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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지울 있나

이재훈 (usajae@gmail.com)

  한여름의 끝자락에 낯선 나라에서 살게 됐다. 미국으로 이민을 40 만에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로 이사 왔다. 딸네 가족을 따라서 3년을 기약하고 살러 왔다. 가족과 같이 지가 벌써 14년이나 된다. 이젠 나이도 있고 하니 곳에서 정착하여 살고 싶다는 아내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다짐하였다. 70세가 넘어서 말이 서투르고 환경이 맞지 않는 곳에서 둥지를 트는 일은 쉽지 않다. 막상 와서 보따리를 풀어가면서 살림을 정리하다가 보니 나도 모르게 힘에 부쳤다. 게다가 오기 전에 살던 집을 세를 놓아야 하기 때문에 자질구레한 일도 많아 고생을 엄청나게 했고 3개월 전에 수술한 왼쪽 정강이가 탈이 나서 비행기를 타기 하루 전에도 응급실을 찾아야 했다. 무더운 여름에 동안 숙소를 번이나 옮기는 고달픈 여정이라서 고생을 했다..

  이사 다음날, 짐을 대충 정리하고 낯선 주변을 익히려고 지도를 보다가 한국광장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을 알았다. 집에서 나와서 약간 언덕이 있는 길을 내려가다가 번만 왼쪽으로 돌아서 200m 내려가면 삼거리에 아주 조그만 터에 있는 광장이다. 돌로 다듬은 사각 위에는 끝이 아주 날카로운 기념비가 있었다. 어떤 기념비인가 하고 앞에 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벨기에의 전사자를 기리는 추모비였다. 전체 조각품은 배의 돛과 비슷하게 앞면은 수직이나 뒷면은 휘어져 올라가있다. 조각의 중간에 1951-1953 한국이라는 금빛 글이 둥그렇게 걸려 있다. 추모비의 기초 위에 대리석 판에는 자유세계를 위하여 한국에서 전사한 벨기에 용사들에게라는 짤막한 글귀가 새겨져 있다. 추모비의 정면에 벨기에 전사자 105, 베네룩스 전사자 2, 한국인 9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것을 읽는 순간 가슴이 뭉클하면서 눈시울이 나도 모르게 젖어 왔다. 곳에서도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과거의 고국과 연결되는 고리를 찾은 것에 자신이 스스로 놀랐다. 아주 시공간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보며 깊은 생각에 빠져 들어갔다.

  아마 여기에서 말하는 전사자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유엔의 결정에 따라 참전하였다가 생을 마친 군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지구를 바퀴나 돌아야 있는 낯선 한국에 가서 자유를 위하여 싸우다가 전사한 틀림이 없다. 당시만 해도 한국이란 나라는 유렵에 알려져 있진 않았지만 자유의 기치 아래서 아까운 청춘을 바쳐 산화한 그들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초가을의 푸른 하늘로 삐쭉하게 솟아있는 추모비의 끝에 매달린 뭉게구름이 야속해 보였다. 추모비가 있는 자리는 해야 20평도 되게 조그마하다. 안내판도 없으며 깃발을 꽂을 있는 게양기가 개나 있었지만 어떤 깃발이나 국기도 없었다. 오직 전두환 대통령이 1986 4 17일에 다녀갔다는 한글 표시판이 풀숲에서 반겼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3개월 만에 전쟁이 터졌다. 그러는 바람에 형은 군에 갔고, 누나는 고등학교를 그만두었고, 아버지는 다락에 숨어 살았고, 어머니와 나는 외갓집으로 피난 갔다. 3년간의 전쟁을 겪은 한국은 지옥보다도 험한 꼴을 봤다. 년을 자랑하는 한반도의 역사 속에서 가장 피를 많이 흘린 동족살인의 참극이었다. 미국을 위시한 16개국의 UN연합군이 한국에 와서 참전하지 않았다면 나도 지금 이런 글을 없을지도 모른다. 이념과 사상이 서로 다르다고 남을 죽이는 일은 누가 뭐라고 해도 절대로 용서하고 싶지 않다. 이건 사람이 짓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울 없는 최악의 역사를 썼기 때문이다.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정전이 시작된 64년이 지났지만 비극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지구상에서 존재하는 모든 동물은 무엇을 막론하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일들이 필요하다, 중에 사람의 습성은 반복하는 데서 본능적으로 간편함과 유효성을 찾게 된다. 인간은 우주에서 제일 강한 습관을 가진 특유한 동물이라고 말한다. 이런 습관성 때문에 역사는 스스로 반복을 거듭한다고 본다. 이렇기 때문에 철학가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우리는 역사가 반복하는지 안다. 그런 역사란 한마디로 말해 과거를 엮은 것에 불과하다. 과거는 현재 바로 전에 생겼던 일의 연속적인 묶음일 뿐이다. 과거를 이해하거나 못하거나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이 과거는 그냥 과거로 인식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을 뿐이다. 과거를 쓰고 해석하는 역사학자들의 의견과 견해가 있을 수도 있지만 과거 자체는 엄연한 진리와 통한다.

  전쟁의 비참함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다르게 말한다. 조국과 형제인데 용서하고 서로 힘을 합해서 서로 살아보자고 요구하지만 과거를 까맣게 잊고 모든 것을 덮어 묻어놓고 말을 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그까짓 과거는 무슨 과거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과거는 언젠가는 현재로 둔갑하여 다시 나타난다. 인류의 수천 역사를 읽지 않더라도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과거의 복습이지 새로운 하나도 없다. 과거는 현재진행형의 연속일 뿐이다. 인간이 아무리 달에 가고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해도 과거는 오뚝이처럼 스스로 복원하는 마술의 힘을 가지고 있다. 지우개를 가지고 잘못 글을 깔끔히 지우듯이 과거를 그렇게 깨끗이 없애버리고 새로운 역사를 마음에 맞게 쓰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 오후에 장을 같이 보러 갔다가 오던 아내가 어제 한국 광장에 태극기가 결려 있는 봤다고 말한다. 갑자기 발걸음이 빨라졌다. 뒤에서 힘겹게 따라오는 아내에게 시장 대충 정리하라고 이르고 곧바로 광장으로 갔다. 걸음을 재촉하여 광장에 가보니 깃대에 오른쪽에 태극기, 가운데에 유엔기, 왼쪽엔 벨기에 국기가 걸려있었다. 가슴에 오른손을 얹고 계양된 국기를 올려 봤다.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발끝에는 화환이 바람에 넘어져 엎어져 있었다. 곧게 세워서 추모자의 이름판 밑에 세우고 나니 화환을 증정한 사람을 있었다. 대한민국의 조영진 중장.

  역사를 다시 수는 없다. 다시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과거를 돌려놓아 젊은 참전용사들이 전쟁 후에 개선하여 꽃다발을 안겨주는 애인을 얼싸안는 모습을 보고 싶다. 전사자의 추모비가 아니라 개선의 기념비로. 지울 없는 과거 때문에 그렇게 없는 무력한 자신이 무척 초라해 보인다. 내일이라도 꽃집에 가서 국화 화분을 하나 사서 갔다가 놓아야겠다. 우리나라를 위해서 바친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 왔다. (2017.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