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경남시조문학상 수상작



시작詩作

임 성 구



너무도 오랜 시간 골목에 서 있었다

 

불안한 밤 추위에 떨며 달력을 뜯어낸다

 

별자리

더듬는 키 작은 바람

모로 누운 여러 날

 

가슴 졸이며 쓴 시(詩)가 빗물에 번지던 날

 

번득이던 부호마저 낙뢰로 묻혀 버리고

 

그런 날

낮도 밤 같아

이정표가 안 보인다

 

수렁을 빠져 나온

아프리카 난민촌에서

 

물기둥을 보았다,

까만 얼굴 환한 웃음도

 

한 됫박

별 물을 퍼올리면

갈증도 저리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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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행간 누비는 서정적 박력

 

해마다 숱한 문학 작품이 쏟아져 나오고 그 작품들을 대상으로 문학상이 주어진다. 이런 상(賞)들은 나름대로 작품의 깊이와 울림, 문학적 향기를 띠고 있다는 점에서 축하를 보내게 된다. 금년으로 14회의 연륜을 쌓고 있는 경남시조문학상은 그동안 오랜 전통에 못지않게 작품 또한 빼어난 수작(秀作)들이 선정되어 왔다는 점에서 크게 각광받으며 선망의 대상이 되어왔다. 올해 본심에 올라온 작품도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우수한 작품들이었음을 밝힌다.

강경주 시인의 <살다가>외 2편, 옥영숙 시인의 <노을강>외 2편, 이처기 시인의 <의자에 등받이가 없다.1>외 2편, 임성구 시인의 <시작(詩作)>외 2편이 바로 그 작품들이다.

이 네 시인 모두 저마다의 개성과 참신성을 획득하면서 시조가 지녀야 할 정형성과 완성도 높은 작품들을 보여주었다. 여러 날 반복해 공들여 읽은 후, 고심 끝에 네 분 가운데 임성구 시인의 <시작(詩作)>외 2편을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이 작품은 한 편의 시(詩)를 탄생시키기 위해 얼마나 긴 진통을 겪어야 하는가를 ‘시작(詩作)’ 을 통해 선명히 보여준다.

’너무도 오랜 시간 골목에 서 있었다‘ 로 시작된 초장은 시 작업 과정을 골목으로 형상화 시키고 있다. 어둡고 길고 좁은 골목만큼이나 힘들게 거쳐야 하는 작업, 시인이면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고통의 쓴 시간을 진솔하게 그려내, 강한 흡인력으로 시선을 집중시킨다. 이어진 중장, ’가슴 졸이며 쓴 시(詩)가 빗물에 번지‘고, ’낙뢰로 묻혀 버리‘는 상황의 참담함에 부딪치게 될 때 시인이 겪게 되는 좌절과 고통의 과정을 구체화 시켰다. ’ 그런 날/ 낮도 밤 같아/ 이정표가 안 보인다‘는 시구에서 보여지 듯 공들여 써놓은 작품이 어느 한 순간 하찮은 것으로 여겨질 때 오는 아픔을 솔직 담백하게 담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그에 머물지 않는다. ’수렁‘속 어둡고 긴 터널에서 빠져나와 희망으로 향하는 '물기둥을 보고 , ‘별물을 퍼올려’ ‘갈증’에서 벗어나 ‘빛’이 된 환한 모습으로 종장을 처리하고 있다.

주제는 무거우나 기승전결에 의해 잘 짜여진 구성, 행간마다 끌고 가는 힘에서 박력이 느껴지며, 작품 전반에 깃든 섬세한 서정 속 날것의 힘이 명징하게 드러나 보이는 수작(秀作)이다. 이 외 두 작품 ‘단풍 무덤’ 과 ‘조장(鳥葬)’에서는 ‘살과 가죽을 뜯어 굶주린 새 먹이로 주고’ 드디어 ‘허공에 난(蘭)’ 을 치는 ‘깨끗해진 영혼’에서 보여주듯 순결성과 맑은 영혼에 서 오는 향기를 감지케 한다. 삶의 구체성을 선명하게 묘사해 내고 있어 신선하며, 세 작품 모두 고른 수준을 유지하면서 절제의 미학을 이끌어 냈다. 더불어 작품 편편마다 흐르는 감각적인 언어 구사, 번뜩이는 재치, 짙게 깔린 서정이 심도 있게 다가와 공감대를 형성한다. 한분순 (사)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회 회장)

 

<수상소감>

 

단풍물 심장을 들고

 

허공에 떠 있는 무수한 별들 중에 유난히 빛나는 별 하나를 가슴으로 받습니다. 누가 떨어뜨린 선물일까요. 오늘은 하찮은 풀벌레의 노래 소리가 따뜻하게 가슴으로 흘러듭니다.

'세상을 순하게 살라' 는 말씀과, '사내는 한번쯤 단풍물처럼 붉고 힘차게 타오를 수 있는 야망을 가져야한다' 는 '아버지' 당신의 말씀이 더욱 크게 가슴을 칩니다. 그러나 그저 '순하게 살라'는 그 말씀만 붙들고 지금껏 살아왔는데, 이제는 붉고 힘찬 야망을 가슴에 품어도 되겠는지요.

제14회 경남시조문학상 역대 수상자 중에 제가 제일 젊다는 것 하나로도 저에겐 너무 큰 영광이자 기쁨입니다. 또 저의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 해주시는 여러 선배님께도 죄송한 마음으로 진심으로 고개 숙여 절을 올립니다.

부족한 저를 수상자로 선해 주신 한분순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님께 감사드리며 서일옥 회장님께도 감사인사 올립니다. 그리고 한결 같은 마음으로 후원해 주시는 경남약사회에도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프로필 : 경남 창원 출생하여, 1994년 『현대시조』신인상으로 문단활동, 시조집 『오랜 시간 골목에 서 있었다』가 있다.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조시인협회, 한국시인협회 회원, <석필>, <영언> 동인활동과 경남시조시인협회 홍보간사, 오늘의시조시인회의 사무차장, 경남문인협회 사무국장, 창원문인협회 감사, 고향의 봄 기념사업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경남교육연수원 운영지원부에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