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조 이야기      송산

 

 

봄! 산골짝 개여울이 겨울잠 깬 조약돌을 자글자글 굴리며 흘러내리는 맑은 물에 손 담그고 생각에 잠기다가

문득, 맞은 편 돌짬에 앉아 볼주머니를 볼록거리는 딱부리 개구리와 눈 맞추며 나도 한 마리 개구리가 되어

한 참을 그렇게 말 없는 말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대는 한 점 티 없이 맑은 어린이의 눈을 거졌는가?

그대는 눈물 그렁그렁한 어린이의 마음을 지녔는가?

그대는 어린이와 더불어 기쁨도 슬픔도 즐거움도 괴로움도 그리고 사랑도 미움도

어른이 모르는 어린이들의 고민을 이해하고 함께 아파하며 노래할 수 있는가?

 

 

우리가 동시 동시조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린이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알까기>라는 이름의 바둑놀이가 노소간에 한창 유행하던 때의 일이었습니다.

어느날 바둑관전기를 신문에 연재하던 박재삼선생이 기원(棋院)에서 느닷없이 바둑알도

쥘 줄 모르는 나를 가리키며 여러 사람에게 고단자라고 실없는 소개를 하는 바람에

당시 내로라하는 바둑귀신들로부터의 도전을 피하느라 생 곤욕을 치룬 적이 있었는데,

오기랄까 무슨 객기가 발동하여 혼자서 (알까기)하는 장면을 형상화하기로 마음하고

가상의 한 판 대국을 그럴싸하니 각본에 연출까지 도맡아 어렵사리 선보인 작품이

독자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었지요.

 

 

팽팽한 맞수 대결!

눈에 불똥이 튄다

 

 

톡! 까면 툭! 튕기는

짜릿한 고 바둑알

 

 

이 한 판

물리기 없기

(?... ?..)

 

 

이야기를 이럭저럭 얽기는 했는데, 힘 있게 채어 올릴 종장의 마지막 구가

꿈속에서도 애 태우던 어느 찰나, 아 번쩍! 뇌리를 스치는 그 한 마디.

(천하 없는 친구라도.)를 탁, 채었을 때의 그 환희란, 무슨 명예로운 문화훈장이라거나

하다못해 천금이라도 손에 쥔 양으로 기쁘더라니.....

 

 

나는 올 들어 일흔에 여덟 번이나 더 나이 태를 칭칭 둘러 감은 노목이나,

이제 예순에 다섯 둘레쯤 훌훌 벗어버리고 여남 살 천진한 어린이로 돌아가,

 

*자기만의 눈으로 본,

*자기만의 생각을,

*자기만의 느낌을,

 

동시조로 빚음에 있어, 하나마나 쓰나마나 뻔한 사실은 말고, 전통 시조의 틀에

직설적인 맛깔 없는 시구를 나열한 서술이나 중언부언 태깔 없는 설명을 덧붙이는 등,

특히 종장에서 옛시조 쪼의 안이한 마무리로 작품의 맥이 풀리지 않도록

긴장을 다잡아야 할 것입니다.

 

 

동시조에는 어린이가 쓰는 새싹 동시조, 어른이 쓰는 본격 동시조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는 바,

본격 동시조라 함은 격과 품을 아우른 동시조를 이름입니다.

 

동시조는 시조+동심의 결정체로 언뜻 쉬운 듯해도 쉬운 말 속에 깊은 뜻을 담기란....

정작 시상을 동시조로 옮기는 일에는 그야말로 태산을 옮기는 일만큼이나 어려움이 따름은

익히 다 아는 사실이지요.

 

 

끝으로 일찍이 큰 시인 조지훈선생이 말한 바

 

 

*고개가 끄덕여지는 공감의 시

*가슴 뭉클한 감동의 시

*아! 하고 숨이 탁 막히는 충격의 시

 

그 경(境)에 이르는 시조 동시조 한 편을 빚는 그날까지 심혼을 사르어 빚고 짓고 또 써야겠지요.

 

친구                    허 일

 

치이ㅡ

난 또 뭐라고

그게 맘에 걸렸었니?

 

가자!

강가에서

돌팔매로 다 날려버리자

 

우리는

콩도 반쪽씩

나눠먹는 사이잖아.

 

 

군것질할 돈이면

 

돼지가

말똥말똥

날 빤히 쳐다본다

 

아, 이 돈

군것질로

홀랑 까먹을 뻔했네

 

먼 나라

배고픈 애들

따뜻한 밥 먹을 건데.

 

 

똥개

 

저리 가!

이 똥개야

너하고 안 놀 거야

 

쩝쩝 싹싹

어쩜 그게

그렇게도 맛이 좋아?

 

난 몰라

혈통이고 뭐고

똥 먹으면 똥개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