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내재율 3장(章) 6구(句) (1)  

                 ☆   다음 글은 "(시조월드 (jaijung2000@yahoo.co.kr) "에서 따온 글입니다.

시조창작법(1)

                                                                   정완영

■ 시조작법 ■ 생활과 운(韻) ■ 민족시란 무엇인가 ■ 자수고(字數考) ■ 단수와 연작

 

■ 시조 작법
오랜 세월동안 망각의 바다 속에 버려져 있던 보물들의 인양업이 지금 우리 정부에 의해 서
둘러지고 있는 걸로 안다. 가령 각 지방의 민속놀이의 부흥, 또는 무슨 연희자(演戱者)들의
인간문화재 지정, 예컨대 근자에 발굴된 안동지방의 차전(車戰)놀이라든지, 봉산탈춤, 하회
(河回)탈춤이라든지 심지어 어느 지방의 모내기 노래까지 모두 자리 있을 때마다 연희되고
있고, 우리 국악, 우리 판소리의 계승문제, 조그만 기물들의 장인(匠人)에 이르기까지 소멸되
어가는 민족적인 정신문화의 향수에 대한 배려가 오늘보다 더 고양되어간 적은 일찍이 없었
다.
하물며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젓는 뱃사공…" 민족 역사의 애환이 스며있다고 하여 대중가요
에까지 훈장이 주어지는 오늘이 아니었던가.
한데 여기 아주 국보급 중에서도 국보급인 유산이 그 바다의 심저에 가라앉아 있는 채 인양
자(當路者)의 시선이 닿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우리 정신의 본향, 우리
정성의 본류인 民族詩歌 [時調]다. 다시 말해 3章 6句에 갈무리되어 있는 민족혼의 내재율
3·4·3·4(초장), 3·4·3·4(중장), 3·5·4·3(종장)의 시조인 것이다. 이것은 중대한 오
류이며 시행착오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이 3章 6句에는 우리 민족의 온갖 사고(思考), 온갖 행위, 온갖 습속까지가 다 담겨져 있는
것이다. 이야기가 좀 비약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필자의 나라사랑의 안목으로 바라볼라치
면 춘하추동 계절의 행이, 할머님의 물렛잣던 손길, 늙은 농부의 도리깨타작, 우리 어머님들
의 다듬이 소리, 거 어깨춤도 절로 흥겹던 농악에 이르기까지 가만히 새겨 보고 새겨 들으
면 3章 6句 아닌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이며 심지어 구부러진 고향길, 동구밖의 느티나
무, 유연히 앉아있는 한국 산의 능선들, 부연끝 풍경소리, 아차(亞字)창의 창살, 어느 것 하
나 3章 6句의 시조가락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이다.
흐름(流)이 있고, 굽이(曲)가 있고, 마디(節)가 있고, 풀림(解)이 있는 우리 시조는 그 가형
(歌形)이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정신의 대맥(大脈)이 절로 흘러들어 필연적으
로 이루어진 것이라 하겠다. 하기 때문에 필자는 어떠어떠한 민속놀이, 어떠어떠한 고기물
(古器物)에 앞서 진실로 민족정신의 보기(寶器)인 우리 시조를 먼저 인양해야 되리라고 믿
는다.
우리 문단의 인구가 지금 1천 6백(이 책 발행시)을 헤아린다고 한다. 다른 이는 그만두고라
도 글을 쓴다는 우리 문인들 중에서 시조의 틀을 이해하는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될 것
인가?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문인뿐 아니라 전체 국민이 자기 나라 국시(國詩)인 단가(短
歌) 배구(俳句)를 모르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한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저네들은 촌부(村夫)이건, 공인(工人)이건, 회사원이건, 공무원이건 할 것없이 이 국민시가로
하여 국민 정서의 순화를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온 국내에 작가(作歌)정신이 미만
해 있는 것이다. 요즘 또 듣기로는 자기네 국시를 서구에까지 내보내어 그곳에서까지 [短歌
會]니, [俳句會]니가 성행되고 있다는 소문이다. 우리들은 교과서에서 시조를 배운다는 학생
들도, 이를 가르친다는 선생들도 건성으로 넘기고 있다.
그나 그뿐인가, 문인들 중에서는 간혹 시조무용론까지를 들고나오는 몰지각한 사람이 있으
니, 심히 민망하고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유시 중에서도 시문학사에 남을 만한 작품
은 거의가 시조적인 내재율이 흐르고 있는 사실을 이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는 것이다. 한국
인의 맥박 속에는 본질적으로 시조적인 내재율이 흐르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문화재도 보호해야 한다. 연희도 계승받아야 하고 공장(工匠)도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더 시급한 일은 온 국민이 우리 국민문학·민족시를 모두 배우고 익혀 우리 정신의 대종(大
宗)을 이어받고, 본류를 밝히어 정서를 순화하고, 인격을 도야하여 흐려지고 거칠어지려는
풍조를 시조짓기운동으로 하여 바로 잡아야 하리라 믿는다. 사실 우리 구국의 성웅 이순신
장군도 {한산섬 무루} 시 한 수로 하여 구국 충정이 더욱 빛났고, 절세가인 황진이도 {동짓
달 기나긴 밤} 한 수로 하여 오늘날까지 그 향기가 전해 내려오지 않았던가. 물량에만 쏠리
려는 우리들의 메마른 심전(心田)에다 물을 대주고 윤기를 돌리는 전국민 시조짓기운동은
이제 봉화를 올렸다.

 

■ 생활과 운(韻)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박재삼 시인의 {울음이 타는 가을강}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사람이 한 평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4가지 일이 있으니, 그것은 다름아닌 관혼상제
(冠婚喪祭)의 절차이다. 그 4가지 절차 중에서 혼례(婚禮)·상례(喪禮)·제례(祭禮)는 지금도
형식상 살아았지만 관례(冠禮)만은 이미 희미한 기억 속에 매몰되어가고 없다. 하지만 예
(禮)라는 것이 사라지기야 이미 오래이다. 여기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제례이야기다.
<제삿날 큰집에 모여드는 등불 이야기>이다. 연전 어느 사회단체에서 예술인의 성장과정을
조사한 통계보고서에 의하면 제삿날 종가(宗家)집에서 지내는 제례는 감수성이 강한 어린
소년 소녀의 가슴 속에 일생동안 지워지지 않는 조그만 감동을 심어주었다는 것이었다. 필
자도 어린 시절 할아버님 아버님의 손길에 이끌려 마치 석류꽃 같은 초롱불을 밝혀들고 큰
댁으로 참배차 어두운 골목길을 걸어가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속에 조그만 희열의
잔물결이 파문짓곤 하는 것이다. 1년이면 열번도 넘어드는 대소 제례는 철따라 꽃 피고 잎
지는 시절의 사이사이 우리들 한국에 생을 받은 소년들의 향수에 사무치는 축제요. 카니발
아닐 수 없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우리 생활, 우리 정신의 가장 깊은 골을 밝혀주던 하나의 심등(心燈)이요, 하나의
운사(韻事:운치 있는 일)인 것이다. 시조 이야기를 하면서 제례 이야기를 꺼낸 까닭은 그 제
례의 운치가 바로 시조의 운치와 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조는 바로 제례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그 운치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
가 우리 생활주변에서의 그 운사들은 등불마저 희미하게 빛바래져가고 말았다. 제례뿐만 아
니라 운사란 운사는 하루가 다르게 자취를 감추어 가고 있다. 행사는 있어도 운사는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생활, 우리 주변에서 운치를 되찾고 그것을 느끼는 일, 그것이 우리
고유의 정서를 되찾는 것이며 시조 캠페인의 기본이요 근간이 되어야한다.
아직 안동(安東) 차전(車戰)놀이도 있고, 봉산탈춤도 있고, 하회탈춤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무슨 행사 날에나 선보이는, 그야말로 하나의 행사이지, 서민대중 속에 뿌리박은 민족 애환
의 운사는 못되는 것이다.
  차라리 대보름날 부럼을 깨물고 달불을 놓던 일, 3월 삼짇날 금줄을 치고 황토를 깔던 일, 5
월 단오절 그네를 뛰고 궁궁이물에 머리를 감던 일, 6월 유두날 동류를 찾아 머리를 헹구던
일, 7월 백중날 물꼬를 찾아가서 겨릅에 꽂아둔 인절미를 뽑아먹던 일…같은 것들이 우리
정신의 피가 되고 살이 되며 그 운치가 시조의 훌륭한 소재가 되는 것이다.
생활에서 운이 다 빠져나가면 문화는 사멸하고, 정치는 경직하고, 역사는 정체되는 법이다.
진실로 작은 듯하면서도 아주 막중한 일이 생활 속에 운을 불어 넣는 일이다. 시조를 국민
문학·민족문학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것이 선행돼야 한다.
필자는 가끔 이런 일을 생각해 보며 아리송해질 때가 있다. 가령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오
늘이란 현실과, 우리 선인들이 살고 간 그 시대의 사화상과를 비교해 볼 때, 과연 문명이 극
도로 발달한 오늘이란 세월이 반드시 더 행복하다 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인지(人智)나
문명이 좀 덜 깨인 채라도 훈훈한 인정과 정감에 젖으며 살고 간 옛 사람들이 오히려 더 행
복을 누리고 갔다 할 것인지?
사람에 따라 그 척도하는 바가 다르기야 하겠지만 필자는 아무래도 물질문명이 갖다준 편리
라는 이기를 얻기 위해서 인간 본연의 재화인 덕성마저도 팔아넘기는 오늘보다는 차라리 자
연과 인성의 본향에서 조금은 배고프고 조금은 등이 시려도 서로들 애휼(愛恤)하며 살아가
던 그날이 훨씬 더 소망스러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이 곧 우리 시조만이
가지고 있는 정신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므로 시조짓기운동은 식어가는 민족정서에 군불을 지피고 굳어가는 인간덕성에 모닥불
을 놓아 사람마다의 가슴에 나라사랑, 겨레사랑의 더운 숨결을 회복하고 집집마다 마을마다
인정있는 꽃밭을 가꾸자는데 큰 뜻이 있는 것이다.

 

■ 민족시란 무엇인가


  옛부터 민족이 있는 곳에 그 민족 특유의 시가 있어 왔다. 멀리 태서(泰西)의 이야기는 그만
두고라도 우리 한문문화권인 동양 3국을 살펴보면 중국에 5언이니 7언이니 하는 한시가 있
고, 일본에 단가(短歌)니 배구(俳句)니 하는 자기네 나름의 고유시가 있는가하면, 우리나라에
는 한국 특유의 뛰어난 가형(歌形) 3章 6句의 시조가 있어 왔다. 그런데 이 제각기의 시가
(詩歌)들이 하나같이 우연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중국의 한시가 수천년 동안 풍우에 씻기어 단단하게 광택이 나는 큰 산 큰 계곡의 반석 같
은 것으로서, 중국인이란 대륙의 끈질기고 요지부동한 민족성과 그 역사의 장구성을 드러내
는 것이라면, 단가(5, 7, 5, 7, 7)니 俳句(5, 7, 5)는 그 자수의 긴축성으로 보나, 그 노래솜씨
의 삽상한 맛으로 보나 일호의 군더기를 용납하지 않는 그네들의 성품이며 식성까지 여실히
나타내는 것으로써, 어떻게 보면 그네들의 너무나도 빽빽한 여유롭지 못함까지가 엿보이기
도 하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우리 시조는 떠 어떤 노래인가? 우리 민족시인 시조는 초·중·종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초장이 3, 4, 3, 4, 중장도 3, 4, 3, 4, 인데 종장만이 유독 3, 5, 4, 3으로 자수의 변용
을 가져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시의 5언이나 7언, 일본의 단가·배구가 모두 자수의 배
열에 있어서 한 자의 가감이나 어떠한 변용도 용납이 안되는데 반해, 우리 시조는 초장, 중
장에 있어서도 자수의 가감(다음에 상술하겠음)이 가능할뿐 아니라, 종장에 와서는 물굽이가
한 바퀴 감았다가 다시 풀어져 흐르는 듯하는 변용(3, 5, 4, 3)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러면 다른 나라들의 시가가 일행직류(一行直流)인데 반해 유독 우리 시조만이 직류에다
일곡을 더 보태어 마치 여름날의 합죽선(合竹扇)처럼 접었다 펴는 시원함을 가져오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여기에 그 연유한 바들을 소개하기로 한다.
나이가 든 사람이면 누구나가 다 알겠거니와 옛날 밤을 새워가면서 잣던 할머니의 물레질,
한 번 뽑고(초장), 두 번 뽑고(중장), 세 번째는 어깨너머로 휘끈 실을 뽑아 넘겨 두루룩 꼬
투마리에 힘껏 감아주던(종장)것, 이것이 바로 다름아닌 초·중·종장의 3장으로 된 우리 시
조의 내재율이다.
이만하면 초장·중장이 모두 3, 4, 3, 4인데 왜 하필이면 종장만이 3, 5, 4, 3인가. 그 연유를
알고도 남을 것이다. 이런 시조적인 3장의 내재율은 비단 물레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
리 생활 백반에 걸쳐 편재해 있는 것이다.
설, 다음날부터 대보름까지의 마을을 누비던 걸립(乞粒)놀이(농악)의 자진마치에도 숨어 있
고, 오뉴월 보리타작마당, 도리깨질에도 숨어 있고, 우리 어머니 우리 누님들의 다듬이 장단
에도 숨어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모든 습속, 모든 행동거지에도, 희비애락에도
단조로움이 아니라 가다가는 어김없이 감아 넘기는 승무의 소매자락 같은 굴곡이 숨어 있다
는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 하나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우리 국학자들 중에서는 더러 우리 시
조의 3장을 견강부회로 한시의 기(起), 승(承), 전(轉), 결(結)에다 억지로 떼어다붙여, 초장
이 기(起)요, 중장이 승(承)이요, 종장이 전결(轉結)이라고 우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한심
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일본의 학자들이 자기 나라 시가를 아직 그 누구도 한시와 결부하여 이야기한 논거를 찾아
보지 못했는데, 하필 우리 학자들이 우리 시조를 한시와 관계지으려고 하는 뜻은 무엇인가?
이것도 항용 말하는 사대주의사상에서 온 풍조라면 깊이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또 요즘
시조를 쓰는 시인들 중에는 시조가 이미 창(唱)에서 떠난 지가 오래라고 한다.
그러나 시조창이 시조시 발상의 도출에 원용된다는 것은 하나의 철학(?)인 것이다. 제각기
의 민족정서의 필연적인 귀결이라면, 우리 시조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판소리, 우리의 시조창
도 우리 민족 수천년의 조용하고 은은한 내부의 흐름의 소리겠기에 말이다.
하나에도 둘에도 시조에의 용념(用念)은 3, 5, 4, 3인 종장에 있다는 것을 말해 두고, 이제
다음부터는 자수고(字數考)로 넘어가기로 한다.

 

■ 자수고(字數考)


앞에 이야기한 바와 같이 시조는 우리 고유의 정형시로서 우리 민족의 모든 내재율이 담겨
진 그릇이다. 혹자는 지금같이 문물과 사고가 복잡다단하고 자유분방한 현대에 있어서 정형
속에 인간의 사유를 끌어담기에는 너무 부자연스럽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실은 우리가 반만
년이란 역사를 살아오면서 깎고, 갈고, 다듬고, 간추려온 틀인 까닭에 사람이 길을 걷다가
마침내는 절로 발걸음이 제 집으로 옮겨지듯이, 우리 모두의 귀결점인 시조로 들어가기란
결코 부자유스럽거나 어렵거나 한 일이 아니다.
그나 그뿐인가. 우리 시조는 한시나 일본의 단가 배구(俳句)처럼 그 자수에 요지변통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주 신축성이 있고 자유자재롭다는 것이다. 다음에 그 예증을 들어보기로 한
다.
시조의 기본율은,

3 4 3 4 (초장) 7 7
3 4 3 4 (중장) 7 7
3 5 4 3 (종장)이다.

  成佛寺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 3 4 3 4
  주승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는구나 3 4 4 4
  저 손아 마자 잠들어 혼자 울게 하여라 3 5 4 3

  노산 이은상 선생의 [성불사의 밤]이 그 기본율에 맞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기본율에서 벗
어나 더 휘청거리는 멋이 있는 작품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태양이 그대로라면 8
  지구는 어떤 건가   7
  수소탄 원자탄은    7
  아무리 만드다더라도 9
  냉이꽃 한 잎에겐들 그 목숨을 뉘 넣을까. 3 5 4 4

 가람 이병기 선생의 {냉이꽃}의 셋째 수다.
이렇게 시조란 틀에 박힌 듯 하면서도 박히질 않고, 또 자유분방하면서도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정형시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경우이든 내재율만 잃지
않는 범위안에서 어느만큼 자수의 가감은 자유로운 것이다.
그러나 너무 지나치게 파격(자수가 많으면)을 하면 쥐잡기 위해 독을 깨는 우(遇)을 범하는
일이 되는 것이니 삼가야 할 일이라 믿는다. 마치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준법(遵法)의 테두리
안에서 자유가 허락되듯이 말이다.
그러면 시조에 있어서 허락될 수 있는 자수의 테두리는 얼마만큼의 것인가? 한번 알아보기
로 하자.

3 4 (9자까지 가능) 3 4 (9자까지 가능)
3 4 (9자까지 가능) 3 4 (9자까지 가능)
3(부동) 5(7자까지 가능) 4(5자까지 가능) 3(4자까지 가능)

이것을 풀이한다면 초·중·중장의 전후귀가 3, 4자로 합하면 7자인데, 9자까지가 가능하고
(예컨대 3, 4도 좋고 3, 5도 좋고 3, 6도 좋고, 2, 7이나 4, 5도 좋고), 종장 3, 5, 4, 3의 첫 3
자는 부동이나 5자는 7자까지, 4자는 5자까자, 3자는 4자까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음에 작
품의 예를 들어 보겠다.

  아무리 여름이 더워도 싫단 말 다신 않을래 3 6 3 5
  이밤도 또 밤새워 우는 저 가을 벌레들 소리 3 6 3 5
  더구나 우수수 잎들이 지면 어이 견딜 까본가 3 8 4 3

 이호우 선생의 {聽秋(청추)}라는 작품의 첫 수다.
얼마나 자수나 틀에 구애받지 않고 내재율을 잘 살려 낸 작품인가. 그러면서도 파격이 전혀
없는 천의무봉한 가락인가. 이상 드러난 작품들만 보더라도 우리 시조가 얼마나 리듬미컬하
고 멋이 있으며, 부자유한 듯하나 기실은 자유롭고, 또 분방한 듯하나 아주 잘 정제된 우리 가락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단수와 연작


  이웃에 봄을 나눈
  살구꽃 그늘 아래

  도란도란 얘기들은
  소꿉질에 잠차졌고

  상치 씨
  찾는 병아리
  돌아올 줄 잊었다.

 작고한 시인 이영도 선생의 {봄Ⅱ}이다. 시조는 원래 시절가조(時節歌調)라 하여 계절이건
인심이건 시절을 노래한 시였다. 그리고 시제라는 것을 붙여서 노래했던 것도 아니고, 더더
구나 연작이니 하여 여러 수를 엮어서 한 편의 작품을 이루었던 것도 아니다. 하기 때문에
시조의 본령은 어디까지나 이 단수에 있다는 것을 말해둔다. 일본의 단가니 배구는 오늘날
까지도 우리 시조의 본을 떠서 시제를 붙이는 일도 없고, 노래 속에 반드시 계절이 나오며,
더더구나 연작이라는 것은 없다.

  여긴 내 신앙의 등주리 낙동강 흥건한 유역
  노을 타는 갈밭을 철새 떼 하얗게 날고
  이 수천(水天) 헹구는 가슴엔 [세례요한]을 듣는다.

  석간을 펼쳐 들면 손주놈 [고바우]를 묻는다
  혀 끝에 진득이는 이 풍자 감칠맛을
  전할길 없는 내 어휘 모국어로 가난타네.

  네 살짜리 손주놈은 생선 뼈를 창살이란다
  장지엔 여릿한 햇살, 접시엔 앙상한 창살
  내 눈은 남해 검붉은 녹물 먼 미나마따에 겹친다.

역시 이영도 선생의 {흐름 속에서}라는 작품이다. 이런 시상을 단수에는 담을 수 없다. 현대
인들의 복잡하고 다기한 생활상을 3장 6귀에 다 담을 수 없어 자연발생적으로 이어져 나간
것이 오늘날의 연작시조라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유의해 두어야 할 일은 아무리 연작이라 하더라도 수마다 떼어놓고 보아 한
수 한 수가 다 작품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알아둘 일은 3장
중 어느 한 장은 꼭 풀어놓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