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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수필문학회 추천작품

2018.04.11 18:10

문학 조회 수:50

<3월의 수필문학회 추천작품>


빨래


김용미



  내 처음 꿈은 책방의 주인이었다. 그 꿈은 교사와 작가와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거치며 변해갔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꿈들과는 무관한 세탁소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일요일과 법정공휴일 7일을 뺀 나머지 날들을 수많은 세탁물과 씨름하며 살아간다.


    내가 처음 해본 빨래는 마루걸레였다. 옆집에 살던 친구 봉순이를 흉내내어 빨아본 것이다. 봉순이는 어린 나이부터 집안일을 했다. 우리 집 앞에는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그 개울물에 봉순이가 빨래를 하고 있다는 건 서툰 방망이 소리로 알아챌 수 있었다. 심심해진 내가 슬며시 우리 집 걸레를 들고 개울로 가면 으례히 봉순이가 거기 어린 등을 구부리고 앉아 빨래를 하고 있었다. 호박잎에 싸들고 온 빨래비누를 치대어 작은 손가락을 오무렸다 폈다 하면서 빨래를 했다. 개울물에 헹궈낸 걸레나 기저귀를 야물게 비틀어 짠 후 할 일 많은 봉순이는 다시 집으로 달음박질을 쳤다. 봉순이가 떠난 개울엔 정적이 맴돌고 봉순이가 앉아 있던 자리로 소금쟁이 몇 마리가 재빠르게 다시 모여들었다. 나는 봉순이가 떠나버린 그 개울에 앉아 처음으로 외로움이란 감정을 맞닥뜨렸다.


  첫아기를 낳았던 뉴욕의 낡은 아파트에는 세탁기가 없었다. 나는 아기의 빨래를 공동세탁기에 넣고 싶지 않아 날마다 욕조에 쪼그리고 앉아 손빨래를 하면서 서툰 엄마가 되어갔다. 손바닥만하던 배냇저고리로부터 시작한 아이들의 빨래감은 키가 자라며 크기를 키워갔다. 아이들이 대학으로 떠나면서 줄어든 빨래감은 그들이 돌아오면서 다시 늘어났고 이제 딸아이는 배우자를 만나 내 곁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이제 나는 딸아이가 밖에서 보낸 시간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빨래감들을 더는 만져보지 못할 것이다. 남은 식구들의 옷을 마루에 앉아 개키면서 그 아이의 부재를 느낄 것이다. 내 어머니도 그랬을 것이다. 빨래를 하며 떠난 딸의 빈자리를 느끼고 툼벙, 눈물도 몇 번 떨구셨을 것이다.


   누구나의 고향집 마당에는 빨래줄이 매여 있다. 좁은 방에 어깨를 겯고 잠들던 식구들의 수수한 일상이 마당 한가득 빨래로 걸려 있던 풍경은 평화였다. 햇빛에 스미고 바람이 흔들어 말리던 그 빨래에서는 향기가 났다. 바람의 향기, 햇빛의 향기가 났다.


   삶아서 두드리고, 치대어 헹구고, 다시 비틀어 짜서 빨래를 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빨아주고, 두들겨주고, 헹궈주고, 삶아주기까지 하는 세탁기가 출현하고 부터 사람들의 수고로움은 줄어들었지만 그만큼 추억도 줄어든 건 아닐까. 바지랑대 높이 올려 빨래를 말리던 풍경, 빨래줄에 걸린 이불호청 사이로 드나들며 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햇살이 퍼지는 아침나절이면 들려오던 동네 아낙들의 엇박자 빨래방망이 소리, 그 모두 그리운 것들이 되었다. 이제 부지깽이와 함께 말썽장이들을 향해 휘두르기도 하던 빨래방망이는 보기 드문 물건이 되어가고 있다. 또한 그 푸르고 완강한 팔뚝을 가졌던 어머니들은 자꾸 떠나시고 계시다. 그분들이 떠난 자리에는 그리움이 통증처럼 방망이질을 해댈 뿐이다.


   몇 년 전, 한국 방문 길에 그 봉순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생각난 건 찰박찰박, 봉순이의 서툴던 방망이질 소리였다. 빨래비누 담을 그릇 하나가 없어 호박잎에 싸들고 다니던 가난했던 봉순이를 향한 까닭없는 미안함이 개울물처럼 가슴 한복판을 지나갔다.  


  창밖에는 하늘이 잔뜩 내려와 있다. 비라도 내릴 심산인가보다. 퇴근길의 손님이 한바탕 줄을 서고 난 뒤 한가해진 가게에 앉아 생각에 잠긴다.  


   빨래란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향해 꾸는 꿈 같은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 대상에게는 할 수 없는 젖은 수고이다. 어제라는 시간이 묻히고 온 먼지와 얼룩을  지워낸 뒤 내일이라는 시간을 향해 산뜻하게 걸치고 나갈 준비를 하는 일이다.


  삶은 빨래줄과도 같다.  한낮의 빨래줄은 젖은 빨래의 무게로 긴장된 시간을 지나기도 하고 바람에 소요스럽게  뒤채이기도 한다. 사랑채 기둥과 감나무 둥치 어디쯤에 매어 있던 빨래줄은 끊어질 듯 팽팽한 시간을 살아낸다. 빨래를 가득 걸고 바지랑대가 받쳐주는 완만한 곡선의 힘으로 버티며 빨래를 말린다.


저녁이 되면 빨래줄은 비어 버린다. 헐렁한 두 개의 곡선으로 허공에 내걸린다.  더는 팽팽해지지 않는 두 개의 곡선, 빈 빨래줄은 나이 든 사람과 같다. 하지만 빗방울이 매달리고, 눈송이의 의자가 되어주고, 달빛의 그네가 되어 주는 것은 빈 빨래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유리창 너머로 급기야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나는 문득 등 뒤로  먼 기억 너머의 익숙한 목소리 하나를 들은 듯도 하다 . “비 온다. 빨래 걷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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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만남


이재훈




  우리의 삶은 만남의 연속이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인연을 맺을 수는 없다. 한 번 만나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이런저런 이유에서 계속 인연을 이어간다. 불가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한다. 그게 좋거나 나쁘거나 상관없이. 얼마 전에 아주 짧은 만남에서 새로운 걸 배웠다. 사람 마음이란 자기가 억지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친구를 만나서 등산하기 위해서 탔던 전철에서 만남이었다. 일요일 아침이었지만 객차 안이 제법 붐비며 경로석에도 빈자리가 없었다. 운동하러 가는 사람이 편안히 앉아서 가는 것이 사치처럼 생각이 들어 그냥 경로석 앞에서 서서 가기로 했다. 바로 앞좌석에 작은 체구에 빵모자를 쓰고 목줄로 손전화를 건 노인이 내 눈길을 끌었다. 왼손에는 한 뼘쯤 되는 막대기를 들고 앉아 있는데 검은 안경을 썼기 때문에 그의 시선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탔던 역에서 한 역을 더 지나자 그는 오른손으로 전화기를 더듬어 만졌다. 그의 오른손은 엄지만 성하고 다른 손가락은 아예 손바닥에까지 잘려져 나가서 없다. 하나 남은 엄지로 전화 뚜껑을 열고 자판 위에 더듬더듬 번호를 누르더니 전철 안에 있는 사람이 다 들릴 정도로 큰 소리로 말했다.


  “여보세요. 나는 시각장애인인데 선릉역에서 내리면 도움이 필요합니다. 4-4 객차에서 내릴 겁니다. 분당선을 타야합니다. 꼭 부탁합니다.”


  자기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내리는 역에서 환승하니 자기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도움을 청하는 전화였다. 나도 그 사람이 장애인인지 몰랐지만 갑자기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바쁘게 움직였다. 선릉역이 다음이라는 차내 안내 방송이 나오자 그는 막대기를 두 무릎 사이에 잡고 입으로 위쪽을 쭉 뽑아 올렸다. 그는 1미터가 넘는 맹인용 지팡이에 의지하여 일어나려고 움직였다. 나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나 그에게 설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나도 분당선으로 갈아타고 같은 방향으로 가기 때문에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동정심을 넘어 사람으로서 도리가 아닌가 해서.


  “선생님, 저도 같은 방향으로 가니 제가 돕겠습니다. 저를 잡고 따라오십시오.” 내가 그의 팔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힘겹게 일어서는 그의 옷에서 코를 자극하는 역겨운 냄새가 내 비위를 건드렸다. 내가 잡은 그의 팔에는 살이 거의 없는 장작개비와 다름이 없었다. 내 눈에 갑자기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다.


 “고맙습니다. 제가 도움을 청했으니까 도우미가 올 겁니다.”


  전철이 멈추자 그의 왼손을 잡고 문을 나섰다. 그렇지만 밖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썰물처럼 빠져나간 승강장에 달랑 우리 둘만 남았다.


  “선생님, 도우미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같은 방향이니 저와 같이 가시죠.”


표정을 읽을 수 없지만 고마워하는 눈치가 입가에 번졌다. 평지를 걸을 때는 문제가 없지만 계단 앞에 서니 무척 조심스럽다. 물론 시각장애인도 자기 혼자 걸을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도와줄 사람이 있으면 편하게 갈 수 있다.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없어 무척 신경이 쓰였다. 계단 하나씩 그를 부축하여 올라가다가 보니 나도 힘이 들었다. 결혼할 신부를 데리고 예식장에 들어가는 기분으로 차분하게 걸었다. 우리를 지나치는 사람마다 힐끔힐끔 쳐다본다. 시각장애인을 보는 건 처음이 아니겠지만 등산 배낭을 메고 장애인과 같이 가는 건 못 보던 풍경이었을까.


  한참 동안 걸어서 갈아타야 할 승강장에 도착하니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그는 4-4 문으로 가자고 해서 승객 사이를 비집고 바닥에 써 붙인 숫자를 따라서 갔다. 왜 하필이면 남들이 좋아하지 않는 4를 두 번이나 쓰는 전 철문을 이용하느냐고 물었다. 자기는 배운 것도 많지 않고 그냥 외우기 좋고 대체로 4번째 차량이 승강장의 가운데쯤이기 때문에 타고 내리는데 익숙해져서 그렇다고 답했다. 분당선의 전철로 갈아타고 같이 나란히 앉았다. 내 눈길이 그의 오른손으로 자꾸 갔다. 그는 외손자의 생일이라서 딸네를 간다며 딸이 역에서 기다린다고 했다.


  “좋은 산행을 하십시오. 오늘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를 부축하여 객차에서 내려 딸에게 인계하고 얼른 돌아서는데 그는 나를 향해  고맙다고 허리까지 굽혔다. 그녀는 나를 힐끗 쳐다보면서도 말 한마디도 없었다.


  “아버지, 왜 이렇게 후줄근하게 와? 생일잔치에 가야하는데. 내 꼭지가 돈다니까.”


찻간으로 들어와 멀어져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차창을 통해서 보는데 내 가슴에서는 알지 못할 연민의 불씨가 지펴지는 것 같이 느꼈다.


  오후에 등산을 마치고 친구와 같이 서울로 가는 전철을 다시 탔는데 이 역에서 우리가 탄 전철의 문이 바로 4-4이었다. 친구는 내가 바닥을 보면서 어떤 문을 찾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인지 왜 거기에서 타느냐고 물었다. 그냥이라는 간단한 답만 했다. 아침에 장애인이 내렸던 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주면서 누군가를 열심히 찾았다. 그 장애인이 있을 턱이 없다. 친구는 내가 만날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대꾸도 없이 멍하니 앉아 있었다. 출입문이 닫히고 전철은 승강장을 빠르게 빠져나가 깊은 굴로 빨려 들어갔다. 사람의 마음이란 알 수 없다. 그새 정이 들었나보다.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짧은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