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당선작)


              새는 날개가 있다 - 송승원

 

 

당찬 야성 내려놓고 발에 익은 길을 따라

 

날갯짓 접어둔 채 뒤뚱거린 몸짓으로

 

달뜨는 도시의 하루 쪼고 있는 도도새*

 

날아 오른 시간들을 깃털 속 묻어 두고

 

쿵쿵 뛰는 심장소리 뉘도 몰래 사그라진

 

그만큼 섬이 된 무게, 어깨를 짓누른다

 

화석에 든 아이콘이 무젖어 말을 건다

 

푸드덕 홰를 치는 한 마리 새 나는 행간

 

앙가슴 풀어헤친 채 물음표를 집어 든다

 

 

 

 

* 도도새 : 인도양의 모리셔스 섬에 서식했던 새. 천적이 없어 날개가 퇴화돼 날지 못하

다가 1505년 포르투갈인들이 포유류와 함께 이 섬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멸종됐다. 현

실에 안주해 변화를 바라지 않는 사람을 ‘도도새의 법칙’으로 비유해 일컫기도 한다.

 

 

 

 

 

 

(조선일보 당선작)


극야의 새벽 - 김재길


얼붙은 칠흑 새벽 빗발 선 별자리들
붉은 피 묻어나는 눈보라에 몸을 묻고
연착된 열차 기다리며 지평선에 잠든다.

황도(黃道)의 뼈를 따라 하늘길이 결빙된다
오로라 황록 꽃은 어디쯤에 피는 걸까
사람도 그 시간 속엔 낡아빠진 문명일 뿐.

난산하는 포유류들 사납게 울부짖고
새들의 언 날개가 분분히 부서진다
빙하가 두꺼워지다 찬 생살이 터질 때.

제 눈알 갉아먹으며 벌레가 눈을 뜬다
우주의 모서리를 바퀴로 굴리면서
한 줌의 빛을 들고서 연금술사가 찾아온다.

황천의 검은 장막 활짝 걷고 문 열어라
무저갱 깊은 바닥 쿵쿵쿵 쿵 울리면서
안맹이 번쩍 눈 뜨듯 부활하라 새벽이여.

 

 

 

 

 

(국제신문 당선작)


목수 요셉의 꿈 - 이양순

 

   
 
 

 

 

자욱한 시름으로 촛불을 켜는 저녁
결 따라 매긴 먹줄 말씀으로 되살아나
한 꺼풀 옹이 박힌 업죄를 벗겨가는 목수여

길은 어디 있는가 죄 없는 이 바라보며
성전(聖殿)의 둥근 기둥을 내리치는 손바닥엔
먼 훗날 가슴을 적실 뜨거운 피가 흐른다

톱밥 대팻밥에 묻어 있는 생명의 빛
고결한 숨소리가 당신 곁에 머물러
종소리 가득한 사랑이 온 누리에 퍼지고

품삯이야 김이 나는 식탁이면 넉넉하고
기도소리 새는 창가 성가처럼 별이 내려
거룩한 날이 열고 저무는 환한 집을 짓는다

 

 

 

 


 

 

(동아일보 당선작)


꽃씨 날아가다 - 조은덕

짓무를라, 떼어 내고 뒤집어서 옮겨 놓는

바람이 날라다 준 햇살 한 줌 끌어안고
손가락 굵기만큼 동글 납작 눕히는 무0


어머니, 물기 밴 시간 꼬들꼬들 말라 간다
뒤틀린 세월들을 하나 둘씩 펼쳐본다
여름이 남기고 간 속살 광주리에 가득하다

 

맵고 짠 눈물 섞어 켜켜이 눌러 담은
어둠 속에 숨 고르는 울혈의 무말랭이
주름진 생을 삭힌다, 아린 손끝 붉어온다

돌아가는 모퉁이길 얼비치는 맑은 아침
마른 뼈 꽉 움켜 쥔 말간 핏줄 여울목에
어머니 가벼워진 몸, 꽃씨 되어 날아간다

 


 

 

 

(영주일보 당선작)


쌀점 - 김영순


 

해마다 봄빛 돌면 통과의례 치르듯
식구들 손 없는 날 그것도 짝수 날에
남몰래 저녁 어스름 불빛처럼 다녀간다

 

어머니는 무당을 나그네라 부른다

부엌에는 조왕신 애들 방엔 삼승 할망
달랠 신 또 하나 있네
능청스레 뜨는 달

 

“인정 걸라, 인정 걸라”
요령소리 댓잎소리
내 사랑 고백 같은 심방사설 잦아들면
놋쇠 빛 산판에 걸린 식솔들 신년 운수

 

공기 놀듯 쌀 몇 방울 휙 뿌렸다 잡아챈다
홀수는 내던지고 짝수만 받아 삼킨다
입춘이 갓 지난 봄빛
씹지 않고 삼킨다

 

 




 

 

(경상일보 당선작)


천수만 청둥오리 - 김윤


 

지축을 뒤흔드는 수만 개 북 두드린다

오색 깃발 나부끼는 천수만 대형 스크린

지고 온 바이칼호의 눈발 털어놓는 오리 떼

 

아무르강 창공 넘어 돌아온 지친 목청

오랜 허기 채워 줄 볍씨 한 톨 아쉬운데

해 짧아 어두운 지구 먼 별빛만 성글어

 

민들레 솜털 가슴 그래도 활짝 열고

야윈 목 길게 뽑아 힘겹게 활개 치며

살얼음 찰랑 가르고 화살처럼 날아든다

 


 

 


 

 

중앙시조백일장 연장원 


바람의 각도 - 김태형



추위를 몰아올 땐 예각으로 날카롭게
소문을 퍼트릴 땐 둔각으로 널따랗게
또 하루 각을 잡으며
바람이 내닫는다.


겉멋 든 누군가의 허파를 부풀리고
치맛바람 부는 학교 허점을 들춰내며
우리의 엇각인 삶에
회초리를 치는 바람


골목을 깨우기 위해 어둠을 밀치는 것도
내일을 부화시키려 햇살을 당기는 것도
세상의 평각을 꿈꾸는
나직한 바람의 몫

 

 

 


 


 

농민신문 당선작

  연어 - 김완수


오년 전에 허물 벗듯 훌쩍 떠난 금실네가
가을날 지느러미 찢긴 채로 귀농했다.
세 식구 돌아온 길에 자갈들이 빽빽하다.

땅과 마주하는 법은 손에서 놓은 지 오래
도회의 수년 배긴 굳은살이 아른거려
금실이 아버지 눈은 흙마저도 시리다.

지게질도 해 보고 바닥에도 서 봤다.
시골이나 도시나 아찔하긴 매한가지
온 식구 해묵은 삶은 아가미도 헐었다.

댐처럼 가슴이 막혀 오는 두렁의 기억
금실네는 잃어 버린 편린들을 찾기 위해
혼탁한 모랫바닥을 퍼덕거려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