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21 송산 허 일 인터뷰 원고 편집인 =김종 ‘-14/ 5.23

 

 

“우리가 시를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이 곧 시이기 때문이다.”

 

0. 선생님. 참으로 건강해 보이시는데 건강을 위해 하시는 운동이나

   정신수양의 방법이 있으신가요?

*  어언 나를 둘러감은 연륜이 여든 한 둘레,

   아직은 그런대로 운신에는 별 탈이 없으나 평생 도반인 당뇨를 다스릴 겸

   식후에 가벼운 산책으로 소일하고 있지요.

 

0. 선생님께서 시조라는 숲으로 들어서게 된 동기나 계기는 무엇인가요?

*  숙명적으로 손금의 흐름 따라 울울한 시조의 숲에 이르렀다고나 할까요.

   광복된 이 땅으로 흘러들어 우리말 우리글을 몰라 (오사카 태생),

   무작정 가갸 뒷다리를 혼자 배우면서 무조건 외워 익힌 시조가 나를

   시조사랑의 길로 이끈 계기라 할까....

 

0. 또한 시조 쓰기는 선생님의 삶에서 무엇이었는지요?

* 개똥밭에 팽개쳐진 남다른 천고(天孤)의 운명에서 내 눈물을 닦아주는 유일한

  인생 도반으로서 시조는 나의 신앙이어라.

 

0. 인생의 좌우명은 무엇이고 그 좌우명을 갖게 된 철학적 동기가 있는지요?

* 육이오의 환란 중에 어찌어찌 손에 든 중학강의록 서두에‘창조파’시인이신 전영택목사의 가슴을 때린 격려사!

  <울지 말라 울지 말고 희망에 살라!> 그 한 마디가 나의 좌우명이 되었지요.

 

0. 시기별 혹은 시조집별 사유의 흐름이나 시적 경향은 어떻게 변천해 왔는지요?

* 이른 바 물 탄 꿀꿀이죽도 못 먹던 전란의 혼돈으로부터 희망찬 산업화의 시기를 거쳐

  민주화의 격랑 속에서 우리 시조가 새로운 시대사조의 물결을 타게 되어

  혁명적 시조 혁신 운동이 일기에 이르렀는데, 나아가 시조 고유의 정체성에서 일탈하여

  심히 우려되는 서구적 자유시를 패러디한, 산문적 장시화한 시조?가 내로라 행세하는

  일부 이단적 패거리 시조의 광풍에 휘둘려 권외로 내몰린 지경이 되었으니......

  바야흐로 작금에 이르러 중원에서 일기 시작한 시조의 정풍바람에 붓을 가다듬는다오.

 

0. 한일비교문학으로 학위를 받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문학의 유사점과 차이는 무엇일까요?

   특히 시조와 하이쿠의 개별적 특징과 차별성을 말씀해 주십시오.

* 한 마디로 일본의 <하이쿠>는 일도류(一刀流)의 단순 명쾌한 사생적(寫生的) 단장으로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형식으로 회자되고 있음에 비하여.

  우리 시조는 삼장육구, 강물 흐르듯 마디마디 굽이치는 가락이 천,지.인을 자재로이

  넘나드는 절묘한 시형이지요.

 

0. 대다수 문인들이 시조를 바라보는 시각이 그리 밝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시조의 폄하문제는 선비정신을 내세우면서도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문제는 아닐까요?

* 장장 1000년을 굽이쳐 흘러온, 민족혼이 살아 숨 쉬는 우리 가락, 정통 정격시조를

  시대사조에 뒤떨어진 구태라 폄훼하면서, 무작정 서구식 표현 기법을 모방함으로써,

  한단지보(邯鄲之步)의 웃지 못 할 꼴불견이 되고 말았어요.

  이제부터라도 대오각성 심기일전하여 우리 민족문학으로서의 위상을 드높여야 할 것입니다.

 

0. 1953~4년 중앙대학 문학상,1963년 전국시조백일장 입선,1978년 시조문학 천료 등단

   1979년 조선일보와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대략으로도 40년에 이른 시력이신데 불혹을 넘긴 시조의 과수에서 열매 맺은

   시관이나 시론은 무엇인지요?

* 사람은 누구나 시성을 타고난다고 보지만, 촛불심지 끝의 빨간 불똥처럼 소리없이

  뜨겁게 사르는 치열한 시혼! 참으로 외람되나 이제 와 그 어떤 경(境)이랄까?

  어렴풋이 트일 듯 열릴 듯 애를 끓입니다.

 

0. 선생님의 기준에서 보는 좋은 시란 어떤 시인지요?

*  어떤 이가 “시는 영혼의 목마름을 달래주는 물”이라고 정의했는데,

   조지훈선생께서 공감의 시, 감동의 시. 충격의 시가 좋은 시라 했습니다.

   만화는 눈맛으로 보고, 소설은 입맛으로 읽고, 시는 말맛으로 읊는다고 볼 때

   읊으면 토장처럼 깊은 속맛이 우러나 혀끝에 감치는 시어로 짜여진, 그야말로

   은은한 범종소리처럼 가슴을 울리는 시조 그 한 수가 못내 그리움을 잣습니다.

 

0. 요즘 젊은 시인들이 쓰는 시조에서 표출되는 서정성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젊은 시인과 문단의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면 말씀해 주셔요.

* 오늘날 -세계화-라는 명제 아래 급작스럽게 밀어닥친 가치관의 혼돈을 아무런 여과없이

  머리로, 손가락으로 모자이크하는 시조?가 제로라 설치는 판국이라.....

 

0.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정신적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할까요?

* 시가 철학은 아니지만 철학적이어야 한다.

  일찍이 장자가 말한바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는

  길로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둔다면.......

 

0. 문단원로로서 바라보는 우리 문단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언젠가 스스로 자숙하기를 바라는 바,

  한 마디로 패거리 작단의 폐해, 뼈를 깎는 수련은 없이 자화자찬식 북치고 장구치고

  왜장치는 막가파식 행태가 시조의 격과 품위를 떨어뜨리는 패악임에랴......

 

0. 현대시조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 현대시조는 두 말 할 나위 없이 새로워야 합니다.

  시대상이 날로 변천되어 가는 이 시국에 각주구검(刻舟求劍)식 사고로는 퇴보,

  나아가 자멸할 수밖에 없는 까닭입니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날마다 새롭고,또 새로워야 한다고 다짐하던 당시인 맹교의

  말입니다.“살아서는 결코 한가한 날 없으리 죽어야만 시를 쓰지 않을 테니까.”

 

0. 요즘의 집필 활동이나 근황은 어떠신지요?

   마지막 해가 지는 그날까지 서창에 달이 기울도록 별빛을 닦노라며

   동서문학지를 비롯한 저명한 문예지의 청탁에 힘입어 시조를 빚고 있습니다.

 

   인간사 요철(凹凸) 80년의 고비를 넘고 넘어 마침내 푸르스름한 미망의 이내를 걷고

   깨친 정신 수양의 막다른 묘처는 일체의 집착에서 벗어나는 체념의 경에 이르름에 있어.

  종합병동이라 할 노구를 이끌고 귀기 서린 깊은 숲속에서 무념에 잠기는 일상을 보내고

  있어라오.

 

 

 

 

하마

떨어질 듯

떨어질 듯

아 떨어질 듯

 

가지 끝

이슬방울

반짝!

햇살 꿰는 순간

 

또옥 톡!

돌을 깨우네

봄이 깜짝 눈을 뜨네.

 

 

거울을 닦으며

 

거울을 닦으면서

생각을 닦습니다

 

생각을 닦으면서

눈물을 닦습니다

 

내 눈에 눈물 나게 한

아아 그도 지워집니다.

 

 

석간수

 

뻐꾹~ 뻐꾹~

깊은 산을

새가 울어 적시던 날

 

내가

솔을 그러안고

그렇게 울던 그날

 

바위가

속울음 우는

그 눈물을 보았습니다.

 

 

폭포

 

하늘빛 우려내어

한 점 이슬로 맺히다가

 

천 길

벼랑 넘어

승속을 건너뛴다

 

물소리

숙연한 둘레

산이 내려앉아라.

 

 

종심(從心)의 길에

 

하회탈이 나를 보고

대포 한 잔 걸치자네

 

흙내음 묻어나는

주름 패인 웃음으로

 

강물이 만리를 굽이친들

눈물보다 깊으랴며.

 

 

기로(岐路)에 서서

 

갈기털 휘날리던

그 다리가 이 다린가

 

고(苦)너머 (苦)를 넘어

얼룩진 여든 구비

 

유유히

천망(天網)을 벗어나

하늘가는 새를 보네.

 

 

신 대동여지도(新大東輿地圖)

 

눈보라!

아 눈보라!

오오 천지개벽이야!

 

덮을 것

다 덮어버리고

펼치는 대동여지도

 

새빨간

동백 한 송이

꾹, 낙관을 찍어라.

 

 

조약돌

 

휘리릭!

일순의 섬광

아 별의 분신 낙하

 

별도 차마 목숨이 겨운

사연이 있었던가

 

달여울

구르는 물에

눈을 감은 별똥 하나

 

 

태초

천지개벽 이래

그 모진 고를 넘어

 

까맣게 결이 야문

돌을 깨워 손에 들고

 

사랑도

미움도 벗은

무심을 만져본다.

 

 

용란시대(龍卵時代)

 

어머니!

그 이름을 파는 자 누구더뇨

 

유방 망가질라 옥문이 헐거울라

 

대리모

태반을 빌어

쑥 뽑아낸 금자동이.

 

 

둥개둥개

천하없는 용의 알 떠받들 듯

 

내 새끼 기 죽인다 선생님 뺨 후리고

 

이민 가

시민권 코에 걸고

병역 기피 비웃다

 

줄줄이

낙하산 타고내린 용의 알들

 

천지개벽! 기염 토하며

여의주를 굴리다가

 

북핵이

천둥치는 속

기상도를 살펴라.

 

 

어허, 시조가 죽소

 

박물관에나 가더라고,

꼴통 삼장 육구

이잔

거시기 뭣이다냐

아, 옳거니 시조시인?

으짜까 엄청 겁나게 되야부런 그 한량들

틀이며 율을 깨고 시조를 혁파하자!

북치고 장구치고 벽제치고 왜장치네

보소라

천년을 굽이굽이 흘러서 온 저 강물.

                              

 동시조편

 

아침

거미가

오롱조롱

물방울을 매달았다

 

 

얘들아

목마르지

어서 와서 목 축이렴

 

위험해!

반짝! 반짝! 반짝!

손사래 치는 해님.

 

소금쟁이

 

소록소록 실비 끝에

동그라미 송 송 송 송

 

소금쟁이 말썽쟁이

물신 신고 쏘다니며

 

엄마가

부르는 소리

귓등으로 듣는다.

 

 

매꾸러기

 

나는

형아가 밉다

진짜 미워 죽겠다

 

툭하면 날 잡는다

죽을래 요 쬐깐 게

 

시험 때

노트를 쌱-감췄다

또 뒈지게 터졌다.

 

 

집 없는 강아지

 

호젓한

공원에서

김밥을 먹으려니

 

웬 강아지

슬그머니

내 앞에 다가앉아

 

살살살

꼬리 흔들며

말끄러미 쳐다본다

 

아니 너

이 꼴이 뭐냐

오냐오냐 그래그래

 

아나 아나

옳지 옳지

옜다 자아 물 좀 먹고

 

눈물이

그렁그렁하여

나 차마 못 돌아섰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