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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택은 이름 석 자만으로도 어떤 무거움을 느끼게 하는 시인이다. 이 시인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마음의 채비를 요하는 일이다. 현란한 언어는 없지만 읽어 내기가 만만하지 않다. 행과 행 사이로 생각의 단위들이 바뀐다. 눈으로 듣는가 싶기도 하고, 귀로 보는가 싶기도 하다. 몰두하지 않으면 읽을 수가 없고, 몰두하면 어딘가에 찔리는 듯하다. 예리하게 보고 끈질기게 생각하며 열정적으로 쓰고 오래 두고 고쳐서일까. 이것도 저것도 시가 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김기택을 읽다 보면 알게 된다. 시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때만 시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을.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을 시인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감정을 다 연소시켜야 한다

 

 

시인으로서의 김기택이라는 이름 석 자가 주는 무게감 때문인지 일찍 등단하셔서 오래 쓰셨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등단을 늦게 하신 편이더군요. 시는 언제부터 쓰셨어요?

 

김기택 처음부터 시인이 되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했던 것은 아니고요. 습작도 늦게 시작했어요. 스무 살 무렵쯤에요. 등단은 서른셋에 했는데요. 지금은 늦은 게 아니지만 그때만 해도 상당히 늦은 편이었어요. 시 창작을 배운 것도 아니고요. 저는 문단에 아는 사람도 없었고, 샐러리맨 생활을 하면서 혼자 썼던 거죠.

 

선생님 시를 읽기가 상당히 힘들었어요. 이유를 생각해봤더니 시가 뻑뻑한 거예요. 체력을 요하더라고요.웃음

 

김기택 뻑뻑해서 못 읽겠다는 얘기를 등단 초기에 들은 적이 있어요. 시가 답답할 정도로 뻑뻑해서 읽기가 힘들다고요. 《태아의 잠》하고 《바늘 구멍 속의 폭풍》을 낼 무렵에 이런 얘기를 들었었는데, 그 후로 못 듣다가 오늘 오랜만에 듣네요.웃음 《사무원》 이후로는 설렁설렁하지 않았던가 해요. 오랜만에 그런 말을 들으니 새삼스럽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네요. 왜냐하면 요즘에는 난해하게 쓰인 시들이 많으니까요. 반면 제 시는 고등학생들이 시를 공부할 때 읽기 좋다는 말도 듣거든요.  

 

시 한 편 쓰시는 데 시간을 얼마나 걸리나요?

 

김기택 사실 초고는 금방 써요. 단박에요. 퇴고는 한 달에서 두 달 정도, 혹은 그 이상 걸릴 수도 있고요. 저는 원고 청탁을 받을 때 이미 초고를 갖고 있어야 돼요. 그래야 마감 시간에 맞춰 충분히 퇴고할 여유가 있으니까요. 가지고 있는 게 없는 상태에서 청탁을 받으면, 초고가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르고요. 나온다고 해도 퇴고할 여력이 없어서요. 쓰고 나서 버리는 게 좀 있어야 하거든요.   

 

 

 

 

 

 

방울
위에 방울 위에 방울 위에 방울 위에 방울 위에 방울 위에
방울 방울 방울 방울 방울
방울방울방울방울방울방울방울
방울에 올라타는 방울
다시 올라타는 방울
다시 올라타는 다시 올라타는 다시 올라타는
올라타는 올라타는 올라타는
- <거품> 중에서 《갈라진다 갈라진다》, 문학과지성사, 2012.

 

 

<거품>이라는 시가요. 리듬감이 살아 있더라고요. 선생님 시 중에서 드문 경우가 아닌가요? 어떻게 쓰시게 된 건지요.

 

김기택 쓸 때 어떻게 썼는지는 잘 생각이 안 나요. 계속 연상에서 연상으로 가는 거죠. 한 번 쓰기 시작하면 다른 걸 계속 불러오는 건데요. 이 시에서는 명사는 하난데 동사만 많잖아요? 대체로 시를 쓰고 나서 '내가 이 시를 왜 썼을까' 생각하는 편이죠. 이 시를 보니까 방울의 운동을 표현하려고 쓴 게 아닌가 싶어요. 방울은 세부적으로 본 거고 전체적으로는 거품이잖아요. 시를 쓰면서 리듬 같은 걸 생각하지 않는 편인데, 이 시는 좀 달랐어요. 리듬이 자꾸 시를 쓰게 만드는구나 했어요. <커다란 나무>도 좀 그렇거든요? 내게 약간 여유가 생겼구나 싶었어요. 당겼다 풀었다 당겼다 풀었다 하는 걸 즐기고 있구나.

 

이 런 시가 나한테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감정을 드러내는 걸 굉장히 싫어하잖아요. 적극적으로 절제하면서 쓰는데요. 사실 감정을 절제한다고 해서 읽는 사람이 감정을 못 느끼는 건 아니거든요. 쓰는 동안에는 감정이 활발하게 일어나죠. 그럴 때 '시가 잘 나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요. 감정을 연소시켜서 완성된 작품에는 물기가 남아 있지 않도록 하죠. 시인이 미리 우는 것을 빼 버리는 거죠. 이 두 시를 쓸 때에는 감정이 활발하게 일어났다가 연소되고, 일어났다가 연소되고 하는 게 느껴지는 거예요. 이런 어법이 내 목소리에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어요.

 

<커다란 나무>의 나뭇가지들이 갈라지는 모습에서 운동과 율동 같은 걸 느꼈어요. 소나무나 전나무 같은 건 아닐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떤 나무가 시인한테 이런 시를 쓰게 했나 궁금했어요.

 

김기택 느티나무처럼 크거나, 아니면 크지는 않더라도 배롱나무 같은 거. 사실 쓸 때는 특정한 나무를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평소 유심히 봤던 나무가 그런 나무들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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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언어를 사람의 언어로 번역하기

 

 

< 커다란 나무>를 보면 "한 그루 커다란 식물성 불이 / 둥글게 타오른다 제 안에 난 수많은 불길을"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구절을 보면서 《사무원》에 있는 <얼음 속의 밀림>을 생각했어요. "투명한 불의 흔적이 보인다"며 차가움 속에서의 불에 대해 쓰고 계신데요. 그럼 인간은 어떤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를테면, 흔한 일은 아니지만 자연발화가 일어나서 사람이 타 죽는 일 같은 것도 있으니까요.

 

김기택 <얼음 속의 밀림>에 대해서 누가 관심을 갖고 얘기해 준 건 처음이에요.웃음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애착을 갖고 있는 시예요. 뭔가 충분히 표현을 못했다고 느껴요. 나무가 식물성 불이라면, 타는 원리나 힘은 불하고 똑같거든요. 단지 속도가 불과 다른 거죠. 불은 순식간에 타오르니까요. 나무가 갈라져 올라가는 모습이랑 불이 타오르는 거랑 비슷해요. 글쎄요, 사람은 모양은 다르지만 팔다리가 갈라져 나온다든지 손가락이 갈라져 있다든지 하는 건 불하고 비슷하죠. 그런 생김새 속의 힘이나, 자라는 모양이나, 움직이는 모양으로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 나름대로 그 언어를 사람의 말로 번역을 하는 거죠.웃음 그 에너지랄까, 힘이랄까 하는 게 나한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은데요. 내가 번역한 인간의 언어는 아주 미흡해요.

 

이번 시집에서 이색적이었던 시가 <키스>였어요. 김기택 시집에 있는 시의 제목으로는 어쩐지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거든요.웃음 물론 시의 내용은 지금까지의 시 세계와 닿아 있지만요.

 

김기택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왜 그런 시를 쓰냐는 사람도 있고, 재미있다는 사람도 있고요. 이것도 역시 관찰의 시지 사랑의 감정에 대해 쓴 시가 아니에요. 말하자면, 성적인 에너지에 대해 쓴 건데요. 키스를 할 때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은 무엇인가. 왜 입술이 닿는데 발가락이 움직이는가. 왜 이런 현상들이 생기는 것인지 궁금했던 거죠. 아직 인간의 언어를 입지 않은 현상들이 호기심의 대상인 거죠.

 

사랑의 감정에 대해 쓴 시가 아니라고 하시지만 제겐 감정이 느껴졌습니다.웃음 특히 "네가 나의 심장으로 펄떡펄떡 뛰는 순간 / 내가 너의 허파로 숨 쉬는 순간"과 같은 구절들에서요.

 

김기택 보는 것이나 만지는 것과는 달리 그런 순간에는 상대방의 몸속으로 들어가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분리되었던 것이 합쳐져서 하나의 기관처럼 된다는 느낌, 그래서 내가 상대방 속으로 들어가고, 상대방은 내 속으로 들어가고 하는 그런 것이죠. 저는 이 시를 감추고 싶어서 뒤에다 놨어요.웃음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들추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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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니룩>이란 시가 있는데요. 스키니룩이 그렇게 충격적이세요?웃음 여쭤보고 싶었어요. 그렇게 적응이 안 되세요?
 
김기택 사실 내 눈이나 다른 감각이나 감정은 어느 정도 적응을 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몸속에 아직도 적응 안 된 부분들이 많이 있는 거예요. 적응 안 된 이것은 무엇인가. 그런데 그것은 단순히 적응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뭐랄까, 함민복 시인이 '성고문'이라는 표현을 쓴 게 있잖아요? 미니스커트나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가는 여자들이 자기를 성고문 한다고. 내 안에서 뭔가 적극적으로 일어나서 한편으로는 보고 싶어 하는데 나는 나이가 이미 들었잖아요. 그 사이에서의 충돌도 있고. 다른 것들은 시간이 흐르면 습관이 되어서 그러려니 해요. 감각이 둔해지고 마비되니까요. 그런데 스키니룩 같은 경우는 그게 잘 안 되는 거예요. 볼 때마다 첫 경험이 일어난다고 할까. 

 

이 질문을 드릴까 말까 망설였는데요. 드리기 정말 잘한 것 같아요. 볼 때마다 첫 경험이 일어난다니요.웃음 

 

김기택 도대체 이게 뭔가. 미니스커트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육칠십 년대에는 상당히 놀라운 것이었지만요. 사실 시에서는 아무것도 입지 않는 맨다리를 ‘스키니룩’이라고 표현한 거예요. 맨 다리와 ‘스키니룩’이라는 옷 두 가지를 섞어 놓았지요.

 

개에 대한 시가 유독 많은데요. 오래 키운 늙고 병든 개가 있나 했어요. 특별한 교감을 나누었던.

 

김기택 그렇지는 않고요. 개를 잠깐 키우기는 했지만요. 시집마다 소나 고양이나 개가 많이 나올 때가 있어요. 저는 대상을 보고서 바로 시로 쓰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뭐가 하나 써질 때는 사건, 장면, 이미지로 결합돼서 나오는 것 같아요. 개에 대해서 썼지만 그 시에는 사람에 대한 경험이 많이 들어 있는 것 같아요. 
 

 

 

시詩의 문법과 꿈의 문법은 닮아 있다

 

개인적으로 《사무원》에 있는 <겨울을 기다림>이라는 시를 좋아해요.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이 쓸 수 있고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할 수 있는 시라고 생각했는데요. 겨울에 시가 더 잘 써지시나요? 어떠세요?

 

김기택 겨울을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에요.웃음 그런데 지나고 나면 겨울이 많이 생각나요. 어렸을 때도 그래요. 과거의 경험이 힘들어도 지나고 나면 정화가 돼서 아름답거나 좋게 기억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어렸을 때는 지금보다 겨울이 훨씬 추웠던 것 같아요. 지금보다 난방이나 의복 같은 게 훨씬 열악했잖아요. 동상 걸리고 손발 터지는 건 흔한 일이고요. 그런 기억이, 이상하게도 괴롭다기보다는 행복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다시 체험하고 싶다는 생각? 그래서 그런지 겨울 시는 주로 여름에 쓰게 돼요. 축 늘어지거나 의욕이 없거나 그럴 때요. 그 고통스러운 경험 속에 행복이 있어요. 막상 겨울이 오면 싫죠. 시 속에서는 평소의 ‘좋고 나쁨’이 많이 바뀌는 것 같아요. 실제의 나는 너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시에서는 무관심일 때도 있고. 별로 안 좋아하던 것을 시 속에서 굉장히 크게 느낄 수도 있고요.

 

우 리가 일상생활에서 중요하게 느끼거나 사소하게 느끼는 우선순위하고 꿈속에서의 우선순위가, 완전히 반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전혀 매치가 안 될 때가 있잖아요. 이런 꿈의 문법과 시의 문법이 비슷한 거 같다는 걸 느낄 때가 종종 있어요. 시를 쓰고 나서 생각해 보면 허탈할 때가 있어요. 내가 왜 이렇게 이걸 가지고 열심히 썼는지 모르겠는 거죠.웃음 동물도 그래요. 소라든가 개라든가 고양이라든가도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거든요. 그런데 시에서는 내가 그 대상에게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기라도 한 듯이 표현이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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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그는 의자 고행을 했다고 한다.
제일 먼저 출근하여 제일 늦게 퇴근할 때까지
그는 자기 책상 자기 의자에만 앉아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그가 서 있는 모습을 여간해서는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중략
그의 통장으로는 매달 적은 대로 시주가 들어왔고
시주는 채워지기 무섭게 속가의 살림에 흔적없이 스며들었으나
혹시 남는지 역시 모자라는지 한번도 거들떠보지 않았다고 한다.
오로지 의자 고행에만 더욱 용맹정진했다고 한다.
그의 책상 아래에는 여전히 다리가 여섯이었고
둘은 그의 다리, 넷은 의자다리였지만
어느 둘이 그의 다리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한다.
- <사무원> 중에서 《사무원》, 창작과비평사, 1999.

 

 

선 생님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사무원>이 전에는 이렇게 슬픈 시인 줄 몰랐어요. <사무원>에서 제일 슬픈 부분은 "그의 통장으로는 매달 적은 대로 시주가 들어왔고 / 시주는 채워지기 무섭게 속가의 살림에 흔적 없이 스며들었으나"인 것 같아요.

 

김기택 경험이 들어 있기는 한데요. 평소에 제가 유머가 별로 없어요. 경직되어 있고요. 여기서는 현실을 뒤집는 유머가 활발하게 나타난 것 같아요. 대표작이라고까지 하기는 좀 그렇지만요.웃음

 

저는 하나도 안 웃기고 먹먹했거든요.

 

김기택 아, 그래요? 시를 쓰면서 내 안에 있던 심술 맞은 어린애가 나올 때는 즐거워요.  심술꾸러기 어린애가 내 안에서 장난을 치는 느낌이랄까요. 내가 갖고 있던 질서들을 어지럽히고 제멋대로 놀고. 현실에서는 정신 사납게 장난 치고 노는 애들이 제일 싫은데.웃음 그런 목소리가 나올 때는 재미있어요. 이 시 쓸 때가 회사 생활이 가장 고될 때였죠. 시 보면 시간이 없어서 억지로 썼다는 느낌이 들잖아요?웃음 껍데기만 있는 채로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할 때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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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딴 사과들이 가득한 상자를 들고
사과들이 데굴데굴 굴러나오는 커다란 웃음을 웃으며

그녀는 서류뭉치를 나르고 있었다
어떻게 기억해냈을까 고층 사무실 안에서
저 푸르면서도 발그레한 웃음의 빛깔을

어떻게 기억해냈을까 그 많은 사과들을
사과 속에 핏줄처럼 뻗어 있는 하늘과 물과 바람을
스스로 넘치고 무거워져서 떨어지는 웃음을
- <어떻게 기억해냈을까> 중에서 《소》, 문학과지성사, 2005.

 

<어떻게 기억해냈을까>에는 서류 뭉치를 나르던 여 사무원의 갑작스러운 웃음이 나오는데요. 마법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쓰게 되셨나요?

 

김기택 회사에서 서류 상자들을 여직원들이 나르는데요. 되게 무거운 상자거든요. 여직원들은 깔깔대면서 나르는 거예요. 이십 대 특유의 명랑함과 발랄함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녀들의 웃음소리가 이 시간과 공간에 잘 매치가 안 되는 거예요. 터무니없는 낙관성이고 명랑함이고 즐거움이고. 도대체 저런 웃음이 어떻게 해서 나오는 것인가. 그래서 과수원에서 처녀들이 사과를 수확하면서 옮기는 상황을 떠올렸어요. 시에 이 두 가지 상황이 겹쳐 있잖아요. 말하자면, 그 웃음이 시공간을 바꿔 버리는 거죠. 건강하고 오래된,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어떤 공간이 떠올랐어요. 도시가 갑자기 농경 시대로 돌아가고, 햇볕과 바람이 느껴졌어요.

 

선 생님 연배의 시인들은 보통 나무, 자연, 꽃의 이름 같은 것에 관심이 많잖아요. 김기택의 시에는 이런 것들이 보편화되고 추상적으로 나타납니다. 단순한 도식이긴 한데, 선생님을 리얼리스트라고 해야 할지 모더니스트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웃음 서정 시인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고요. 제가 과문해서인지, 계보를 지정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김기택 사실 '나는 리얼리스트다 혹은 모더니스트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시를 쓰시는 분도 있겠지만 저는 그런 생각을 거의 안 해요. 신춘문예 등단작 심사평을 김현 선생님이 쓰셨거든요. '기성 시인 누구와도 닮지 않았다'는 거였어요. 누군가의 시를 전범으로 삼지 않고 야생에서 배웠다고 할 수 있어요. 시가 실패하는 경우는 감정 조절에 실패하는 때라고 생각해요. 울거나 비명을 지르거나 할 때 시가 아주 유치해진다는 걸 알았어요. 쓸 때는 감정이 활발하게 일어나지만 완성된 작품에는 그것을 다 제거하려고 하죠. 감정을 배제하고 어떻게 이미지로 응축시킬 것인가에 관심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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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란 무엇인가라고 왜 물어봐야 하지? 

 

 

유독 눈이 좋은 시인이신 것 같아요. 늘 관찰을 하고 메모를 하는 편이세요?

 

김기택 거의 길에서 쓴다고 봐야죠. 메모하는 정도가 아니고. 책상에서는 시가 나오지 않고요. 의식적으로 마음먹고는 못 써요. 미리 제목을 정해놓고 쓰지도 못하고. 주제를 정해 놓지도 못하고요. 내가 뭘 쓸지 모르는 상태라야, 뭐를 쓰겠다는 계획이 없어야, 아무것도 몰라야지만 쓸 수가 있어요. 길을 걸으면 방심 상태가 되고 뭔가가 툭 하고 나와요.

 

산책을 종종 하세요?

 

김기택 시 쓰기를 위한 산책, 의식적인 산책은 안 해요. 내가 걷는다는 것은 출퇴근 혹은 외출의 경우처럼 일상생활에서 걸을 때에요. 대신에 차를 될 수 있는 대로 안 갖고 다니죠.

 

선생님의 시집에는 부가 안 나뉘어 있는 경우가 많고 부제도 없더군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김기택 나는 그걸 굳이 왜 나누는지 모르겠어요. 소재별로 나눌 수도 있겠고 시기별로 나눌 수도 있겠지만, 오륙십 편 되는 시를 가지고 굳이 나눌 필요를 못 느끼겠어요. 시를 감상하는 독자들에게도 뭔가를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냥 자연스럽게 하려고 하죠. 시 선집이라면 나눠야 할 것 같아요. 그런 분명한 이유가 없이 대개 관습적으로 나누는 측면이 있어 보여요.

 

시에서 쓰지 말아야 하는 단어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김기택 특별히 그런 건 없는데요. 가능하면 관념어는 잘 안 쓰려고 하죠. 그렇지만 아무래도 쓰게 되는데요. 생이니 삶이니 하는 것들 있잖아요. 영국 시인 중에 딜런 토머스Dylan Thomas라 고 있거든요. 중학교 정도밖에 안 나온 사람인데요.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라 그 사람이 쓰는 시어가 다 어렸을 때 쓰던 말들인 거예요. 죽음이라든지 자유라든지 사랑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자기가 자라면서 배운 농촌의 말로 썼어요. 그래서 이 사람의 시가 난해하고 번역하기 어렵기로 유명하거든요. 우리 식으로 하면, 미당이나 소월의 시가 번역이 힘든 것처럼요. 일상적으로 쓰지 않는 단어를 내 관찰력으로 재구성하고 만들어서, 말하자면, 단어를 수제품으로 만드는 거죠. 기성품을 쓰지 않고요.

관념어라 는 것은, 단어 밑에 가려진 표현되지 않은 느낌과 현상들을, 일반화ㆍ추상화ㆍ평균화해서 뭉뚱그리는 것이거든요. 그것을 쓰게 되면 그 밑에 살아 있는 것들이 다 죽잖아요. 감춰진 채 드러나지 않은 말들, 아직 사용되지 않은 단어들을 꺼내서 내 식으로 만들어서 쓰는 거죠.

 

좋은 시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김기택 시를 읽을 때 독자들이 평소에 잊고 있었던 것들, 독자들 안에 잠재되어 있던 것들을 자극하고 깨워서 체험하게 하고 활동시키는 시가 좋은 시인 것 같아요. 독자가 읽기 전까지는 악보 위의 악상이었다가 읽는 순간 음악이 되는 거죠. 물론 사람마다 듣는 음악이 다르겠지만요. 머리의 반응이 아닌, 감정적이고 정서적이고 육체적인 반응. 놀라움이든 탄식이든 끔찍함이든 슬픔이든, 그런 것들을 활발하게 일으켰으면 좋겠는데. 그렇지는 않았죠?웃음

 

젊은 시인들이 한국어를 사용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어떤 느낌을 받으세요?

 

김기택 내가 읽어 오고 써 오고 좋다고 생각해 왔던 시와는 많이 다르다고 느껴지는 게 사실이에요. 그런 식의 언어 사용법이나 시 창작법은 사실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것들이죠. 예를 들어, 번역을 잘못해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시가 있잖아요? 번역시를 읽을 때나 그런 것을 체험했지, 우리나라 말로 우리나라 시인이 쓴 시에서 그런 느낌을 받는 건 당황스러운 일이죠. 나와 비슷한 연배인 김혜순이나 송찬호 같은 시인이 문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쓰는 분들이잖아요? 이런 시인들의 시는 자연스럽게 느껴진단 말이죠. 젊은 시인들의 시도 어느 정도 적응되니까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시들이 꽤 있어요. 저도 거기에서 알게 모르게 영향 받은 게 있을지 모르죠.

 

마지막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김기택에게 시란?

 

김기택 별로 생각 안했던 건데 느닷없이 한 방 맞은 것 같네요. 시를 처음에 쓸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내가 그냥 좋아서 한 건데요. 흔히 시인들은 끊임없이 시란 무엇인가를 물어 봐야 한다고 하는데, 저는 왜 물어 봐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 거 물어 보지 않아도 시가 좋으니까 계속 해왔거든요. 시를 쓰는 이유는 다 다르겠지만, 저한테 시는 ‘숨통’이라고 해야 하겠네요. 시를 쓴 기간하고 사무원으로 일한 기간이 거의 겹치는데요. 시가 나를 견디게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어요. 숨 쉴 수 있는 허구의 공간이 있다는 것, 거기서 다른 상상을 하면서 제2의 현실을 만들 수 있다는 것, 시공간이 없는 그 세계가 정말 실제의 삶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것, 그런 게 있다는 것이 즐거운 일이었어요. 여기서는 숨이 쉬어진다는 느낌이었고요. 창작은 고통이라고 말하는데, 저는 그게 왜 고통인지 잘 모르겠어요. 스스로를 견디게 해 주었고,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거든요. 시에서 사건, 장면, 인물은 가짜지만 그 인물들을 생각하게 하고 움직이게 하면서 발생하는 모든 정서와 감각과 마음은 현실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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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시의 문법이 어쩌면 꿈의 문법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꿈의 문법이라니. 그를 만나고 나서 나는 이 두 단어의 조합이 주는 몽롱함의 역설에 사로잡혀 버렸다. 같이 붙여 두니 '꿈'과 '문법'이 얼마나 이질적인 세계인지 확연해졌다. 꿈이란 기승전결 없는 비논리의 세계요, 문법이란 꽉 짜인 논리의 세계이다. 그러니까 시는, 통제가 안 되는 세계를 통제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꿈을 꾸기도 하고 원하지 않는 꿈을 꾸기도 한다. 꿈은 우리가 모르는 것을 하며, 시는 우리가 모르겠는 꿈에 대하여 쓴다. 김기택은 길을 걸으며 꿈을 쓰는 시인이다.      

 

 


글_ 한사유 / 사진_ 김병관 / 감수_ 신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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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택
1957 년 경기도 안양 출생.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꼽추>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 《태아의 잠》, 《바늘구멍 속의 폭풍》, 《사무원》, 《소》, 《껌》, 《갈라진다 갈라진다》 등이 있다.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수문학상, 미당문학상, 지훈상 등 수상.

 

한사유
문학을 전공하고 문학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신형철
문학 평론가로 《문학동네》 편집 위원이다. 저서로 《몰락의 에티카》, 《느낌의 공동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