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9월 추천 수필 - 엄마 반성문/마진

2017.10.05 09:45

문학 조회 수:963

엄마 반성문/마진

최근에 한국에 사는 지인이 <엄마 반성문>이란 책을 쓴 사람의 인터뷰 기사를 카톡으로 보내줘서 읽어 보았다. 저자는 오십대 중반의 초등학교 교장인데 일과 자녀교육 모두 완벽을 추구하며 살던 소위 수퍼맘이었다. 자기가 가르친 학생들 중에서 가장 뛰어났던 아이를 기준으로 정해, 본인의 자녀들도 전교 일등은 물론이고 온갖 상을 휩쓸고 학교 임원이 되도록 키웠다. 학원을 보내고 스케쥴을 관리하고 오락은 엄격하게 통제했다. 아이들이 그런 엄마가 만족할 만큼 전교를 주름잡는 우등생으로 자랐기에 더욱 본인의 교육방식에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1등의 삶을 위해 달렸다고 하였다. 어느날 순둥이 아들이 대학입시를 앞두고 고등학교를 자퇴하겠다며 목숨을 건 투쟁을 하기 시작하고 한술 더 떠서 딸은 자기 마음대로 학교를 자퇴해버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런 상황이 엄마와 자녀 양쪽에 순간순간 얼마나 지옥이었을까. 다행히 그 지옥의 시간을 서로 버텨내면서 엄마는 자녀에게 올인했던 양육방식과 성공과 행복에 대한 편견을 반성하게 되었고 자녀들은 방황의 시간을 통해 각자 자기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스스로 찾고 있다고 했다. 저자는 자녀들에게 자신의 희망과 삶의 의미를 걸고, 자녀들을 위한다면서 정작 그들을 사지로 내몰았던 잘못에 대하여 절규하는 심정으로 반성문을 썼다고 말하고 있었다.

어떻게 아이들을 닥달하고 공부를 시켰는지를 읽으면서는 나도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는데 예를 들면, 퇴근하고 집에 오면 tv부터 만져 봤는데, 표면이 뜨거워진 정도에 따라 아이들이 tv를 얼마나 많이 봤는지 알아내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나는 이 분과 비슷한 유형의 엄마를 한 사람 알고 있다. 그녀는 그 유명한 강남 8학군에 작은 아파트를 렌트해서 살면서 빠삭한 학원정보와 입시정보를 재산으로 두 딸을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본인이 열심히 살고 살림도 잘하고 빈틈이 없으면서 헌신적인 엄마였기때문에 가족들은 변명의 여지가 없이 그녀의 의견을 따라 살았다. 그녀는 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알기 원했기에 딸들이 방문을 닫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방문은 항상 열려 있어야 했다. 집이 작은 덕택에 부엌 식탁에 앉으면 딸들이 뭐하는지 한눈에 들어온다며, 방문을 닫으면 죽음이야. 이렇게 말했다.

내 엄마도 완벽주의자였다. 나는 95점으로 행복할 수 있는 아이였는데 엄마는 아니었다. 늘 더 잘하기를, 내가 나보다 좀 더 잘나기를, 좀 더 예쁘기를, 좀 더 완벽하기를 원했다. 좀 더, 좀 더, 좀 더나는 아무리 노력한다해도 엄마를 만족시킬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크고 나서, 왜 그렇게 나를 못살게 굴었냐고 엄마에게 따져물었을 때, 사람들에게 애비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지않게, 보란듯이 키우고 싶어 그랬다 하셨다. 보란듯이. 엄마에겐 이것이 그토록 중요했던 것이다. 그런 엄마를 이해하면서도, 엄마가 나를 어렸을 때부터 내 모습 그대로 인정해주고 받아들여 주었다면, 그냥 부족한대로 사랑해 주었다면 내가 나를 찾고 용납하고 사랑하는 일이 조금은 쉽지 않았을까, 그리고 좀 더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인간으로 자라지 않았을까 하고 가끔 생각한다.

엄마가 나를 틀에 맞는 보기 좋은 완성품으로 만들려고 애를 쓰셨던 것을 알기에, 나는 내 딸을 절대로 어떤 주물에 부어넣는 방식으로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나도 모르게 엄마의 전철을 밟고 있는 적이 많았다. 다행히도 딸은 내가 이십대가 되서야 자각했던 부당함을 눈치채는데 어려서부터 탁월했다. 남들이 어떻게 볼까가 왜 그렇게 중요해요? 또는, 열심히 했는데도 이런데 어쩌라고! 하면서 대들었다. 나는 움찔하여 뒤로 물러나며 내 요구의 뿌리가 어디에 닿아있는지 생각해 보곤 하였다.

공부에 관해서는, 나는 딸을 학원에 보내지 않았다. 사교육의 광풍이 불어 공부를 잘하나 못하나 다들 학원에 다녔다. 학교 선생님들은 의례 학원에서 다 배웠거니 전제하고 수업을 이끄는 경향이 있었다. 딸은 고생을 했지만, 말이 사교육이지 그저 남보다 먼저 선행학습을 하는 것인, 그런 아귀같은 사교육의 밥상에 제물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딸이 원했다면 보냈을텐데 딸도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며 잘못된 장단에 춤추지 말자는 엄마의 꼰조(?)에 동조를 해줬다. 명문대를 갈려면 초등학교때부터 어느 학원을 다녀야 하고 수학 과학은 어느 수준이 되야 하고 어느 외고를 가야하는 등등의 정보들 사이에서 마음의 평화를 지키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남편이 미국으로 직장을 옮기게 되어 우리는 미국에서 살게 되었다.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대학원서를 어디 넣겠다고 했을 때, 그 유명한 대학들에 왜 안넣고, 했다가 엄마도 남들하고 똑같아요. 안그런 척 하지만 자식 좋은 대학 보내서 사람들한테 으쓱하고 싶은 거죠하는 공격을 받았다. 학원 안보내고 공부하라 닥달안하고 키워도 잘된다는 것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나에게 없었다고 할 수 없었다. 결국 <잘 되는 것>은 그런 의미였던가. 나는 다시 허를 찔리는 기분이었다.

종종 자식들은 부모의 허영과 위선을 고발하고 기대의 순도를 측정하는 시금석 역할을 한다. 자식들이 부모를 치받는 건 그만큼 부모의 압력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뜻이다. 자식들은 부모의 앞모습이 아니라 뒷모습으로 배운다는 말이 있던가, 앞으로는 관용과 이해의 말을 해도 아이들은 부모도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의도를 간파하고 거기에 자기를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딸이 문신을 하겠다고 몇 번씩이나 우리에게 말하는 걸 봐도 알 수 있다. 아니 내 멋대로 살겠다며 대학도 전공도 한국행도 직장도 스스로 결정해서 살고 있으면서 문신할 거는 왜 자꾸 우리 반응을 물어 보는지?

사랑에 대한 숱한 정의가 있지만, 내가 늘 되새기는 건 사랑은 상대방에게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반응할 자유를 주는 것이라는 헨리 뉴엔의 책에서 읽은 한 줄이다. 상대방에게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반응할 자유를 주는 것. 기독교의 하나님도 인간들에게 죄를 지을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었다는 데에 그 사랑의 힘이 있는 것 아니겠나.

그러나 한 인간에게 진정한 자유를 준다는 건, 자유인이 되어본 적 없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평생 분투해야 할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 반성문>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