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현의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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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   / 장석남




늦은 밤에 뭘 생각하다가도 답답해지면 제일로 가볼만한 곳은

역시 부엌밖에 달리 없지.

커피를 마시자고 조용조용히 덜그럭대는 그 소리는 방금

내가 생각하다 놔 둔 시 같고

쪽 창문에 몇 방울의 흔적을 보이며 막 지나치는 빗발은 

나에게만 다가와 몸을 보이고 저만큼 멀어가는

허공의 유혹

같아 마음 달뜨고,


매일 매일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고요의 이 반질반질한 빛들을

나는 사진으로라도 찍어 볼까? 가시레인지 위의 파란 불꽃은 어디에

꽂아두고 싶도록 어여쁘기도 하여라.

애가 빠져 나오면 다시 사물을 정리하는 부엌의 공기는 다시

뒤돌아보지 않아도 또 시 같고, 공기 속의 그릇들은 내

방의 책을 보다 더 고요히 명징한 내용을 담고 있어, 읽다가 먼데 보는

그 얄팍한 은색의 시집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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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하고 절박한 것이 세 끼의 식사라면 그것이 준비되고 

저장되고 그것을 음식으로 준비하는 모든 도구들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부엌입니다. 

그 부엌에서의 자신의 모습이야말로 한편의 시 같다고 방금 쓰다가 놔둔 미완의 시 

같다고 말합니다. 시를 개념으로 설명하지 않고 상황으로 환기시키고 있는 이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개념은 명료한 듯하나 추상의 골격만 있고, 상황은 불투명한 듯하나 

체의 살을 지니고 있습니다. 고요 속의 그릇들은 자신의 서가에 있는 책들보다 한 수 

라고 생각합니다. 왜곡된 편견과 논리에 의하여 한쪽에 소외된 채 웅크려 있던 부엌이 

품위있는 꽃처럼, 만개한 꽃처럼, 가스레인지의 불이 타는 불꽃처럼, 시인의 간절하고 

공경어린 시심에 엄숙하고도 멋진 모습으로 되살아나고 있는 것입니다. 부엍은 한 권의

'은색시집'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