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현의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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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비가( 悲歌)    / 이선영




때론 저 검은 피아노처럼

모든 것이 같은 답을 향하여 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해진 답은 교과서만의 바람이며

하나의 답이란 편의를 위한 것일 뿐

가능한 여러 개의 답이 제 덫을 삼키며 토해 낸 여우구슬 일지라도


저 검은 피아노가 울린 것은 몇 년 전의 일이다

입 다문 피아노는 그저 소리의 여운을 간직한

칠흑의 순수로 눈앞을 채우는 것이다


처음 피아노가 벅차게 집에 들어오던 날에는

피아노의 쓸쓸한 뒷날을 예측하지 못했었다

울려야 할 미래가 남아 있는 것이라면

피아노의 긴 묵묵부답도 오답은 아닐 것이다

제 속에서 끊임없이 반추되는 울림들을 그는 듣고 있지 않을 텐다


검은 피아노가 여전히 피아노라 불리는 것은 오답이 아니다

그의 다문 입을 궁금해 하지 않았고 건반의 울림에

귀 기울이려 하지 않았을 뿐

피아노를 버리거나 버리지 않는 것은 남겨진 선택이지만

버려지는 이유도 하릴없는 피아노이기 때문이고

버려지지 않는 이유도 끝끝내 피아노이기 때문이다


지금 변변히 울리지 못한다고 해서 울렸던 그의 지난날조차

잊혀져야 한다는 말이 답이 될 수는 없다

도든 피아노가 갈채의 무대를 꿈꾸는 것만은 아니듯이 제각기 자기 소리만큼의

울림과 결절을 껴안으며 피아노가 된다. 저 검다란 피아노가

먼지를 벗 삼아 내려앉은 자리는 그가 찾았거나 아직 찾고 있는 중인

온갖 답들을 향한 질문으로 뜨거울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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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를 사랑했던 건 어려서 갖고 싶었던 그 소리를 가질 수 없었을 때부터였다. 성당의 숲에서, 
등하교길 골목에서 어느 소녀가 울려주던 '엘리제를 위하여' '헝가리안 랩소디' '문 라이 소나타' 
-그것을은 하이틴이었던 내 발길 수없이 멈추게 했다. 그때 나는 피아노가 없었다. 비었던 아픔 
아득했다. 이민, 그 시간의 궁핍 속에서도 아이들을 싣고 이리저리 뛰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레슨을 위해. 그리고 드들의 손가락을 따라하고 싶었다. 그러나 굳은 내 다섯 손가락은 그들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아들은 끝내 건반 위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아빠의 손이 슬펐던 것이다. 
지금 닫힌 피아노 위에 먼지 뽀얗다. 그들의 손, 이젠 손자의 얼굴로 오버랩되어 어른거린다.
때마침 드라마 '밀회'를 봤다. 함께 연주하는 네 손을 위한 판타지아로 알려진 슈베르트의 환상곡과
바흐의 평균율은 드라마의 극점을 이루고, 운명 같은 그 소리속에는 열정, 광명, 환희, 사랑, 비탄도
있다. 음악은 확실히 사람을 사랑하게 하는 힘이 있다. 서로의 마음을 관통하는 마력이 있다. 

사전에 나오는 우리말 '밀()()'는 가히 부정적이다. 단 한 단어도 제대로 된 의미이거나 착한 말 없다. 

드라마 밀회는 끝내 '피아노 비가'였다. 모든 빛깔을 다 품는다는 검은 빛, 대부분의 피아노는 왜 
검게 태어날까? 오늘, 부질없는 질문만 안개처럼 번진다. 드라마의 이름, 그것은 '밀회'보단 차라리
'사랑이 가는 길' '사랑의 그림자(?)' 아니면 '사랑의 얼굴(?)' 쯤이 어땠을까. 예술로 판 상업이었다. 

피아노가 있는 '차타레이 부인의 사랑'과 거리 멀지 않다.