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28일에 개최되었던 정호승 시인 초청 문학 강연때문에 3월 사랑방 모임은 없었으며 4월의 사랑방 모임은 24일에 개최되었다. 그날 소설 문학회 작품 토론에 참석하신 분은 박숙자, 서윤석, 황보 한 제씨였으며 토의 작품은 양민교씨의 단편 <내가 너를 친구라 부르게 해다오> 였보내온 순서에 따라 Comments를 아래와 같이 전재 (轉載).


박숙자씨:

양민교 씨의 <내가 너를 친구라 부르게 해다오> 유년 시절에서 대학 가기 까지 소년의 성장 과정을 연대에 맞춰 묘사했다. 가난한 한국 이민자의 아들로써 성숙해가는 과정에서 밤낮으로 일하는 부모와 후에 외할머니의 미국 방문 등으로 이야기를 차분하게 엮어 나간다.

소설 구절은 호수 넘어 부자들이 사는 "천국 촌" 묘사로 시작한다.  두 번째 구절에서는 가난한 자기 동네의 묘사이며 "나는 낡아 빠진 아파트의 증인인 동시에 작은 터줏대감을 자처하고 대접을 받았다." 라고 한다. 그리고 이어 자기집 식구의 소개, 부모가 30세와 31세라고 한다.

부모가 그 나이이면 당시 주인공은 어린 아이다. 그러나 "나는 낡아 빠진 아파트의 증인인 동시에 작은 터줏대감을 자처하고 대접을 받았다."라고 해서 잠시 의아했. 주인공이 이런 말을 있는 어떤 시점을 잡아서 과거로 돌아가며 묘사했더라면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또는 어른의 관점에서 어린 시절을 이야기 수도 있다. 작가의 재량에 따라 독자가 수긍 있는 사건 전개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미국 소설가 Willa Cather(1873–1947) <My Antonia> –1918년에 출판된 장편 소설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겠다. 뉴욕에서 성공한 변호사가 친구에게 보낸 memoir 형식으로 친구와 같이 자란 어릴 시절을 회고하며 자세하게 Nebraska 주 농장 개척생활을 묘사했다. 시점은 화자가 열 살이 되던 해로부터 시작해서 현재까지이며, 주인공은 네 살 위의 소녀 Antonia이며 화자가 연정을 품었던 여성이다. 자연스러운 기법으로 무리 없이 생동감 있는 묘사를 하여 출판 된지 100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읽히고 있는 작품이다.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구절의 중요성이다. 보통 소설의 구절은 소설의 theme 소개/표현하며, 절의 문장은 절을 소개한다. 그런 점에서 소설의 구절이 정말 주제를 말해주는 가하는 의문이 든다.

 

서윤석씨:

양민교 님의 <내가 너를 친구라 부르게 해다오> 참으로 쓰여진

작품입니다. 모든 내용과 서술과정이 신속하고도 명확합니다. 특히 청소년들의 심리를 전문가로서 정확하게 감지하고 소설가로서 성숙된 필력으로 마무리하신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내용은 좀더 늘려서 쓰신다면 장편 감으로도 가치가 있을 것으로도 사료됩니다. 이런 이야기는 장르를 달리하여 영화의 소재로 하면 좋은 예술품이 될 것 같기도 하고...

 

황보 한씨:

<내가 너를 친구라 부르게 해다오>라는 제목이 순수한 우리 말이 아닌 외래어를 직역한 듯한 감이 든다낯선 땅에서 친구를 갈구하는 마음을 암시하려는 의도일까미국에 이민 온 지붕 기술자 아버지와 미용사 어머니를 둔 한 아이가 자기 또래의 아이들로부터 겪는 따돌림에서 마음을 주고받는 친구를 만드는 이야기가 주제이다이민 온 지 처음10 여 년간 부모가 생업에 억매여 버려 둔 이 아이는 동네 꼬마대장으로 온갖 탐험놀이를 한다이럴 때 한국에서 외할머니가 이민 오면서 이 가정에 변화가 온다시간의 여유로 아버지의 사랑과 외할머니의 인성교육에 힘입어 올바른 생각과 행동으로 친구를 얻는 과정을 평이한 문장으로 서술하고 있다외로이 죽어가던 새 친구 마크에 감동을 준 주인공의 학교대항 농구게임의 최종 3점포 승리처럼 독자들을 감동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정은선씨:

평범한 이민사회의 일상을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마치 한 소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듯,읽는 저로서 쉽게 읽혀 나갔음을 높이 평가 합니다.

굳이 이야기를 꾸미려 복잡한 사건과 인물로 독자의 흥미를 잃게 만들던 소설들은

진정성을 잃어 흥미를 잃는다는 지론 입니다.

내용속에서 주제를 찾는다면 "진실은 통한다'일듯합니다.

소년은 Ego 의 본성을 ​뛰어넘어 어찌보면 헌신(착한 아이 신드롬)적으로 주변을 돌보려 애쓰는것이 안쓰럽기는 합니다.

정신과적인 측면에서건강하다고 볼수는 없다고 감히 소아 정신과 선생님께 질문하고 싶읍니다.

왜냐하면 그아이가 마크 아버지의 시선을 불편해 하고 있었읍니다.마크도 이유(설명)없이​ 그아이를 무시했어요.

마크와의 친구가 되는 과정이 조금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너를 친구라 부르게 해다오”라고 쓴 글을 읽던 주인공의 모습에 마음이 뭉클 했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