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현의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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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애의 태생   / 이기철



슬픔은 누가 떨어뜨리고 간 노트 한 장이다

펼치면 비애 한 장이 읽혀진다

슬픔이 제 얼굴을 몰라 서성이는 페이지마다

누군가 딛고 간 시간이 담겨 있다

비애가 오는 거리는 지구의 끝처럼 미지여서

나의 몸 속 깊은 오지에 비애를 심어놓고 떠난 사람 있다

수척한 나무의 팔처럼

내 팔이 그의 여린 가슴을 안는다

슬픔의 태생지는 어디일까

하루에 한 번 이별을 경험한 나무여

내가 신고 온 시간의 신발들이 무덤으로 쌓인다

겨울의 발자국 소리를 듣는 나무 곁에서

나는 마음을 맡겨 오랫동안 비애의 종류를 생각했다

슬픔이 송진 냄새를 낸다

나는 비로소 비애를 사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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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세모가 되면 환희보다는 비애가 앞서 다가온다.

물안개 속 옷깃 모르게 젖어오는 물기처럼 소리도 없이

비애를 사랑하기 까지는 얼마만한 시간이 걸릴까.

얼마큼 먼길 걸어야 할까. 얼마나 깊은 슬픔으로 숨 쉬어야 닿을까.

슬픔은 누가 떨어뜨리고 가는 한 장의 종이인가.

그러나 펼치면 비애는 한 권으로 읽혀지리라.

 거리엔 누군가 딛고 간 시간이 담겨있다.

그가 오는 거리는 지구 끝처럼 미지여서 수척한 나무의 팔처럼

가느단 내 팔이 그의 가슴을 안을 수 있을까

 나의 몸속에도 깊은 비애 심어놓고 간 사람있었다.

겨울의 발자국 소리를 듣는 나무 곁에서

하루에 한 번 이별을 경험한 나무에게 슬픔의 태생지를 묻는다.

우리는 그  비애를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에게 늘 물으며 사는 것이다.

비애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