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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9/07/23 14:19


“한국문학의 미래, 암울하지만 빛은 있다”

워싱턴 찾은 한국 대표 문학가 박이도 교수
“한국전통 숨쉬는 외국어 작품도 ‘한국문학’”
“국한문혼용 차세대 사고의 폭 넓혀져야”




워싱턴을 방문한 박이도 경희대 명예교수(국문학과)의 한글과 한국문학에 대한 미래 전망은 암울했다. ‘멘붕’과 같은 국적불명의 신조어가 늘어나고 가볍게 소비되는 대중상품으로서의 활자문학이 함축과 은유, 사상과 해학을 담는 문학의 본연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는 현실에 안타까워했다. 

“한국의 시와 문학을 통해 문학적 소양을 키웠다면, 세계의 어느 누가 어떤 언어로 글을 썼더라도 한국문학이며 그 맥이 이어진 것”이라며 한국문학의 먼 미래도 예측했다. 

은유와 상징으로 수십년 단련해 온 거장의 역발상일까, 미래 한국문학의 해답 역시 여느 분야와 다르지 않게 ‘세계화 뿐’이라는 자조적 깨우침일까. 미국내 한인 문학인들을 위한 노교수의 덕담 정도를 기대했던 인터뷰는 한시간 이상 이어졌다. 한국 문학과 문학인, 더 나아가 젊은세대와 위정자들에 대한 문학계 원로의 정문일침(頂門一針)이었다. 

인터뷰에서 박이도 교수는 한국문학, 한글의 미래가 어둡다고 거듭 강조했다. 가속화하는 기술과 문명의 발전속에 세계의 말과 글이 빠르게 융합하고, 그 쓰임새가 상대적으로 적은 한국어 등은 원시부족의 ‘외로운 말’처럼 도태될 가능성이 크다. 읽고 쓰는 이가 없는 언어와 활자는 결국 사라진다. 약육강식의 논리는 이처럼 사람의 말에도 적용된다. 


이런 세상에서 한국 문학의 미래는 어디에 서야 할까? 박이도 교수는 “한글과 문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한국어와 한국 문학을 접하고 영향받은 이들이 쓴 글은, 그것이 어느 언어로 창작됐든, 한국과 한국문학의 맥을 잇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박이도 교수는 한국문학을 지키기 위한 당면한 문제로 ‘국한문혼용’과 ‘책임감 있는 국어교과서 편찬’을 들었다. 박 교수는 “글자 하나하나에 철학적 의미를 갖고 있는 뜻 글자 ‘한자’와 감각적이고 표현적 다양성을 극대화시킨 소리글자 ‘한글’을 동시에 사용하는 한국인들은 그 어떤 민족보다 상상력과 창조력, 감각적 사교력이 높았고, 이것이 오늘날 한국의 경제, 문화 성장의 배경이 됐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단절됐던 한자교육을 심화해 앞으로 세대들에게 보다 넓은 사고의 기회를 줘야 한다”고 밝혔다. 

정권의 이념에 따라 매번 바뀌는 ‘교과서 편찬 위원회’의 보다 중립적인 활동도 당부했다. 박 교수는 “한국문학과 한국어의 생존은 결국 우리의 글과 말이 얼마나 오랫동안 그 전통이 이어지는 지의 여부에 달렸다”면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읽고 배우던 시와 소설이, 100년 후의 후손들에게까지 학습되고 즐길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야 한다”고 했다.

2003년부터 해마다 3개월씩 워싱턴을 방문해 머무르고 있는 박 교수. 그의 딸은 현재 워싱턴 DC에 위치한 연방의회 도서관에 근무한다. 이 곳에서 태어나 현재 중학교 2학년인 손주는 한글로 된 책도 곧잘 읽는다. 올 해는 삼 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서둘러 한국으로 돌아간다. 갑작스레 생긴 병의 치료를 위해서다. 나랏말을 쓰지 못하고 창씨 개명을 강요받던 1938년 태어난 박 교수는 한평생 한국문학을 잇는 문인으로 살았다. 한국어의 종말을 경계하는 그의 말에 힘이 있다. 글에서도 힘이 보였다. 암울함 속에서 빛을 찾아내는 지혜를 갖추라는 주문과 같았다.



“한국문학의 계승과 발전, ‘국한혼용’과 ‘세계화’에 좌우된다” 

미주의 문학인들과 교류하시면서 느낀 점이 먼저 궁금하다.

“미국에서 한국 문인으로 활동하시는 분들이 많고 의욕 갖고 열심히 하시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나 오래 지속될 지는 의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비관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분들이야 말로, 해외에서 한국어의 광맥을 캐고 지키는 훌륭한 분들이고 애국자다. 하지만 관건은 한국어에 대한 그들의 애정을 얼마만큼 후손들에게 전수해 줄 수 있느냐다. 워싱턴 문인회 등 미주의 한국 문학회들이 다음 세대로 이어져 함께 모여 활동할 수 있을까? 자신 있는 분들은 (아직까지) 없는 것 같다.”


-한국 문학에 대해 하고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크게 보면, 한국어는 한자어와 한글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체계화된 언어라고 볼 수 있다. 해방 이후에 언어적 체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왔다. 소위, 일본의 잔재라며 한자어의 사용이 거의 중단됐다. 근년에 중고등학교에서 입시위주의 한자 교육이 돌아왔지만, 아직까지 20~50대에서 한자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이들이 거의 없다. 한자를 안다는 사람들도 10분의 1도 몰라, 일본 같은 한자사용 국가에서 지하철 역이름도 제대로 못 읽는 게 현실이다. 

한국어는 한민족에게 축복이다. 한문은 뜻, 한글은 소리글자인데 한국인들은 이 둘을 함께 사용한다. 뜻글짜는 문자 하나하나가 철학과 의미 갖고 있어서 뜻글자를 쓰는 사람들의 상상력, 창조력, 소리글자만 쓰는 민족과 차원이 다르다. 
세종대왕이 창조한 한글로는 순 우리말의 표현이 가능해져 그 의미가 가장 크다. 우리 말 한글이 가진 장점은. 감각적이며 표현적 다양성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빨간색을 수십가지로 표현할 수 있는데, 한문에서는 불가능 한 일이다. 우리가 특유의 발상, 상상력을 발현할 여지가 두가지인 셈이다. (한글과 한자라는) 두가지의 발상법으로 두개의 국어를 다 익혀 세계적으로 최상의 문학적 창조성을 구현할 수 있다. 

언어를 통해서 사람은 생각하고 발상한다. 한국인들은 그만큼의 상상력과 발상법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낙후했던 한국의 경제와 문화가 빠른 시일 안에 발전한 것은 그같은 창조성과 발상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

현재 한국문학의 위기가 한글전용이라는 폐해에 기인한 것인가. 
우리 한국어가 나름대로 제대로 갈 길을 못찾고 있다. 한국어로 세계에 도전하지도 못한다. 젊은이들은 한자교육이 되지 않아 수준높은 글에 대한 이해력이 낮다. 총체적인 문제다. 

해방 직후부터 한글전용론이 큰 화두였다. 국어학자 최현배 선생이 그 중심에 있었는데, ‘이화여자대학’을 배꽃 계집 큰 배움터로 쓰자는 식의 억지 논리가 성행했다. 80년대 후, 전교조 세대가 되면서 이같은 논리가 유행처럼 번지며 공고해졌다. 어려운 한자는 버리고 한글을 쓰자는 정책이 대학과 사회에서도 만연했다. 정부의 언어 교육정책이 우습고 한심했다. 

-이런 시대적 한계가 현재의 한국 문학에 반영됐나? 
“제자 중 한사람인 박 준 시인의 수삽만권 씩 팔렸다는 시집과 산문을 읽었다. 특유의 시점으로 비판적인 시선으로 사물을 관찰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나열과 산문화 된 언어의 나열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특별한 문제의식이나 개성을 느낄 수 없었다. 시에는 격식이 있어야 한다. 고루하고 고리타분하다는 반론을 들을 수 있겠지만. (웃음) 

문학사조는 어느 시기가 무르익으면 그에대한 반동으로 새로운 사조로 탈바꿈된다. 현재의 문학사조도 얼마나 의미있는 반동으로 변화할 지 지켜볼 것이다. 요즘 ‘지식인’들은 정치적인 이유로 이문열 등 문인들의 책을 불태우는 ‘분서갱유’와 같은 야만을 저지르기도 했다. 과거를 단절시키기 보다는 치열한 글쓰기로 문학의 사조를 변화시키고 한계를 뛰어넘는 모습이 바람직하다. 

교과서만 해도, 수록되는 작가들이 선정 위원들에 따라서 바뀐다. 정권이 바뀔때마다 교과서 선정위원이 바뀌어 성향에 따라 수록작품이 변화하는데, 영원한 고전은 후세들에게 대대로 전수돼 할아버지들이 외우고 즐기던 시가 100년 후의 후손들도 똑같이 읽고 외울 수 있는 전통이 생겨야 한다. 자꾸 허물어버리고 바꾸는 것은 비극이다. 세대가 바뀌어도 같은 시와 글 읽는 것, 느끼는 것이 한국의 문학 전통과 혼을 잇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서훈의 시, 만해 한용운과 미담 서정주의 글들은 평범하게 쓴 것 같지만, 읽는 이들로 하여금 그 영혼의 소리를 곧바로 느끼게 한다. 이런 작품들이 백년이 지나도 계승돼야 한다. 

요즘 한국에서도 외래어가 한글만큼 쉽게 쓰이고 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지난 몇 년간 카톡이나 페이스 북 등에서 정체불명의 외래 신조어의 종류와 사용이 크게 늘었는데, 이것은 아무 말도 아닌 ‘엉터리 말’이다. 근래 많이 쓴 말 중에 신문에서도 사용되는 ‘멘붕’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는 ‘멘탈 붕괴’의 줄임으로 영어(멘탈)와 ‘한자’(붕괴)의 합성어인데, 이런 단어들이 일상화 되는 것이 바로 한글 오염의 전형적인 예이다. 기호화 되고 암호화 되는 한국어.. 과연 우리세대가 앞으로 지금까지 내려온 한국어(단어)를 얼마만큼 전수해 쓸 수 있을까? 아마 60%도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라면 한국어가 앞으로 30~50년, 100년 후에 이 지구상에 온전히 남아 있겠나? 사라질 확률이 더 많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이를 한국어의 진화로 보는 시선도 있다. (가사에) 외래어가 섞여서 더 쉽게 확산된 ‘케이팝’이 세계적인 열풍으로 번지고 있는데, 한국문화가 세계화되는 순기능도 있지 않나?

“방탄소년단이 몰고 온 케이팝 열풍이 한국문화를 전파하고 확산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한국문화가 그만큼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고 한국어의 우수성을 증명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오래 남을 수 있을까는 의문이다. 현재 같은 모습이면 소모품으로 소비될 가능성이 더 높다. 
진화는 그 뿌리가 확실히 존재해 발전하는 것이다. 지금의 현상은 ‘한글파괴’로 언어들이 맹목적으로 이리저리 조어화 되는 것이며 문제점이 거기 있다. 생명이 없다. 오래갈 수 없다.” 

-생각하는 해결책이 있나.
“문제를 극복하려면, 한국어의 생명력이 강하게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어느 민족이 가진 언어가 오래 남는다는 것은, 그들이 가진 문화유산이 얼마나 많고 어떤 것이 있느냐에 좌우된다 그것이 과거의 교휸이다. 미래의 후손들이 봤을 때, 한국어를 쓴 한국인이 어떤 문화 남겼는가? 문화에는 통속적, 전통적 예술 및 인문학적 요소가 다 포함되는데, (미래에) 그것이 온전히 지켜지고 남았다면, 우리 한국어가 소멸될 가능성은 있더라도 유지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후손들이 과거의 한국 문화예술을 찾아보게 되면, 저절로 한국어라는 광맥을 따라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아주 손쉽게 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세계에 한국문학의 전파가 시급한데.
“한국어로 쓴 작품을 외래어로 번역한 것과, 한국 작가가 직접 외국어로 외국어 작품을 썼다는 것은 큰 차이가 없다. 외국에 있는 한인이 한국문학에 영향을 받아 외국어로 작품 썼다면, 한국 문화나 혼이 그 작품에 담길 수밖에 없다. 한국어로만 쓴 문학이 한국문학이라고 고집 피울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90년대 복거일 작가가 강연 도중 한국어만 갖고 한국 문학의 세계화가 어려우니 영어를 공용화 하면 어떻겠냐고 말한 적이 있다. 문단에서 즉각적으로 반발했는데, 20여년 지난 지금 내 생각에는 그 말이 허황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든다. 

한국 대사관 같은 곳에서 해외의 각 대학에 한국어과가 신설돼 한국문화와 문학을 가르치는 토양을 마련해야 한다. 다행히 워싱턴 지역의 조지 메이슨, 조지 워싱턴, 메릴랜드 대학에 그런 프로그램이 가동되는 것 같아 기쁘다. 하지만, 이 같은 움직임이 전국적으로 확돼되야 함은 물론이다.”


박이도 교수는?
1938년 평안북도 선천에서 태어났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했꼬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59년 ‘자유신문’ 에 <음성>이,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황제와 나>가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신문기자로도 잠시 활약했던 이 교수는 ‘수석’ 애호가로도 이름이 높다. 저서로는 <회상의 숲>, <바람의 손끝이 되어>, <안개주의보> 등 열다섯 권의 시집, <빛의 형상>, <순결을 위하여>등 다섯 권의 시선집이 있다. 대한민국문학상, 편운문학상, 기독교문화대상, 문덕수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존재와 삶에 대한 사유와 탐구의 조화, 그의 시의 공간은 나와 사물과의 관계 성찰 속에서 나의 존재론적 의미를 순수시의 시세계로 보여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