런 차를 턱 하니 살 수 있단 말인가? 멍한 눈을 하고 가게 밖을 보고 있는데 가게 안으로 익숙한 얼굴 하나가 들어온다. 어디서 봤더라.

수지!”

월터!”

내가 떠나온 회사에서 내 보스였던 월터다. 갑자기 내 두 볼이 발갛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낀다. 부끄러운 일을 한 것도 아닌데 내 얼굴이 왜 이렇게 반응하는 걸까? 다른 사람도 아닌 월터를 이곳에서 마주치다니!

지난 가을 그 회사를 떠난 이후 한 번도 보스나 회사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문득 깨닫는다. 회사 다니는 동안에는 집에서도 회사일과 사람들 생각을 떨칠 수 없어 이만 저만 스트레스가 아니었는데 그렇게 잊을 수 있었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크리스마스 때 카드를 보내거나 한 번쯤 전화해서 새해 인사를 할 수도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자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든다. 7년 동안이나 함께 일했는데도 회사 밖에서 만난 적도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어 지금 이 가구 가게를 배경으로 함께 서 있는 것이 서먹하다. 옷도 깔끔하게 늘 잘 입고 어딘지 모르게 16세기 르네상스 그림에서 본 것 같은 고전적인 귀족 분위기의 그의 얼굴은 매력이 있으면서도 거부감이 들게 만들었다. 그 거부감은 아마 그가 다른 남자동료에게 내뱉은 이 말을 듣고 난 이후 더 구체화 되었던 것 같다.

좋은 학교 나오고 돈 많이 주는 직장 찾아 다니는 거 다 큰 집에 벤츠 타고 싶어서 그러는 거잖아. 자 모두 이 프로젝트에 달려있으니까 다들 내년에 이사 갈 큰 집, 멋진 벤츠를 생각하면서 힘내자고.”

그날 오후 4-5시쯤 사무실에 어둑한 그림자가 밀려드는 그 순간 그가 이 말을 내뱉었을 때 그의 부하직원 누구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었다. 그렇게 따지면 그는 꿈을 이미 이룬 것 같다. 그는 하버드를 나와 안정적인 회사에서 입사 15년 만에 헤드 사이언티스트 자리에 앉았고, 너른 싱글하우스에 살며 매끈하게 잘 빠진 벤츠를 운전하고 있으니까. 물론 중고를 산 거라고 했지만.

 

네가 직장 그만두고 다른 일 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 걸?”

, 인테리어 디자인 쪽으로 해보고 싶은데 공부하기 전에 먼저 실제 현장 경험을 쌓아보려고 이일 저일 하고 있어요.”

이젠 더 이상 내 보스도 아닌데 묻지도 않은 대답을 변명처럼 주절거리는 내가 한심하다.

뭐 찾는 거 있으세요, 도와드릴까요?”

어머니 생신이어서. 어머니 바로 여기 페더럴 힐에 사시거든. 생신 선물 고르는 중이야.”

이름있는 화가라는 그의 어머니를 말하는가 보다. 아들 둘을 다 하버드에 보낸 어머니. 그리고 자신의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아 이름있는 화가라는 타이틀까지 놓치지 않은 여자. 세상엔 참 대단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나름대로 오랫동안 힘든 공부를 하곤 엔지니어 직장 스트레스를 감당 못해서 7년 버티고 물러나 이곳에서 그런 어머니가 받을 선물을 골라주고 있는 내 처지가 순간 서러워진다. 주인공이 선물 고르는 것을 도와주는 도우미 역할의 엑스트라인 것처럼……

어머님께서 특별히 좋아하시는 거 있어요?”

글쎄일본 풍 가구나 그릇을 좋아하시는데, 여기 그런 물건들 있어?”

저기 부엌가구 쪽에 사케 세트랑 찻잔 세트가 있어요. 한 번 둘러 보실래요? 제가 함께 가서 찾는 거 도와드릴게요.”

손가락으로 위치를 가리켜주는 서비스만으로도 충분한 상황에서 보스와 한 공간에 있으니 7년 동안 몸에 밴 부하직원의 비굴한 습관이 여지없이 돌아와 몸에 철썩 들러붙는다. 다행히 다른 손님이 없다. 부엌가구 코너는 가게 입구에서 반대쪽으로 끝까지 걸어가 오른쪽으로 돌면 누군가의 진짜 부엌인 듯이 차려져 있다. 부엌 찬장 선반에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그릇세트들이 옹기종기 진열되어 있어서 더 그런 느낌이다.

곁에서 두리번거리며 따라오던 월터가 헛기침과 함께 말문을 연다.

나도 그 회사 그만 두려고 하고 있어.”

그를 향해 돌아섰다.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내 얼굴은 멍해져 있다.

내 회사를 차리려고. 전부터 생각해 둔 것이 있거든. 혹시……전에 하던 일 계속 해볼 생각 없어? 우리 에어포스 프로젝트 그게……정부에서 그 인젝터 대량 제조하는 회사로 키우라고 자금을 100만불 지원하기로 결정했거든. 그 프로젝트 들고 나와서 내 회사를 만들려고 하는데. 네가 같이 일해줬으면 해서. 하겠다고 만 하면 지난 번에 네가 받던 연봉에서 30%까지 올려줄 생각이 있어.”

명함과 함께 어느새 주머니에서 꺼낸 날렵한 볼펜으로 명함 뒷면에 숫자를 휘갈겨 쓴다.

내 핸드폰 번호야. 다음주까지 네 생각을 알려줘.”

멍하게 서있는 나를 뒤로하고 그는 가뿐한 걸음으로 부엌코너를 둘러보고 한쪽에 진열된 장식장에서 사케세트를 하나 집어 들더니 계산대 쪽으로 걷기 시작한다. 문득 정신을 차린 내가 재빨리 좇아갔지만 그는 이미 계산을 마치고 빠른 걸음으로 가게 문을 빠져나가고 있다.

 

6. 선택


벌써 가구 가게에 일한지도 아홉 달이 넘었다. 가게가 제일 한가한 월요일 저녁 8시부터 9시 사이엔 가구에 관한 교육시간이 있다. 이 시간에 일 스케줄이 없는 직원들도 배우고자 하는 의욕을 가진 이들은 꼬박 꼬박 참석하여 교육을 받는다. 의무는 아니지만 가구를 팔면서 손님의 질문들을 받다 보면 대답할 수 없었던 궁금한 사항들이 생기고 더 잘 알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제대로 한 번 배워보자는 생각에 나도 지난 달부터 교육시간에 빠지지 않고 있다. 가구에 대한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는 기회다. 사장이 직접 강의를 한다. 오늘 교육의 제목은 저가 가구와 고가 가구의 차이점이다. 사장이 두 개의 식탁을 미리 준비해 놓았다. 저가 가구들과 고급 가구점에서 파는 가구들은 나무의 재질도 그러하지만 조립방식 자체에 들여진 공이 다르다고 하며 그가 두 개의 식탁을 뒤집어서 보여주었다. 한 식탁은 볼트와 너트로 다리가 이어져 있고, 다른 하나는 힌지 처리가 되어 있었다. 사장이 힌지처리가 된 식탁을 가리키며 이 것이 더 고급품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사장은 우리 가게 가구의 주 공급원인 인도네시아와 라틴 아메리카의 가구회사들의 리스트가 있는 종이를 나눠주며 각 회사의 평판과 가구의 특징을 짚어 주었다. 마지막으로 원목으로 만든 가구와 합판으로 만든 가구 제품들의 장단점과 보수 유지 요령도 일러주었다. 사장의 조언들을 종이 앞 뒤로 빼곡히 적어가며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보물인양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그의 말을 경청했다. 이 가구점을 차리기 위해 수년간 동남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를 발로 뛰며 공부한 사장의 지식엔 아직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 같지만 정보가 필요한 손님들 앞에서 풍월은 조금 읊을 수 있는 정도로 발전하고 있는 것 같다고나 할까? 배운다는 것은 재미있다. 그리고 이런 공부는 엔지니어링 보다 쉽고 내 생활의 범주 내에선 더 실용적인 것 같다.

교육시간이 끝나고 모였던 자리를 정리하면서 사장이 물었다.

전직이 엔지니어라고 했었죠? 가구에 대해 배우는 것 재미있어요?”

. 손님 맞으면서 모르는 게 많아 늘 매니저를 불러야 하는 것이 불편하고 평소 궁금한 것들도 많았는데 이렇게 사장님께서 교육시간을 주시니 참 좋은 것 같아요. 많이 도움돼요.”

사장은 말없이 고개만 주억거리고 있다.

사장님, 그럼 저는 이만 퇴근하겠습니다.”

잠깐 수지양. 내가 뭐하나 물어볼까요?”

“……”

지난 번에 디자이너가 오지 않아서 수지양이 매니저를 도와 부엌 방을 꾸몄다고 들었어요. 매니저에게 물어봤더니 수지양이 배치한 것이라고 하던데 사실이에요?”.

…..…… 매 니저님이 손이 필요하신 것 같아서 조금 도와 드린다고 한 것이 저도 모르게 장식하는데 너무 신이 나서 여쭤보지도 않고 가구배치를 이리저리 바꾸고 장식물을 여기 저기서 옮겨와 꾸며서 안 그래도 매니저님께 시키지도 않은 짓을 했다고 한 말씀 들었어요. 죄송합니다. 다음부턴 꼭 여쭤보고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아니야, 아니에요. 내 말은 그게 뭔가 독특했어요. 수지양의 손 끝이 스친 공간마다 따뜻한 집처럼 아늑하면서도 화려한 생명력이 살아나는 느낌을 주었다고나 할까?

……”

내가 제안 하나 할까요? 다음 달부터 디자이너 대신 수지양이 각 절기 컨셉을 정해서 한 번 가구가게 전체 장식을 맡아서 해보겠어요? 보수는 더 올려줄 수 없지만 수업 하나 수강료를 내어줄게요. 이 근처에 MICA라는 미대에 가을 학기마다<인테리어 디자인의 개요> 수업이 있는데 한 번 들어볼 시간이 되겠어요? 그 수업을 들으면서 수지양이 그 분야에 대해 어떻게 느끼게 되는지 한 번 봅시다. 그 이후의 일은 그 때가서 이야기 다시 하구요. 만약 수지양이 그 분야에 뛰어들 마음이 있으면 졸업 후 우리가게 전문 디자이너 겸 인테리어 디자인 컨설턴트로 적어도 5년은 일하겠다는 계약을 조건으로 인테리어 디자인 과정을 밟는데 필요한 학비를 지원하겠어요.”

어머나, 어머나! 내게 이런 기회가 오다니! 지금 이 가게의 매니저 제니도 이렇게 사장이 키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난 가구도 데이나 만큼 잘 팔지도 못하고 아직 여러 가지 면에서 너무나 초보인데 사장님이 이런 제안을 해주시다니……!

 

날아갈 듯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의 칭찬을 받은 어린 아이처럼 신이 나서 우쭐거리는 마음에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엄마가 끊여놓으신 김치 감자탕을 먹으며 사장님의 제안과 앞으로 경험하게 될지 모르는 전문 인테리어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대해서 재잘재잘 떠들었다.

막상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우니 차가워진 밤공기처럼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 앉았다. 내일이면 지난 번 가게에서 월터를 만난 지 이주일 째지만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며 아직 그에게 전화하지 못하고 있다. 엄마 앞에서 가구점에서 일어난 일들은 모조리 떠들어 대면서도 월터를 만났던 일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양 갈래로 길이 갈라지는 시점.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순간.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했던가! 지금의 작은 선택이 가져올 미래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겠지. 한 길은 한 번도 걸어보지 않은, 길이 보일락 말락 좁은 길. 인테리어 디자인을 좋아하게 될까? 지루해지지 않고 끝까지 공부해 낼 수 있을 만큼 적성에 맞고 잘 할 수 있는 일일까? , 륙 년 뒤나 되어야 풀타임을 해서 월급을 제대로 받고 생활할 수 있을 텐데. 그 땐 내 나이 마흔을 바라보고 있을 텐데…… 다른 한 길은 지금까지 공부하고 일하며 수도 없이 왔다갔다해서 익숙한 대로변처럼 넓은 길. 이미 경력도 있고 당장 안정적인 월급도 보장되어 있다. 모래사막에 내던져 진 것 같다. 저 모래사막을 지나면 기름지고 살기 좋은 가나안 땅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믿음을 가져보려고 하지만 언제 다다르게 될지 모르는 기약할 수 없는 그 땅에 대한 믿음을 흔들어 대는 떠나온 곳으로부터의 다시 돌아오라는 유혹. 이 밤에 나는 친구 진현이가 그리워진다. 그녀와 이야기하고 싶다. 그녀의 다부지고 낭랑한 음성,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그녀의 충심 어린 조언이 그립다. 하지만 오늘 밤은 너무 늦었다. 사실 난 그녀가 뭐라고 할지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 소리 2009.10.18 15:28

     


    삼일간의 파티

     


    1.오디션

     

    사람의 뒷모습에서 꾸미지 않은 진실이 묻어난다고 느낄 때가 있다. 마음에 슬픔이 있을 때 얼굴은 여전히 미소를 띠울 수 있을지 모르지만 뒤돌아선 등의 선이 힘없이 쳐져있는 건 누구도 가리울 수 없다. 남편의 등은 오늘도 어김없이 단단한 자신감이 넘친다. 숙정은 남편의 적당히 근육이 붙은 반듯하고 넓은 등을 가만히 응시한다. 완벽한 등. 자신의 주위 사람들을 명령하고 압도할 수 있는 힘이 이 완벽한 등에서 나오기라도 하듯 빈틈없는 이 등은 바라만 보고 있어도 높고 넓은 벽에 둘러싸인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 온다. 급기야는 그를 등지고 돌아누워 버린다. 남들은 숙정이 돈 잘 버는 모범남편과 함께 사랑받으며 걱정 없이 사는 줄 안다. 남편을 아이 다루듯 어르며 싹싹한 마누라 연기에 능숙하다. 보는 사람 모두 깜 속아 넘어갈 만큼. 하지만 자신을 속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녀는 부족한 행복감을 풍부한 상상력으로 채운다. 지금과 다른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상상. 그러나 상상 속의 주인공은 더 이상 그녀가 아니다. 프로페셔널한 직업을 가진 20대 중후반의 처녀다. 그녀는 그렇게 나이 먹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상상속 주인공에 비해서 늙었다고 생각한다. 실제의 스스로가 처한 상황이 늘 마음에 들지 않는다.

    상상을 하다 현실로 깨어나면, 그녀는 그렇게 헛웃음을 웃는다. 그녀는 자신이 사과궤짝 안에 힌 토끼 같다는 생각을 한다. 보드라운 토끼털을 입고, 예쁘장한 얼굴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눈은 충혈되고, 늘 놀란 표정으로 주변 눈치를 살피는 그녀. 사과궤짝에 갇히지 않았다 해도 그녀는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그녀가 필요한 만큼만 뜯어다 놓은 양상추며, 셀러리 같은 야채를 두손에 꼭 쥐고 먹는 일상 기억에도 없는 순간부터 길들여져 있다. 누구랑 어디에 살 삶이 이럴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이 그녀의 상상력으로도 어쩔 도리가 없는 막다른 골목을 둘러싼 높다란 벽이다.

    드르렁 쿨…… 드르렁 쿨……’

    코까지 골며 깊이 잠든 남편의 통수를 찌를 듯 노려보다가 방문을 부러 조심성 없이 닫아붙이고 부엌으로 갔다. 찬물을 한 잔 들이키고 랩탑을 열고 인터넷을 연결한다. 오른 손으로 마우스를 가볍게 덮은 채 중지로 마우스의 가운데 돌림단추를 살짝 몸쪽으로 굴렸다 검지로 마우스의 왼쪽 단추를 눌렀다 하며 볼티모어 지역 <직업> 페이지에 가득 뜬 일거리 광고들을 손에 닿는대로 펼쳐본다. 아기키우고 집에서 가족들의 뒷바라지만 해온 그녀의 경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찾기 쉽지 않을것임을 이미 알고있다. 그래도 매일 밤 지역구인란을 살펴보고 인터넷으로 이런 저런 뉴스들을 읽고나야 그나마 살아서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잠을 청할 수 있다. 오늘은 도우미 아주머니가 독감에 걸렸다고 오지 않아 하루종일 아이와 씨름하고 집일은 나몰라라하는 주제에 입만 열면 숙정을 대놓고 무시하는 남편의 야속한 말들에 저녁 내내 속을 끓였더니 몸도 마음도 피곤하다. 삼십 대 초반에 불과한 나이지만 벌써 노인이 된듯 힘이 없고 찌부드드한 느낌이 가시지 않고 몸속에 켜켜이 베어드는 것만 같다. 이젠 자야겠다 싶어 랩탑을 덮으려는 찰나 미처 예상치 못한 제목 하나가 눈에 띈다. <단역배우 구함>! 빠른 손놀림으로 제목 위를 클릭하여 자세한 설명이 담긴 페이지를 펼친다.

     

    [......볼티모어 와싱턴 지역에서 단역배우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니콜키드만이 연출하고 주연을 맡은 영화로 배우 지망생들에게 좋은 경험과 기회가 될 것입니다. 모든 인종, 모든 연령대의 단역배우를 모집하고 있사오니......]

     

    그것은 바로 <단역배우>를 찾는 광고였다! 오디션장은 볼티모어 북서쪽에 위치한 중급 호텔이었다. 어디서 용기가 나는지 모른다. 인생 처음으로 <오디션>이라는 것을 한번 볼 참이다. 혹시 아는가? 감독의 눈에 띄어 하루 아침에 스타덤에 올라 앉는 기적이 생길지. 이 직업의 특성상 정말 그런 일이 있잖은가? “자고 일어나 보니 유명해져 있었어요.”, “그냥 친구따라 갔다가 감독님의 눈에 띄어이런 말들을 하는 사람들이 있잖은가? 그때는 이 남편놈의 등짝을 제대로 한대 갈겨주고 떨쳐 버리리라. 배우라는 직업이 적성에 맞을까 하는 일말의 이성적 생각조차 없이 그녀의 머릿 속은 오디션에 입고 갈 옷걱정으로 가득찬다.

     

    오디션날 아침! 풀먹인듯 빳빳한 가을 하늘이 아침부터 드높게 걸려있다. 그녀는 어깨가 훤히 드러나는 드레스 차림에 머리는 살짝 틀어올려 큐빅이 알알이 박혀 번쩍거리는 커다란 집게핀으로 고정하고 은백색과 은회색 아이샤도우로 눈을 강조한 여신 컨셉의 풀메이크업을 하고 있다. 잔뜩 차려입고 나가는 그녀를 어리둥절 쳐다보는 도우미 아줌마에게 다리를 붙들고 놓지 않는 아이를 떠넘기다 시피 하고 단호하게 나올 때는 가족 떼놓고 전장에라도 나가는 여장부같은 태세였는데 호텔 입구에 들어서니 가슴이 떨리고 손에 땀이 솟기 시작한다. 어릴적 운동회 때 전교생 앞에서 달리기 경주를 하려 출발선상에서 기다리고 있던 바로 그 기분이다.

    호텔안으로 들어가니 화려한 차림의 젊은 여자들부터 아이들, 할머니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호텔 리셉션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줄을서서 사진촬영을 받고 있는 사람들, 면접관 앞에서 인터뷰를 받고 있는 사람들, 테이블 앞에 앉아 서류작성을 하고 있는 사람들... 인터넷에 올라온 <단역배우 모집> 광고를 보고 이 평일 오전 시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디션을 보러 왔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순서를 따라 입구에서 서류를 받아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름과 주소, 연락처 따위의 기초사항들을 적고, 언제 시간이 되는지 자세히 기입하도록 된 스케줄 란에는 <언제든지 가능함> 이라고 적는다. 언제든지 어떻게든 꼭 이 영화의 일부분이 되고 싶다. 다음은 특기란. 이 영화에서 어떤 배역을 맡으려면 이 부분을 잘 작성해야 한다는 예감이 온다. 영화가 어떤 내용인지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니콜키드만이 과학자로 나오는 공포 액션 영화라는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읽었다. 그렇다면 니콜키드만의 동료 과학자로 그녀의 실험실 씬에 나오는 배경인물이 되면 어떨까? <과학실험>이라고 적어 넣는다. 이래뵈도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던 그녀다. 문득 하얀 실험복을 입고 조를 짜서 실험하고 보고서를 쓰곤 했던 기초화학실험 시간이 떠오른다.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그래도 거짓말은 아니니까. 그리고 <태권도>라고도 적어 넣는다. 둘러보니 여기 지원자들 중에 동양인으로는 혼자인 것 같은데 액션씬에 아시아계 여성 한 명쯤 넣으려고 할지도 모르는 일이잖은가. <찰리스 엔젤스><루시 류>처럼 말이다. 태권도를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한국사람으로서 서당 개 삼 년 날렵한 발차기모션 정도는 흉내낼 수 있다. 있겠지. 오늘 당장 태권도장에 등록해야겠다. 어차피 영화도 실제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모션의 연속일 뿐일테니까 얼마나 태권도를 잘하는지 보려고 들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서류작성을 마치고 인터뷰를 기다리는 대기석에 앉아 적당히 근육이 붙은 자신의 긴팔을 내려다본다. 원래 그녀는 팔이 초등학교 학생의 것처럼 아주 가늘었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기 전에는. 밤에 서너 번씩 깨던 아기를 키웠던 덕분에 저절로 팔에 근육이 생겨났고 힘도 세어졌다. 검은 타이즈를 신고 팔과 어깨가 드러나는 검은 탱크탑을 입고 머리는 길게 올려 묶은 채 니콜 키드만과 등을 마주 대고 서서 적의 공격에 방어하는 태세를 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영화 <매트>의 장면을 빌어 생각하며 혼자 흐뭇한 웃음을 짓고 있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이름 소리가 들려온다.

    !”

    ! 면접관이 그녀를 부르고 있. 아찔하도록 가늘고 섬세한 줄 장식의 스틸레토에 발이 묶인 그녀는 아기 걸음마 하듯이 한 발 한 발 붉은 카펫 위를 정성껏 걸어 면접관 앞으로 가서 섰다. 면접관은 차분한 태도로 거주지와 직업과 스케줄에 대한 가벼운 질문들을 던지고는 가져 온 포트폴리오 사진이 있는지 물어보고 없다고 하자 사진촬영사를 불러 그녀의 전신사진과 얼굴사진을 찍도록 지시한다.

    사진사는 수차례 셔터를 눌러대며 여러 각도에서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는다. 전화로 연락 드릴거예요.사진촬영사가 상냥하게 웃으며 말한다. 오늘 인터뷰를 한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인지 그녀가 맡을 역할이 분명히 있다는 뜻인지 확실치 않다. 어찌되든 상관없다. 이 일은 길에서 우연히 주운 로또처럼 잃어도 잃을게 없는 도박이니까.

     

    2. 그들의 단역배우

     

    찬이 엄마, 이번 주 토요일에 <영화촬영>있다고 했지요?”

    도우미 아줌마가 스케줄 확인하는 것을 듣고서야 이번 주말로 예정되어 있던 촬영 스케줄이 검은 망각의 늪 위로 어렴풋이 떠올랐다.        

    오디션을 본지 한달여 뒤에 불쑥 전화가 왔었다.

    당신은 파티에 초대된 인터내셔널 게스트 중 한 명인 <동양에서 온 귀부인>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찰영차 오실 때에는 오디션에 입고 왔던 그 드레스를 입고 오십시오. 그리고 저희 영화사 소속 스타일리스트가 그 드레스에 맞추어 나머지는 코디해드릴 것입니다. 스타일링 스케줄이랑 촬영 스케줄은 이메일로 계속 보내드리겠으니 시간에 맞추어 나와 주십시오......

    캐스팅 디렉터인 리사 테일러라고 소개를 한 여자로부터의 메세지였다. 이렇게 시작되어 지난 한 동안 두 번의 촬영을 했다. 이번 주 토요일, 바로 내일 방금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던 마지막 촬영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도우미 아줌마가 진한 연변사투리 억양을 담아 <영화촬영>이라는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언급할 때마다 주연 여배우라도 된듯한 아찔한 망상의 바다에 젖어드는 자신을 향해 깔깔 웃음이 맥주 거품처럼 목구멍을 간지럽히며 넘쳐오른. 원래 토요일에 오지 않는 아줌마지만 특별히 <영화촬영>이 있는 동안 급료를 조금 더 얹어 부탁을 했다. 중국에서 공부하는 아들에게 매달 급료 대부분을 부치고 룸메이트와 원베드 아파트에서 연명하듯 살아가고 있는 아줌마의 형편이라 결코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다.

     

    또 나가? 하루 종일?

    내일 마지막 촬영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남편이 펄쩍 뛴다. 안그래도 내가 하는 일들이 못마땅한 이 남자가 이럴만도 한 것이 지난 두 번의 촬영이 다 아침 일찍 시작해서 자정이 가까와 끝나는 바람에 혼자서 아이 목욕시키고 재우느라 혼쭐이 난 모양이었다.

    이게 다 투자야. 아무나 오디션에 뽑히나? 감독 눈에 띄어 헐리웃 영화배우로 데뷔하게 될지 누가 알아?

    불편하게 차려입고 종일 기다렸다 찔끔 촬영하고 또 기다리고 하는 생고생을 두 번 겪고나니 숙정도 그리 썩 내키는 걸음도 아니건만 매일 집에서 아이와 씨름하고 지내다 겨우 3일 나가는 건데 춤바람 난 마누라라도 목격한 모양 남편이 면상을 있는 대로 구기니 숙정은 오히려 오기가 나는 것을 느낀다.

    “애 딸린 아줌마가 무슨 영화배우? 하고 다니지 말고 얌전히 집에 있어라. 엑스트라니 뭐니 그게 할 짓이냐? 왜 생고생을 사서해? 애 엄마가 하루종일 나가서 한밤중에 들어오는 거 네가 생각해도 너무하지 않냐? 내일 네가 맨날 노래부르는 디씨 박물관에 다 같이 데려가 줄테니 그 영화촬영이니 뭐니 하는 헛꿈은 접어라, 알겠냐?”

    당신은 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다니면서 난 왜 안되는데?”

    내가 놀러다니냐? 네가 돈 벌어 올래? 집값 걱정 세금 낼 걱정 없이 삼시 세 끼 먹으며 도우미 아줌마 써가며 편안히 살게 해주니까 호강에 받쳐서 머리가 홱 도냐?”

    “그래! 내가 돈 벌어올께. 네가 집에 있어봐. 애 수발들면서 너같은 철대가리 독불장군 남편 아침 저녁 챙겨먹이면서 하루종일 집에 있어보란 말야!

    “너 방금 뭐라 그랬어? , 철대가리?

    갑자기 남편의 안색이 굳어지자 순간 심장이 오그라붙기라도 하는지 가슴이 조여드는 것을 느끼며 숙정이 멈칫한다. 남편의 이마 언저리가 불콰해지더니 퍼런 핏줄이 몇가닥 튀어오른다. 차마 남편의 눈을 보지 못하고 글썽해진 눈망울을 아래로 향하자 물기 너머로 남편의 꼭 쥔 주먹이 어른거린다. 숙정의 눈에서 어쩔 수 없는 눈물이 한 방울 툭 떨어진다.

    “마지막이니까. 일단 약속은 한거니까 다녀올께.” 목이 잠긴 듯 톤을 낮춘 채 사정하는 듯한 숙정의 목소리에 남편은 더 이상 대꾸없이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젯 밤 잊고 있던 촬영 일정의 상기로 괜히 긴장해서였는지 남편과 말다툼으로 심난해서였는지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마지막으로 시간을 것이 2 20. 아마 새벽 3시쯤 되어서 잠들었을까? 까무룩 검은 잠에 젖었다가 깨어나니 8 20분이 조금 지난 시각! 두통이 함께 잇따른다. 시간약속에 철저한 아줌마는 벌써 와서 아이가 깨어나기를 기다리며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 9 50분까지 집결지인 알.에프.케이. 스테디엄으로 가야 촬영장으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 물에 젖은 솜가마니처럼 늘어진 몸을 일으켜 초고속 샤워를 하고 머리카락이 아직 젖은 채로 튜브 드레스에 몸을 끼워넣었다. 은색 광택이 도는 실크 안감 위로 프랑스 자수같은 문양이 우아하게 짜여진 검은 망사천이 흐르듯 덮고 허리엔 검은 실크천으로 리본을 묶어 허리선을 드러내는 형태의 드레스다. 오디션 전날 타우슨 몰 블랙&화이트 매장에서 한 눈에 띄어 구입한 것이었다. 이 드레스와 스틸레토 힐 구두 한 켤레를 같이 마련하고 300불 이상 구매 고객에게만 주어지는 맴버쉽 카드와 함께 내 생애 처음으로 파티용 드레스를 마련하였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깊은 만족감을 주었다. 거의 위안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오늘 아침은 밑화장을 할 시간이 없다. 빠른 속도로 드레스 위에 회색 긴 코트를 걸치고 편한 실내화 한 켤레, 책 한 권을 쇼핑가방에 담아넣고 집을 나섰다.

    .에프.케이.스테디움 7번 랏은 희한하게도 스테디움 반대편 동네 쪽으로 난 길을 돌아 들어가 있다. 스르륵 차바퀴가 천천히 주말 아침의 고요한  콘크리트 바닥을 미끄러져 파킹랏 깊숙히 들어가면 한 가운데 엑스트라 배우들이 옹기종기 모여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헤이 숙, 좋은 아침이야

    턱시도를 말쑥하게 차려입은 왈리볼이 인자한 미소를 머금으며 차 안에서 나오는 나의 손을 잡고 손등에 입을 맞춘다. 어쩜 이렇게 곱게 늙었을까? 하얀 은발에 60은 훨씬 넘어보이지만 부티가 나는 얼굴 빛. 사람은 늙으면 얼굴에 삶이 묻어난다고 하지만 단역배우들은 말끔한 얼굴 뒤에 어떤 삶을 숨기고 있는지 도데체 알수가 없다. 지난 번 처음 왈리볼과 비슷한 연배의 배우들을 촬영 첫날 저녁식사 장소에서 만났을 , 그들을 보며 어느 정도 입지를 가지고 있는 중견배우들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되는 것이 무리가 아닐 만큼 그들의 외모는 어느 영화에서 분명히 본 듯 익숙하고도 아름다웠다. 서로 대화를 나누는 몸짓과 목소리도 더없이 우아하고 특별해 보였다. 첫날 촬영이 끝날 무렵 저녁을 함께 먹으며 그들이 단역 전문배우들임을 알게 되었다. 영화촬영이 있는 곳이라면 지구 어느 곳이라도 찾아갈 정도로 자신의 일에 진지한 사람들이었다.

    이 영화에서 유일한 동양인. 서양인들 중에서도 아름다운 얼굴들만 모아놓은 듯한 이 틈에서 분장 전 더욱 절실하게 드러나는 납작 동그스름한 얼굴, 낮은코, 수수하다 못해 지루하기 짝이없는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를 생각하면서 그녀가 잠시 의기소침해져 있는 사이 단역배우들을 태운 버스는 분장과 준비 및 아침식사를 할 수 있도록 유랑극단같은 텐트시설이 차려진 조지타운 포토맥 강가에 위치한 큰 파킹랏으로 유유히 흘러 들어간다.

     

    오늘따라 날씨가 싸늘하다. 소품 보관대에서 이름이 적힌 투명 비닐봉투를 받아든다. 스타일리스트가 지정해 준 모조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팔찌, 검은 이브닝 백과 구두가 지난 주에 반납한 그대로의 순서로 들어있다. 소품대를 지나 주위를 돌아보니, 헤어와 메이크업 분장사들이 일하는 분장실이 차려진 트레일러 차량 앞에 단역배우들이 줄을 서있다. 지난 주 분장을 받은 분장사를 찾아 똑같은 분장을 받아야 하므로 줄선 모양새가 더 복잡하다. 마주 보고 서 있는 트럭의 발딛는 선반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가져온 소설책을 펼친다. 이만교의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제목의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온 것이다. 한국사람이 많이 사는 동네라서 그런지 몇 전 한국어 도서코너가 생겼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영어배워야겠다는 생각에 한국어 활자를 피하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더이상 늘지도 않는 영어를 걱정하기엔 인생 자체의 문제가 너무 많아서 익숙한 활자가 주는 정신적 안정감이라도 취해야 견딜 수 있을 같다.

    , 네 차례야, 서둘러

    그녀의 메이크업 담당인 소피가 손가락을 메리쫑 하듯이 그녀를 향해 두어 번 까딱거리곤 쌀쌀한 바깥공기를 등지고 난방이 돌아 따뜻한 트레일러 안으로 쏙 들어간다. 책을 덮고 천천히 트레일러 분장실 입구의 철계단을 오른다. 잠도 잘 못 잔데다 찬바람을 맞으며 있었더니 몸에 무거운 라도 메달린 듯 나른한 몸살기가 몸을 아래로 누른다.

    밑화장을 안 하고 오면 어쩌란 말이야!”

    부은 얼굴의 소피가 형광색 아스피린액을 한 모금 마시며 인상을 찡그린다.

    밑화장을 안 해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단 말야

    마음이 풀리지 않는지 소피가 큰 눈을 굴려대기만 하고 일을 시작하지 않는다.

    미안, 늦잠 잤어. 몸살인지 아침에 일어나기 너무 힘들더라구.”

    정말 미안하다기 보다 그녀의 짜증을 피하고 싶다. 그녀도 얼굴 기색이 영 말이 아니게 피곤해 보인다. 몸이 지친 사람들은 마음도 부드러울 수 없다. 미안하다는 한 마디 외에 더 이상은 할말이 없다. 솔직이 말해 아쉬울 것도 없다. 오늘의 일을 위해 나의 얼굴은 분장이 되어야 할 뿐 나의 목적도 임무도 아니다. 분장은 오롯이 그들의 일이다. 조바심을 낼 이유가 없다. 그저 멍하니 한 곳을 바라보며 기다린다. 내가 입술을 굳게 다물어 버려 화가 났다고 생각했는지 그녀가 갑자기 태도를 바꾼다.

    눈 감아봐.”

    그녀는 조금은 상냥해져서 내 얼굴에 화운데이션을 펴바르는 일부터 시작한다. 시간이 없어 수분크림도 바르지 못해 까칠한 얼굴이 그녀의 손이 문지르는대로 탄력없이 밀린다. 눈두덩이에 아이샤도우를 바르고 다음엔 볼터치, 그리고 입술에 립스틱......

    눈 떠도 돼 이제.”

    눈을 뜨자 화장한 얼굴이 또렷이 드러난다. 지난 번과 다르다! 얼굴이 피곤해서 더 부어있는 탓도 있겠지만 아이샤도우의 색이 확연히 다르다. 지난 주엔 와인색에 가까운 보라색 계열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오늘은 더 갈색 빛이 돈다. 지난 번 파티에 가는 우아한 부인의 상기된 얼굴과 달리 오늘 부인은 우울하고 그늘져 보인다. 아무말도 하지 않고 헤어담당에게로 갔다. 유일한 남자 헤어드레서인 프랭크가 그녀의 담당이다. 두부살이 덕지덕지한 카우치-포테이토형 몸매로 전구 달린 화장대와 싱크대와 서랍들로 둘러싸여 좁디 좁은 트레일러 복도를 힘겹게 왔다갔다하며 내 머리카락에 스프레이를 잔뜩 뿌리곤 열기구로 머리카락을 쫙쫙 편 후 머리끝부터 동그랗게 말아올려 실핀으로 고정시킨다. 하루종일 머리형이 유지되어야 하므로 스프레이 범벅이 굳어 잔머리 한 터럭도 흩날리지 않는다. 이상하게 머리모양도 화장도 어딘가 다르다. 마음에 들지 않아 순간 짜증이 밀려왔지만 곧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불쾌한 기분을 밀어낸다. 이건 어짜피 <>가 아니니까. 파티씬에 소속된 한 동양부인의 얼굴일 뿐. 헤어 디자이너와 메이컵 아티스트가 이해한 극중인물의 성격이 그렇게 표현되어야만 하는 것이라면 받아들일 수 밖에.

     

    3. 시선을 벗어난 귀부인

     

    분장을 다 마친 단역배우들을 실은 버스는 디씨 시내를 한 바퀴 돌아 체코대사관에서 몇 블럭 떨어진 메사추세츠 에브뉴와 34가가 만나는 로타리 한쪽 가에 선다. 주변관리가 사뭇 삼엄하다. 영화촬영지 주변으로 찻길도 막고, 주말 아침 산책 및 조깅하는 사람들도 촬영지를 통과해서 갈 수 없도록 되돌려 보내고 있다. 어제 다 하지 못한 촬영분을 하고 있다고 단역배우 매니저 매튜가 버스 위로 올라와서 설명한다. 소방차 두 대가 공중에서 물을 뿌려대고 있다. 비오는 장면을 찍고 있나보다. 기다려야 한다. 내려서 간식가판대에서 뭘 좀 먹을까 하다가 하얗게 김이 서린 차창 밖으로 보이는 스텝들의 잔뜩 움츠린 모습들이 너무 추워보여 마음을 바꾸고 아까 읽던 책을 다시 펼쳐들었다.

    [심지어 우리 모두는 탤런트가 되어버렸다. 탤런트의 배역과 역할을 좌우하는 것은 탤런트 자신의 의견이 아니라 광고주와 시청자들의 반응과  방송국 소유주이듯, 우리는 끝없이 광고로부터 욕구를 전달받고, 타인의 시선에 의해 조절당하고, 우리의 물질적 소유주인 직장 상사나 부모로부터 간섭을 받는 세대다. 내 안에, 언제부터인가, 텔레비젼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결혼과 직장생활은 정해진 대본처럼 상투화 되어가고 있다이만교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 중에서]

    물질적 소유주로부터 간섭받는 세대. 언제는 아니었을까? 태어나면서 어느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부와 힘을 거머쥐고 태어나지 않는 한 물질적 소유주부모, 남편, 때론 아내나 자식, 직장상사로부터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간섭받지 않을 길은 없어보인다. 1년에 한 번씩 큰 배의 선장인 아빠가 나타나서 금화상자들을 던져주고 또 다시 떠나는, 어른 보다 힘센 <삐삐> 아닌 다음에야 어려운 일이 아닐까? 문득 <삐삐>가 마을 사람들의 시선도 아랑곳 하지않고 그렇게 자유롭게 살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삶을 허락하게 하는 기반이 있었구나 하고 무릎이 탁 쳐진다.

     

    단역배우를 관리하는 매니저, 매튜는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이다. 20 중반쯤 되었을까? 한 번씩 단역배우들이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들어와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 오늘은 언제쯤 촬영이 끝나는지 설명을 해주곤 한다. 그의 말대로 정확하게 모든 것이 진행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듣는 쪽에서 적당히 가감만 할 수 있다면 그의 말에는 나름대로 성실한 정보가 담있다. 가령 한 시간 후에 촬영이 시작된다고 하면 두세 시간 안에는 카메라 앞에 서게 되겠구나 하고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잠시 눈길이 그녀의 얼굴에 머무는가 싶더니 입술이 웃음을 참는 듯 일그러진다. 두꺼운 화장껍질 뒤로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낀다. 이번 영화 촬영이 시작된 뒤로 그녀는 누구보다도 그의 시선에 조절당하고 있다. 그의 시선을 받으면 소녀가 된 듯 들뜬다. 그는 그녀가 결혼한 여자라는 것도 30대 중반의 여자라는 것도 분장밑에 가리워진 거뭇한 기미 조차도 모른다. 그래도 그를 보는 일과 그의 시선을 느끼는 일은 무료한 기다림을 견디게 해주는 활력소가 된다. 스스로가 아이가 딸린 엄마라든가 남편이 있는 여자라든가 하는 도덕성과 죄책감 따위는 두꺼운 화장껍질 뒤에 머물러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히 알고 있다. 여기 모인 현재의 일의 동료들, 영화감독이든, 주연배우든, 감독휘하 여러 매니저들, 그들과 협력하고 있는 단체, 사람들, 소품들, 작업 공간들, ……이 모든 것은 이 영화를 위해 잠시 모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원래 직업이 버지니아에 있는 건축사무소에서 그래픽 디자인일을 한다는 이 사람은 영화일이 들어오면 회사에 휴가원을 내고 몇 달간 영화촬영소에서 무슨일이든 한다고 했다. 이 영화가 끝나면 그도 나도 여기 있는 이 모든 사람들도 공기중의 수증기처럼 어디론가 흔적도 없이 흩어져 사라질 것이다. 영화를 찍을 때마다 상대배역과 사랑에 빠졌다가 또 다른 영화를 찍게 되면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곤 하는 유명배우들의 연애편력이 너무나 이해가 된다. 다시는 배우들의 연애행각을 놓고 입담하지 않으리라고 그녀는 결심한다.

    여긴 차가 주차할 수 없는 곳이라 시당국으로부터 버스를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는 요청이 왔어요. 곧 촬영이 예정되어 있어서 단역팀은 이곳에 남아있어야 합니다. 모두들 버스에서 내려 잠시 기다려야 것같아요. 잠시면 됩니다. , , 다들 내려주세요. “

    , ! 이 추운 날씨에 밖에서 기다리라니. 책이나 음악을 조용히 감상하고 있던 사람들 모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좁은 버스통로를 어기적 어기적 걸어나와 매튜가 비켜서 있는 앞문을 통해 내린다. 낙엽조차 다 떨어지고 메마른 11월의 나뭇가지와 디씨의 고층빌딩들 사이로 늦가을 찬바람이 휘잉 휘잉 불어대고 있다.

     

    어떤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게될 것이다. 그녀의 모습이 1초라도 나오게 될지, 며칠에 걸쳐 찍은 씬 자체가 싹둑 편집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이 영화작업의 한 켠에 존재했다는 사실, 아니 동양여인 1이 잠시 존재 했었다는 사실은 그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시간으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보지 않을 것이다. 1초간 등장하는 단역배우의 삶에 관객들이 관심없듯이 그녀도 관객들의 시선 따위에 관심을 두고싶지 않다는 오기가 생긴다. 이 추위를 견디며 긴긴 기다림을 한 댓가를 영화에 몇 초나 등장하는가에서 찾으려고 한다면 너무 허무하지 않을까?

     

    , 파티씬 차례입니다. 파티장에 입장하는 씬은 지난 주로써 끝났고 이젠 파티장 안으로 들어갑니다. 파티씬을 찍는 동안 모든 담소 및 먹고 마시는 연기는 판토마임으로 해야합니다. 웨이터 역할을 맡은 분들도 가능하면 소리를 내지 않고 와인잔들을 운반하도록 최선을 다해주십시오.”

    매튜가 기다림의 끝을 알리며 파티씬 촬영에 대해 설명을 시작하자 추위를 견뎌보려고 겨울볕이 희미하게 든 건물 사이 공간에 옹기종기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단역배우들의 얼굴에 돌연 생기가 돈다. 

    검은 턱시도를 매끈하게 차려입은 키작은 키아누 리브스, 닉이 옆에서 팔짱을 끼라는 시늉을 한다. 닉의 키는 그녀가 슬리퍼를 신었을 때의 키와 같다. 이 영화 바로 전에 브래드 핏과 멧 데이먼과 함께 FBI 영화를 찍었다고 눈을 반짝거리며 쉬는 시간 내내 이사람 저사람에게 이야기를 하던 닉은 얼굴이 굳은 채 말없이 심호흡을 하며 동양에서 온 귀부인을 에스코트 할 준비를 하는 듯 하다. 진짜 동양의 귀부인이라면 어떤 걸음걸이를 하고 어떤 몸짓을 하며 어떤 눈빛으로 파트너를 바라볼까? 다이아몬드로 치장을 하고 우아한 드레스에 머리와 화장을 완벽히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귀부인이 되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머리속에 입력된 귀부인에 관한 정보를 아무리 짜내려 해봐도 <동양에서 온 귀부인>의 역할모델이 될만큼 구체화되어 떠오르는 것이 없다. 사극에서 본 중전마마를 생각해 볼 수도 있지만 그녀들이 전하의 팔짱을 끼고 파티장에 입장하는 씬은 그림조차 그려지지 않는다. 바로 그 순간 어이없게 <왈츠>가 생각났다. 어떤 영화에서 보았던 <왈츠>를 추던 서양귀족들의 모습도 동시에 떠올랐. 아이러니하게도 서양 귀부인을 떠올리자 뇌에서 몸으로 그리고 팔과 다리로 행동지침들이 신경을 통해 전달되기 시작했다. 허리를 쭉 펴고 턱을 쳐든다. 이 정체성 불명의 귀부인은 손목에 힘을 빼고 가볍게 닉의 팔에 손을 얹고 발소리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파티장씬을 찍기 위해 대여된 체코슬로바키아 대사관의 내부로 사뿐히 머릿속에 도는 왈츠곡에 맞추어 입장했다.

    평범해 보이는 회색 벽돌 외벽과는 대조적으로 건물 내부는 굉장히 아름답다. 체코의 국화 티리아를 그린 모양인 듯 아름다운 천장 벽화가 한 눈에 펼쳐져 있고, 그 천장과 벽이 만나는 모서리들을 감싸고 흐르는 하얀 몰딩도 정교한 레이스 장식처럼 화려하게 세공되어 있다. 고급스러운 벽지와 가구들은 세계각국의 대사들이 모여 파티를 하는 장소답게 고급 사교장의 이미지를 빈틈없이 연출하고 있다. 파티 홀은 크게 세 개의 방으로 나누어져 있다. 문을 등지고 오른쪽 방에는 방을 가득 메우고 있는 영화장비들과 모니터, 그리고 그 모니터를 통해 보이는 배우들의 움직임을 감독하는 영화연출 스탭들이 진을 치고 있고, 가 운데 방과 왼쪽 방에는 단역배우들이 삼삼오오 짝을지어 담소하는 연기를 준비하고 웨이터와 웨이트리스역을 맡은 검은 유니폼 차림의 배우들은 샴페인과 핑거푸드를 손바닥에 올려 빠릿하면서도 우아한 태도로 사람들 사이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연기 연습에 몰두해 있다. 주연배우들은 가운데 방 천장에서 검은 마이크가 내려온 지점에 둘러서서 대본을 살펴보고 있다. 붉은 드레스에 단발머리를 한 니콜 키드만이 영화감독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와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잡지나 영화관 화면을 통해서 보던 것 보다 훨씬 생기있고 젊어보인다. 풍만한 볼륨감과 쓰러질 듯 가느다란 팔다리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바비인형처럼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풍긴다.

    나와 닉은 니콜 키드만의 바로 등 뒤에 다른 단역배우 한 커플과 함께 자리를 잡았다. 니콜 키드만에게 카메라의 촛점이 맞춰질 때마다 드레스 입은 동양귀부인의 모습이 배경에 비춰질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나름 긴장이 된다. 촬영시작 신호가 떨어지자 주연배우들은 큰 소리로 각자의 대사를 읊조리며 연기하기 시작하고 배경을 이루고 있는 단역배우들의 판토마임 연기에도 열기가 오른다. 중요한 대화 중인 듯 찡그리기도 하고 크게 박장대소 하는 듯 모션을 취하기도 하면서 입모양을 여러방향으로 오무렸다 폈다하고 양손을 펼쳤다 모았다 하면서 여러사람이 함께 대화하는 연기들을 하고 있다. 이 많은 사람들이 감독의 사인에 맞춰 자기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기 위해 조용히 열정적으로 판토마임 연기를 하고 있다! 이 사람들과 장단 맞추어 웃고 마시며 대화하는 연기를 난생 처음 해보는 그녀의 머릿속으로 민망함과 난감함과 비현실감이 동시에 교차한다. 이것은 한마디로 미칠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다. 감독이 멈추라고 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얼굴이 어떻게 연기하고 있는지 거울이라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침내 감독의 사인이 떨어지고 몇 분간 휴식을 갖는다. 다들 소리를 내어 기침도 하고 말소리도 낸다.

    , 뭐하는 거야!”

    누군가가 무시무시하게 성난 목소리로 외친다. 일제히 시선이 소리가 난 쪽으로 쏠렸다. 감독이다. 수염이 덥수룩한 감독의 얼굴이 터질 듯 붉어져 있다. 감독 앞에 어정쩡히 서 있는 웨이터 복장의 키 큰 젊은 남자의 뒷목도 민망스럽게 붉다.

    저 녀석이 또 오버연기를 했구만……쯔쯧……튀어보겠다고 말이지……”

    메이드 복장의 아줌마가 뭘 아는 모양이다.

    맨날 혼나면서도 한 번씩 저러네. 하긴 저렇게라도 안 하면 어떻게 감독이랑 눈 한 번이라도 마주쳐 보겠어. 단역배우만 전전하고 있는 것이 답답하겠지.”

    감독은 방 안으로 사라지고 젊은 남자는 고개를 수그린 채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한쪽 구석으로 가 벽에 기대선다. 멍하게 남자를 바라보고 있는 숙정의 팔꿈치를 누가 슬며시 잡는다. 닉이 물끄러미 그녀를 보고 있다.

    영화찍는 처음이라서 말야.

    그녀는 혼자 머슥해져서는 미안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 누구나 처음이라는 걸 거쳐야 하는 거니까.

    닉이 어깨를 으쓱하며 걱정 말라는 손짓을 던진다. 그리고 다시 그녀를 물끄러미 보더니 말을 잇는다.

    저기, 괜찮다면 우리 자리를 좀 바꿀 수 없을까? 나는 왼쪽 옆모습이 더 자신 있어서 말야.

    얼굴을 붉히면서도 자신의 필요를 당당히 말하고 있다.

    그래?

    순간 나의 필요는 무엇인가 그녀는 생각해보았지만 필요를 생각하고 먼저 말하는 기회는 물 건너 갔다는 것을 동시에 깨닫는다.

    그러지 뭐. 난 상관없어.

    그와 자리를 바꾸고 보니 여기선 카메라의 각도에서 살짝 비켜난데다 카메라와의 사이에 키 크고 몸집 좋은 남자 배우가 하나 끼어들어 있다. 닉은 이제나 저제나 카메라에 비춰질 기회를 정말로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와서 자선사업가처럼 양보해 버리고 있는 스스로가 무책임하게 느껴진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던 것일까? 나 자신의 필요들을 미리 염려하고 보호할 줄 모르는 채. 그래서 나의 삶은 항상 주인공의 자리에서 밀려나 누군가를 보조하는 역할에만 그치고 있었던 것인가?

     

    반납해야 하는 이브닝백과 구두와 악세사리들을 벗어버리고 나니 거추장스럽고 불편했던 물건들의 무게가 덜어져 시원하면서도 어쩐지 허전하다. 가져온 슬리퍼를 신고, 코트를 걸치고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대사관에서 두 블럭 떨어져 있는 교회건물 앞으로 걸어가면서 모든 것이 누더기로 다시 변한 익숙한 현실로 되돌아온 신데렐라가 된듯 찬바람이 살을 에는 춥고 고통스런 현실감에 진저리를 친다. 버스 앞에서 시간카드-배우들이 일한 시간을 기록한 표-를 거두고 있는 매튜를 보고도 마지막 인사도 하지 않고 따스한 기운을 찾아 버스에 쏙 올라탔다. 애딸린 아줌마가 맞긴 맞나보다. 몸이 힘드니까 만사가 귀찮아지는 것을 어찌할 도리가 없다. 

    돌아오는 내내 오직 한 가지만을 생각하면서 그녀는 집으로 왔다. 따뜻한 목욕. 튜브드레스를 파고든 바람에 얼어버린 손과 발을 따뜻한 물에 푹 담그는 것이 지금의 자그마한 소망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남편 무릎에 기대어 앉아 티비를 보고 있는 아들을 눈으로 확인한 후, “저녁 차릴까요?”하는 아줌마의 말씀을 귀 뒤로하고제가 알아서 먹을께요. 퇴근하셔요하고 부엌을 향해 외치면서 목욕탕으로 곧장 들어간다. 드레스를 벗고, 물티슈로 얼굴의 화장을 닦아내면서 동시에 뜨거운 물을 틀어 욕조를 채우기 시작한다. 버블베쓰 비누상자를 열고 오렌지색 귤 향이 나는 작은 조각 하나를 뜨거운 물이 콸콸 흐르는 수도꼭지 밑에 살포시 떨어뜨린다. 동시에 비누거품이 거짓말처럼 뭉게뭉게 부풀어 오른다. 발이 뜨거운 물에 닿자 온몸이 포근한 기대감으로 전율한다. ! 좋다. 차갑게 지쳤던 영혼이 삶의 생기를 다시 회복하는 듯 하다. 거품 눈사람이 된 채 욕조에 누워 있으려니 아까 닉에게 카메라 시선이 닫는 자리를 양보했던 생각이 숙정의 뒷덜미를 잡고 누른다. 숙정의 마음 깊은 곳에서 한 목소리가 자꾸만 메아리친다.

    다르게 삶을 살고 싶어. 나 스스로를 지키는 주인공의 삶. 누구도 나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무시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4. 담판

     

    아침에 일어나니 마루바닥이 보통 싸늘하지 않다. 이젠 완연한 겨울인가? 바깥 온도가 많이 떨어졌나보다. 숙정은 바지정장 위에 단정해 보이는 회색 스웨터를 걸친다. 회색은 신뢰를 주는 색깔이라고 했던가?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꼼꼼히 챙긴 뒤 부엌으로 내려가 끓여서 한 김 식혀둔 녹차를 보온병에 붓고, 아직 따끈한 닭살 양념구이를 곱게 담은 도시락 뚜껑이 꼭 닫혔는지 그리고 냅킨과 수저를 함께 넣는 것을 잊지 않았는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남편의 사무실은 백악관에서 몇 블럭 떨어져 있지 않은 고층의 수려한 로코코양식 건물 한 켠에 자리잡고 있다. 남편의 사무실로 곧장 올라가지 않고 로비 한켠에 마련된 분수대 옆 카페테리아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바닥과 벽면이 다 대리석이다. 사람들의 발소리가 또각또각 선명하게 들려온다.

    “뭐하러 여기까지 왔어? 도시락 없으면 하루 사먹으면 되지? 애는?

    대리석 기둥 뒤에서 남편이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먼데를 응시하고 있던 숙정이 화들짝 눈을 둥그렇게 뜬다.

    “내가 오늘은 특별 도시락이라고 했잖아. 애는 아줌마하고 잘 있어. 아줌마가 잘 해 주시니까 걱정할 것 없어. 한 번씩 다른 사람하고 있는 것도 괜찮아.

    애 두고 외출했다는 걸로 잔소리를 시작하게 하고 싶지 않은 숙정은 발랄한 기운을 잃지 않으려 애를 쓰며 대화를 이어본다.

    “내가 당신 좋아하는 닭살 양념구이 해왔어. 아직 따뜻해. 먹어봐.

    남편은 도시락을 주섬주섬 꺼내더니 무슨 생각이 드는지 도로 도시락을 집어 넣는다. 그리곤 숙정의 눈을 똑바로 응시한다.

    “나한테 뭐 할말 있어?

    “밥 식어. 우선 먹어.

    “무슨 일이야? 나 성질 급한거 알지? 할말부터 해.

    “저기……나……오늘 내 미래를 의논하고 싶어서 당신 만나러 나온거야……나 말야……다르게 살아보고 싶어서……나 지금까지 당신하고 아이 뒷바라지만 하면서 살아왔잖아. 발전하고 싶어. 공부도 한 번 해보고 싶구……”

    “아줌마, 아줌마 나이에 공부해서 뭐할건데? 나이 40에 취직하려구?

    힘들게 비친 숙정의 마음자락을 꼬리잡고 빈정대는 남편의 표정을 보니 목이 메일 정도로 울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할말은 끝까지 하자고 아랫입술을 깨물며 스스로를 타이른다.

    “내 인생을 후회하지 않을 것으로 만들고 싶어. 난 늘 시녀처럼 다른 사람의 삶만 보조하며 내 인생 자체는 방관하며 살아온 것 같아. 스스로의 인생을 책임지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기대어 그 사람이 바라는 대로만 살고 있는 것 같이 느껴져……”

    “그 <그 사람>이 나냐? 그래서 내가 너 시녀로 부려먹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하 참! 나 지금 정말 성질나는데 회사라서 참는다. 일주일 내내 가족 위해서 돈 버는 나는 뭐냐? 머슴이냐?

    “그래. 당신도 그렇게 느낀다면 우리 같이 다르게 살아보자.

    “다르게? 놀고 있네. 다 저 하고 싶은 것 하면 지금처럼 편안히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아? 그런 사치스런 생각할 수 있을 거 같냐고.

    “조금 가난해진다 해도 우리 모두가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는 쪽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

    머뭇거리며 말을 시작했던 숙정은 남편의 삐딱한 태도를 무시하며 자신의 할 말을 계속 이어가는 사이 머릿속을 찬물에 담근 것처럼 점점 더 자신이 원하는 삶이 마음에 맑게 비쳐지는 것을 느낀다. 단호한 의지가 마음 가운데 자리잡는 것을 느끼는 숙정은 점점 흥분하는 남편의 거친 말투에도 담담해지기만 한다.    

    “나 회사일로도 머리가 복잡해. 이 전쟁터같은 곳에서 호시탐탐 내가 무너지는 기회를 노리는 저 경쟁자들로부터 내 자리를 지키며 사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복잡하다구. 네가 이렇게 엉뚱한 소리로 헤집어 놓지 않아도 말야.

    “그래? 당신은 나와 함께 서로 도와주며 다르게 살아볼 마음이 없는 것 같구나. 그럼 할 수 없지. 나 혼자서 스스로를 도울 수 밖에. 난 더 이상 무시당한다는 기분을 느끼며 살고 싶지 않아. 아니, 그보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당당하게 걸어갈 수 있도록 독립할래. 내가 아이 데리고 나갈께.

    남편이 어이없어 입을 다물지 못하는 사이 숙정은 차분하고도 냉랭한 태도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로비를 또각또각 걸어나간다.

    ‘쿠당탕……덱떼구르르……’

    숙정의 등 뒤에서 보온병 같은 것이 대리석 바닥을 구르는 듯한 소리가 난다.

    ‘집나와 어디 갈건데? 어떻게 살건데?

    문득 의문을 제기하는 남편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머리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숙정 혼자 차 안에 손에 얼굴을 묻은 채로 앉아 있다. 어떻게든 사는 거야. 내 의지대로. 짧은 인생 단 한 번이야. 그래도 대학물까지 먹었는데 조금만 더 공부하면 석사를 딸 수 있을 것이고 석사를 달고 간부급 사원이 되면 나이가 있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거야. 부모님 계신 한국으로 돌아가는 거야. 공부하면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야지. 엄마가 분명히 도와 주실거야. 아버지는……아버지는…… 이혼을 하고 돌아온 딸을 받아주실 수 있으실까? <미친년>이라고 눈을 부라리시며 열 살 때 집안의 종손인 남동생을 괴롭힌다고 엄동설한 내복바람에 한데로 쫓아 내셨던 것처럼 그렇게 또 얼음이 어는 차가움 속에 내 마음을 세워놓으실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이제 어른이다. 아버지에게 기대지 않아도 살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돈을 어떻게든 조금 빌리면 살 집도 얻고 아이 돌봐줄 할머니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면 아무도 나의 길을 방해할 사람은 없다. 마음을 다 잡으며 숙정은 이젠 상상이 아닌 혼자서 아이키우며 직업여성으로 살아가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5. 봉투

     

    남편에게 집을 나가겠다고 선언해 버린지 일주일이 지났다. 어색하고 냉랭한 분위기가 심해에서 느끼는 압력처럼 갈비뼈을 뻐근하게 눌러오는 일곱 번의 하루들은 출근하는 남편에게 아침을 차려주고 멍하니 보내는 낮들과, 퇴근하는 남편을 맞이하고 함께 같은 방에 들어 잠을 잤는지 안잤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밤들로 채워졌다. 실로 모든 것이 확연하게 변했다. 보통 때 같으면 남편과 사이에 불편한 기운이 도는 것을 이기지 못하는 마음 여린 숙정이 먼저 사과를 한다. 꼭 잘못한 것이 숙정이 쪽이라서 보다 그러는 쪽이 숙정의 마음을 더 편하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일주일 사이 딴사람이 되어버린 숙정은 몸은 그 동안 해오던 집안일을 하곤 있지만 마음은 미래를 위한 계획과 결심으로 가득 차 있다.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남편이 지친 모습으로 어두운 눈을 하고 집에 퇴근해 와 저녁을 몇 수저 드는 둥 마는 둥하고 어둑한 방 한 켠에서 등을 둥글게 말고 누워 있는 것을 보면 그 뒷 모습이 전에 없이 가엽고 애틋하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남편은 일주일째 수염도 깎지 않고 있다. 그래서 더 지쳐 보이는 것 같다. 남편의 수염이 길어 갈수록 매일 아침 저녁으로 남편을 대하는 일이 더욱 마음을 누르는 것같다고 느끼며 숙정이 한 숨을 토하는 순간.

    ‘드르르륵……’

    차고 문을 여는 소리가 아래층에서 울려온다. 오늘은 남편의 퇴근이 조금 이르다.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두둑한 겨울잠바에서 매캐한 겨울바람 냄새가 스며나온다.

    “열어봐.

    노란 마닐라 봉투 하나를 식탁 위에 툭 던지곤 남편은 욕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집으로 오는 내내 바랬던 자그마한 소망이 따뜻한 목욕이기라도 한 듯이. 꿀럭이며 파이프를 타고 물이 흐르는 소리와 샤워실 커튼 젖히는 소리가 삐걱이며 욕실문 밖으로 전등 빛과 함께 새어나온다.

    숙정은 선뜻 봉투에 가까이 가지 못한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인가! 남편에겐 이혼을 결심하기 까지 딱 일주일의 시간이 걸린 것이다. 한 번이라도 더 그녀를 만류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그녀의 눈에 서린 결심이 너무 굳건해 보여서겠지만. 그래도. 그녀에게 같이 살아달라고 지푸라기 한 번 잡아보는 심정으로 애걸복걸까지는 아니더라도 말 한 번 꺼내보는 일이 그렇게 안되는 것이었을까? 자존심 강한 잘난 남자 혼자 한 번 잘 살아 보라지. 순간 마음에 오기가 봉긋 솟은 숙정이 빳빳한 노란 봉투를 단숨에 낚아 들고 봉투입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한다.

    하얀 서류다발을 기대한 숙정의 눈 앞엔 생뚱맞은 가계수표 한 장만이 봉투 밖으로 얼굴을 삐죽 내밀고 있다. 멍해진 숙정이 정신을 가다듬고 수표에 인쇄된 숫자에 집중해 보니 $20,000의 금액이 숙정의 앞으로 되어있다.

    위자료? 숙정이 그 금액에 대해 계산기를 두드려볼 틈도 없이 욕실문이 벌컥 열리며 깔끔하게 수염을 깎아낸 남편이 샤워코롱 냄새를 풍기며 발걸음도 가볍게 숙정을 향해 다가온다. 위자료랍시고 이만 불 던져주고 이혼할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지는 모양이지? 의미있는 제 2의 인생을 꿈꾸며 돈이 없어도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다고 결의를 다지고 있는 숙정이지만 유치하게도 적은 위자료에 부아가 치미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 그런 숙정을 쳐다보는 남편의 눈은 뭔가 숙정의 감동을 기대하고 있기라도 한듯 사뭇 반짝이기까지 하고 있다. ! 이 돈에 내가 얼씨구나 고맙습니다 하기라도 바라는 모양이지! 굳어진 숙정의 어깨에 남편이 살포시 손을 얹자 숙정이 바퀴벌레라도 떨쳐내듯 진저리치며 홱 떨어낸다. 남편이 섬칫하며 숙정의 얼굴을 잠시 응시하더니 열린 봉투와 반쯤 삐져나온 수표로 시선을 향한다.

    “열어봤네.

    난데 없이 나긋나긋해진듯 달라진 남편의 목소리와 태도가 익숙하지 않은 미로 속에 던져진 것처럼 숙정의 머릿속을 이상하게도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있다. 알수 없는 이 느낌이 기분이 나쁜 숙정은 대꾸없이 혼자 팔짱을 낀 채 검은 겨울창 밖을 응시한다.

    “나 생각해 봤어. 당신이 왜 그런말을 했는지. 첨엔, 이루지 못한 어릴 때 꿈,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 같은 늘 하는 신세한탄인 줄만 알았어. 근데 그말을 하기 위해 날 찾아왔던 당신의 각오 그리고 달라진 당신의 눈빛이 자꾸 머리에 남았어. 내가 그동안 당신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내가 당신에게 대했던 태도, 그리고 했던 말들이 하나씩 생각나기 시작했어. 그러는 사이 내가 너무 미안해졌어. 당신이 늘 내 등 뒤에서 든든하게 나를 뒷바라지 해주고 힘이 되어 주었는데…… 내가 마음 놓고 모든 걸 맡기고 의지하고 있으면서도 너무 편해져서 감사함도 있고 함부로 말을 하고 투정만 부렸어…내가 당신이라도 나 같은 남편 너무 싫겠어......

    남편의 목소리가 울먹이는 바람에 마지막 말은 거의 짐승의 흐느낌인 듯 들렸다. 속울음을 삼키며 목이 메이는지 미간을 누르며 한 참 등을 들썩이던 남편이 다시 말을 이었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첨엔 결혼할 때 정말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훨훨 날게 해주겠다고 결심한 적이 있었어. 엄하고 가부장적인 장인 밑에서 숨죽이며 살아온 당신이 불쌍해서 미국에서는 하고 싶은 공부도 더 하게 하고 활짝 피게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데려왔었지. 근데 내가 이렇게 당신을 괴롭히며 살게 될 줄이야. 왜 지금 이걸 깨달았는지 모르겠어. 나 당신 없으면 살 수 없는 사람이야. 내가 고칠게. 당신이 하고 싶어하는 것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내가 도울께. 이 이만불 그동안 나와 함께 해준 당신에게 감사하고 미안한 내 마음이야. 학교를 다니든 뭘 하든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을 시작하는데 써. 그리고 나를 용서해줘.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내가 이제 정신 차리고 잘 할께. 당신 말대로 같이 행복하게 살자. 

    숙정은 남편의 숙인 머리를 품에 버겁게 안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고 또 닦는다. 뜨거운 눈물이 그녀의 결심을 다 녹여버릴 것만 같아 불안해진 숙정이 부지런히 눈물을 훔쳐대지만 남편이 분출해 낸 언어들이 용암 파편처럼 그녀의 심장에 박혀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으로 뜨겁게 불을 지피며 응어리진 결심들을 흔들어댄다. 

     



  1. 강인숙

    Reply6 Views10698 장르 이메일lakeroyal@yahoo.com
    Read More
  2. 강혜옥

    Reply4 Views9758 장르 이메일judydo82@yahoo.com
    Read More
  3. 권 영은

    Reply5 Views11003 장르시, 수필 이메일yep0810@hotmail.com
    Read More
  4. 권귀순

    Reply6 Views11417 장르 이메일kwiskwon@yahoo.com
    Read More
  5. 권태은

    Reply1 Views7867 장르 이메일begrateful@hanmail.net
    Read More
  6. 김 레지나

    Reply1 Views9665 장르수필 이메일mskim906@gmail.com
    Read More
  7. 김 은영

    Reply0 Views2763 장르 이메일kimeuny2011@gmail.com
    Read More
  8. 김 인기

    Reply8 Views10563 장르시, 영시 이메일igekim@gmail.com>
    Read More
  9. 김 인식

    Reply6 Views9921 장르 이메일kis825@yahoo.com
    Read More
  10. 김 정임

    Reply5 Views9203 장르 이메일Kim.jeong@yahoo.com
    Read More
  11. 김 진

    Reply0 Views3685 장르수필 이메일magene1120@gmail.com
    Read More
  12. 김 행자

    Reply7 Views9171 장르 이메일haengjakim@gmail.com
    Read More
  13. 김광수

    Reply1 Views9571 장르수필 이메일christopherkims@yahoo.com
    Read More
  14. 김령

    Reply12 Views10954 장르시, 수필 이메일Yim380@aol.com
    Read More
  15. 김미영

    Reply0 Views5297 장르동시 이메일meyoungkim2001@gmail.com
    Read More
  16. 김미원

    Reply0 Views1916 장르수필, 시 이메일miwony@gmail.com
    Read More
  17. 김양숙

    Reply0 Views1789 장르 이메일shawnielim@gmail.com
    Read More
  18. 김영기

    Reply0 Views6993 장르시, 영시 이메일
    Read More
  19. 김영실

    Reply0 Views3875 장르 이메일ykim2@cox.net
    Read More
  20. 김영주

    Reply1 Views9357 장르소설 이메일giantess@gmail.com
    Read More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Next ›
/ 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