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현의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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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의 형식  / 김희업

 

 

생각하지 않으면 아프지 않을 수도 있다

좁힐 수 없는 거리가 세상에 존재하듯

아프고 안 아프고의 차이는 아픈 차이

(중략)

순간을 제치고 몸 속 한 획을 긋는, 통증

먼 길 돌고 돌아 까마득한 새벽 어디서 왔을까

종종 통성명 없이 불쑥 나타나

평소 없던 수많은 감정으 들춰내 죽이고 살리길 거듭

이대로라면 자멸에 편안히 도달할 것인가

내가 아니었으면, 해서 몸을 떠나고 싶은 떳떳한 출가

어떤 통증은 병명 없이 발견되기도 했다는데,

높은가지의 이파리 하나가 공중의 하루를 잠깐 날다

떨어졌다 그 위로

무지개를 새긴 문신의 통증에 대해, 고통의 화려함에 대해

하늘이 속삭이듯 고백한다

어둠을 몰아낸 형광등 빛, 바라본 동공엔 눈부신 통증이 깜박거렸다

(중략)

그러니 멀리 근처에도 통증은 있어

언제나 상쾌할 거라는 가설은 미완성으로 남겨놓는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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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은 어떻게 오는가. 통증의 형식은 어떤 것일까? 콩증은 달래다보면 몸속에 새처럼

깃든다. 통증은 그렇게 온다. 직장인의 늦은 귀가. 이어 지는 폭식, 인간이라는 순수한

권리의 장르에서 느껴지는 차별감, 소외감, 자괴감, 가난한 경제, 이 모두가 옥탑방의

열사와 혹한 같은 삶과 환경의 통증 같은 형식이다. 복부비만이나 S라인 못된 여성의

몸매만 통증의 형식은 아니다. 마음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욕망과 과욕의 비만이다.

아랫배의 로렌츠 곡선은 불룩해질수록 불평등한 부의 분배가 이루어진 통증이 되고

소득격차가 심해질스록 완전균등선에서 멀어지는 복부비만의 형식이다. 통증은 보이지

않는 억압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생각하지 않으면 아프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은 하나의

 통증의 통치방식이다. 때로 통증은 언제, 어디서나 마주치는 사회적 편견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생각 많은 사람이 더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