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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근촌 백관수의 옥중시집  ‘동유록’을 읽고

 

이건청(전 한국시인협회 회장한양대 명예교수)


근촌 백관수(1889~1950)의 시집『동유록』(시산맥)을 깊은 감개 속에 읽었다. 일제 강점기의 교육자, 언론인, 독립운동가, 정치인으로 활동한 그의 업적은 비교적 상세히 알려지고 있으나 정신과 신념, 그가 지녔던 느낌까지를 포괄하는 인간 백관수의 전모를 접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다행히 이번에 그의 시 70 여 편이 수록된 시집 『동유록』이 간행됨으로써 그의 인간적 면모를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근촌 백관수의 시집 『동유록』을 접하면서 내가 다시 반추해 보게 된 것은 조선조 500여 년을 면면히 이어져 온 선비정신에 관한 것이며, 특히 시대의 반영으로서의 시가의 전통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가 지녀온 정신의 핵심은 불의에 굴하지 않으며 부러질망정 휘이지 않는 강직함이었다.

 

근촌은 6살 때부터 한학자 전우(田愚 1841~1922)에게서 한학을 배웠다. 그의 사촌 형 백인수(白麟洙1856~1910)는 1910년 8월 나라가 일제에 강점되자 분사(憤死)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그해 9월 「통분분사불충사죄(痛憤憤死不忠謝罪)」의 유서를 남기고 순절하였다. 근촌은 이런 성장 환경 속에서 민족자존을 지키려는 저항 민족주의자로서의 정신적 토대를 이루게 되었다. 그가 남긴 시집 『동유록』은 일제의 강압적 지배에 대한 시적 저항의 양식을 제시해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2. 8독립선언을 주도한 지식인으로서의 판단과 1년여에 걸치는 투옥 생활을 통해서 성찰한 시대 인식과 자기 성찰이 확연히 드러나 있다.



(근촌 백관수)

 

근촌은 매천 황현(1883~1910)과 거의 동시대에 출생하였다. 매천은 1910년 한일 합방 직후 ‘절명시’ 남기고 자결하였다. “인간세상에서 글을 아는 사람의 노릇 참으로 어렵기만 하구나(難作人間識字人 )” ‘글 아는 사람 노릇’을 실현하기 위해 매천은 스스로 자결의 길을 선택했다면 근촌은 적지 수도 동경에서 청년독립단 창단하였으며 2.8 독립선언을 주도하였다. 근촌은 적극적 자기 표명을 통해 전면적인 저항의 자리에 선 것이다. 근촌의 저항시는 조선조 우국시의 맥을 이으면서 일제 강점기의 육사, 심훈 등으로 이어지는 저항시에 이어지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시집 『동유록』은 1919년 2월 8일 일본 동경에서 있었던 2.8 독립선언을 주도한 근촌이 1년간 옥살이를 하게 되면서 쓴 옥중시편들이 중심이 되어 있다. 원문은 한시로 되어 있고, 근촌의 차남인 백순이 한글 번역과 영문 번역을 맡아 원고를 정리 했다고 한다.

 

동경 유학생들이 중심이 된 2. 8 독립 선언이 3. 1독립 만세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음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다. 당시 일본 메이지 대학 법학부에 재학 중이던 근촌은 1919년 2월 일본에 유학중인 조선인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조선청년독립단을 결성하였고 그 단체의 단장이 되었으며 2. 8 독립선언을 주도 하였다. 학생대표는 11인이었다. 근촌은 당일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이 일로 당시 일본에 없었던 이광수, 최근우를 제외한 9명이 일경에 체포되었으며 근촌은 투옥되어 1년간 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시집『동유록』의 시편들은 2.8 독립선언을 주도하게 된 정신적 기저가 ‘자유’를 지키려는 데 있으며 그런 추구가 반드시 ‘성공’할 것임을 확신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반만년 역사의 나라 세상에 드물리니

뉘라서 말하리 천도(하늘의 도) 영영 쇠미한다고

마침내 자유는 승리를 거두리라

금년 봄 2월에 격문을 날렸노라

-「반만년 역사의 나라」

 

半萬年邦世所稀 孰云天道永衰微

畢竟自由占勝利 大春二月檄羽飛

-半萬年邦

 

 

조선은 반 만 년의 역사를 지닌 연부역강의 나라이므로 ‘천도’가 쇠미하다는 세평이 가당치 않음을 천명하고 있다. 일시적으로 일제의 강압적 지배에 놓여 있지만 반드시 굴레를 벗어날 것이라는 신념이 뒷받침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녕 때는 2월이건만

봄기운 아직도 어이 더딘가

세 다다미 크기의 감방 창 아래에서

역시 나 홀로 모름이련가

 

-「정녕 때는」

 

正當二月時 春色尙何遲

三疊幽窓下 也吾獨不知

-正當

 

 

위의 시는 2. 8 독립선언 직후 감옥에 투옥되어 쓴 시로 보인다. ‘세 다다미 감방’에 갇혀 그는 ‘봄기운’을 기다리고 있다. ‘봄기운 아직도 어이 더딘가’는 진술은 탄식이라기 보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근촌이 ‘때는 정녕 2월’이라는 명확한 자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절의 순환은 우주 질서인 것이고, 2월이 가면 3월이 오고 만화 방창의 봄이 도래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들으니 사상자 3백 넘는다고

바람 맞아 눈물짓고 마음 처절도 하네

상상하건대 그 의분 분명 피를 흘릴 터

생각하건대 저들 만행 가히 특서 하겠네

만국 흔연한 소리 대의 격문을 선포하고

천년 지나도 이러한 일 반복되지 않게 경계하세

최선을 다하여 나의 충성과 몸을 끝까지 바치리

우리 민족 이 때에 할일을 소홀히 하지 마세

 

– 「사상자 3백 넘어」

 

聞有苑傷三百餘 臨風送淚意悽如

想其義憤能流血 念彼蠻行可特書

萬國欣聲宣大檄 千年遺戒覆前車

至哉丹衷獻身盡 吾族伊時事不疎

 

-苑傷三百餘

 

 

2.8독립선언에 이어 3.1 독립만세 운동이 거국적으로 전개되고, 일제 무력 진압으로 상당한 인명 살상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사상자 3백’은 3. 1 만세 운동 초기의 피해 상황일 것이다. 감옥에 갇힌 그가 전해 듣게 된 3. 1운동의 전개 과정을 보며 느낀 감회와 다짐을 이렇게 적고 있다.

 

“바람 맞아 눈물짓고 마음 처절도 하네” 거국적인 항일 독립 만세 운동으로 속출하는 사상자를 전언으로 전해 듣는 심회이다. 그런데, 근촌은 이런 사태 앞에서 강한 다짐을 내보이고 있다. “천년 지나도 이러한 일 반복되지 않게 경계하세/최선을 다하여 나의 충성과 몸을 끝까지 바치리” 다시는 이런 불행한 사태를 맞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다짐과, ‘최선을 다하여 충성과 몸을 끝까지’ 바치겠다는 선언의 자리에 자신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근촌 백관수(1889~1950)의 시집『동유록』(시산맥)을 접하면서 나는 간난의 한 시대를 살아간 선진 지식인의 삶의 모습을 되짚어 볼 수 있었다. 그는 일제 강점기의 교육자자, 언론인, 독립운동가, 정치인으로 지식인의 책임과 소명을 다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민족주의자였다. 일제의 감옥에 갇힌 채 그의 지향과 다짐을 시로 적어 낸 시편들을 접하면서 그의 시가 전하고자 했던 전언들이 현재적 생명력을 지니고 있음도 깨닫는다.

 

시대의 선구자가 딛고 가는 발길은 늘 형극의 길이다. 근촌 백관수의 옥중 시집 『동유록』은 형극의 시대를 살았던 선구적 지식인의 정신과 감성의 기록이다. 그의 시 70 여 편이 수록된 시집 『동유록』이 간행됨으로써 그의 인간적 면모까지를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